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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8 03:34:56

경주 천마총 장니 천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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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보 國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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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1~50호]
{{{#!wiki style="margin:-10px 0"
1.#26 경주 불국사 금동비로자나불좌상
  1. 경주 불국사 금동아미타여래좌상
  2. 경주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
  3. 성덕대왕신종
  4.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5. 경주 첨성대
  6.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
  7. 창녕 진흥왕 척경비
  8. 창녕 술정리 동 삼층석탑
  9. 구례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
  10. 상원사 동종
  11. 경주 황복사지 삼층석탑
  12. 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
  13. 경주 나원리 오층석탑
  14. 경주 정혜사지 십삼층석탑
  15.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
  16. 순천 송광사 목조삼존불감
  17. 혜심고신제서
  18. 장흥 보림사 남 · 북 삼층석탑 및 석등
  19. 영주 부석사 소조여래좌상
  20. 부석사 조사당 벽화
  21.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탑비
  22. 평창 월정사 팔각 구층석탑 / 평창 월정사 석조보살좌상
  23. 예산 수덕사 대웅전
  24. 영암 도갑사 해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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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51~100호]
{{{#!wiki style="margin:-10px 0"
<table bordercolor=#fff,#1f2023>
1.#76 이순신 난중일기 및 서간첩 임진장초
  1.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
  2.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1962-1)
  3. 경주 구황동 금제여래좌상
  4. 경주 구황동 금제여래입상
  5. 경주 감산사 석조미륵보살입상
  6. 경주 감산사 석조아미타여래입상
  7.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1962-2)
  8.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
  9. 금동신묘명삼존불입상
  10. 개성 경천사지 십층석탑
  11. 금관총 금관 및 금제 관식
  12. 금관총 금제 허리띠
  13. 평양 석암리 금제 띠고리
  14. 경주 부부총 금귀걸이
  15. 도기 기마인물형 명기
  16. 청동 은입사 포류수금문 정병
  17. 백자 철화포도원숭이문 항아리
  18. 청자 참외모양 병
  19. 청자 투각칠보문뚜껑 향로
  20. 청자 구룡형 주전자
  21. 청자 음각연화당초문 매병
  22. 청자 상감모란문 항아리
  23. 김천 갈항사지 동 · 서 삼층석탑
  24. 개성 남계원지 칠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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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101~150호]
{{{#!wiki style="margin:-10px 0"
<table bordercolor=#fff,#1f2023>
1.#101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
  1. 충주 정토사지 홍법국사탑
  2. 광양 중흥산성 쌍사자 석등
  3. 전 원주 흥법사지 염거화상탑
  4. 산청 범학리 삼층석탑
  5.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
  6. 백자 철화포도문 항아리
  7. 계유명삼존천불비상
  8. 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
  9. 이제현 초상
  10. 안향 초상
  11. 경주 감은사지 동 · 서 삼층석탑
  12. 청자 철화양류문 통형 병
  13. 청자 상감모란국화문 참외모양 병
  14. 청자 상감당초문 완
  15. 청자 상감모란문 표주박모양 주전자
  16. 장흥 보림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
  17.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1964)
  18. 금동연가7년명여래입상
  19. 용주사 동종
  20. 안동 하회탈 및 병산탈
  21. 양양 진전사지 삼층석탑
  22.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사리장엄구
  23. 강릉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
  24. 녹유골호(부석제외함)
1.#126 불국사 삼층석탑 사리장엄구
  1. 서울 삼양동 금동관음보살입상
  2. 금동관음보살입상
  3. 금동보살입상(1968)
  4. 구미 죽장리 오층석탑
  5. 고려말 화령부 호적 관련 고문서
  6. 징비록
  7. 청자 동화연화문 표주박모양 주전자
  8. 금동보살삼존상
  9. 신윤복필 풍속도 화첩
  10. 금동 용두보당
  11. 대구 비산동 청동기 일괄-검 및 칼집 부속 / 투겁창 및 꺾창
  12. 전 고령 금관 및 장신구 일괄
  13. 김홍도필 군선도 병풍
  14. 나전 화문 동경
  15. 정문경
  16. 동국정운
  17. 화순 대곡리 청동기 일괄
  18. 영암 월출산 마애여래좌상
  19. 귀면 청동로
  20. 전 논산 청동방울 일괄
  21. 울주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
  22. 십칠사찬고금통요 권16 / 십칠사찬고금통요 권17
  23. 동래선생교정북사상절 권4, 5 / 동래선생교정북사상절 권6
  24. 송조표전총류 권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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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151~200호]
{{{#!wiki style="margin:-10px 0"
<table bordercolor=#fff,#1f2023>
1.#176 백자 청화‘홍치2년’명 송죽문 항아리
  1. 분청사기 인화국화문 태항아리
  2. 분청사기 음각어문 편병
  3. 분청사기 박지연화어문 편병
  4. 김정희필 세한도
  5. 장양수 홍패
  6. 구미 선산읍 금동여래입상
  7. 구미 선산읍 금동보살입상(1976-1)
  8. 구미 선산읍 금동보살입상(1976-2)
  9. 상지은니묘법연화경
  10. 양평 신화리 금동여래입상
  11. 영양 산해리 오층모전석탑
  12. 천마총 금관
  13. 천마총 관모
  14. 천마총 금제 허리띠
  15. 황남대총 북분 금관
  16. 황남대총 북분 금제 허리띠
  17. 경주 98호 남분 유리병 및 잔
  18. 황남대총 남분 금목걸이
  19. 토우장식 장경호
  20. 신라백지묵서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1~10, 44~50
  21.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
  22. 단양 신라 적성비
  23. 경주 단석산 신선사 마애불상군
  24. 금동보살입상(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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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201~25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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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251~300호]
{{{#!wiki style="margin:-10px 0"
<table bordercolor=#fff,#1f2023>
1.#251 초조본 대승아비달마잡집론 권14
  1. 청자 음각'효문'명 연화문 매병
  2. 청자 양각연화당초상감모란문 은테 발
  3. 청자 음각연화문 유개매병
  4. 전 덕산 청동방울 일괄
  5.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1
  6.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29
  7. 백자 청화죽문 각병
  8. 분청사기 상감운룡문 항아리
  9. 분청사기 박지철채모란문 자라병
  10. 백자 유개항아리
  11. 백자 달항아리(1991)
  12. 백자 청화산수화조문 항아리
  13. 포항 냉수리 신라비
  14.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13
  15.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2, 75
  16. 초조본 아비달마식신족론 권12
  17. 초조본 아비담비파사론 권11, 17
  18. 초조본 불설최상근본대락금강불공삼매대교왕경 권6
  19. 청자 모자원숭이모양 연적
  20. 초조본 현양성교론 권12
  21. 초조본 유가사지론 권32
  22. 초조본 유가사지론 권15
  23. 귀함별황자총통(1596년조)
  24. 도기 기마인물형 뿔잔
1.#276 초조본 유가사지론 권53
  1.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36
  2. 태종11년이형원종공신록권부함
  3.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74
  4. 성거산 천흥사명 동종
  5. 백자 병형 주전자
  6. 영주 흑석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및 복장유물
  7. 통감속편
  8. 초조본대반야바라밀다경 권162, 170, 463
  9.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10. 백자 ‘천’ ‘지’ ‘현’ ‘황’명 발
  11. 백제 금동대향로
  12. 부여 능산리사지 석조사리감
  13.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14. 양산 통도사 대웅전 및 금강계단
  15. 용감수경 권3~4
  16. 평창 상원사 중창권선문
  17. 부여 규암리 금동관음보살입상
  18. 백자 청화철채동채초충문 병
  19. 나주 신촌리 금동관
  20. 칠장사 오불회 괘불탱
  21. 안심사 영산회 괘불탱
  22. 갑사 삼신불 괘불탱
  23. 신원사 노사나불 괘불탱
  24. 장곡사 미륵불 괘불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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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301~336호]
{{{#!wiki style="margin:-10px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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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번호 없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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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3A2646, #4A2D5B 20%, #4A2D5B 80%, #3A2646)"{{{#!wiki style="margin:-10px"<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4A2D5B><tablebgcolor=#4A2D5B> 파일:경주 천마총 장니 천마도.png천마총
天馬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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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펼치기 · 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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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일:정부상징.svg 대한민국 국보 제207호
경주 천마총 장니 천마도
慶州 天馬塚 障泥 天馬圖
소재지 경상북도 경주시 일정로 186 (인왕동, 국립경주박물관)
분류 유물 / 일반회화 / 영모화조화 / 동물화
수량/면적 2점
지정연도 1982년 11월 16일
제작시기 신라시대(5세기)
파일:경주_대릉원_내_천마총_출토_천마도_장니(국보_제207호,_국립경주박물관_소장) 문화재청.jpg
파일:external/image.munhwa.com/2009092801032430074002_b.jpg
파일:경주 천마총 장니 천마도.png
적외선 사진 복원도

1. 개요2. 사실 천마가 아니다?3. 기타4. 갤러리5. 관련 항목6. 외부 링크7. 국보 제207호

[clearfix]

캡션

세계적인 대발굴이었다. 신라의 예술혼이 천년의 긴 세월 동안 암흑 속에서 살아 있었구나. 그 기쁨도 잠시, 환희의 절정에 달한 순간 '아차! 나와서는 안 될 유물이 나왔구나!' 하는 생각에 눈앞이 캄캄해지고 아찔한 현기증을 느꼈다. 온몸에서 힘이 쭉 빠져나가는 듯했다.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1]
천마총 발굴단장 김정기의 술회에서
[clearfix]

1. 개요

파일:경주 천마총 장니 천마도.jpg
막 발굴된 직후의 장니.

파일:천마도 발굴 모습.jpg
1973년 천마총 발굴 당시의 천마도가 그려진 말다래를 수습하는 모습 출처

경주시 천마총에서 발견된 천마도 장니[2]로, 국보 제207호로 지정되었다. 신라고구려백제와 달리 고분에 벽화를 그리는 문화가 없었기 때문에, 천마도는 경덕왕 시기의 대방광불화엄경변상도와 함께 지금까지 남은 몇 안 되는 신라회화이다.

2. 사실 천마가 아니다?

파일:external/image.munhwa.com/2009092801032430074002_b.jpg
적외선으로 찍은 사진

육안으로는 색이 바래 거의 보이지 않았던, 천마(?)로 추정되던 말의 머리에 날카로운 이 2개 달렸다. 이는 파지릭 문화에서도 나타나는 것이라 시대차이에도 불구하고 연관성을 찾기도 한다. 파지릭 문화 역시 돌무지덧널무덤이라는 무덤양식으로 신라의 무덤양식과 똑같아서 고고학자들이 연관관계를 연구 중인 테마.

실제 말에게는 뿔이 없기 때문에, 이 뿔에 주목해서 그림 속 동물이 이 아니라 영물인 기린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천마, 즉 말일 것이라고 주장하는 측이 우세하기 때문에 천마도와 천마총이란 이름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천마 지지자의 주장으로 천마도 주변에는 말 안장, 발안장 등 여러 실제 말과 관련된 용품이 나왔기 때문에 천마도는 기린이 아니라 말임이 확실해졌다는 것이다. 또한 천마도가 말안장 장니에 그린 그림이라는 점도 '말'을 그린 그림임을 강하게 시사하는 요소.

그러나 조선왕조실록에는 세종 22년(1440) '동궁의 말다래에 기린을 그리라.'고 명령했다는 기록이 있어서#, 비록 시대는 다르지만 말다래에 기린을 그리는 역사적 사례가 있었다는 반론도 있다.

한편 일각에서는 천마도의 동물이 용마라는 설도 있다.

3. 기타

대부분 사람들이 천마총에서 나온 천마도가 무덤 벽화라고 알지만, 사실은 무덤 부장품으로 있던 말다래[3]에 그려진 것이다. 초기 신라의 무덤양식은 돌무지덧널무덤으로 입구가 없으며 돌방 없이 나무로 널을 짠 것으로 끝이기 때문에 벽화가 나오려야 나올 수가 없다. 무덤 내에 '벽'이 없으니 '벽화'는 애초에 있을 수가 없다. 고구려나 백제가 있던 지역에서는 고분 벽화가 여럿 남은 것과 달리 신라는 벽화 문화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4] 당대의 회화라고 할 만한 것은 천마도와 그 외 몇몇 정도로 적은 편이다. 다만 돌무지덧널무덤은 도굴이 어렵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금관이나 귀걸이 등 지금까지 남은 부장품은 고구려나 백제보다 신라 것이 압도적으로 많다.
파일:attachment/chunmado02.jpg
파일:경주_대릉원_내_천마총_출토_천마도_장니(국보_제207호,_국립경주박물관_소장) 문화재청.jpg
장니의 예시로 올라온 좌측의 사진은 신라토기도기 기마인물형 명기이다.

천마도가 그려진 장니의 재료는 자작나무이다. 그런데 자작나무는 당시 신라의 영역이 있었던 남한 지역에서는 자라지 않고 북방 시베리아에서 자생하는 나무이다. 그러므로 천마도는 당시 신라가 고구려 등 북방과 교역하고 있었다는 증거가 된다.[5] 물론 자작나무라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고 대신에 남한 지역에서도 자라는 사스레나무거제수나무일 가능성도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셋 다 자작나무속(Betula)인 것은 변함이 없어서 자작나무라고 해도 무리수는 아니다.

보기에서 벽화를 골라야 하는 문제에서 천마도를 슬쩍 끼워넣는 것은 각종 국사 시험에서 단골 낚시 소재이기도 하다. 특히, 고구려 고분들과 같이 사진으로 내놓고 벽화냐고 낚는 문제는 심심찮게 나온다. 당연히 천마도는 벽화가 아니므로 주의할 것.

영남대학교의 메인 로고이다. 인문관에 가면 크게 그려져 있다.

4. 갤러리

파일:국보_경주 천마총 장니 천마도_문화재대관(국보).jpg
천마도의 대관
파일:경주 천마총 장니 천마도.jpg
경주 천마총 장니 천마도
파일:경주_대릉원_내_천마총_출토_천마도_장니(국보_제207호,_국립경주박물관_소장) 문화재청.jpg
국보 207호,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경주 천마총 장니 천마도
파일:external/image.munhwa.com/2009092801032430074002_b.jpg
천마도의 적외선 사진
파일:경주 천마총 장니 천마도.png
천마도의 복원도
파일:천마도 발굴 모습.jpg
천마도의 발굴 모습

5. 관련 항목

6. 외부 링크

7. 국보 제207호

경주 천마총 <장니 천마도>는 말의 안장 양쪽에 달아 늘어뜨리는 장니에 그려진 말(천마)그림이다. 가로 75㎝, 세로 53㎝, 두께는 약 6㎜로 1973년 경주 황남동고분 155호분(천마총)에서 발견되었다.

천마도가 그려져 있는 채화판은 자작나무껍질을 여러 겹 겹치고 맨 위에 고운 껍질로 누빈 후, 가장자리에 가죽을 대어 만든 것이다. 중앙에는 흰색으로 천마가 그려져 있으며, 테두리는 흰색·붉은색·갈색·검은색의 덩굴무늬로 장식되어 있다. 천마는 꼬리를 세우고 하늘을 달리는 모습으로, 다리 앞뒤에 고리모양의 돌기가 나와 있고 혀를 내민 듯한 입의 모습은 신의 기운을 보여준다. 이는 흰색의 천마가 동물의 신으로, 죽은 사람을 하늘 세계로 실어나르는 역할이였음을 짐작해 볼 수 있게 한다.

5∼6세기의 신라시대에 그려진 천마도의 천마의 모습 및 테두리의 덩굴무늬는 고구려 무용총이나 고분벽화의 무늬와 같은 양식으로, 신라회화가 고구려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는 그림이다. 또한 신라회화로서 현재까지 남아있는 거의 유일한 작품으로 그 가치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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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왜 이런 반응을 보였는지는 기사1기사2를 참조. 요약하면, 오랜 세월 동안 격리된 유물이 갑작스럽게 외부 공기나 햇빛에 노출될 시 손상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보존 처리 과정에서 온·습도 조절마저 여의치 않아서 문화재관리국 전체에서 국장실 한 곳에만 있던 에어컨을 급하게 뜯어 옮겼다고. 천마총 발굴은 우리나라에서 보존과학이 최초로 도입된 발굴이었다고 한다. 초기다 보니 시행착오가 많았던 듯.[2] 장니(障泥). 말을 탄 사람의 발에 흙이 튀지 않도록 말안장 옆 양편에 늘어뜨려 놓은 가죽제 마구로 '말다래'라고도 한다.[3] 장니:障泥, 말을 탄 사람의 발에 흙이 튀지 않도록 말안장 옆 양편에 늘어뜨리는 가죽제 마구[4]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영주 순흥 벽화고분, 영주 순흥 어숙묘, 신덕왕릉에서 벽화가 있었기 때문. 전자는 신라와 고구려의 국경지역이고 후자는 신라 말엽의 사례라, 간략하게 설명할 경우 신라사 전체로 보면 사실상 벽화가 없는 것에 가깝다고 치는 것이다.[5] 또한 천마도 말고도 금관 아래에 덧쓰는 모자의 재료도 자작나무로 사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