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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07 18:33:07

웅천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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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임체는 문루 및 성곽이 대부분이 소실되어 터만 남은 읍성, 볼드체는 대부분이 보존, 복원된 읍성
행정구역은 현재 대한민국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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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웅천읍성 성곽.jpg
웅천읍성

1. 개요2. 역사3.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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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웅천읍성(熊川邑成)은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웅천동에 소재한 성내동의 읍성이다. 성벽 일부만 남아있던 것을 2011년 읍성 복원사업으로 동문 일원과 해자, 남쪽 성벽 일부를 복원하였다.

2. 역사

파일:IMG_7932.jpg
웅천읍성 객사(1930년대 웅천보통학교 교사로 쓰일 때 모습)

1407년(태종 7) 개항한 제포(또는 내이포)에 불법으로 거주하는 일본인의 수가 늘면서 고을을 보호하기 위해서 1434년(세종 16) 웅천읍성을 쌓기 시작했다.[1]

1451년(문종 원년)에는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동·서·북에 수로를 만들어 성 일부를 확장하였다.

1453년(단종 1)[2] 성이 좁아 가을에 증축하고 해자를 파라고 하다.

1510년(중종 5)에는 삼포왜란이 일어나 일시 함락되어 동문인 견룡문이 소실되기도 했고, 임진왜란 때에는 고니시 유키나가가 이곳에 머물렀다고 한다.

오랫동안 남해안을 방어하는 거점으로 사용되었으나 1895년(고종 32)부터 읍성으로서 기능을 상실한 걸로 보고 있다.

1906년(고종 44)에 주기효에 의해 웅천 사립 개통학교[3]가 개설되고, 1909년(순종 3) 현재 웅천우체국의 전신인 마천 우편소가 세워지는 등의 과정을 거쳐 성내 건물들이 하나씩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성벽도 많이 훼손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웅천읍성은 웅천 지역의 중심 행정 구역 이름으로 남아 있다. 성안은 ‘성내동’, 남문이 있었던 쪽은 ‘남문동’, 북문이 있었던 쪽은 ‘북부동’, 서문이 있었던 쪽은 ‘서중동’이라는 동명이 붙었다.

1967년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읍성내 건물이였던 객사[4]를 해체하고 그 자리에 웅천국민학교(現 웅천초등학교)[5]가 생겼다.

1974년 12월 28일 경상남도 도지정기념물 제15호로 지정되었다. 일제강점기 이후 일부 성벽만 남아있던채로 있었으나 2011년, 동쪽 성벽과 동문인 견용문 일원 그리고 남쪽 성벽 일부를 복원했다.

3. 여담

파일:웅천읍성쌍룡조각.jpg
1960년대에도 건재하던 웅천읍성 내 유일한 건축물이었던 객사는 위 사진에도 보이다시피 높은 기단 위에 정당을 중심으로 좌우에 익사를 둔 웅장한 규모였고 또 객사 천장에 쌍룡이 조각되어 오묘한 자태로 여의주를 물고 서로 몸을 감고 있던 조각은 객사 해체 이후 행방이 묘연해져 어디있는지도 모른다고 한다...

파일:IMG_7852.jpg
옛날 웅천읍성 복원 소개도

파일:웅천고계단사진.jpg
웅천읍성 성곽 전체를 완전히 복원해서 관광 상품으로 재탄생 시키려 했던 것 같은데 어쩐 이유에서인지 2011년 이후 복원이 중단됐다. 웅천고등학교 본관 2층 중턱 계단 벽에도 복원 예상도가 있고 2020년까지 복원을 완성한다고 적혀있다.

2022년부터 이 웅천읍성을 기리는 축제인 웅천읍성축제가 진행되고 있다. 2023년 제2회 웅천읍성축제에서 인근에 위치한 웅천고등학교에서 사람을 뽑아 하마비, 조선수군, 도공행렬을 했다.

웅천읍성에는 4개의 대문이 존재했었는데 각각 동문은 견룡문(見龍門), 서문은 수호문(睡虎門), 남문은 진남루(鎭南樓), 북문은 공신문(拱宸門)이라 불렸다.현재 남아있는 곳은 2011년 복원된 견룡문(見龍門)과 서벽·남벽은 일부만 있고, 도로 개설로 인해 북벽은 흔적도 없는 상태이다.

바로 맞은 편에 주기철 목사 기념관이 위치해 있다.

성벽에 있는 명문석을 통해 당시 웅천읍성을 쌓기 위해 진주, 창녕, 청도, 합천 등 경상도 전역의 백성들이 동원하여 축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여지도서(輿地圖書),웅천지(熊川誌) 등의 기록에 의하면 성안의 시설물로 객사[6](現 곰내유치원 자리), 동헌, 장적고, 향사당, 인리청, 군관청, 장관청, 훈도청, 지인방, 사령방, 관노방이 있었다고 한다.

웅천읍성에서 도보로 걸어가면 거진 10 여분 거리인 남문동에 웅천왜성이 있다.
[1] 세종실록 65권, 세종 16년 8월 5일 기유 4번째기사[2] 단종실록 5권, 단종 1년 1월 7일 을축 4번째기사[3]웅천초등학교(경남)[4] 그 당시 웅천국민학교 교무실로 쓰였다고 하지만 더이상 유지 보수가 어렵다고 판단 이를 해체 한 것이다.[5] 웅천초등학교는 남문동으로 이전하고 현재는 그 자리에 곰내유치원이 자리잡고 있다.[6] 위의 흑백 사진을 참고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