1. 개요
虎患 / Tiger Attack[명사] 호랑이에게 당하는 화(禍).
2. 관련 정보
흔히들 무서운 것을 말할 때 "호환, 마마보다 무서운"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다른 말로 호난도 있으나 일반적으로는 잘 쓰이지 않는다.호랑이가 살지 않는 일본[2]을 제외한 아시아 문화권에서 호환으로 인한 피해는 그 역사가 깊다. 주로 한국, 인도, 중국, 베트남, 태국이 호환이 심한 지역이었다. 그중 중국 남부 지역에선 '호랑이가 여름에 물속의 악어로 변하고 악어가 가을에 산림의 호랑이로 변한다' 라는 신화가 퍼졌다.
공자는 포악한 정치를 호랑이에 비유했다. 제자들과 길을 가다가 어떤 부인이 무덤 앞에서 울고 있어서 '왜 우냐'고 물으니 '시아버님, 남편, 자식이 호환을 당했다'고 답했다. 그래서 공자가 '이런 위험한 곳을 왜 안 떠나냐'고 물으니까 '여기는 최소한 벼슬아치에게 세금 뜯길 일은 없으니까요'라고 대답하자 공자가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라고 했다고 한다. 당시의 정치판에 비교될 정도였으니 호환에 의한 피해를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이 일화가 생겨날 당시에는 누구나 쉽게 아는 호환의 무서움을 이용해 정치판의 무서움을 알리고자 한 것이다. 근대에 들면서 호환은 거의 줄어들었으나 정치판의 문제점은 그대로라 오히려 반대가 된 것.
전 세계의 모든 육식동물들 중 호랑이는 표범, 나일악어, 바다악어, 곰, 사자, 전근대까지의 늑대와 함께 인간을 공격하는 공격의 비율이 꽤 높은 편이고, 그 중에서도 유독 표범, 나일악어, 사자와 함께 식인의 비율이 높다. 점박이하이에나, 재규어, 퓨마, 상어, 대부분의 악어 등 대부분의 대형 포식자는 식인은 커녕 사람을 죽이는 경우도 매우 드물어서 모두 합해도 1년에 두자릿수를 넘지 않는다. 사냥 성공률이 낮은 편이라 이것저것 가려 먹을 처지가 아닌데다 빠르고 조용한 사냥법과 엄청난 신체능력으로 인해 인간은 저항할 틈도 없이 당한다는 점이 한 몫 한다.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호랑이는 큰 영역을 필요로 하며, 따라서 사람의 거주지가 근접하면 서식지가 겹치게 될 가능성이 아주 크다는 점이다. 호랑이에 의한 인명피해는 근대화 이후에도 계속되었는데, 객관적인 자료가 가장 잘 남아 있는 곳은 3곳이다. 중국의 푸젠 성, 말레이 반도, 그리고 인도이다.
공자의 일화가 보여주듯 중국에선 각각 남부는 인도차이나호랑이와 남중국호랑이, 서부는 카스피호랑이, 북부는 시베리아호랑이가 인간을 습격했다. 1922년에는 한 해 동안 60명의 사람이 죽었다. 또한 인도에서도 1930년대까지 매년 1,000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다고 한다.
호랑이 연구가인 스티븐 밀스는 이러한 수치의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하는데, 밀스의 주장에 의하면 모종의 이유로 공동체에서 실종된 사람의 행방을 매듭짓는 변명거리로 호랑이를 써먹었을 것이라고 한다. 즉, 사고사, 살인, 다른 맹수에게 희생 등 다른 이유로 실종된 사람의 결말을 적당히 무마하고 싶을 때, '그 사람은 호랑이가 물어갔다.'라고 둘러댄다는 것이다. 물론 단순히 호랑이가 물어갔다고 둘러대는 것이 통할 정도로 평소에도 호랑이에 대한 피해가 크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20세기에 들어서 호랑이의 개체 수가 줄어들어 예전과 같은 대규모 피해는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두 종족이 만나는 곳에서는 아직도 호랑이에 의한 인명피해가 제법 있다. 대표적인 곳이 인도의 순다르반스. 매년 수십 명의 사람이 호랑이에게 죽는다. 1981년에도 사람을 100명 이상 잡아먹은 식인 호랑이가 2마리나 나타났다가 이번에는 인도 호랑이 연구의 권위자인 랄지 무파니야트 싱 박사가 2달에 걸친 추격 끝에 2마리 다 사살했다. 이 지역은 불법으로 공원에 들어가는 사람들도 꽤 되기 때문에 정확한 수치는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이곳의 호랑이들은 아주 적극적으로 사람을 공격하는데, 바다를 헤엄쳐와 배에 타고 있던 경비원을 물어간 일도 있다. 불법 채집꾼과 밀렵꾼은 물론이고 공원 경비원까지 공격한다.
야생 맹수에 의한 피해가 교통사고나 각종 패륜 범죄로 인한 사망자보다 적은 이유는, 호랑이의 개체수가 자연적으로 조절되기 때문이다. 호랑이의 개체수는 먹이감 500마리 당 1마리 수준이고, 식인 개체는 호랑이 100마리당 3마리 수준이기 때문이다. 호랑이뿐만 아니라 보통 동물들은 인간을 먹잇감보다는 적으로 여겨 피한다.
우선 직립보행 덕분에 덩치가 커 보여서 위압감을 느낀다. 야생 호랑이 연구가인 스티븐 밀스의 말에 의하면, 호랑이 평균 어깨높이는 1m, 몸길이는 3m 정도인데 인간의 평균 키는 남성이 1.7m, 여성이 1.6m고 큰 개체는 2m가 넘으며 작은 개체도 보통 1.5m는 넘는다. 때문에 인간의 키가 1.5m여도 호랑이의 상식으로는 정면의 키가 1.5m이니 실제 몸 크기는 한 4~5m 될 것이다고 지레짐작한다는 것. 성체 아프리카물소 수컷 중에서도 큰 개체의 어깨높이가 1.6m 정도 되고, 하마가 1.5m, 흰코뿔소의 큰 개체가 1.8m 정도다. 이는 실제 많은 사족보행 동물의 착시를 설명할 때 흔히 인용하는 내용이다.
또 호랑이는 사냥을 할 때 먹잇감의 등 위에 올라타서 목을 물어 숨통을 끊어야 하는데, 인간은 직립을 하기 때문에 그 올라탈 등이 없다. 때문에 호랑이는 당황하고, 이런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서 여간한 맹수는 사냥을 하지 않는다. 상대가 실제로 반격할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는 둘째치고, 자칫 잘못하다 되려 부상이라도 당하면 굶어죽기 십상이기 때문. 기아 상태가 아닌 맹수는 반드시 잡는다는 확신이 있을 때만 사냥을 한다. 호랑이의 피해자들은 항상 뒤에서 공격받았고, 웅크린 자세에서 공격받았다는 게 이 주장을 뒷받침한다.
그리고 의외로 인간은 체취가 무척 심한 동물이다.[3] 스컹크와 같이 냄새를 무기로 삼는 동물조차도 평상시 몸의 체취 지수는 인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낮을 정도다. 일반적인 동물이 체취가 심하다면 포식자가 쉽게 추적하거나 빨리 들키지 않고 기습할 수 있어 자연 선택상 당연히 대부분의 동물은 체취가 낮게 진화할 수 밖에 없다. 당연히 체취가 조금이라도 더 적은 쪽이 살아남거나 사냥할 확률이 더 높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인류의 조상인 영장류는 덥고 습하고 각종 냄새가 들끓는 정글에서 집단생활을 하며 진화했기 때문에 체취를 줄이는 방향으로 진화할 이유가 비교적 적었다. 체취가 강해 봤자 정글의 각종 냄새로 인해 묻히는 데다 정 위험하면 나무 위로 도망치면 그만인데다, 정글을 벗어나고 나서는 맹수에게 대항할 수 있는 수단을 이미 취득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태생적으로도 다른 동물보다 냄새가 심한데다, 자연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각종 청결용품[4]을 쓰고 일반적인 동물은 피하는 양파, 생강, 마늘, 고추, 파 등의 독한 냄새가 나는 향신채를 먹기도 하기 때문에, 맹수들 입장에선 덩치는 엄청 큰데 이상하게 생겼고 온몸에서 이상한 냄새가 풍기는 괴이한 동물이 되는 셈이다. 맹수는 발달된 후각으로 인간의 냄새를 아주 민감하게 느끼니 인간을 꺼리고 피하는 것. 이건 인간의 입장에서도 당연한 일이다. 누린내가 심하거나 비누나 샴푸 냄새가 나는, 혹은 향신료를 과도하게 뿌린 고기를 먹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향신료, 특히 고수처럼 인공 세제의 향이 난다고 여기는 식재료들이 있긴 있지만 일반적으로 호불호가 크게 갈린다. 따라서 어지간히도 배가 고프지 않다면 다른 먹잇감을 찾아보는게 맹수 입장에서는 더 나을 것이다.[5]
그러나 어떤 이유로든 사람을 잡아보고, 생각보다 사냥하기 쉽다는 걸 깨달은 호랑이를 포함한 다른 맹수들은 인간 사냥꾼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로 서식지 파괴와 먹이의 감소이다. 살 땅과 식량 및 먹잇감이 없어지면 호랑이는 살기 위해 이동한다. 이 과정에서 인간의 영역을 침범하게 되고 가축을 잡아먹다가 급기야는 인간마저도 습격하게 되는 것이다. 19세기 말레이 반도와 남부 중국에서 벌어졌던 살육이 이런 양상을 띤다. 일반적으로 이런 유형의 인간 사냥은 오래 지속될 수 없다. 인간의 보복을 받아서 살해당하거나, 정말 먹을 것이 없어져서 굶어죽기 때문이다. 인간의 영역 주변에서 살게 되므로 인간 눈에 훨씬 쉽게 띄기 때문.
2번째는 질병, 부상, 노화 등으로 인해 쇠약해지는 것이다. 인간이나 가축은 야생동물에 비해 조심성이 전혀 없고 느리고 힘도 약하다. 더 이상 사냥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약해지는 호랑이는 쫄쫄 굶게 되고 자연스럽게 쉬운 먹잇감을 노리게 된다. 비록 그것이 목숨을 담보로 하는 일일지라도 말이다. 위에서 이야기한 참파와트의 식인 호랑이도 오른쪽 위아래 송곳니 2개가 모두 부러진 상태였다. 코벳 대령은 총에 맞아 부러졌다고 추정했다. 200명 이상을 잡아먹은 쿠마온 식인 호랑이들도 대부분 이빨이 부러지거나 충치[6] 등으로 훼손되어 사냥하기 어려워 결국 사람을 잡아먹게 된 것이라고 한다.
실은 이 2번째가 가장 흔한 인간 사냥꾼의 발생 패턴이다. 영역다툼에서 패배해 영역을 잃은 수컷은 인간 사냥꾼이 될 확률이 높다. 특히 심각한 부상을 입어서 먹이를 잡지 못한 놈이라면 더욱. 늙어서 이빨이 부러지고 무디어진 호랑이는 먹이의 숨통을 끊기가 어려워지는데, 이런 개체들도 인간 사냥의 유혹을 받는다. 인간으로 치면 70대쯤 접어들어서 젊을 때보다 달리는 속도도 느려졌지만 그렇다 해도 인간보다는 훨씬 빠르고, 설령 이빨과 발톱이 무디고 빠졌어도 앞발의 근력을 이용해 후려치기만 해도 인간은 쉽게 무력화되거나 죽고, 인간의 약한 피부는 무딘 이빨로도 쉽게 뜯어서 먹을 수 있는 부드러운 고기라는 것이다. 야생에서 혼자 사는 동물들은 인간조차 사냥하기 어려울 정도로 매우 쇠약해지기 전에 보통 죽는다.
그리고 갓 독립한 새끼들은 경험이 없다. 사냥에 실패할 확률이 높은데다 무모하기까지 한 이들은 주변에 인가가 있다면 무딘 이빨로도 사냥하기 쉬운 인간을 노리기 쉽다.
가장 심각한 부상을 초래하는 동물은 바로 호저이다. 배고픔을 견디지 못한 아성체 호랑이들이 가끔 호저를 공격하는 헛된 노력을 한다. 호저의 가시는 한번 박히면 잘 빠지지 않고 움직일 때마다 점점 깊숙히 들어가 잘못하면 패혈증 등 감염으로 죽을 수 있으며, 찔려서 죽지 않았다 하더라도 손이 없는 호랑이는 가시를 뺄 수가 없어 사냥할 능력을 잃는다. 야생의 산양이나 사슴, 멧돼지, 영양 등은 매우 조심스럽고 민첩해 부상당한 발로 잡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숲 가장자리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는 가축과 인간은 손쉬운 사냥감이다.
코벳 대령의 사냥기에는 모한(Mohan)에서 잡은 또다른 한 식인 호랑이에 관한 일화가 나온다. 그 호랑이는 겉보기엔 멀쩡했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호랑이가 호저에 찔렸을 것"이라는 짐의 말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코벳이 호랑이를 잡은 후 다리를 갈라내자, 놀랍게도 겨드랑이 안쪽에서 30여 개의 호저 가시가 나왔다. 가시는 모두 피부 바로 밑에서 부러져 있었고, 어떤 가시는 13cm가 넘었다. 다른 호랑이를 잡았을 때는 길이가 30cm에 연필만큼 굵은 것도 있었다. 코벳은 표범이 솜씨좋게 호저의 머리를 공격하여 사냥하는 반면, 호랑이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에 의아해하기도 했다.
3번째는 가장 심각한 상황으로, 위의 2가지 경우에서 나온 경험을 통해 인간을 먹잇감으로 인식하고 있는 케이스이다. 원래 인간은 호랑이의 식단에 들어가지 않고, 인간 사냥은 호랑이가 막다른 궁지에 몰렸을 때 최후에 굶어죽지 않기 위해서나 선택하는 카드이다. 하지만 수차례 인간을 습격하면서 인간의 체취에도 익숙해지며 경험이 축적되고 노하우를 터득하게 된 호랑이는 쉽게 구할 수 있는 먹이인 인육을 선호하게 된다. 미얀마에서는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갑자기 호랑이 희생자가 급증하는데, 이는 1942년 연합군의 전면철수와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남겨진 시신과 부상자를 먹으면서 인간 사냥법을 터득한 데다 위협이 되는 총으로 무장한 군인들이 대거 사라지면서, 호랑이들이 이후에도 계속 인간을 죽였다.
20세기 후반부터는 인도의 순다르반스에서도 이러한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순다르반스에 서식하는 벵골호랑이 중 일부는 우연히 숲에서 조우했을 때만 공격하는 것이 아닌 명백하게 인간을 먹이로 삼는다. 배에서 낚시를 하는 어부를 노리고 강을 건너와 물에서부터 튀어나와 덮친다. 이 지역에서는 매년 50명에 달하는 인간이 호랑이에게 죽는다.[7]
화승총을 주로 쓰던 제정 러시아 시절, 사냥꾼들은 신참 사냥꾼들에게 호랑이의 은밀한 접근과 기습에 대한 공포를 이렇게 표현하여 경고하기도 했다.
설원에서 호랑이를 볼 수 있는 순간은 오직 한 순간뿐이다. 호랑이가 너를 죽이기로 마음 먹었을 때.
스티븐 밀스도 호랑이를 탐구하느라 정글을 돌아다닐 때 가장 긴장되었던 순간은 숲 속에서 용변을 보던 때였다. 호랑이는 발소리를 극도로 줄이면서 다가오는 고양이과 동물의 특성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어, 문자 그대로 코앞에 닿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오기까지는 인간의 청력으로는 결코 접근을 알아차릴 수 없다.
한국이나 중국의 민담에는 호랑이와 눈싸움을 해서 이겼다는 이야기들이 전해져 내려온다. 이 이야기에는 어느 정도의 진실이 담겨 있는데, 주로 사냥꾼들을 통해 구전되는 이 이야기에서 호랑이는 인간이 조금이라도 주눅들거나 비굴한 모습을 보이면 공격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실제로 직립자세를 유지한 채 정면으로 대치한다면 호랑이는 매우 혼란스러워 할 것이며, 잘 모르는 상황에서 굳이 위험을 감수하기보다는 일단 위험을 피하기를 선택하고 물러났을 가능성도 있다. 마사이족이 식사하는 사자에게 당당히 걸어가는 걸로 혼란에 빠진 사자를 내쫒고 먹이를 삥 뜯는 걸 보면 같은 고양이과인 호랑이의 사례도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참조영상 더불어 원래 호랑이가 사냥할 때는 자신의 모습을 숨기고 시작하기 때문에, 호랑이가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면 아예 공격할 생각 자체가 없었거나 정면대결을 해도 위협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너무 약하다고 판단했다고도 볼 수 있다. 너무 만만해 보여서 대놓고 걸어왔는데 상대가 안 도망치니 당황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특성을 이용하여 호랑이 퇴치 장비를 고안하기도 했다. 허수아비 전기충격기는 호랑이들이 허수아비와 인간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멍청하진 않아서 별로 효과가 없었지만, 뒤통수에 쓰는 가면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다. 뒤통수에도 눈이 있어 자신을 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호랑이들이 대부분 오른손잡이임을 이용해서 오른쪽 어깨에 스파이크를 달아도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2명 이상 짝을 지어 다니는 행동강령도 어느 정도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물론 호랑이도 엄연히 학습하는 동물인지라 이 방법도 보통 눈치를 채서 이제 통하지 않는다고 한다.
3. 사례 및 사살
21세기 현대에서도 이런 맹수가 사람을 잡아먹은 사건이 터지면 동물보호고 뭐고 그 일대의 맹수들을 몽땅 쏴 죽이는 일이 터진다. 실제로 한번 인간의 피와 살맛을 본 동물은 그 이후로는 인간을 사냥감으로 인식[8]하게 되므로, 죽여버리거나 평생 시설에 가두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한다. 때문에 도망쳐도 끝이 아니라 무조건 추적해 발견하면 필시 사살 혹은 생포하며, 멸종위기 동물이나 보호종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그나마 어떤 놈인지 확실하다면 바로 그 놈만 죽이고 끝낼 수 있지만, 어떤 놈인지 특정할 수 없다면 그냥 근처의 같은 종을 다 죽이는 수밖에 없다. 이러니 인도 등지에서 호랑이나 표범 연구로 유명한 동물학자들이 식인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스스로 총들고 식인 맹수를 쏴죽이러 나간 것이다. 식인을 한 개체로 인해 애꿎은 다른 맹수들이 학살당하는 것을 최대한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2000년대에 아프리카나 인도에서 호환이나 사자나 표범이 사람을 여럿 잡아먹자 육군이 출동해서 인근에 보이는 맹수는 죄다 쏴 죽여버렸다. 러시아에서도 시베리아에서 사람이 곰에게 잡아먹히면 그 근처 곰을 싸그리 다 죽여버리기도 한다. 호랑이고 뭐고 총에는 장사가 없고, 민수용도 아니고 군용으로 쓰이는 자동소총이나 분대지원화기급 무기를 들고 긁기 시작하면 코끼리조차 사살 가능하다. 더불어 이 맹수들은 전세계에서 계속 사살당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식인사건이 벌어지면 사냥꾼들이 우르르 달려들기도 한다. 거기에는 혼란을 틈타 한 몫 벌어보려는 밀렵꾼도 있어서 문제이긴 하지만, 아무튼 보이는 대로 쏴죽인다.
러시아 극동의 경우 인도에 비하면 많이 일어나는 편은 아니지만 이곳도 심심찮게 호랑이의 습격이 일어나는 편이다. 대표적으로 1997년에 한 사냥꾼이 한 호랑이를 사냥하는데 실패하고 그가 먹던 먹잇감을 가져갔는데 그 호랑이가 분노해 사냥꾼의 집으로 먼저 와서 집 안을 어지럽혀놓고 사냥꾼이 오자 그를 죽여서 잡아먹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그리고 최근에 사냥꾼을 잡아먹거나 볼일 보러간 나무꾼을 끌고 가서 잡아먹는 등 호환이 서서히 늘어나고 있는 중이다.
TV 동물농장에서도 맹수를 주로 담당하는 미국 동물보호원에서 이런 호랑이를 구조하여 맡는 게 나온 바 있는데, 어느 가정집에서 집주인을 크게 다치게 하고 여기로 온 호랑이가 나왔다. 그 호랑이 상태가 털이 좀 나다말다하고 겉으로 봐도 뭔가 이상한 상태인데, 성장억제제를 과용시킨 결과라고 한다. 당시 방송에 나온 호랑이는 자신을 그렇게 만들며 키우던 사람을 공격하여 수백바늘을 꿰매게 만들고 여기로 왔다고 한다.
인도에는 100명 이상의 인간을 죽인 호랑이들이 여럿 존재한다. 유명한 인간 사냥꾼으로는 탈라 데스, 로하가트, 차우가르 등이 있다. 모두 100명 내외의 인간을 죽였다. 제일 악명 높고 유명한 놈은 20세기에 "참파왓(Champawat)"라는 암호랑이(참파왓 지역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붙은 이름)로, 확인한 바에 의하면 436명의 인간을 죽였다고 한다. 네팔에서 네팔인 200명을 잡아먹은 후 인도로 넘어가서 인도의 쿠마온에서 4년간 236명의 사람들을 더 죽이고 유명한 명사수인 영국 육군의 짐 코벳 대령이 사살했다. 짐 코벳이 처음 사살한 식인동물이였다. 그의 자서전<명포수 짐 코벳과 쿠마온의 식인 호랑이>에 의하면 참파왓은 엄청 빠르고 게다가 머리도 영악해서 사람이 총을 가지고 잠적한 곳은 얼씬거리지도 않았다. 심지어, 쇠냄새를 기똥차게 알아차려서 밭을 가는 농부들도 일절 건드리지 않았다고 한다. 농기구 쇠냄새도 알아차린 것이기에. 그래서 코벳은 총냄새에서부터 흔적을 없애고자 온갖 채소와 동물똥을 총 여기저기에 바르기도 하고 여러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2009년 5월 27일 뉴질랜드 왕가레이 섬에 있는 지온 생태 공원(Zion Wildlife Gardens)에서 사육사인 달루 은쿠베(Dalu Mncube, 남아공 사람으로 당시 26세)가 맡아 돌보던 백호 아부에게 참혹하게 물려 사망했다. 아부는 이후 동물원 측에서 총으로 쏴 죽였다.
달루 은쿠베. | 당시 사살당한 수컷 백호 아부의 생전 사진. |
사육사 달루를 보고 멍청하다고 비웃을지 모르지만, 이 사람은 2009년 2월에 이 백호 아부와 다른 암컷이 다른 사육사를 공격하자 빗자루만으로 제압했던 적이 여러 번 있었기에, 얼마든지 막을 것이라며 평소와 다름없을 거라 착각하고 저렇게 들어갔다. 실제로 사육사가 간단하게 호랑이들을 제압하고 훈련시키는 사례는 전세계적으로 매우 흔하다. 어릴 적부터 돌봐서 건드리지 않는 호랑이가 많기 때문이다. 당장 TV동물농장을 봐도 맹수가 다 커도 빗자루 들고 사육사가 떽! 화내면 쫄아서 물러서는 장면이 종종 나오듯이, 전세계적으로 동물원 사육사들이 자주 이렇게 군다. 사실 호랑이를 우리 바깥으로 따로 보내는 것도 제법 시간도 많이 걸리고 번거롭기에, 이렇게 사육사가 들어가서 청소하는 것도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고, 결국 저렇게 끔살당했다. 이 참극으로 이 동물원은 특별감사를 받았는데 열악한 관리 상황이 드러났다.
2008년 11월 13일 싱가포르 동물원에서 청소부 1명이 3마리 백호에게 습격받아 사망했다. 관련 동영상을 보면 사람이 빗자루와 바구니를 들고 호랑이 똥을 치우러 우리로 들어가는데 우리에 있던 호랑이가 난데없이 습격한다. 초반부만 보면 단순히 장난을 치는 것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후반부까지 자세히 보면 우리의 구석으로 끌고 가 뜯어먹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중간에 관객들이 'Get in the water(물 속으로 들어가세요)!'라고 외치는데, 부질없는 짓이다. 애초에 저 영상에서도 물 속으로 피한 사육사를 끌어내서 습격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촬영하고 목격한 관광객들은 이 당시 가이드 투어로 온 프랑스인 관광객 8명이었다. 동물원측은 그 청소부가 사고 당일에 작별을 암시하는 말을 계속 했고, 동물들에게 물건을 던지는 등 이상한 행동을 했다고 주장했다. 사건 당시 영문 기사. 세 호랑이의 이름은 Omar, Winnie, Jippie 이다. 백호들은 사살당하지 않고 각각 2012, 2014, 2017년 병에 걸려 안락사될 때까지 싱가포르 동물원에서 살았다. 2017년 6월에 Omar가 셋 중 마지막으로 죽었다.
2013년 11월 24일, 과천 서울대공원에 위치한 서울동물원에서 시베리아호랑이인 로스토프가 사육사를 물어 의식불명의 중태에 빠뜨려 결국 숨지게 한 사건이 일어났다. 상세한 내용은 서울동물원 문서의 호랑이사 사육사 사망 사건 문단 참조. 이후 로스토프는 비공개 사육되다가 2021년부터 다시 공개 사육 되었다.
2017년엔 중국의 한 동물원에서, 티켓 값을 아끼려고 동물원 담을 넘었는데 하필 호랑이 우리에 떨어지는 바람에 호랑이한테 물려서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호랑이는 총으로도 잡기 쉬운 동물이 아니다. 순다르반스 감시원의 말에 따르면 호랑이가 달리기 시작하면 총알을 몇발을 쏘건 소용없다고 하는데, 이는 고양이과 동물들의 신체구조와 관련이 있다. 정면을 향했을 때 피탄면적이 놀라울 정도로 줄어들고, 부풀린 털 때문에 실제보다 크게 보인다. 따라서 급소인 미간을 정확히 노리고 사격했을 때 열에 아홉은 이마의 털만 스치고 지나가 버린다. 아프리카에서도 이를 몰랐던 많은 사냥꾼들이 사자에게 역공을 당해 죽었다. 호랑이를 사냥할 때는 측면에서 배나 옆구리를 노리는 것이 정석인데 나무문 정도는 산산조각을 내버리고 쇠문도 부술 정도로 저지력이 높은 산탄총을 쓴다 해도 펠릿 여러 개가 명중하긴 하겠지만 한 방에 쓰러져 죽는다는 보장은 없다. 과거 호랑이를 사냥하던 엽사들이나 밀렵꾼들이 가장 많이 사망했던 원인도 총상을 입힌 후 역공을 당해서였다고 한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호랑이도 죽지만 그 전에 달려와서 원펀치를 날리는 것이 더 빠르기 때문. 그렇기 때문에 식인 호랑이를 12마리나 잡은 코벳 대령이 전설적인 명포수로 추앙받는다.
인류가 총을 무기로 가지고 나서야 겨우 대적할 수 있게 되었지만 총 가진다고 압도적으로 호랑이를 잡는 게 아니란 거다.
1920년대 인도 제국에서 호랑이를 잡고자 동원된 사람 수. 영국 부유층 귀족이 인원을 대거 고용해 호랑이를 사냥하러 나선 거라 이 많은 사람을 동원했던 게 가능했다. 이 사진에선 이 많은 사람을 동원해서 달랑 1마리 잡은 걸로 보이지만, 밑을 보면 이런 인해전술로 비로소 호랑이가 학살당하게 됐다. 당연하지만 엄청나게 노련한 호랑이는 이런 사람의 인해전술에 얼씬도 안 한다. 위에 나온 참파왓 식인 호랑이만 봐도, 수백여 명을 동원했으나 제대로 찾지도 못했던 걸 봐도 알 수 있다. 이런 식인 호랑이는 거의 잡히지 않고 애꿎은 호랑이가 학살되기 일쑤였다. 물량이 많다 보니 보이는 족족 죽이면 어느샌가 잡긴 잡겠지만,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리고 무분별한 사냥으로 생태계 아작내기 십상이다. 이런 사냥법에 대하여 거부감을 보이고 몇몇 소수 인원을 이끌고 아예 호랑이와 1:1로 싸워 사살한 코벳 대령이 그야말로 괜히 전설이 된 게 아니다.
하지만 결국 이런 인해전술이 호랑이 학살에 통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코끼리도 동원하고 사람들을 가득 무장시켜 나서면서 호랑이들은 마구잡이로 학살당한다.
이렇게 호랑이는 가죽과 박제감으로 장식 대상이 되는 게 허다했다. 19세기 제국주의 팽창으로 식민지였던 아프리카나 아시아 각지에서 유럽 백인들이 총을 잡고 맹수 사냥을 즐기며 마구잡이로 학살했다. 본인이 진짜 사냥 실력이 대단하지 않다면 고용한 사냥꾼이나 보조자들이 몰이꾼 역할을 해 고용인 근처로 사냥감을 몰아붙이면 쏴서 죽이는 것만 고용주가 하곤 해, 여흥으로 즐기는 사냥도 아무나 할만한 건 아니었지만 이런 경제적 여유가 되는 부자들이 사냥을 즐기면서 호랑이나 표범이나 많은 맹수들이 세계 각지에서 마구잡이로 학살되었다. 호랑이가 아무리 총으로 잡기 힘든 동물이라고 해도, 명중시키는 것이 어려운 것이지 총으로 죽일 수 없을 정도로 맷집이 좋은 건 아니었기에 사냥꾼들이 단체로 총알을 퍼부어버리면 얄짤없었다.
인도네시아에서도 호랑이가 실제 서식하였거나 과거 서식하였으나 인간의 남획으로 멸종됐던 수마트라 섬과 자바 섬, 발리 섬 등지에서도 호랑이에 의한 호환피해가 있었으며, 인도네시아가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던 시절에 네덜란드 사람들이 서술한 호환피해의 기록이 존재한다. 인도네시아가 네덜란드로부터 독립국으로 독립한 현재 호랑이가 서식하는 수마트라 지역에서도 호랑이에 의한 호환피해가 벌어질 정도.
베트남 전쟁 때 전사자들의 시신을 먹어 인육 맛을 느낀 호랑이들이 미군을 습격하는 사례가 꽤 있었다[9]. 미군 분대가 끔찍하게 난도질 당한 동료의 시신을 발견했는데 이에 베트콩이 저지른 짓이라고 여겼지만 발톱에 할퀴고 복부가 이빨로 물어뜯긴 자국 등 베트콩에게 습격당한 상처라고 보기 어려운 상처들이 발견되었다. 부검 결과, 호랑이의 짓이라는 게 밝혀졌다. 이후 이 호랑이들 때문에 작전에 큰 지장을 주게 되자 이에 빡친 미군 측은 대량살상무기인 기관총, 호랑이 발톱 따위로는 씨알도 안 먹히는 강철판을 둘둘 두른 장갑차와 전차, 화염방사기 등의 중무장을 동원해서 호랑이들을 닥치는대로 사냥했을 정도. 하늘에서 쏟아진 고엽제는 덤이다. 당시 호랑이 가죽이 비싸게 팔리고 있었고 호랑이를 사냥한 미군들은 전리품으로 가죽을 무두질해서 가져갔다. 이로 인해 베트남 호랑이가 많이 줄어들었고 베트남 전쟁이 끝나고 난 뒤에도 호랑이 사냥이 심해진 나머지 베트남에서는 호랑이가 멸종위기에 놓여 있다. 얼마나 심각한지 현재 베트남에 서식하는 호랑이의 개체수가 고작 수십마리에 불과할 정도다. 그래서 베트남 정부는 호랑이의 보호와 번식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또한 여러 발을 넓은 범위에 흩뜨리는 산탄총, 여러 발을 빠르게 쏠 수 있는 돌격소총이나, 최소한 연사가 가능한 구형 자동소총 정도는 들고 오면 위험 부담이 훨씬 줄어든다. 20세기 중반쯤의 단발 소총보다는 발당 위력이 약하다지만 그래도 어지간한 권총 따위를 아득하게 초월하는 위력이고, 수 발에서 십여발을 한꺼번에 맞으면 발당 위력이 약하느니 뭐니 소리가 나올 수가 없다. 특히 산탄총은 제대로 맞으면 방폭복을 입어도 충격에 심한 타격을 받고, 방탄복이 없으면 온 몸이 으스러진다. 이런 걸 계속 쏠 수 있는 반자동 산탄총이라면 여러 발 쏴 머리에 맞추면 머리뼈를 박살내고 뇌까지 탄알이 뚫고 들어가 즉사시킬 수 있다. 방탄복도 뚫어버릴 정도로 강력해 철갑탄에 맞먹는 운동 에너지를 가진 슬러그탄이면 말 다 했다. 애초에 현대의 자동화기는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대인저지력을 훨씬 더 많이 쏴서 해결한다.[10] 문제는 자동소총 단위조차도 일반적인 나라에서는 민간에 거의 안 풀려서 일반적인 사냥꾼이 구하기 쉽지 않다는 것[11]. 반면에 치안이 안 좋아서 이런 화기가 민간에까지 퍼진 나라라면 호랑이도 비교적 쉽게 잡을 수 있다. 그나마 호랑이가 많이 있는 나라는 미얀마 정도를 제외하면 내전이 극심한 나라가 없어 이 점에선 코끼리나 사자보단 상황이 낫다. 내전이 심한 아프리카 등지에서는 현지 군벌들까지 사냥에 나서서 코끼리나 사자들이 돌격소총에 맞아 학살당한다. AK-47로 무장한 사냥꾼들이 총알 14발만으로 7마리의 코끼리를 끔살시킨 사례가 있듯이. 호랑이를 옛날 활이나 단발 화승총도 아닌 이런 총으로 여럿이 가서 쏴대면 아무리 빠른 호랑이도 결국은 벌집이 될 뿐이다. 호랑이에게 타격을 주는 더 큰 원인은 총기의 발달 자체보다는 밀렵과 서식지 파괴다.
그렇긴 해도 그 시절과 다르게 총알 위력이 더더욱 올라간 현대에서도 아무리 좋은 총이 있다고 해도 초보자가 멋대로 까불 상대가 아니다. 한 가지 실화만 봐도 알 수 있는데, 2005년 러시아에선 어느 사냥꾼이 갑자기 호랑이의 습격을 받았다. 그는 6발을 호랑이에게 쏴서 대부분을 맞혔다. 그러나 호랑이는 일절 속도가 떨어지지 않고 달려왔고, 재장전할 틈도 없던 그는 나무 위로 올라갔는데, 호랑이는 나무 위로 좀 올라오며 발톱으로 몇 번 공격하다가 서서히 쓰러져 죽었다. 사냥꾼의 신고로 현장에 와서 이를 조사하던 러시아 동물학자들은 충격에 빠졌는데, 호랑이가 갑자기 사냥꾼을 공격한 것은 이미 사람에게 당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엑스레이로 발견된 것에 의하면, 호랑이 머리에 총알이 3발이나 박혀 있었다. 아마 소구경 탄환으로 추정된다. 물론 이 사냥꾼이 쏜 게 아닌 다른 누군가, 아마도 밀렵꾼으로 추정된 이가 먼저 쏜 것에 호랑이는 부상당해서 스트레스를 받아, 나중에 지나가던 그 사냥꾼을 공격했다. 그리고 그 밀렵꾼은 적어도 중상을 면치 못했으리라 추정되는데, 호랑이 발톱에 사냥꾼의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의 살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해부 결과 사람 살점은 없어서 식인 개체는 아니었지만 머리에 총알이 박힌 지 한참 지나고도 이렇게까지 사람에게 덤빈 걸 봐도, 호랑이가 장난 아니게 잡기 어려운 걸 알 수 있다. 물론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서 먼저 발견해서 할로 포인트탄 내지는 철갑탄, 고폭소이탄 등 군용 수준의 자동소총을 들고 함께 갈겨대면 호랑이는 물론이고 코끼리도 못 버틴다.
인도의 아삼 주에서 가축을 해치는 호랑이를 잡기 위해 코끼리와 엽총으로 무장한 경비대가 출동한 일이 있었다. 그때 궁지에 몰린 호랑이가 코끼리에게 정면 돌격해 오더니 3m 이상 점프하여 코끼리에 타고 있던 대원을 앞발로 가격한 후 달아났고, 그 대원은 중상을 입었다. 측면에서 공격해온 것도 아니고 코끼리의 정면에서 공격했다! 거기에 코끼리가 저 코끼리 1마리만 있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호랑이가 뛰어오르기 전 부분도 충분히 공포스러운데, 넓디넓은 초원 한가운데에 코끼리 위에서 카메라를 찍는데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호랑이가 10m쯤 떨어진 곳에서 예고도 없이 튀어나와 암살을 시도하는 모습은 공포 그 자체다. # 호랑이가 휘두르는 앞 발의 타격력은 차량 외판도 쉽게 찌그러트릴 정도인데다가 웬만한 칼보다 날카로운 발톱까지 있으니 사람의 몸으로 그대로 맞았다가는 뼈가 부러지고 살점이 찢겨져 나가는 게 기본이다. 실제 위 영상에서 부상을 입은 대원은 호랑이에게 손을 빗겨 맞았는데도 불구하고, 영구적인 흉터가 생길 정도의 큰 부상을 입었다. 제대로 맞았다면 손을 잃을 수도 있는 파괴력임을 알 수 있다.
빗겨맞은 가격으로도 대원이 중상을 입을 정도면 파괴력도 엄청나다. 호랑이가 앞발을 휘두를 때의 힘의 크기가 800kg 정도는 된다고 알려져 있으며,[12] 물소 같은 대형동물의 두개골이나 척추를 일격에 산산조각낼 수 있으니, 문제 동영상 장면에서 죽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다. 이 대원은 이후 회복해서 계속 경비대원으로 일했다. 이 사람의 인터뷰가 들어간 호랑이 보호운동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한국에 방영되어서 국내 방송도 탔다. 다만 영상을 자세히보면 이 대원도 준비가 허술했던 것이 호신용으로 엽총을 가져가야 했는데 가져가지 않고 그저 막대기만을 가져가서 들고 있는데다 호랑이를 견제하고 막기 위해 사냥개를 대동하지 않은것이 큰 실수였다. 게다가 이 대원의 옆에 칸 대원조차 총으로 무장하지 않았기에 호랑이의 공격에 제대로 대응을 못했다. 한마디로 코끼리를 탄 대원 2명이 코끼리만 믿고 무턱대고 안일한 마음으로 호랑이를 잡으려 했으니 화를 초래한 것. 최소한 총으로 무장하거나 사냥개를 대동했으면 이렇게 부상당했을 가능성은 줄어들었을 것이다.
야생에서 자라지 않고 인간에게 사육된 코끼리는 호랑이를 두려워한다고 한다. 원래 코끼리가 신중한 동물인데다가 인간에게 사육되면 공격 본능이 완화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도에 서식하는 코끼리는 아프리카에 서식하는 코끼리와 달리 덩치가 작은 편에 속한다. 성체라면 호랑이는 쉽게 막지만 새끼는 기습에 취약하다. 아예 새끼와 어미가 같이 있는데도 새끼를 덮쳐서 잡아먹기도 한다. 저 위 동영상에서 공격받은 경비원만 해도 코끼리 위에 타고 있는 상태였었다.
호랑이의 공격으로 죽지는 않았지만 얼굴이 망가져버린 사례도 있는데 사진을 보면 호랑이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동물인지 실감할 수 있다.혐짤주의
4. 한반도에서의 호환
"조선사람의 1년의 반은 호랑이를 쫓느라고 보내고, 나머지 반은 호랑이에게 잡아 먹힌 사람의 문상을 가느라 보낸다."
이 과장된 문장은 영미권에서는 '옛 중국인들이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로서 조금 다른 형태로 알려져 있는데, "1년의 여섯 달은 조선사람이 호랑이를 사냥하러 다니고, 남은 여섯 달은 호랑이가 조선사람을 사냥하러 다닌다"가 그것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여름에는 사람들이 총들고 나가서 호랑이를 잡아족치고, 겨울에는 굶어죽을 지경이 된 호랑이가 민가로 들이닥친다는 식.
과거 한반도에는 시베리아호랑이가 많이 살았고 더불어 인구밀도도 현대 국가 못지 않게 높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호환이 일상적으로 일어났다. 이처럼 호랑이는 현실 속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었기에, 이를 피하기 위해 집집마다 빗장을 걸고 호망이라는 굵은 그물을 만들어 지붕부터 마당까지 덮는 등 호환을 막는 방법이 발달하게 되었다. 이는 당시 사람들의 심리에도 큰 영향을 주어, 호랑이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심을 담아 호랑이를 산군, 산신령이라고도 부르기도 했다. 지방 행정력이 상대적으로 미비했던 신라나 고려시대는 조선처럼 정책으로 호랑이 전담 사냥팀을 구성하고 관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숫자의 호랑이가 서식하게 되었다.
심지어 호랑이는 서울에도 판을 쳤는데 아예 대궐에도 들어오거나 창덕궁에 새끼를 낳기도 했다.# 조선왕조실록에 호환이나 호랑이를 검색하면 호랑이 관련 기사가 수두룩하게 뜬다.#
호환으로 인한 희생자가 얼마나 많았는지 태백산 일대에는 호식총(虎食塚)이라는 돌무덤이 약 160기 존재한다. 이는 호랑이가 먹다 남긴 사람의 유해 및 유골을 수습해 만든 무덤이다. 호랑이는 사냥감의 머리 부분은 대개 먹지 않기 때문이다. 옛날 사람들은 호환의 희생자는 호랑이의 종 노릇을 하면서 또다른 사람을 호랑이의 먹잇감로 삼게 하는 창귀(倀鬼)가 된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창귀를 소멸시키기 위하여 화장을 하고, 창귀가 세상에 나오지 못하도록 돌무덤에 가두어두고, 쇠꼬챙이를 꽂아 창귀를 제압하고자 했으며 이러한 풍습을 호식장(虎食葬)이라고 하는데, 당시 사람들에게 호환이 얼마나 무서운 재앙이었는지를 짐작케 한다.[13] 또 오죽하면 한국과 중국 등의 아시아에서도 창귀를 다루며 인간으로 둔갑하는 추인이라는 식인 호랑이 요괴도 있을 정도이니 말 다 했다.
사실 과거 한반도에는 아무르표범, 우수리불곰[14], 우수리아시아흑곰, 늑대[15], 우수리승냥이 등 다른 맹수들도 살았으니 이들에 의한 인명피해 역시 상당했을 것인데, 이 또한 호환이라 여겼다. 그냥 맹수한테 당한 사람이 나오면 기본적으로 호랑이의 짓으로 여겼다는 것인데 한 편으론 저 맹수들중에서도 가장 많은 인명 피해를 끼쳤던 것이 호랑이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전 고을에 수령을 파견하는 등 지방행정력이 튼튼한 조선시대에 들어선 체계적으로 호랑이 사냥을 할 수 있었다. 백성을 해치는 호랑이를 제거하는 일은 조선의 국시인 유교이념에 부합하며, 호랑이 사냥을 위해 산과 들을 누빔으로서 자연스럽게 군대 기동훈련을 겸할 수 있어 권장되었다. 조선 중기 때부터는 호랑이 사냥만을 담당하는 부대인 착호갑사를 두어 집중적으로 호랑이를 사냥했다. 호랑이를 많이 잡아서 종4품, 현대로 치면 중령급의 벼슬을 얻은 사례도 있으며, 호랑이 퇴치를 위해서라면 임금의 허락 없이도 군대를 움직일 수 있었다. 이것은 쿠데타 위기시와 더불어 국왕의 재가가 필요없이 군대를 움직일 수 있게 허용된 몇 안 되는 경우로, 실제로 쿠데타용으로 악용한 사례도 있다. 인조반정때 이 점을 이용해 호랑이 잡으러 간다고 부대를 모아서는 실제론 반정에 썼는데, 반정 세력조차 집권 후 이 제도를 건드리지 않았다. 달리 말하면 반란에 악용된 전례가 나와도 선조치 후보고 운용을 지속해야 할 정도로 호랑이로 인한 재난이 심각했다는 것으로 봐도 된다. 유럽에서도 제보당의 괴수 사건을 봐도 알겠지만, 맹수에 의한 연쇄살인에 국왕 명령으로 군대가 출동한 걸 생각하면 대충 파악이 될 만하다. 이런 체계적인 사냥이 200여 년간 지속되면서 조선 개국 후 200년 이상이 지난 인조 시기에 이르면 한반도의 호랑이 개체수는 상당히 많이 줄어들었고 호랑이와 경쟁적 배제 관계에 있는 늑대의 개체수가 증가했다.
19세기 말엽 조선 포수 사진.
그리고 변방 백성 중에 조총(鳥銃)을 잘 쏘는 자를 보건대, 호랑이가 3, 4간(間; 약 5.455m ~ 7.273m)쯤에 있을 때 비로소 총을 쏘는데 명중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없으니, 묘기(妙技)라 할 수 있습니다. -영조 즉위년 갑진(1724) 10월 15일(을유), 승정원일기
일제강점기에 벌어진 조선인 및 일본인, 외국인[16] 포수뿐 아니라 육군 병력까지 동원한 일본의 해수구제사업과 토목공사, 6.25 전쟁 등으로 인해 서식처와 개체수가 거의 멸절에 달했다.
한국에선 과거 심마니들이 산에서 호랑이를 만나면 엎드려 절하고는 호랑이가 물러갈 때까지 그대로 엎드려 있는 대처법이 있었다고 전한다. 이런 대처법이 생긴 이유 중 가장 유력한 설은 조선시대엔 호랑이는 산의 왕으로 인정받았기에 '왕에게 절을 해주면 기분이 풀려 돌아갈 것이다.'라는 민간 신앙에서 비롯되었다는 것. 이에 대해서는 "그래서 한국에서 호환이 많았나"라든가, "눈 앞에서 엎드린 거라 호랑이가 생소해서 움찔해 물러간 건가" 등등의 추측이 많지만, 전문적인 연구나 실증이 없으니 그저 추측의 영역이다. 여러 명의 심마니가 엎드리면 한 명만 잡아가고 나머지 사람은 살 수도 있었을 것이라 추정하기도 한다. 혹은 상술했듯 호랑이가 인간 같은 직립 보행을 하는 생물의 길이가 어마어마하게 긴 것으로 착각할 수 있어, 눈 앞에서 만난 키 1.6m, 몸길이 6m의 괴생물이 갑자기 엎드리는 것을 보고 도약 공격을 하려고 웅크리는 것으로 착각해 놀라서 도망쳤을 가능성도 있다. 아니면 죽은 자는 말이 없다든가. 아무튼 멀쩡히 살아남아서 이런 이야기를 한 사람이 있는 것을 볼 때 100%는 아니라도 통한 사례가 없진 않았던것 같다.
호남지역에서는 '호랭이 씹어 갈 XX'라는 욕이 있다. '호랑이가 씹어(물어) 가다' 는 호환을 의미한다. 호환이 욕으로 나올 정도로 호환은 한국에서 엄청난 재해였고 이런 호환을 토대로 한국에선 ‘육발이’라는 호랑이 요괴가 나오기도 한다. 육발이는 발여섯이란 뜻으로 말 그대로 발다리가 여섯 달린 호랑이를 말하며, 사람을 엄청나게 먹은 호랑이는 다리가 여섯이 되어 보통 호랑이보다 더 빠른 속도와 지혜 여기에 높은 도력을 갖춰서 사람으로 변신해서 사람을 유인하기도 한다. 육발이는 특이하게 바둑이나 투전 같은 게임을 아주 잘하는데, 사람으로 변신한 육발이는 사람을 꾀어서 바둑과 투전을 제안하고 이에 응한 사람이 이기면 육발이는 큰돈을 주지만 지면 육발이에게 얄짤없이 잡아먹힌다.
현재는 한국이 다른 동아시아 국가보다 귀신, 요괴에 대한 괴담이 비교적 적은 이유도 호환 때문이라는 소리도 나돈다. 사람이 죽거나 사라지면 그 원인이 너무나도 명백할 수밖에 없다고. 오히려 호랑이에게 살해당한 피해자들을 창귀라는 귀신으로 묘사했을 정도이니 호환이 얼마나 큰 재난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부분. 다만 상술되었듯 호환은 전부 호랑이짓이 아니라 한반도에 살던 여러 맹수들에 의한 수해를 호환이라 묶어서 부른 것이며, 이러한 맹수에 의한 인명피해는 당시 조선 뿐 아니라 모든 전근대 국가들의 공통사항이었고 '한국만 유별나게 맹수에게 물려죽는 사람이 많은 국가'였다는 근거 따위는 없다. 일본은 대형 고양이과 맹수는 없었지만 곰에 의한 인명피해는 있었고, 중국에도 찾아보면 역사적인 호환 사례들이 있다. 때문에 호랑이 때문에 민속 요괴, 괴담이 적다는 주장은 그냥 재미로만 보자. 그보단 일제강점기 때 수십 년간 조선의 문화가 말살당하며 관련 자료가 유실되었을 가능성이 더 높다.
5. 비슷한 사례
- 표범 - 표범은 덩치는 작지만[17] 매우 은밀하게 행동하고 적응력도 뛰어나 도시에도 숨어들 수 있을 정도로 사람과 마주치기 쉽다.[18] 또한 먹이도 덜 가리는 편이고,[19] 덩치가 작은 만큼 작은 동물을 주된 먹이로 삼는 것도 마다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을 노릴 확률도 더 높으며 그러면서도 맨몸의 인간쯤은 단숨에 기습하여 물어죽일 정도의 전투력까지 지니고 있다. 현재 인도에서는 인구의 과도한 증가로 야생 표범의 서식지와 도시가 합쳐지게 되면서 표범의 습격이 반복되고 있다. 특히 어린이가 많이 희생되며 심지어 집까지 침입해 공격하기도 한다. 인도표범이 인명피해와 식인 사례가 가장 많은 표범이고 아프리카표범이 2번째다.
- 사자 - 사자는 멸종위기이긴 하나 개체수가 어느 정도 회복된 것에 비해 서식지는 계속해서 인간의 거주지에게 침투받은 결과, 오늘날에는 호랑이보다 더 많은 사망자를 발생시키는 대형 포식자로 꼽힌다. 탄자니아 등 동아프리카 지역에서는 여러 집단의 사자들이 우기 때 먹이 동물들이 흩어지자 가까운 마을의 사람들에게 눈을 돌리는 탓에 인명피해가 심각하게 발생한다. 이 경우 사자들은 사람을 평소 사냥하던 초식동물과 다를 바 없는 일반적인 먹이로 보게 되어 인명피해가 주기적으로 발생하게 되는데, 특히 1마리의 암컷이 식인을 알게 되면 무리 내의 다른 사자는 물론 새끼들에게도 식인 습성이 학습된다는 문제가 있다. 매년 2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자에게 목숨을 잃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20]. 반면 아시아사자의 공격은 덜하다.
- 곰 - 인명피해는 드문 편이지만 서식지 파괴로 인해 살 곳을 잃은 곰들이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오면서 사람들과 충돌하는 일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주로 러시아와 인도, 일본, 캐나다, 미국 등에서 매년 한두 명 정도의 사망 사고가 발생한다. 대부분 영역이나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인간을 천적으로 인식하여 일어나는 습격이 대부분이지만, 불곰과 북극곰의 경우는 사람을 먹이로 인식하여 공격하는 경우도 종종있다.[21]
- 늑대 - 늑대가 사람을 공격하여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사례는 적지만 늑대와 사람은 매우 먼 과거부터 많이 충돌했다. 아시아, 특히 한반도의 경우 천적인 호랑이가 줄어들기 시작한 이후 개체수가 늘어서 인명피해를 많이 냈고 유럽에서도 과거 수많은 인명피해를 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반면 북아메리카에서는 과거에도 인명피해 사례들이 매우 드물었다.
- 나일악어 - 개체수도 매우 많고 동~남아프리카 지역이 낙후되어 있는 곳이 많다 보니 악어가 있는 물에 가서 생활수를 길어 와야 하는 등 공격하기 좋은 조건들은 다 갖춘 상황 때문에 희생자가 낮게 잡아도 연간 300명, 많게는 1000명 정도로 맹수들 중 인명피해가 특히 많은 편이다. 게다가 이 악어들은 사람을 처음부터 먹이로 취급하고 공격하기 때문에 더욱 위험하다.
- 바다악어 - 나일악어와 개체수가 비슷하고 바다와 강이 만나는 곳에서 사는데다가 공격성도 강하기에 나일악어만큼 위험하다.
6. 여담
천연두를 마마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호환마마'라는 명칭으로 잘못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호환(재해)'과 '마마(질병으로서 천연두)이다. 참고로 '마마'는 임금 또는 벼슬이 있는 자를 높여 부르는 말로서 천연두를 높여 불러 마마신(神)이 물러나 주기를 바라는 자연치유의 의도가 담긴 칭호이다.[1] 해당 대사의 목소리를 담당한 성우는 한상덕.[2] 대신 이쪽은 곰과 늑대의 공격으로 인한 피해가 컸다.[3] 야생동물들 중 매일 1번씩을 특별한 도구까지 사용해서 씻어야 하는 동물이 있는지 생각해보자.[4] 비누, 샴푸, 치약, 향수, 로션 등.[5] 예외라면 이런 냄새가 단 냄새가 나다 보니 단 냄새를 좋아하는 벌 같은 곤충을 꼬이게 만들기도 한다. 가끔 화장품의 달콤한 냄새를 맡고 단 것을 좋아하는 곰도 찾아올 때가 있다.[6] 충치는 인간에게만 발병하는 것이 아니며 야생동물들도 얼마든지 충치에 걸릴 수 있다.[7] 이에 대해 순다르반스 물의 높은 염도가 담수를 마시는 호랑이들의 식단과 생활에 불안정 요인으로 작용하여 끊임없이 불편함을 느끼게하고 극도로 예민하게 만들어 사람들을 공격한다는 추측이 있다.[8] 사실 인간은 별로 맛도 없고 먹을 것도 별로 없는 비실비실한 먹이에 가깝지만, 대신 발걸음도 느리고 힘도 약한 매우 손쉬운 사냥감임을 학습하게 되는 것이다.[9] 심지어 그 정예 부대라던 미합중국 해병수색대도 습격당했다고 한다.[10] 실제로 M16 소총으로 무장한 미군들에게 대거 사냥당했고 관련 사진들이 많이 남아있는 편이다.[11] 물론 정상적인 치안이 확보된 국가라면 주민 거주구역 근처에 호랑이가 출몰할 경우 전문가들과 함께 호랑이를 제압할 만한 중화기를 갖춘 군경이 출동할 것이다.[12] 물론 이것도 제대로 체중을 실어서 날린 펀치라고 보긴 어렵다.[13] 연암 박지원의 소설 호질에도 이런 창귀들이 나와 호랑이 옆에 붙어선 호랑이에게 이런 저런 사람들을 잡아먹을 걸로 추청한다.[14] 한반도 북부 한정[15] 몽골늑대, 유라시아늑대[16] 중국이나 러시아인 포수들도 꽤 많이 고용했다.[17] 큰 개체도 70kg을 넘는 경우는 드물어 일반적으로 성인 남자보다 작다.[18] 표범은 아시아는 물론 호랑이가 없는 아프리카까지 서식할 정도로 분포지가 넓다.[19] 인도 뭄바이의 산자이 간디 국립공원에는 수십 마리의 표범이 살고 있는데, 도시로 둘러싸여 있는데도 나름 먹이가 풍부해(개들을 비롯한 가축들) 영역을 작게 쓴다고 한다.[20] 실제로 1932~1947년 사이, 같은 이유로 탄자니아의 한 무리의 사자가 3대의 세대를 거치며 1,500여명의 인명을 해치는 참변이 발생했다.[21] 충식성, 채식위주의 잡식성인 다른 곰들과 달리 불곰은 먹이라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먹는 잡식성, 북극곰은 거의 완전한 육식성이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