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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보 제128호 | |
금동관음보살입상 金銅觀音菩薩立像 |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 (용산동6가) 국립중앙박물관 |
분류 | 유물 / 불교조각 / 금속조 / 보살상 |
수량/면적 | 1구 |
지정연도 | 1968년 12월 19일 |
제작시기 | 백제시대 |
1. 개요
金銅觀音菩薩立像. 금동관음보살입상은 삼국시대 백제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는, 구리로 주조하여 금으로 도금한 금속제 관음보살상이다.삼성 이병철 전 회장 소유였던 국보로 지정된 문화재 가운데 대다수가 그렇듯이, 금동관음보살입상도 정확한 입수경위나 출토 위치는 현재로선 모르고 단지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출토되었다고만 알려져 있다.[1] 정식적인 학술 조사를 통한 발굴로 발견된 유물도 아니고 불상에 남아 있는 명문도 전혀 없어서, 이 불상이 어디 계열 유물일지 그리고 언제쯤 만들어졌을지도 정확하게는 알 수가 없다.[2] 다만 불상에서 드러나는 여러 특징으로 미루어보아 7세기 초엽 경 삼국시대 백제 불상으로 추정한다.[3]
만들어진지 아주 오래 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지라 세월을 이기지 못하여 여기저기에 녹이 스는 등 금동관음보살입상의 보존 상태는 보기에 좋은 편은 아니다. 그래도 불상의 형태가 눈에 띄게 결구된 부분 없이 잘 남아 있고 도금 상태도 그럭저럭 양호하다.
금동관음보살입상은 1968년에 국보 제128호로 지정되었으며,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소장하고 있었다가, 2021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되었다.
2. 내용
금동관음보살입상은 높이 15.2cm의 작은 금동불상으로, 연꽃형 대좌 위에 올라선 보살이 왼손에는 법구 중 하나인 정병을 들고 있고 오른손은 흘러내리는 옷자락을 잡고 있는 형상이다. 또한 불상의 왼손에 정병이 들려 있는데, 이는 전형적인 관세음보살의 특징적인 표현으로 본 불상이 관세음보살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4]금동관음보살입상의 머리에는 삼면보관(三面寶冠)이 씌여 있는데 보관의 정면은 꽃무늬로 장식되어 있다. 관음보살의 정수리 위로는 마치 상투를 튼 것 같은 보계(寶髻)가 솟아 있다.[5] 관음보살의 얼굴은 통통하게 살이 올라 사각진 형태이며 표정은 양 눈을 감고 미소도 띠지 않는 무표정으로 근엄한 인상을 준다.[6]
관음보살이 입고 있는 옷(천의(天衣))은 어깨에서부터 시작해 쭉 늘어져서 바닥의 대좌에 까지 닿는데, 팔을 아래로 쭉 뻗어 오른손으로 흘러내린 옷자락을 잡고 있다. 이렇게 늘어진 옷은 무릎 부근에서 서로 X자로 교차한다. 옷 위에는 불상에 장식하는 구슬 장식인 영락(瓔珞)이 표현되어 있는데,[7] 가슴팍에서 한번 만나고 배의 가장자리를 따라 두 줄로 내려오다가 배꼽 부근에서 다시 만난 뒤 다시 갈라져서 다리 아래로까지 늘어져 있다. 이와 같이 불상 의복 표현은 중국의 불상 양식이 반영된 것으로 삼국시대 불상들에서 자주 나타난다고 한다.[8]
관음보살의 뒷편은 평평하여 따로 조형이 되어 있는 것이 없고 녹이 심하게 슬어있다. 다만 광배를 달았던 흔적으로 보이는 못이 남아 있는데, 이로 미루어보아 본래는 머리 뒤의 두광과 몸체 뒤의 신광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9]
관음보살이 서 있는 대좌는 2단으로 되어 있는데, 육각형의 연꽃 대좌 위에 작은 앙련좌가 올라가 있는 모습이다.[10] 이 앙련좌 위에 관음보살이 올라가 있다. 대좌는 아래를 향하고 있는 연꽃잎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연꽃잎이 넓고 부드러워 백제 특유의 연꽃 무늬 양식을 드러낸다고 평가받는다.[11]
금동관음보살입상의 제작 연대나 제작 국가는 불명확하지만, 국보 제293호인 부여 규암리 금동관음보살입상과 형태가 유사하다는 점과 백제의 강역이었던 공주 지역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해진다는 점 그리고 삼면보관이나 영락 등과 같은 불상의 특징적인 도상 양식을 토대로 짐작해보면 7세기 초엽 경 백제의 불상으로 추정할 수 있다.[12]
금동관음보살입상은 출토지가 불명확하며 여기저기 녹이 슬고 금박이 벗겨지는 등 보존상태가 아주 좋지는 않지만, 불상의 형태가 온전하고 표현 기법 등으로 제작 시기를 7세기 초로 추정할 수 있으며 백제 특유의 양식이 잘 남아 있는 불상이라는 점 등의 가치를 인정받아 1968년 12월 19일에 국보 제128호로 지정되었다.
3. 외부 링크
4. 국보 제128호
충청남도 공주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해지며 백제시대의 양식을 잘 보여주는 자그마한 보살입상으로 높이 15.2㎝이다.
머리에는 꽃무늬로 장식한 반원 모양의 관(冠)을 썼고 그 위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높이 표현되어 있으며, 사각형에 가까운 얼굴은 미소가 없어 근엄한 표정이다. 몸에 밀착된 얇은 옷은 신체의 굴곡을 잘 드러내주지만 옷주름은 선이 분명하지 않다. 어깨에서 몸의 가장자리를 따라 내려오는 구슬 장식은 배 부근에서 X자형으로 교차되어 다리 위에 장식되었고, 배 한가운데에 둥근 꽃무늬 고리를 달고 있다. 이것은 중국의 옛 방식을 따르고 있는 것으로 우리나라의 삼국시대 금동불상에서도 나타난다. 오른손은 내려서 옷자락을 잡고 있고, 왼손에는 큼직한 정병(淨甁)을 들고 있어 관음보살을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6각형의 대좌(臺座)에는 엎어 놓은 연꽃무늬가 새겨지고, 그 위에 활짝 핀 연꽃무늬를 새긴 대석을 올려 놓은 모습인데, 잎이 넓고 부드러운 연꽃잎은 백제시대 특유의 양식을 잘 보여준다.
보살상 전체에 녹이 많으나 아직도 금색이 찬연하며 백제 불상 특유의 유연함을 보여주고 있다.
머리에는 꽃무늬로 장식한 반원 모양의 관(冠)을 썼고 그 위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높이 표현되어 있으며, 사각형에 가까운 얼굴은 미소가 없어 근엄한 표정이다. 몸에 밀착된 얇은 옷은 신체의 굴곡을 잘 드러내주지만 옷주름은 선이 분명하지 않다. 어깨에서 몸의 가장자리를 따라 내려오는 구슬 장식은 배 부근에서 X자형으로 교차되어 다리 위에 장식되었고, 배 한가운데에 둥근 꽃무늬 고리를 달고 있다. 이것은 중국의 옛 방식을 따르고 있는 것으로 우리나라의 삼국시대 금동불상에서도 나타난다. 오른손은 내려서 옷자락을 잡고 있고, 왼손에는 큼직한 정병(淨甁)을 들고 있어 관음보살을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6각형의 대좌(臺座)에는 엎어 놓은 연꽃무늬가 새겨지고, 그 위에 활짝 핀 연꽃무늬를 새긴 대석을 올려 놓은 모습인데, 잎이 넓고 부드러운 연꽃잎은 백제시대 특유의 양식을 잘 보여준다.
보살상 전체에 녹이 많으나 아직도 금색이 찬연하며 백제 불상 특유의 유연함을 보여주고 있다.
[1]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금동관음보살입상[2] 폐사지에서 도굴한 유물이거나 혹은 어느 절에서 훔쳐온 절도품일 가능성도 있다.[3] 출처: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 금동관음보살입상[4] 참조: 세계미술용어사전 - 관음보살[5] 보계는 보살이나 부처의 머리 위에 있는 상투를 말한다. 이와 비슷한 것으로는 육계(肉髻)가 있다. 육계는 무견정상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부처의 정수리에 있는 뼈가 솟아 저절로 상투 모양이 된 것을 지칭한다.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 보계5, 네이버 국어사전 - 육계4[6]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금동관음보살입상[7] 참조: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영락[8] 출처: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 금동관음보살입상[9]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금동관음보살입상,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 금동관음보살입상[10] 앙련좌(仰蓮座)는 연꽃이 위로 향한 모양을 새겨 꾸민 좌대를 지칭한다.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 앙련좌[11]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금동관음보살입상[12]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금동관음보살입상,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 금동관음보살입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