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보 國寶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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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 동화연화문 표주박모양 주전자 靑磁 銅畵蓮花文 瓢形 注子 |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로55길 60-16 (한남동, 리움미술관) |
분류 | 유물 / 생활공예 / 토도자공예 / 청자 |
수량/면적 | 1개 |
지정연도 | 1970년 12월 30일 |
제작시기 | 고려 시대(13세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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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315288> 청자 동화연화문 표주박모양 주전자 |
1. 개요
고려 시대인 13세기 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고려청자 주전자이다.청자 동화연화문 표주박모양 주전자(靑磁 銅畵蓮花文 瓢形 注子)는 동화 기법으로 연꽃 무늬를 새겨 넣은, 고려청자 표주박 모양 주전자이다. 1970년 12월 30일 대한민국의 국보 제133호로 지정되었다. 동화 기법이란. 구리 안료를 사용해 무늬를 그려 구워내서 선홍색 빛을 띄게하는 방법이다. 고려의 권신 최항의 무덤에서 출토된 작품으로 빛깔과 무늬가 매우 아름다워 고려청자 중에서도 가치가 높다.
현재 리움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2. 내용
청자 동화연화문 표주박모양 주전자는 높이 33.2cm, 밑지름 11.4cm의 주전자로, 표주박 모양의 몸통에 표면은 연잎으로 둘러싼 형태다. 꽃봉오리 모양의 마개를 하고 있으며, 잘록한 목 부분에는 동자가 연봉오리를 두 손으로 껴안아 들고 있는 모습과 연잎으로 장식하였다. 손잡이는 덩굴을 살짝 구부려 붙인 모양으로 위에 개구리 한 마리를 앉혀 놓았다. 물이 나오는 입구는 연잎을 말아 붙인 모양이다.당나라, 송나라에서 유행을 탄 표주박 형태의 주전자는, 고려에 전래된 이후 그 아름다움을 인정받아 본 작품외에도 청자 상감모란문 표주박모양 주전자를 포함한 다양한 주전자가 만들어졌다.
유약은 비교적 맑고 빙렬(氷裂)[1]이 없고 청록색의 광택이 나며, 약간 기포가 잔잔하게 깔려 있다. 몸체 아래의 일부는 유약이 덜 녹아 누렇고 불투명하게 변하였다. 굽은 바닥의 유약을 훑어내고 내화토와 모래를 빚어 여덟 군데를 받쳐 번조하였다.
3. 무신정권 사치의 상징
당시 무신정권 집권자였던 최항은, 여몽전쟁으로 백성이 도륙당하고 여러 문화재들이 불태워지는 판국에 날마다 왕족, 추밀원 대신, 문무 4품 이상의 관료들을 자신의 저택에 초대해 술잔치를 열어대는 무책임한 모습을 보였다. 이 당시 그의 권세를 설명하자면, 왕인 고종은 왕실 재산이 바닥나 점심식사를 줄이는 지경이 되어서 이 문제를 상의하고자 좌창별감 윤평을 불렀는데, 그는 부름을 여러차례 무시하는 등의 행위로 왕을 능멸했다. 그럼에도 "어차피 파직해봐야 며칠 후 최항에 의해 복직할텐데 무슨 의미가 있냐"면서 징계를 포기할 정도였다.무덤에 시신과 함께 묻히는 물건은 대개 고인이 살아생전 자주썼던 것이나 소중히 여긴 것들이라는 점을 상기해보면 정무를 볼 때, 식사를 할 때는 물론이고 잔치를 열 때, 격구를 관람할 때 모두 이 주전자와 함께했을 것으로 보인다. 고려 백성들이 전쟁의 고통 속에서 나무그릇 따위로 끼니를 해결할 때, 최항 본인은 이런 아름다운 빛깔과 무늬를 가진 고려의 청자제작 기술의 정수를 누리고 있었던 것이다.
[1] 도자기를 높은 온도의 가마에서 꺼내 차가운 공기에 노출시켰을 때 유약층과 태토의 수축률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미세한 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