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암(고대병원앞)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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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암순환보 문 ← 0.9 ㎞ | 6호선 (639) | 신내 방면고려대 0.8 ㎞ → |
역명 표기 | ||
6호선 | 안암 (고대병원앞) Anam (Korea Univ. Hospital) 安岩(高大病院앞) / 安岩(高丽大学医院) / [ruby(安岩, ruby=アナム)] | |
주소 | ||
서울특별시 성북구 고려대로 지하89 (안암동5가 146-1) | ||
소속 영업사업소 | ||
6호선 | 동묘영업사업소 안암역 | |
운영 기관 | ||
6호선 | 서울교통공사 | |
개업일 | ||
6호선 | 2000년 12월 15일 | |
역사 구조 | ||
지하 3층 | ||
승강장 구조 | ||
복선 상대식 승강장 (횡단 가능) |
1. 개요
서울 지하철 6호선 639번. 서울특별시 성북구 고려대로 지하89 (안암동5가 146-1) 소재.2. 역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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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안내도 |
병기역명은 고대병원앞으로 인근에 고려대학교 안암병원이 있어서 유래했다.[1] 수도권 도시철도 역 중에서 병원 이름이 병기역명으로 들어간 첫 사례다.
이 일대에는 고려대학교 서울캠퍼스가 위치하기 때문에, 평일 6호선을 타고 안암역과 고려대역을 지나가면 웬만한 환승역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타고 내리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다. 물론 대부분 고대생 내지는 고려대에 근무하는 사람들이고, 병원 이용객도 종종 있다.
통학 시간에는 계단 부분의 병목 현상이 심하다. 그 이유는 안암역 인근 도로가 좁고, 특히 인도가 많이 좁아 출구의 계단폭이 무척 좁기 때문이다.[2] 특히 1~4번 출구의 계단 폭이 모두 작은데 이 때문에 통근시간대가 되면 출구 주변에는 긴 줄이 생긴다. 2016년 초에는 에스컬레이터 공사 때문에 더욱 심했었다. 그러나 에스컬레이터가 있는데 위에 있어서 계단 몇 개를 올라가야 한다. 에스컬레이터 밑으로 하수도가 지나가서 더 이상 에스컬레이터를 만들 수가 없었다고 한다. 만에 하나 화정체육관에서 공연이 열린다면 낮 시간대는 그렇다 쳐도 공연이 끝났을 시간대에는 평일 통학 시간급의 인산인해를 이룬다.[3]
보문역 방향으로 주박선[4]이 있는데 신내발 열차가 심야주박한다. 다음으로 주박하여 항상 다음 날 05:30 신내행 6001으로 출발한다.
- 평일 : 신내발 6338
- 주말 : 신내발 6250
3. 역 주변 정보
고려대학교 서울캠퍼스는 도로들을 사이에 두고 세 군데로 나뉘어 있는데 안암역이 위치한 곳은 세 곳의 중간 지점이라고 봐도 무방한 위치다. 반면에 인접 역인 고려대역은 캠퍼스 구석진 곳에 있다. 이 역이 고려대역이라는 역명을 가지게 된 것은 역사 부지가 고려대학교 소유지를 일부 점유하여 보상 차원에서 학교 이름이 주역명이 된 것이다. 실제로 현재 역 부지 바로 위에는 라이시움이라는 고려대학교 건물이 있으며 출구 중 하나는 아예 이 건물 아래다.하지만 안암역은 서울캠퍼스에 속하는 세 캠퍼스 사이의 도로에 위치하기 때문에 학교 부지를 점유하지 않는다. 따라서 만약에 고려대학교를 방문하게 될 경우 자신이 방문하려는 건물이 정확히 어느 역에서 더 가까운지 모르겠으면 안암역에서 하차하는 게 좋다. 고려대 안에서는 안암역에서 더 가까운 시설물이 절대 다수이고 일부 고려대역에 더 가까운 시설물[5]도 안암역에서 까마득하게 먼 곳에 있지는 않다. 하지만 반대로 고려대역에서 하차하면 까마득하게 먼 곳까지 걸어가거나 교내 셔틀버스를 한참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일어날 수도 있다. 사범대나 경영대, 도서관, 중앙광장 쪽으로 가야 한다면 고려대역을, 이 외의 장소에 볼일이 있다면 안암역을 이용해야 할 것이다.
3.1. 출구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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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번 출구 | |
1 | 고려대학교 안암병원·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용문중·고등학교 서울안암초등학교 성신여자대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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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번 출구 | |
2 | 고려대학교 고려대사거리 승가원행복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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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 출구 | |
3 | 제기동 제기시장 안암오거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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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번 출구 | |
4 | 고려대학교(자연계) 안암동주민센터 |
4. 일평균 이용객
||<tablebgcolor=#fff,#1f2023><tablebordercolor=#cd7c2f><bgcolor=#cd7c2f> 연도 ||
||<bgcolor=#cd7c2f> 비고 ||
{{{#!wiki style="margin: -0px -11px -5px" {{{#!folding [ 2000년~2009년 ] {{{#!wiki style="margin-top: -5px; margin-bottom: -11px" | 2000년 | 9,505명 | [9] | ||
2001년 | 18,487명 | ||||
2002년 | 21,985명 | 비고 | |||
2003년 | 23,886명 | ||||
2004년 | 25,529명 | ||||
2005년 | 25,220명 | ||||
2006년 | 26,143명 | ||||
2007년 | 26,175명 | ||||
2008년 | 26,520명 | ||||
2009년 | 27,084명 | }}}}}}}}} | |||
2010년 | 28,286명 | ||||
2011년 | 28,130명 | ||||
2012년 | 28,387명 | ||||
2013년 | 28,285명 | ||||
2014년 | 28,459명 | ||||
2015년 | 28,068명 | ||||
2016년 | 27,902명 | ||||
2017년 | 27,722명 | ||||
2018년 | 27,476명 | ||||
2019년 | 27,676명 | ||||
2020년 | 16,335명 | ||||
2021년 | 16,483명 | ||||
2022년 | 21,592명 | ||||
2023년 | 24,412명 | ||||
2024년 | 24,517명 | ||||
출처 | |||||
서울교통공사 자료실 |
2024년 기준으로 하루 평균 24,517명이 이용해 6호선 안에서는 전체 8위로 상위권 그룹에 들어가 있는 역이다. 고려대역이 고려대학교 정문을 끼고 있지만 고려대학교 캠퍼스의 대부분은 안암역과 더 가깝고 대학 상권인 안암오거리와 상당히 가까워서 이쪽의 이용객이 더 많은 편이다. 다만 도로가 모이고 상권이 발달하여 유동 인구가 많은 안암오거리와 약 400m 간격으로 떨어져 있어 대학교 관련 수요는 꽉 잡고 있지만 지역 주민들의 이용 빈도는 그리 높지 않다.
하지만 고려대학교를 끼고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기 때문에 대학교와 관련해서 고정 수요를 워낙 꽉 잡은 덕분에 6호선 역들 중에서는 개통 초기부터 일찌감치 자리를 잡은 편이다. 2001년부터 2006년까지는 6호선 전체에서 승하차객 수 1위를 차지했다. 이미 2002년에 하루 이용객 2만 명을 넘어섰고 2004년에는 2만 5천 명을 넘어 초기부터 수요를 안정화시켰다. 6호선이 개통 초기에 공기수송으로 워낙 악명이 높았던지라[10], 수요가 없다고 쉴 새 없이 까였던 6호선을 그나마 받쳐준 몇 안 되는 역이었다. 그러나 불광역, 연신내역, 응암역, 디지털미디어시티역, 망원역, 합정역, 공덕역, 이태원역 등 서부권의 주요 역들이 꾸준히 성장세를 보이는 동안 안암역은 정체 상태에 들어섰는데 2010년대에 들어서는 6호선 안에서의 위상이 예전과 같지 않다. 대학생 나이에 해당하는 인구가 앞으로 계속 줄어들 예정이고 역 특성상 업무지구나 주거지구와 같은 새로운 역세권이 들어설 수 있는 환경도 아니기 때문에 안암역의 전망은 앞으로도 그리 밝지 못한 상황이다.
이태원역과 마찬가지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여파를 피할 수 없었다. 주요 수요층인 통학생 수요가 원격수업으로 인해 상당 부분 이탈한 것이 매우 크다. 그러나 2023년에는 상당히 수요를 회복했다.
5. 승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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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호선 역명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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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호선 승강장 |
승강장은 2면 2선의 상대식 승강장이다.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어 있다. 스크린도어가 닫힐 때 경고음이 추가되었다.
보문 ↑ | |||
하 | ㅣ | ㅣ | 상 |
↓ 고려대 |
상 | | 보문·동묘앞·월드컵경기장·응암 방면 |
하 | 고려대·석계·태릉입구·신내 방면 |
6. 연계 버스
6.1. 2번 출구
||<-2><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00000,#dddddd><tablebgcolor=#ffffff,#191919> 안암전철역(08302) ||
간선 | |
지선 |
6.2. 3번 출구
||<-2><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00000,#dddddd><tablebgcolor=#ffffff,#191919> 안암역(08301) ||
간선 | |
지선 | |
마을 |
||<-2><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00000,#dddddd><tablebgcolor=#ffffff,#191919> 개운사입구(08304) ||
지선 | |
마을 |
7. 여담
- 안암역을 이용한 드립으로 Eye cancer, I don't know가 있다. 이 역 주변에 대학교와 대학병원이 있다는 걸 생각하면 아이러니하다.
- 0.3초의 기적으로 유명한 역이 안암역이었는데 2005년 11월 경에 어린이가 봉화산 방면 선로로 추락했는데 어떤 한 청소년이 직접 반대편 승강장에서 선로로 뛰어들어 어린이를 구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화제를 낳았다. 당시 고등학교 2학년생이던 김대현이었는데 당시 이명박 서울특별시장으로부터 표창받은 것 외에도 서울도시철도공사로부터 전학기 장학금을 받았으며 2006년 제야의 타종 행사에도 참여했다. 이후 식당 자영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 2024년 서울교통공사의 허가를 받아 고려대학교 방송국 KUBS가 이 역을 배경으로 다큐멘터리 첫차와 막차 사이를 제작하였으며, 안암역 개찰구 앞에 TV를 놓고 상영하였다.
- 화장실이 개찰구 밖과 안에 총 2개가 있다. 비환승역임에도 화장실이 2개인 역들은 상당히 드문데, 이로 보아 이미 안암역 설계 당시부터 상당한 이용객이 이용할 것이라고 예상한 걸로 보인다.
8.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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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번 출구에서 고대병원 정문까지는 매우 가깝다.[2] 출구 계단을 자세히 보면 재미있는 현상이 있는데, 보통의 지하 역들은 지하 공간에서 도로로 나갈수록 반대편 계단과 크기가 벌어지는, 즉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두 개의 출구가 지하쪽보다 지상쪽이 더 멀리 벌어지는게 일반적이다. 아니면 그냥 계단 두 개가 정확히 평행을 이뤘어야 했다. 그런데 안암역은 이게 반대로 되어 있는, 즉 1, 4번 출구간의 폭이 지하에서보다 지상쪽이 더 붙는다. 이는 현재의 도로가 좁지만 향후 주변 재개발 등으로 확장할 때를 대비해 미리 지하쪽 공간을 크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현재 지상의 공간이 좁다는 뜻이다. 역사를 좀 길게 지어서 지상공간이 넓은 캠퍼스 정문, 의료원 정문에 추가적인 출구를 내면 되지만 이 지역은 지질구조가 지하굴착을 하기 힘들어 공사비가 다른 역사에 비해 더 많이 드는 관계로 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3] 화정체육관 근처에 서는 성북20번이 고려대역으로 가지만 버스를 기다릴 바에는 그냥 안암역까지 걸어오는게 더 빠르기 때문이다.[4] 응암 방면 선로에서 오른쪽으로 빠지는 형태. 이와 비슷한 형태는 5호선 애오개(하 합류), 왕십리(상 분기), 7호선 건대입구(상 분기), 내방(양쪽 분기) 등이 있다.[5] 예를 들어 고려대 본관[6] 1번 출구 바로 앞에 병원으로 올라가는 전용 에스컬레이터가 따로 있다.[7] 도보로 이용하기가 어렵다면 고려대역에서 하차해 성북20번 마을버스를 타는 것이 좋다.[8] 정문 앞, 법대 후문 쪽에도 상권이 형성되어 있기는 하나 매우 빈약한 수준이다. 법대 후문 상권은 고대생만큼이나 근처 아파트 거주민들의 비중도 큰 편이다. 인문계 캠퍼스의 그것도 일부 학생이 아니라면 거의 갈 일이 없는 수준이다.[9] 개통일인 12월 15일부터 12월 31일까지 17일간의 집계를 반영한 것이다.[10] 8호선보다 이용객은 많았지만 2000년대 후반까지 승하차객 1위가 2만 명대를 벗어나지 못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