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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보 제16호 | |
안동 법흥사지 칠층전탑 安東 法興寺址 七層塼塔 | |
소재지 | 경상북도 안동시 법흥동 8-1번지 |
분류 |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 불교 / 탑 |
수량/면적 | 1기 |
지정연도 | 1962년 12월 20일 |
제작시기 | 통일신라시대 8세기 |
<colbgcolor=#315288> 안동 법흥사지 칠층전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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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安東 法興寺址 七層塼塔. 안동 법흥사지 칠층전탑은 경상북도 안동시에 위치한 탑으로, 대한민국에서 현존하는 전탑 중 가장 크다.통일신라 시대 때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높이 17m, 너비 7.75m에 이른다. 단층 화강암 기단 위에 7층 탑신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상륜부는 금속으로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현재는 남아있지 않다.
안동 법흥사지 칠층전탑은 1962년 국보 제16호로 지정됐다.
2. 내용
원래 신라 때 창건된 법흥사의 탑이라고 전해지나, 절은 오랜 세월이 지나며 어느 순간 흔적이 사라졌고 지금은 탑만 남아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본래 사찰이 있었던 자리로 추정되는 곳에는 고성 이씨 탑동파 종택이 들어섰다.대체로 한국에는 석탑이 많고 그 외에 전탑 모양만 흉내낸 모전석탑이 있지 중국에 흔한 전탑은 많지 않은 편인데, 이 탑은 한국의 몇 안 되는 전탑이다. 많이 남아있지는 않지만, 각 층 지붕에 기와가 얹어진 부분이 있다. 이를 통해 목탑 양식을 모방하여 만들어졌으리라 추정할 수 있다.
사진처럼 기단부는 시멘트로 되어 있는데, 미륵사지 석탑처럼 일제강점기때 유지·수리한다는 명목하에 발라 놓았고, 기단부 부조들도 엉망으로 배치해놨다. 이로 인해 원형에 심각한 손상이 와서 본래 모습을 추정하기가 어렵다.
학술적 가치도 높지만 다른 쪽으로도 유명한데,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일명 '안동의 사탑'(斜塔)으로도 불린다. 일제강점기에 개통한 중앙선 철길이 옆으로 지나갔기 때문이다. 1,000년도 넘은 고탑 바로 옆으로 기차가 약 80년간[1] 계속 지나다녔고 그 진동으로 인해 안타깝게도 한쪽으로 기울게 된 것. 전탑은 벽돌을 쌓은 구조상, 목탑이나 석탑보다 열차가 지날 때마다 반복되는 진동에 더욱 취약하다고 여겨지기에 큰 문제다.
탑의 보전을 위해서는 옆으로 난 중앙선 철길을 이설해야 하는데 쉬운 일은 아니다보니 광복 후에도 그렇게 70년 가까이 바로 옆으로 기차가 지나다녔다. 꼭 탑 때문이 아니라도 중앙선이 안동 시내를 가로지르면서 남북으로 양분시키는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중앙선 이설이 논의되기 시작했고, 많은 진통과 티스푼 공사 끝에 2020년 12월 17일 마침내 중앙선 안동 시내구간 철길이 안동역과 함께 외곽으로 이전되며 드디어 열차의 진동을 겪지 않게 되었고 현재는 도로에서도 잘 보인다. 이와 함께 인근에 위치한 석주 이상룡의 생가인 고택 임청각[2]의 잔여 부분 역시 복원 공사가 진행 중이다.
3. 기타
꽤 오랫동안 "안동 신세동 7층 전탑"으로 불렸는데, 재밌는 것은 탑이 있는 곳은 법흥동이고 신세동은 옆동네라는 것이다. 국보 지정 당시에도 이곳은 법흥동이었는데 모종의 이유로(실수로) 이름에 신세동이 들어가면서 그대로 굳어져 버린 것. 안동 시내 일부 국가지정 문화재는 이러한 지명 실수가 더러 있는데 옛 안동역 앞에 있는 보물 제56호운흥동 오층전탑 역시 변경되기 전에는 인근 동네인 동부동의 이름을 따서 '동부동 오층전탑'으로 불리어 왔으며, 역시 보물 제114호로 지정된 평화동 삼층석탑 역시 처음에는 '옥동 삼층석탑'이라 불렸다.이렇게 달랐던 이유는 초기 대한민국의 행정착오 때문인데 국가지정문화재들이 일제강점기였던 1933년 시행된 '조선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보존령'이 마련되면서 시작한 것으로 이후,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고 난 후인 1962년 12월 20일 옛 보물(단, 북한 지역 문화재들은 제외. 예외로 천연기념물은 북한 지역까지 포함.)들 중에서 105건을 국보로 일괄 지정하였다. 이 때 옛 보물 195건+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을 포함한 새로 확인한 11건을 포함해 최종 116건이 일괄 지정되었다. 이 외에도 초기 지정된 천연기념물 154건은 1962년 12월 3일, 사적 125건은 1963년 1월 21일(단,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은 기존 사적들보다 일찍 지정됨.)에 일괄 지정을 했다. 그리고 나머지 옛 보물 400건을 1963년 1월 21일자로 현재의 보물로 일괄 지정하였는데, 이 때 행정상 착오로 이웃한 동네 명칭으로 잘못 기재되어 내려온 것으로, 2010년대에 명칭 변경에 따라 원래 주소로 일치되었다.
4. 외부 링크
5. 국보 제16호
전탑(塼塔)이란 흙으로 만든 벽돌을 이용하여 쌓아 올린 탑으로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법흥사에 속해있던 탑으로 추정된다.
탑은 1단의 기단(基壇)위로 7층의 탑신(塔身)을 착실히 쌓아올린 모습이다. 기단의 각 면에는 화강암으로 조각된 8부중상(八部衆像)과 사천왕상(四天王像)을 세워놓았고, 기단 남쪽 면에는 계단을 설치하여 1층 몸돌에 만들어진 감실(龕室:불상을 모시는 방)을 향하도록 하였다. 탑신은 진한 회색의 무늬없는 벽돌로 쌓아 올렸으며, 지붕돌은 위아래 모두 계단모양의 층단을 이루는 일반적인 전탑양식과는 달리, 윗면에 남아 있는 흔적으로 보아 기와를 얹었던 것으로 보인다.
기단의 윗면을 시멘트로 발라 놓아 아쉬움을 남기는 이 탑은 7층이나 되는 높은 층수에 높이 17m, 기단너비 7.75m의 거대한 탑임에도 매우 안정된 자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국내에 남아있는 가장 크고 오래된 전탑에 속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또한 지붕에 기와를 얹었던 자취가 있는 것으로 보아 목탑을 모방하여 전탑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입증해 주는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탑은 1단의 기단(基壇)위로 7층의 탑신(塔身)을 착실히 쌓아올린 모습이다. 기단의 각 면에는 화강암으로 조각된 8부중상(八部衆像)과 사천왕상(四天王像)을 세워놓았고, 기단 남쪽 면에는 계단을 설치하여 1층 몸돌에 만들어진 감실(龕室:불상을 모시는 방)을 향하도록 하였다. 탑신은 진한 회색의 무늬없는 벽돌로 쌓아 올렸으며, 지붕돌은 위아래 모두 계단모양의 층단을 이루는 일반적인 전탑양식과는 달리, 윗면에 남아 있는 흔적으로 보아 기와를 얹었던 것으로 보인다.
기단의 윗면을 시멘트로 발라 놓아 아쉬움을 남기는 이 탑은 7층이나 되는 높은 층수에 높이 17m, 기단너비 7.75m의 거대한 탑임에도 매우 안정된 자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국내에 남아있는 가장 크고 오래된 전탑에 속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또한 지붕에 기와를 얹었던 자취가 있는 것으로 보아 목탑을 모방하여 전탑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입증해 주는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