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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두사지 철당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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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國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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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1~5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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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경주 불국사 금동비로자나불좌상
  1. 경주 불국사 금동아미타여래좌상
  2. 경주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
  3. 성덕대왕신종
  4.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5. 경주 첨성대
  6.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
  7. 창녕 진흥왕 척경비
  8. 창녕 술정리 동 삼층석탑
  9. 구례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
  10. 상원사 동종
  11. 경주 황복사지 삼층석탑
  12. 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
  13. 경주 나원리 오층석탑
  14. 경주 정혜사지 십삼층석탑
  15.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
  16. 순천 송광사 목조삼존불감
  17. 혜심고신제서
  18. 장흥 보림사 남 · 북 삼층석탑 및 석등
  19. 영주 부석사 소조여래좌상
  20. 부석사 조사당 벽화
  21.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탑비
  22. 평창 월정사 팔각 구층석탑 / 평창 월정사 석조보살좌상
  23. 예산 수덕사 대웅전
  24. 영암 도갑사 해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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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51~10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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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 이순신 난중일기 및 서간첩 임진장초
  1.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
  2.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1962-1)
  3. 경주 구황동 금제여래좌상
  4. 경주 구황동 금제여래입상
  5. 경주 감산사 석조미륵보살입상
  6. 경주 감산사 석조아미타여래입상
  7.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1962-2)
  8.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
  9. 금동신묘명삼존불입상
  10. 개성 경천사지 십층석탑
  11. 금관총 금관 및 금제 관식
  12. 금관총 금제 허리띠
  13. 평양 석암리 금제 띠고리
  14. 경주 부부총 금귀걸이
  15. 도기 기마인물형 명기
  16. 청동 은입사 포류수금문 정병
  17. 백자 철화포도원숭이문 항아리
  18. 청자 참외모양 병
  19. 청자 투각칠보문뚜껑 향로
  20. 청자 구룡형 주전자
  21. 청자 음각연화당초문 매병
  22. 청자 상감모란문 항아리
  23. 김천 갈항사지 동 · 서 삼층석탑
  24. 개성 남계원지 칠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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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101~15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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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1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
  1. 충주 정토사지 홍법국사탑
  2. 광양 중흥산성 쌍사자 석등
  3. 전 원주 흥법사지 염거화상탑
  4. 산청 범학리 삼층석탑
  5.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
  6. 백자 철화포도문 항아리
  7. 계유명삼존천불비상
  8. 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
  9. 이제현 초상
  10. 안향 초상
  11. 경주 감은사지 동 · 서 삼층석탑
  12. 청자 철화양류문 통형 병
  13. 청자 상감모란국화문 참외모양 병
  14. 청자 상감당초문 완
  15. 청자 상감모란문 표주박모양 주전자
  16. 장흥 보림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
  17.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1964)
  18. 금동연가7년명여래입상
  19. 용주사 동종
  20. 안동 하회탈 및 병산탈
  21. 양양 진전사지 삼층석탑
  22.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사리장엄구
  23. 강릉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
  24. 녹유골호(부석제외함)
1.#126 불국사 삼층석탑 사리장엄구
  1. 서울 삼양동 금동관음보살입상
  2. 금동관음보살입상
  3. 금동보살입상(1968)
  4. 구미 죽장리 오층석탑
  5. 고려말 화령부 호적 관련 고문서
  6. 징비록
  7. 청자 동화연화문 표주박모양 주전자
  8. 금동보살삼존상
  9. 신윤복필 풍속도 화첩
  10. 금동 용두보당
  11. 대구 비산동 청동기 일괄-검 및 칼집 부속 / 투겁창 및 꺾창
  12. 전 고령 금관 및 장신구 일괄
  13. 김홍도필 군선도 병풍
  14. 나전 화문 동경
  15. 정문경
  16. 동국정운
  17. 화순 대곡리 청동기 일괄
  18. 영암 월출산 마애여래좌상
  19. 귀면 청동로
  20. 전 논산 청동방울 일괄
  21. 울주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
  22. 십칠사찬고금통요 권16 / 십칠사찬고금통요 권17
  23. 동래선생교정북사상절 권4, 5 / 동래선생교정북사상절 권6
  24. 송조표전총류 권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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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151~20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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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6 백자 청화‘홍치2년’명 송죽문 항아리
  1. 분청사기 인화국화문 태항아리
  2. 분청사기 음각어문 편병
  3. 분청사기 박지연화어문 편병
  4. 김정희필 세한도
  5. 장양수 홍패
  6. 구미 선산읍 금동여래입상
  7. 구미 선산읍 금동보살입상(1976-1)
  8. 구미 선산읍 금동보살입상(1976-2)
  9. 상지은니묘법연화경
  10. 양평 신화리 금동여래입상
  11. 영양 산해리 오층모전석탑
  12. 천마총 금관
  13. 천마총 관모
  14. 천마총 금제 허리띠
  15. 황남대총 북분 금관
  16. 황남대총 북분 금제 허리띠
  17. 경주 98호 남분 유리병 및 잔
  18. 황남대총 남분 금목걸이
  19. 토우장식 장경호
  20. 신라백지묵서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1~10, 44~50
  21.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
  22. 단양 신라 적성비
  23. 경주 단석산 신선사 마애불상군
  24. 금동보살입상(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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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201~25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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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251~30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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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1 초조본 대승아비달마잡집론 권14
  1. 청자 음각'효문'명 연화문 매병
  2. 청자 양각연화당초상감모란문 은테 발
  3. 청자 음각연화문 유개매병
  4. 전 덕산 청동방울 일괄
  5.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1
  6.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29
  7. 백자 청화죽문 각병
  8. 분청사기 상감운룡문 항아리
  9. 분청사기 박지철채모란문 자라병
  10. 백자 유개항아리
  11. 백자 달항아리(1991)
  12. 백자 청화산수화조문 항아리
  13. 포항 냉수리 신라비
  14.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13
  15.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2, 75
  16. 초조본 아비달마식신족론 권12
  17. 초조본 아비담비파사론 권11, 17
  18. 초조본 불설최상근본대락금강불공삼매대교왕경 권6
  19. 청자 모자원숭이모양 연적
  20. 초조본 현양성교론 권12
  21. 초조본 유가사지론 권32
  22. 초조본 유가사지론 권15
  23. 귀함별황자총통(1596년조)
  24. 도기 기마인물형 뿔잔
1.#276 초조본 유가사지론 권53
  1.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36
  2. 태종11년이형원종공신록권부함
  3.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74
  4. 성거산 천흥사명 동종
  5. 백자 병형 주전자
  6. 영주 흑석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및 복장유물
  7. 통감속편
  8. 초조본대반야바라밀다경 권162, 170, 463
  9.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10. 백자 ‘천’ ‘지’ ‘현’ ‘황’명 발
  11. 백제 금동대향로
  12. 부여 능산리사지 석조사리감
  13.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14. 양산 통도사 대웅전 및 금강계단
  15. 용감수경 권3~4
  16. 평창 상원사 중창권선문
  17. 부여 규암리 금동관음보살입상
  18. 백자 청화철채동채초충문 병
  19. 나주 신촌리 금동관
  20. 칠장사 오불회 괘불탱
  21. 안심사 영산회 괘불탱
  22. 갑사 삼신불 괘불탱
  23. 신원사 노사나불 괘불탱
  24. 장곡사 미륵불 괘불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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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정부상징.svg 대한민국 국보 제41호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
淸州 龍頭寺址 鐵幢竿
소재지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 48-19
분류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 불교 / 당간
수량/면적 1기
지정연도 1962년 12월 20일
제작시기 고려 광종 13년(962)
파일:Yongdusa_Dangan_012.png
<colbgcolor=#315288>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

1. 개요2. 형태3. 명칭4. 위치5. 연대6. 용두사 철당기7. 기타8. 외부 링크9. 국보 제41호

[clearfix]

1. 개요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충청북도 청주시에 위치한 철제 당간지주이다. 고려 광종 13년(962)에 만들어졌다. 1962년 국보 제41호로 지정되었으며, 이는 당간지주 가운데 유일하게 국보로 지정된 문화재이다.

2. 형태

각각 지름 46~39cm[1], 높이 65cm 가량의 철통 20개를 쌓아 올려서, 전체적으로 13.1m에 달하는 일종의 탑을 이루고 있다. 본래 철통의 속은 비어있었으나 일제강점기콘크리트를 채워 보수하였다.# 또한 본래 몸체는 철통 30개로 이루어졌으나 10개가 소실되어 현재에는 20개만 남아있다. 일설에는 흥선대원군경복궁 중건하면서 쓴다고 10개를 뜯어 갔다고 전하나 확인된 것은 아니다.

'용두사'(龍頭寺址)라는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본래 이곳에는 용두사라는 절이 있었으나 용두사는 사라진지 오래고 지금은 철당간만이 남았다. 오늘날 당간지주가 남아있는 대부분의 폐사지에서 절의 흔적은 찾을 수 있는데 반해, 이곳은 철당간만이 남아있을 뿐 절의 흔적은 완전히 사라졌다.

이렇게 높은 기둥에 깃발을 세워두면 배 모양을 한 이 도시의 큰 역할을 해 홍수 피해가 덜해질 것이라고 해서 세워두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2] 그래서 청주의 별명이 '배 모양의 성'이라고 '주성'(舟城)이기도 하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인 1911년에 배 모양을 하던 청주읍성이 해체되어[3] 그런 모양새는 좀 덜해졌다.

오래되기도 오래됐고, 청주라는 커다란 배의 돛대라는 상징성도 있다 보니 청주시에서 제작한 상징물 중에서 용두사지 철당간의 모양을 형상화한 것들이 있다. 일례로 서원구 사창동 시계탑은 아래 기단 부분이 용두사지 철당간의 모습을 본뜬 것이다. 2009년 이전에 지었던 시계탑은 모양이 더욱 철당간과 닮았다.

제3단에는 아래와 같이 글이 새겨져있기 때문에 국립청주박물관에도 복제품이 소장되어있다.

3. 명칭

오늘날에는 '당간'이라는 단어 자체가 거의 쓰이지 않기 때문에 '철당간'이 한 단어처럼 인식된다. 구글 검색도 그렇고 나무위키에서도 '철당간'이라고 검색하면 대부분의 경우 용두사지 철당간이 검색된다.[4] 그리고 재료 + 물건의 조어 방식이라 사잇소리가 들어가 [철땅간]이라고 읽는다.

이따금씩 용두사미 철당간이라고 오타를 내는 사람도 있는 모양.

4. 위치

청주시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수도 없이 많이 봤을 정도로 시내 중심지에 있다. 이곳은 성안길 한복판으로, 서점 건물과 롯데 영플라자에 낀 작은 광장을 이루고 있다. 무척 작은 광장이기는 하나 이따금 이곳에서 촛불집회가 열리기도 한다. 2008년 촛불집회는 물론이고 # 2016년을 뜨겁게 달군 박근혜 퇴진 범국민행동 당시에도 청주에서는 이곳에서 집회가 열렸다. #

청주 중앙공원과도 가까운 위치에 있다.

오늘날 서점이 있는 자리엔 청주극장이, 롯데 영플라자 자리에는 현대극장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 기사에 철당간의 옛 모습을 찍은 사진들이 많이 있다. 철당간이야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지만 주변 경관이 크게 변해서 과거의 모습과 비교해보면 신기하다.

동쪽에 상당로와 가까워서 청주시 시내버스 정류장 중 "용두사지철당간"으로 이름이 붙은 정류장(1611)이 있다. 용두사지 철당간은 큰 길을 직접 끼고 있지는 않기에 롯데영플라자 건물 너머 상당로 51번 일대에 정류장이 설치되어있다. 지도로만 보면 정류장과 철당간 사이에 롯데영플라자로 막혀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롯데영플라자(상당로 55)와 그 남쪽 건물 사이에 지나갈 수 있는 길이 있다. 바로 맞은편에는 정류장이 없고 남쪽 구남궁병원사거리 더 남쪽으로 '서운동' 정류장이 있다. 북쪽의 맞은편 '도청' 정류장도 꽤 가까이 있는데, 실제 도보 거리로는 '서운동' 정류장이 근소하게 더 가깝다.

5. 연대

이 유물은 건립 연대를 확실히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아래 철당기 맨 끝(이미지 오른쪽)을 보면 준풍(峻豊)[5] 3년 2월 29일에 건립했다고 되어있어 광종 13년(962년)에 건립했음을 알 수 있다. 가히 1000년도 전의 유물로 현 청주시에서 가장 오래된 물건[6]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듯하다.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재미있게도 용두사지 철당간의 국보 지정 연도는 1962년으로 건립 연도로부터 딱 1000년이 되는 해이다.

6. 용두사 철당기

파일:thumbnailL.168_용두사지철당간_20150611172745420338283703.jpg
龍頭寺鐵幢記
前翰林學生金遠撰兼書 鐫者孫錫
早聆幢竿所製餝佛門之玉樓播盖由來
粧寶殿之神旆其猶也鶴翔碧空龍躍
下霄立之者旁發信心望之者心傾丹
愿 固 知伏魔 鐵 杖挫 賊 霓 旌 / 頃有堂大
等金芮宗者也州里豪族鄕閭冠族偶因染
疾忽約[7]
佛天仰祈則敬造鐵幢俯擔則莊嚴玉刹然而
難停逝水易沒黃泉已間數歲遲延隔時
容易於時從兄堂大等正朝賜丹銀魚袋[8]
金希[9]一等彼爲還願此繼頹繹令鑄
成三十段之鐵筒連立六十尺之幢柱 / 穿雲
捧日貫霧倚空魯氏雲梯難攀龍盖甘
寧錦纜永敞璅繩可謂奉仁心深典亡情切
植金剛之不朽營玉刹之無窮 / 僕者膠柱頑
流剋舟膚物忽蒙勸我聊表短章其詞曰 /
幢竿始立天半 可壓巧成物像莊嚴佛法兄
弟兩 家令脩善業鑄之植之无窮永劫 /


當寺令釋紬大德 檀越兼令金希一正朝金守▨
金釋同釋希▨ 金寬謙大等監司上和尙信學▨▨
前侍郎孫熙 前兵部卿慶柱洪大學院卿韓明
寔柰前司倉慶 奇俊大舍學院郎中孫仁謙鑄大▨▨ /
維峻豊三年太歲壬戌二月二十九日鑄成
용두사(龍頭寺) 철당기(鐵幢記)
전(前) 한림학생(翰林學生) 김원(金遠)이 짓고 아울러 썼으며 새긴 이는 손석(孫錫)이다.
일찍이 듣건대 당간(幢竿)[10]이 만들어진 바는 불문(佛門)을 꾸미는 옥 같은 표지이며 번개(幡盖)[11]의 유래는 법당을 장엄하는 신령스런 깃발이라 하였다. 그 모양은 학이 푸른 창공을 날아 오르고 용이 푸른 하늘을 뛰쳐 오르는 것과 같다. 세운 사람은 크게 신심(信心)을 일으키고 바라보는 사람은 반드시 충정의 정성을 기울일 것이니 진실로 마귀를 항복받는 쇠지팡이요 도적을 물리치는 무지개 깃발(霓旌)임을 알겠다.
근래에 당대등(堂大等)[12] 김예종(金芮宗)이라는 이가 있으니 고을의 큰 가문이요 지방의 손꼽히는 집안이다. 우연히 병에 걸려 문득 부처와 하늘에 약속하기를, 우러러 철당간을 삼가 만들기를 빌고, 엎드려 훌륭한 사찰을 장엄할 것을 맹서하였다. 그러나 세월은 멈추기 어렵고 죽음에 빠지기는 쉬워 그 사이에 몇 년이 늦어지고 때는 쉽게 멀어졌다. 이때에 종형인 당대등 김희일(金希一) 등이 저쪽에서 돌이킨 서원이 되게 하고 이쪽에서 끊어진 인연을 이어 마침내 30단의 철통을 주조하게 하고 이어 60척의 당주(幢柱)를 세웠다.
구름을 뚫고 해를 받들고 안개를 관통하여 공중에 기대어, 노씨[13]의 사다리로도 용개(龍盖)에 오르기 어렵고 감녕(甘寧)[14]의 비단 밧줄로도 옥돌(璅) 줄을 당하기 어렵겠다. 죽은 이를 받드는 마음이 깊고 망한 이를 일으키는 정이 간절하여, 금강(金剛)의 썩지 않음을 심고 옥찰(玉刹)의 무궁함을 영위한다고 할 수 있겠다.
나로 말하면 교주(교주고슬)와 같은 완고한 부류요, 각주(각주구검)와 같은 헛껍데기 무리이거늘, 홀연 나에게 권유하니, 짐짓 짧은 글로 표현할 따름이니, 그 내용은 이러하다.
* 幢竿始立天半可壓 (당간이 처음 서서 하늘 가운데를 압도하니)
* 巧成物像莊嚴佛法 (교묘하게 이루어진 물건의 형상이요, 장엄한 불법이로다)
* 兄弟兩家令脩善業 (형제간 두 집이, 선업을 잘 닦아서)
* 鑄之植之无窮永劫 (주조하고 세우니, 영겁토록 무궁하리라)


이 절(용두사)의 영(令)은 석주(釋紬) 대덕(大德).
단월(檀越) 겸 영(令)은 김희일(金希一) 정조(正朝), 김수▨(金守▨), 김석희(金釋希) 대등(大等)[15], 김관겸(金寬謙).
감사(監司)는 상화상(上和尙) 신학(信學), ▨▨, 전시랑(前侍郎) 손희(孫熙) 대등, 전병부경(前兵部卿) 경주흥(慶柱洪) 대등, 학원경(學院卿) 한명식(韓明寔)[16] 나말(柰末)[17] 전사창(前司倉) 경기준(慶奇俊) 대사(大舍)[18], 학원낭중(學院郎中) 손인겸(孫仁謙).
주대▨▨(鑄大▨▨)
준풍(峻豊)[19] 3년(962, 광종 13) 임술년 2월 29일에 주조하여 완성함.
고려대학교 해외한국학자료센터[20][21] ( / 는 내용상의 구분)
아래에서 세 번째 단에 새김이 있다.

7. 기타

국보 제106호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 국보 제297호 안심사 영산회 괘불탱와 함께 청주시의 3개 뿐인 국보이며 또한 다른 두 국보와 달리 건조물 형태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권15 청주목 고적조에서도 이 철당간을 銅檣(구리 돛대)라고 언급한 기록이 있다. "고을 성안 용두사에 있다. 절은 폐사가 되었지만 돛대는 남아있으며 높이게 10여 길이다"

8. 외부 링크

9. 국보 제41호

절에 행사가 있을 때, 그 입구에는 당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이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를 당간이라 하며, 이를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당간이 서 있는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는 예전에 용두사라는 절이 자리잡고 있던 곳이다. 용두사는 고려 광종 13년(962)에 창건되었으나 고려말의 잦은 전쟁과 난으로 인해 폐허가 되었고, 절이 있던 터는 현재 청주시내의 가장 번화한 거리로 변하였다.

이 당간은 밑받침돌과 이를 버티고 있는 두 기둥이 온전히 남아 예전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두 기둥은 바깥면 중앙에 세로로 도드라지게 선을 새겨 단조로운 표면에 변화를 주었다. 그 사이로 원통 모양의 철통 20개를 아래위가 서로 맞물리도록 쌓아 당간을 이루게 하였고, 돌기둥의 맨 위쪽에는 빗장과 같은 고정장치를 두어 당간을 단단히 잡아매고 있다. 특히 세 번째 철통 표면에는 철당간을 세우게 된 동기와 과정 등이 기록되어 있는데, 원래는 30개의 철통으로 구성되어 있었다고 한다.

당간을 세운 시기는 절의 창건과 때를 같이 하는 고려 광종 13년(962)으로, 연대를 확실하게 알 수 있어 소중한 가치를 지닌다. 또한 당간이 남아 있는 경우가 드문 우리 문화재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이곳과 함께 공주 갑사, 안성 칠장사의 세 곳에서만 철당간을 접할 수 있어 보기 드문 작품이다.

예로부터 청주에는 홍수에 의한 재난으로 백성들의 피해가 많았는데, 어느 점술가가 이르기를 큰 돛대를 세워 놓으면 이 지역이 배의 형상이 되어 재난을 면할 수 있을 것이라 하였다. 결국 이곳에 돛대 구실을 하는 당간을 세워 놓으니 재난을 피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청주를 주성(舟城)이라 이름하였다고 하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1] 위로 갈수록 좁아진다.[2] 한참 서쪽의 복대동의 '대' 역시 읍성의 깃대라는 전설이 전해진다.[3] 그 해체된 결과 만들어진 것이 100m 동쪽의 상당로이다.[4] 간혹 공주 갑사 철당간(보물 제256호)가 나오기도 한다.[5] 고려시대 때 쓰던 독자 연호인데, 준풍은 960~963년으로 딱 4년만 썼다. 불과 2년만 더 뒤(964년)에 건립됐다면 송나라 연호를 써서 건덕(乾德) 2년이라고 했을 것이다.[6] 물건은 아니지만 인근 중앙공원의 은행나무인 압각수(鴨脚樹)의 수령도 이와 비슷하다.#[7] 佛(부처)가 등장하기에 존경을 위하여 '평대'(平擡) 형식의 강제 줄 바꿈이 되었다.[8] 탁본에서 해당 부분이 다소 흐려 잘 보이지 않는다.[9] 아래 출처에서는 介로 되어있으나 맥락상 이후 다시 등장하는 '김희일'을 지칭하는 것이 명백하며 자형상으로도 希에 가까워 수정한다. 웹 입력본 중에도 '希'로 되어있는 예가 있다.#[10] 장대를 높이 세워 깃발을 매다는 것으로 불보살의 위신과 공덕을 나타내기 위해 사찰이나 법당 앞에 세움[11] 깃발로서 불보살의 위덕을 나타내는 장엄(莊嚴) 도구[12] 고려 향리 중의 최고위 직함. 983년에 戶長으로 바뀜[13] 노반(魯班)을 일컬음. 수레에 사다리를 달아 성을 공격하는 도구를 만든 사람.[14] 오나라 사람으로 호사를 즐겨 비단으로 배를 묶음[15] 고려 향리의 유력자 직임으로 당대등에 이은 둘째 직책. 성종 때 副戶長으로 이름이 바뀜[16] 실제로 한씨 중에서는 청주 한씨가 제일 많다.[17] 나마(奈麻), 신라의 17관등의 11관등)[18] 신라 17관등의 12관등[19] 고려 광종연호, 960-963[20] 원문 출전:『韓國金石全文』中世上(1984)[21] 번역문은 정병삼의 번역을 참조하되 부분적으로 수정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