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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보 제171호 | |
청동 은입사 봉황문 합 靑銅 銀入絲 鳳凰文 盒 | |
소재지 | <colbgcolor=#fff,#191919> 서울특별시 용산구 |
분류 | 유물 / 생활공예 / 금속공예 / 청동용구 |
수량/시설 | 1개 |
지정연도 | 1974년 7월 9일 |
제작시기 | 고려 시대(12세기) |
1. 개요
靑銅 銀入絲 鳳凰文 盒. 청동 은입사 봉황문 합은 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청동그릇으로, 향을 담아두는 그릇인 향합(香盒)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합의 뚜껑도 함께 전해지고 있으며 표면에 여러 문양이 은실로 새겨져 있다.청동 은입사 봉황문 합이라는 이름을 풀이하자면, 은입사 기법으로 봉황 무늬를 새겨 넣은 청동 재질의 합이란 뜻이다. 은입사(銀入絲) 기법이란 금속으로 된 기구에 은으로 된 실을 이용하여 그림이나 문양 등을 새기는 세공 기술로 고려 시대에 제작된 공예품에서 많이 발견된다. 합(盒)은 그릇의 일종인데, 놋과 같은 금속 재질로 만든 것을 주로 가리킨다.[1]
삼성 이병철 전 회장 소유였던 유물들 가운데 국보와 같은 국가 지정 문화재로 지정된 것들 대다수가 그러하듯이, 청동 은입사 봉황문 합도 정확한 입수경위나 출토 위치와 같은 관련 정보는 딱히 확인되지 않는다. 하지만 본 합은 지금까지 전해오는 몇 점의 고려시대의 청동 향합들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도 정교한 걸작으로 꼽히며 보존상태도 양호하다.
청동 은입사 봉황문 합은 1974년 국보 제171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삼성 리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2. 내용
청동 은입사 봉황문 합은 높이 9.9cm, 입지름 18.3cm의 향합으로, 절에서 사용하던 법구의 하나다. 향합에 향을 담아 두다가 향을 피울때는 향로의 일종인 향완(香垸)에다가 피우는 방식으로 사용됐다.청동 은입사 봉황문 합은 뚜껑과 몸체로 이루어져 있는데, 조형적인 측면에서 보면 뚜껑과 몸체가 서로 꼭 맞아 균형감과 안정감을 준다고 평가 된다. 또한 뚜껑의 윗부분과 몸체 아랫부분의 모서리를 세우지 않고 측면과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사선으로 깎아 경사면으로 만들었는데, 그 제작 기법이 능숙해서 전체적인 형태에서 부드러운 인상을 준다.[2] 또한 뚜껑과 몸체 표면에 전체적으로 무늬가 가득 장식되어 있는데, 이는 모두 은실로 새긴 것이다. 본 향합은 만들어진지 5백년 이상 된 오래된 유물인지라 세월의 흐름 속에서 표면의 청동에 녹이 가득 덮혀서 전체적으로 푸르스름한 빛을 띄지만, 은실로 새겨진 무늬는 여전히 선명한 백색을 잘 유지하고 있으며 푸른 색과 백색이 자연스럽게 조화로이 잘 어우러져 있어서 아름답다는 평을 받는다.[3]
합 뚜껑의 윗면에는 은실로 새겨진 문양이 아주 치밀해서 눈에 잘 띈다. 윗면의 정가운데에는 봉황 한마리가 날개를 펴고 구름 사이를 날고 있는 모습이 새겨져 있고, 그 주위를 구름 모양과 같은 여의두(如意頭) 무늬[4]로 테두리를 둘러놨다. 여의두 무늬 밖으로는 모란꽃봉오리 8개가 장식되어 있고 이 꽃봉오리들이 모두 하나의 길다란 줄기에 연결되도록 해놨다. 이 줄기는 S자를 그리며 물결치듯 뚜껑 윗면의 안쪽과 바깥쪽으로 구불구불 장식되어 있는데, 꽃봉오리들도 이 줄기의 위치에 따라서 번갈아가면서 윗면의 안쪽과 바깥쪽을 향하도록 세심하게 배치를 해놔서 그 디자인의 수준이 상당히 높다.
또한 앞서 언급된 뚜껑과 몸체에 만들어진 사선으로 깎인 경사면에는 당초(唐草) 무늬를 둘렸다.[5] 향합의 뚜껑과 몸체의 측면에 새겨진 문양은 서로 동일한데, 구름과 당초 무늬를 가득 새겼고 무늬의 위아래로 각각 은실 한 줄로 가는 선을 둘렀다. 이와 같이 본 향합에 장식된 무늬들 하나하나는 다채롭고 정교하지만 시선을 어지럽힐 정도로 화려하진 않게 단정하고, 합의 자체 형태도 단아해서 전체적으로는 품위 있는 정갈한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걸작 중 하나로 손꼽힌다.
청동 은입사 봉황문 합은 표면 일부에 녹이 떨어져 나간 부분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존 상태가 양호하며, 또한 제작 수준이 뛰어나 그 미적인 가치도 탁월하여 고려의 높은 금속 공예 수준을 대표할만한 걸작 공예품으로서의 가치를 높이 인정 받아, 1974년 7월 9일 국보 제171호로 지정되었다.
3. 외부 링크
4. 국보 제171호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뚜껑이 있는 그릇(합)으로 높이 9.9㎝, 아가리 지름 18.3㎝의 크기이다.
고려시대에 크게 유행한 문양을 파내고 은실을 박아 장식하는 은입사 기법을 사용하여 제작한 그릇으로, 아래 몸통과 뚜껑의 크기가 같아 안정감 있게 보인다.
뚜껑과 몸통 위·아래 가장자리는 모를 깎아 둥글게 처리하였는데, 이러한 형식은 고려시대 철기, 자기, 상자, 합들에서 많이 보이는 양식이다. 뚜껑 윗면 중앙에 봉황이 있고, 그 주위에 꽃무늬와 덩굴무늬로 장식하였다. 바깥 가장자리의 경사면에는 은입사 기법으로 덩굴무늬를 장식했다. 뚜껑과 몸통의 측면에는 양식화된 덩굴무늬가 있다.
청동 은입사 봉황문 합은 은입사 기법이 한창 성행하였던 11∼12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전면이 정교한 은입사 기법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용도는 사찰에서 사용된 향합으로 추측된다.
고려시대에 크게 유행한 문양을 파내고 은실을 박아 장식하는 은입사 기법을 사용하여 제작한 그릇으로, 아래 몸통과 뚜껑의 크기가 같아 안정감 있게 보인다.
뚜껑과 몸통 위·아래 가장자리는 모를 깎아 둥글게 처리하였는데, 이러한 형식은 고려시대 철기, 자기, 상자, 합들에서 많이 보이는 양식이다. 뚜껑 윗면 중앙에 봉황이 있고, 그 주위에 꽃무늬와 덩굴무늬로 장식하였다. 바깥 가장자리의 경사면에는 은입사 기법으로 덩굴무늬를 장식했다. 뚜껑과 몸통의 측면에는 양식화된 덩굴무늬가 있다.
청동 은입사 봉황문 합은 은입사 기법이 한창 성행하였던 11∼12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전면이 정교한 은입사 기법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용도는 사찰에서 사용된 향합으로 추측된다.
[1] 물론 금속으로만 만든 것은 아니다. 참조: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합[2]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청동 은입사 봉황문 합[3] 출처: 두산백과 - 청동은입사보상당초봉황문합[4] 참조: 한국 미의 재발견 용어 모음 - 여의두무늬[5] 당초는 덩굴을 뜻하는데 특정한 식물의 덩굴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며, 당초 무늬는 일반적인 덩굴이 이리저리 꼬여서 복잡하게 얽혀 있는 무늬를 말한다. 비슷한 것으로는 이슬람 문화권의 아라베스크 무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