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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6 00:31:39

장경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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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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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종의 제1계비
장경왕후 | 章敬王后
파일:희릉장경왕후.jpg
희릉 능침
출생 1491년 8월 19일(음력 7월 6일)
조선 한성부 호현방 사저
(現 서울특별시 중구 북창동 일대)
사망 1515년 3월 26일(음력 3월 2일)
(향년 23세)
조선 한성부 경복궁 동궁 별전
(現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로 161)
능묘 희릉(禧陵)
재위기간 조선 숙의
1506년 ~ 1507년 9월 20일
조선 왕비
1507년 9월 20일 ~ 1515년 3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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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bf1400><colcolor=#ffd400> 본관 파평 윤씨
부모 부친 파원부원군 윤여필[1][2]
(坡原府院君 尹汝弼, 1466 ~ 1555)
모친 순천부부인 순천 박씨[3]
(順天府夫人 順天 朴氏, ? ~ 1498)
형제자매 1남 2녀 중 차녀[4]
배우자 중종
자녀 1남 1녀
종교 유교 (성리학)
봉작 숙의(淑儀) → 왕비(王妃)
전호 영경전(永慶殿)
휘호 숙신명혜(淑愼明惠)
→ 선소의숙(宣昭懿淑)
시호 장경왕후(章敬王后)
}}}}}}}}} ||
1. 개요2. 생애3. 기타4. 가계5. 대중매체에서6. 참고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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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 제11대 임금 중종의 1번째 계비. 인종의 친어머니이며 성종정현왕후의 며느리이다.

2. 생애

본관파평. 파원부원군 윤여필의 딸이다. 어린 시절 큰이모인 월산대군의 아내 승평부대부인 박씨의 집에서 자랐고 남편 중종이 즉위한 해에 내명부 종2품 숙의(淑儀)로 책봉되어 중종의 후궁이 되었다. 중종의 첫 왕비인 신씨는 하필 본인의 아버지인 신수근이 폐주 연산군의 처남이었던 터라 친정 전체가 역적이 되었기 때문에 반정 세력의 요구에 따라 7일만에 폐출되었다. 이후 비어진 국모의 자리에 숙의 윤씨가 왕비로 간택되는데 장경왕후의 친정은 대대로 왕비를 배출할 만큼 당대 최고 명문가였던 파평 윤씨 가문이고[5] 결정적으로 외삼촌이 중종반정의 1등 공신인 박원종이었으며 월산대군에게는 처조카가 되니 정황상 숙의 윤씨가 중종후궁들 중 다음 왕비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계비가 된 이후 1511년(중종 6년)에는 중종의 맏딸인 효혜공주[6]를 낳았고 1515년(중종 10년)에는 적자인 원자를 낳았으나 산후병으로 엿새 만에 25세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이튿날 새벽 병세가 매우 중해지자 일어나 앉아 손수 글을 써서 상께 아뢰기를 '어제 첩의 마음이 혼미하여 잊고 깨닫지 못하였는데 생각해보니 지난해 여름 꿈에 한 사람이 말하기를, 이 아이를 낳으면 이름을 '억명(億命)'이라 하라 하므로 써서 벽상에 붙였었습니다.' 하였다.
《조선왕조실록》 중종 10년(1515) 3월 7일 4번째 기사

죽기 전에 당시 원자였던 인종의 이름을 억명으로 지어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일설에는 이렇게 지어야 오래 산다고 하였는데 나중에 인종피휘하기 위해서 '호(峼)'로 이름을 고친다. 장경왕후가 죽은 후 왕비로 책봉된 중종의 셋째 왕비는 장경왕후에게 삼종질(9촌 조카)이 된다. 능은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희릉(禧陵)[7]이다.

3. 기타

4. 가계

5. 대중매체에서


파일:attachment/사본_-record00001.mpg_00004.jpg

6. 참고 문서


[1] 효령대군의 증손자.[2] 효령대군 → 영천군 → 윤보의 처 이씨 → 윤여필[3] 박중선의 딸로 박원종의 누이이자 월산대군의 정실인 승평부대부인 박씨의 여동생이다.[4] 장녀는 월산대군의 아들인 덕풍군의 아내이다.[5] 중종의 모후인 자순대비와 같은 집안이다.[6] 효혜공주가 김안로의 아들 김희와 혼인하면서 사돈 관계가 된다.[7] 이 능은 사연이 참 많은데 처음에 묻힐 때 무덤을 조성하던 과정에 그 자리에 돌이 20수레나 나왔다고 하여서 몇 자 아래에 묻히게 되었다. 자그마치 20년 뒤에 김안로가 언급해서 천장하고 그 때 있던 사람들 벌을 주는데 말이 "왜 국모를 그딴 곳에 묻냐"는 것이지, 사실은 정광필을 벌주기 위함이었다. 또 나중에 중종이 죽으면서 같이 묻혔는데 문정왕후대왕대비 시절 중종의 곁에 묻히고 싶어서 묘소를 옮겼지만 문정왕후 사후 중종이 또 묘소가 현재의 서울 강남구 지역인 선정릉 구역으로 옮겨지면서 중종의 세 왕후 중 어느 쪽과도 먼 곳에 묻히게 되었다.[8] 중종과 장경왕후 모두 윤번의 현손들이다. 중종은 윤번의 막내딸 정희왕후의 증손이고 장경왕후는 윤번의 차남 윤사윤의 증손이다.[9] 중종과 장경왕후 모두 태종의 5대손들이다. 중종은 태종의 3남 세종의 현손이고 장경왕후는 태종의 차남 효령대군의 현손이다.[10] 중종은 심온의 5대손이고 장경왕후는 심온의 현손이다. 중종심온의 장녀 소헌왕후의 현손이고 장경왕후는 심온의 막내딸 심씨 부인의 증손이다.[11] 조선 중종의 외척, 장경왕후를 위시한 대윤파의 거물급 정치인이다.[12] 세조의 손자인 월산대군의 서자이다. 항렬상으로 보면 남편 중종과는 4촌 관계가 된다.[13] 당대의 권신인 김안로의 아들이다.[14] 아무래도 정난공신 박원종의 외조카이다보니 지나치게 권력이 커진 박원종에 대한 견제 목적으로 오랫동안 후궁 첩지를 내리지 않은 걸로 추정된다.[15] 완전한 장경왕후는 아니고 살짝 가공이 된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