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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보 제300호 | |
장곡사 미륵불 괘불탱 長谷寺 彌勒佛 掛佛幀 | |
소재지 | 충청남도 청양군 대치면 장곡길 241, 장곡사 (장곡리) |
분류 | 유물 / 불교회화 / 괘불화 / 미륵불도 |
수량/면적 | 1폭 |
지정연도 | 1997년 9월 22일 |
제작시기 | 조선 현종 14년(1673) |
<colbgcolor=#315288> 장곡사 미륵불 괘불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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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長谷寺 彌勒佛 掛佛幀. 장곡사 미륵불 괘불탱은 조선 현종 14년(1673년)에 제작된 가로 5.99m, 세로 8.69m의 거대한 크기의 삼베에 그린 탱화(幀畵)이다. 탱화란 불교의 가르침이나 전해져 오는 이야기를 이미지화 하여 표현한 그림인데, 괘불탱은 탱화 가운데서도 야외에서 행해지는 불교 의식에 사용하는 초대형 탱화이다.[1]장곡사 미륵불 괘불탱이 있는 장곡사는 충청남도 청양군 대치면 장곡리의 칠갑산 산자락에 위치한다. 장곡사는 신라 문성왕 12년(850년) 보조선사 체징이 창건했다고 알려져 있다. 장곡사는 천년도 더 전에 창건되어 내려온 역사가 깊은 절이니만큼 장곡사 미륵불 괘불탱 이외에도 국보 제58호 청양 장곡사 철조약사여래좌상 및 석조대좌, 국보 청양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 및 복장유물,[2] 보물 제162호 청양 장곡사 상대웅전, 제174호 청양 장곡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 및 석조대좌, 제181호 청양 장곡사 하대웅전 등의 국가중요문화재들이 다수 남아있다.
장곡사 미륵불 괘불탱은 1997년에 국보 제300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장곡사에서 소장하고 있다.
2. 내용
장곡사 미륵불 괘불탱은 거대한 괘불 탱화로, 중앙에 자리잡은 미륵불의 상하좌우로 수많은 존상들이 대칭하여 위치하고 있다. 그림의 형태로 보아 정면의 미륵불을 먼저 그리고 남은 공간에 나머지 존상들을 그려넣은 것으로 보인다. 존상들은 육대여래[3], 육대보살[4], 석가모니의 십대제자, 제석천, 범천, 사천왕, 천자, 천동, 아사세왕, 위제희왕비, 용왕, 용녀 등인데, 각각의 존상마다 명칭이 모두 기록되어 있다. 각각의 존상들은 적색과 녹색을 위주로 해서 채색하였으나, 그밖에도 다양한 색상들로 치장되어 있다.본 괘불탱에는 그림을 그린 이유를 남긴 화제(畵題)가 적혀있는데, 조선 왕실의 만수무강을 기원하기 위해 그린 것이라 밝히고 있다. 또한 화제에 철학(哲學), 천승(天勝), 신밀(信密), 일호(一湖), 해종(海宗) 등의 5명의 승려화가가 그렸다는 것과 함께 탱화의 명칭을 '영산대회괘불탱(靈山大會掛佛幀)'이라 하고 있으며 본존불은 '미륵존불'로 칭하고 있다.[5]
괘불탱의 정가운데에 화려하고 거대한 본존불로 묘사된 미륵불은 보관을 쓰고 용화수 가지를 들고 서있으며,[6] 머리 뒤로는 광배가 있고 몸 주위로도 빛을 발하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미륵불이 입고 있는 법의와 몸체에는 다양한 화려한 장신구들이 달려 있다.
육대여래와 육대보살은 미륵불의 좌우로 배치되어 있다.[7] 미륵불 몸체의 좌측에는 비로자나불이 지권인의 수인을 취하고 있고, 우측에는 노사나불이 전법륜인의 수인을 취하고 있다.[8] 비로자나불의 바로 앞에는 법림보살이, 노사나불의 바로 앞에는 대묘상보살이 각각 꽃을 들고 서있는데, 대묘상보살과 법림보살은 미륵불을 모시는 협시보살이다.[9]
다보여래와 약사여래[10] | 문수보살과 관음보살[11] |
미륵불 몸체의 하단에는 사천왕과 제석천, 범천, 그리고 나머지 권속들이 묘사되어 있다. 이들 역시 좌우로 대칭되는 구도를 취한다.
본 괘물탱에는 특이사항이 있다. 일반적인 불화의 형식과는 결을 달리하는 부분인데, 본존불이 미륵불이라는 점이다. 무엇보다도 미륵불을 본존불로 모시는 괘불탱은 본 작품 이외에는 그 사례가 아주 드문데다가,[12] 화제에 적혀 있는 그림의 명칭은 영산대회괘불탱으로 나와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영산회는 석가모니가 제자들에게 설법하는 장면을 말하는 것이라서, 미륵불이 본존불인 본 괘불탱은 일반적인 불화의 형식과는 맞지 않는다. 따라서 본존불을 석가모니로 봐야하지 않느냐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화제에 본존불을 미륵불이라고 밝히고 있으며, 본존불을 모시는 협시보살도 미륵불의 협시보살인 대묘상보살, 법림보살이라는 점에서 통상적으로는 본존불을 미륵불로 보고 있다.[13][14]
장곡사 미륵불 괘불탱은 보존상태가 우수하며, 형식상의 특이점으로 인해 조선 후기의 불화 연구에 있어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각 존상들의 명칭을 모두 꼼꼼하게 남겨놨다는 점에서 학술적인 가치가 높다. 1997년 9월 22일, 문화재청은 괘불탱이 가지는 미적인 측면과 불교 미술사적인 중요성을 인정하여 칠장사, 안심사, 갑사, 신원사, 화엄사, 청곡사에 전해지는 괘불탱들을 각각 국보 제296호부터 제302호까지 지정하였으며, 이와 함께 장곡사의 미륵불 괘불탱은 국보 제300호로 지정하였다.
2023년 4월 19일 부터 10월 9일 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된다.
3. 외부 링크
4. 국보 제300호
용화수 가지를 들고 있는 미륵불을 그린 괘불이다. 괘불이란 야외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진행할 때 법당 앞뜰에 걸어놓고 예배를 드리던 대형 불교그림을 말한다.
장곡사에 있는 이 그림은 가로 5.99m, 세로 8.69m로 미륵불을 화면 중심에 두고 6대 여래, 6대 보살 등 여러 인물들로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인간세계에 내려와 중생을 구제한다는 부처인 미륵불은 사각형의 얼굴에 머리에 4구의 작은 불상이 있는 화려한 보관을 쓰고, 풍만하고 살찐 모습으로 유난히 긴 팔과 커다란 상체를 가지고 있다.
좌우에 있는 비로자나불과 노사나불은 머리에 둥근 두광이 있고 각각 두 손을 맞잡은 손 모양과 어깨 높이까지 두 손을 들어 올려 설법하는 손모양을 하고 있다. 그 밖의 다른 여래와 보살들은 각기 상징하는 물건들을 들고 있으며 10대 제자는 두손을 모아 합장한 자세로 방향이나 표현을 달리해 변화를 주고 있다. 그림 아래에는 부처를 수호하는 사천왕과 그 권속들이 자리잡고 있다. 전체적인 채색은 붉은 색을 주로 사용하고 녹색, 연록색, 주황 등의 중간 색조를 사용하여 밝은 화면을 보여 준다.
이 그림은 조선 현종 14년(1673) 철학(哲學)을 비롯한 5명의 승려화가가 왕과 왕비, 세자의 만수무강을 기원하기 위해 그린 것이다. 미래불인 미륵을 본존으로 삼고 있지만 그림의 내용은 현세불인 석가가 영축산에서 설법하는 영산회상도와 비슷한 것으로 등장인물들과 배치구도가 독특한 작품이며 경전의 내용과도 다른 점이 있어 앞으로 연구할 가치가 많은 작품이다.
장곡사에 있는 이 그림은 가로 5.99m, 세로 8.69m로 미륵불을 화면 중심에 두고 6대 여래, 6대 보살 등 여러 인물들로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인간세계에 내려와 중생을 구제한다는 부처인 미륵불은 사각형의 얼굴에 머리에 4구의 작은 불상이 있는 화려한 보관을 쓰고, 풍만하고 살찐 모습으로 유난히 긴 팔과 커다란 상체를 가지고 있다.
좌우에 있는 비로자나불과 노사나불은 머리에 둥근 두광이 있고 각각 두 손을 맞잡은 손 모양과 어깨 높이까지 두 손을 들어 올려 설법하는 손모양을 하고 있다. 그 밖의 다른 여래와 보살들은 각기 상징하는 물건들을 들고 있으며 10대 제자는 두손을 모아 합장한 자세로 방향이나 표현을 달리해 변화를 주고 있다. 그림 아래에는 부처를 수호하는 사천왕과 그 권속들이 자리잡고 있다. 전체적인 채색은 붉은 색을 주로 사용하고 녹색, 연록색, 주황 등의 중간 색조를 사용하여 밝은 화면을 보여 준다.
이 그림은 조선 현종 14년(1673) 철학(哲學)을 비롯한 5명의 승려화가가 왕과 왕비, 세자의 만수무강을 기원하기 위해 그린 것이다. 미래불인 미륵을 본존으로 삼고 있지만 그림의 내용은 현세불인 석가가 영축산에서 설법하는 영산회상도와 비슷한 것으로 등장인물들과 배치구도가 독특한 작품이며 경전의 내용과도 다른 점이 있어 앞으로 연구할 가치가 많은 작품이다.
[1] 소위 말하는 야단법석이 이 괘불탱이 걸리는 야외 불교 의식을 뜻한다.[2] 문화유산 지정번호제 폐지 후 국보로 지정돼서 번호가 없다.[3] 노사나불, 비로자나불, 다보여래, 석가여래, 약사여래, 아미타불[4] 대묘상보살, 법림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 관음보살, 대세지보살[5]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장곡사미륵불괘불탱[6] 본존불은 상체의 왼쪽 어깨는 다소 좁게 묘사된 것에 반해 오른쪽 어깨를 길게 뻗어 우팔을 아래로 길게 빼서 용화수 가지를 받치고 있어 비례가 잘 안 맞고, 하체의 다리와 발의 자세도 다소 묘하게 어색해서 약간 엉거주춤하게 앉아 있는 것으로도 보인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서있는 것으로 본다.[7] 이하에서 말하는 좌우는 본 장곡사 미륵불 괘불탱을 바라보는 방향을 기준으로 한다.[8] 출처: 두산백과 - 장곡사 미륵불괘불탱[9] 협시보살(또는 협시불)은 본존불을 좌우에서 모시고 있는 불상을 뜻한다. 중앙의 본존불과 좌우의 협시보살까지 총 세 분의 부처가 삼존불을 이룬다. 참조: 두산백과 - 협시불[10] 뒷줄 우측부터 약구존자, 소빈라존자, 제대용왕이 있다.[11] 뒤에는 가리라존자가 있다.[12] 장곡사 미륵불 괘불탱 외의 다른 사례로는 보물 제1265호로 지정된 무량사미륵불괘불탱이 유일하다.[13] 석가모니의 협시보살로는 일반적으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두거나 미륵보살과 관음보살을 둔다.[14]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장곡사미륵불괘불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