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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9 02:24:50

순천 박씨

한국의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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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색: 2015년 기준으로 총 인구 100명 미만인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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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순천 박씨 종문.png
順天 朴氏
순천 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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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3333> 관향 전라남도 순천시
시조 박영규(朴英規)
중시조 박숙정(朴淑貞)
집성촌 대구광역시 군위군 삼국유사면, 달성군 하빈면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정우면
충청북도 청주시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성주군 수륜면
경상남도 합천군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평택시 팽성읍
강원특별자치도 인제군 인제읍
인구 105,208명(2015년)
1. 개요
1.1. 고려조1.2. 조선조
2. 기타3. 분파도4. 항렬표5. 인물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성씨. 고려 개국 공신 집안이었으며 조선 초 대표적인 훈구 공신 집안으로 8박[1] 중 4번째 자리를 차지한다.

1.1. 고려조

도시조는 후백제 견훤의 사위이자 고려의 태조 왕건정종의 장인이 된 순천의 호족 박영규이다. 박영규는 후삼국 최후의 전투인 일리천 전투에서 후백제 군으로 출정했으나, 고려군 좌군 선봉으로 나선 견훤에 내응해 신검을 궁지로 몰았다. 이 때의 공으로 고려 개국공신에 이름을 올렸다. 박영규는 딸 중 하나(동산원부인)를 왕건에게 시집보내 국구의 자리에 올랐다. 박영규는 후백제, 고려 왕조 모두에서 큰 권력을 누렸다.

박영규는 또 다른 두 딸을 고려 3대 왕인 정종(定宗)에게 시집을 보내면서 2대에 걸쳐 국구 자리에 올랐다. 문공왕후, 문성왕후가 그들인데 현재로 보면 말도 안되는 일이지만, 당시의 윤리 기준으로는 별 문제가 안될 내용이었다. 어차피 정종은 태조의 후비인 동산원부인(박씨)과 혈연도 아니고.

그렇지만 동산원부인, 문공왕후는 후사를 남기지 못했고 문성왕후가 정종과 사이에서 1남 1녀를 두지만, 고려 4대 왕 광종(光宗)에게 처형됨[2]으로써 순천 박씨는 고려 권부에서 멀어진다. 고려 왕실 권력다툼의 한복판에 휘말린 때문인지 박영규 이후 후손에 대한 기록이 거의[3] 없어 고려 충숙왕 때 사람인 박숙정을 1세조로 한다.

1.2. 조선조

태종 즉위에 공을 세워 좌명공신에 오른 평양군[4] 박석명을 시작으로 적개, 익대, 좌리 공신이라는, 남들은 집안에 하나 나오기도 힘든 정공신 자리에 3번이나 오른 박중선, 그리고 박중선의 아들이자 중종반정의 최대 공신 박원종이 정난공신 1등이다. 조선 중기까지 훈구 공신 세력의 대표 집안으로서 명성을 쌓았음은 물론, 계유정난사육신 박팽년 등, 정파를 가리지 않고 많은 인물을 배출했다. 총 문과 급제자 35명, 상신 1명을 배출했다.

조선 후기는 소수의 벌열이 국정을 독점했던 시절이라 박씨 중에는 반남 박씨 정도가 조정에 남을 뿐 대부분은 중앙에서 멀어졌는데 순천 박씨도 마찬가지였다. 인조 때 이괄의 난을 막다 죽은 박영서(황주 신교에서 사망)가 살았다면 혹시 공신 이력을 계속 이었을지도 모른다.

박중선의 딸로 박원종의 누나가 되는 승평부부인 박씨(1455년생)는 연산군의 백모(큰어머니, 월산대군의 부인)임에도 연산군에게 궐내에 집과 따로 전답을 받는 등 극진한 대우를 받았다. 독실한 불자에 대단한 미모를 가졌던 모양으로 연산군과 내연 관계를 의심하는 사람들도 당시에 있었을 정도였다. 연산군은 백모 박씨를 승평부 대부인이라 반드시 '대'라는 존칭을 더하게 했다고 한다. 어쨌든 연산군과 가까이 지낼 당시 이미 오십 줄에 가까워 스캔들 설은 거짓이다. 34세의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고 사재를 털어 세운 흥복사는 당시 억불 정책을 정면에서 부정하는 셈이라 유생들의 표적이 됐다. 그러나 성종은 형수를 끝까지 지켜줬고 조카 연산군도 대를 이어 후대해 별 탈은 없었다고 한다. 1506년 중종반정 직전 죽는데 사인은 알려져 있지 않다.

본관이 순천이라 전라도에 많으며 수도권의 인구가 제일 많다. 대구광역시경북 지역에도 많이 보이는데, 사육신 박팽년이 살았던 묫골이 대구다. 그의 후손 중에 전 국회의장 박준규나 현 미래통합당 의원 등 보수 쪽으로 굵직한 정치인들이 나왔다. 상대적으로 부산, 경남은 적은 편이다.

2. 기타

3. 분파도

4. 항렬표

5. 인물


[1] 밀양, 함양, 반남, 순천, 무안, 죽산, 고령, 충주의 박씨 8본[2] 박영규의 손자인 경춘원군(慶春院君)[3] 그 중 하나가 박난봉이라는 사람이 고려 정종조에 과거에 등과하여 정승을 역임하고 평양(순천시의 옛 군 이름.) 부원군에 봉해지자 그를 득관조로 해버린 것.[4] 조선 조 순천의 별칭이 평양임.[5] 박중선과 박원종이 여기에 속한다.[6] #에선 전원, 돈원 혹은 벽원이 공동 시조로 서술되어 있기에 교차검증 필요.[7] 집현전 이조판서를 역임했으며, 장남 박팽년의 단종 복위 계획 때문에 그 뿐만 아니라 형제들도 죽임당했고, 이들의 일가 친적들 모두 유배나 노비로 격하돼 복권 때까지 수모를 당하였다.[8] 박준규(1925) 및 삼성가의 이병철과 결혼한 박두을이 이 계열.[9] 박영년 역시 연좌제로 죽임당했고, 그의 아들 박신은 문의현(현: 청주시)으로 유배보내져 그 후 청원군(현 청주시)과 연기군(세종특별자치시) 일대를 중심으로 재기에 성공한다.[10] https://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sm=tab_etc&mra=bjky&pkid=1&os=4128779&qvt=0&query=%EB%B0%95%EC%A2%85%ED%9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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