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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보 제138호 | |
전 고령 금관 및 장신구 일괄 傳 高靈 金冠 및 裝身具 一括 |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용산구 |
분류 | 유물 / 생활공예 / 금속공예 / 장신구 |
수량/면적 | 일괄 |
지정 연도 | 1971년 12월 21일 |
제작 시기 | 삼국시대 |
1. 개요
傳 高靈 金冠 및 裝身具 一括. 경상북도 고령군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해지는 6세기 경 대가야 시대의 황금 금관 및 황금 장식품들. 현재 삼성미술관 리움에 소장 중이며, 대한민국 국보 제138호로 지정되어 있다.2. 내용
6세기 무렵 대가야 왕의 금관으로 추정되는 금관과 황금 장식품들이다. 원래는 1961년 경에 불법 도굴꾼들이 몰래 고분을 도굴하다 발견한 것으로, 이후 삼성그룹 창업주인 호암 이병철 회장이 구입하여 삼성미술관 리움에 전시해놓은 것이다.
이렇게 불법적인 루트로 유통된 도굴품이었던 관계로 이 금관의 정확한 출토지는 한동안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고, 그저 고령군 지역에서 도굴된 것으로 추정하여 전(傳) 자를 앞에 붙여서 전 고령 출토 금관이라 불러왔다. 그러다 2020년 1월에 대구 경북대학교 박천수 교수와 대구한의대 박물관 등이 연구한 결과 고령 지산동 고분군 중 하나인 45호분에서 도굴된 것을 최종 확인하였다. SBS 뉴스 : 삼성그룹 창업주가 아꼈던 가야금관, 출처 밝혀졌다
45호분 1호 석실 한가운데에서 도굴꾼이 쓸어가면서도 빠뜨리고 간 아주 작은 두 종류의 금제 장식이 나왔는데 국보로 지정된 이 금관의 부속 금구와 똑같았던 것이다. 금관과 함께 나온 금귀걸이 또한 이번에 새로 발견된 45호분 1호 석실 출토 금귀걸이와 쌍둥이처럼 닮아있어 이 금관 및 장신구들의 출처가 고령 지산동 45호분이라는 것을 더욱 강력히 증명하였다.
이 금관의 발견은 대구광역시 현풍도굴사건에서부터 시작되었다. 1961년 조직된 전문 도굴꾼들이 대구 현풍읍 유가면의 고분들을 1961년부터 1963년까지 2년에 걸쳐 조직적으로 도굴하여 소중한 한국의 고분 유물 400여 점을 빼돌려 해외에 팔아먹고 있었는데 문화재 관리국과 정부에서는 이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다가 경찰이 겨우 발견하여 잡아들인 사건이었다. 이들을 잡은 후 급히 취조한 결과 대구 외에도 고령, 성주 지역의 고분들도 지속적으로 매우 많이 털어먹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는데, 이때 1961년 10월 경 고령에서 순금관을 파냈고 이를 110만원에 이병철 전 삼성그룹 회장에게 팔아치웠다는 자백도 받아내었다. 이 자백이 사실이라면 당시는 아직 경주 신라왕릉을 본격적으로 발굴조사하기 전으로 해방 이후 한반도에서 나온 최초로 금관이어서 놀란 언론은 이 내용을 일제히 대서특필했다.
이후 도굴꾼들은 유죄를 선고받고 콩밥을 먹으러 들어갔으나, 이 장물을 취득한 이병철 회장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에 격분한 사람들에 의해 훗날 2006년 국회 국정감사에서 재차 이 문제가 불거졌지만 역시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병철 회장은 세인의 따가운 눈총을 의식한 듯 금관을 일절 공개하지 않다가 1971년 4월 국립박물관(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호암컬렉션이 특별 전시될 때 처음 금관을 세상에 선보였고 그해 말 국보로 지정되었다.
이 금관은 높이 11.5㎝, 밑지름 20.7㎝로 머리에 두르는 넓은 띠 위에 4개의 풀꽃 장식이 꽂혀 있다. 띠에는 아래위에 점을 찍었으며 원형 금판을 달아 장식했는데, 금관에 붙어있는 것 외에도 다양한 부속 금제 장식품들이 함께 보관 중이지만 불법적인 도굴 과정으로 인해 이 장식품들이 금관의 어느 부분에 어떤 모양으로 붙어 있었는지는 파악할 수 없는 상태다. 한국 금관을 대표하는 신라금관들이 나뭇가지와 사슴뿔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면, 가야금관은 풀잎이나 꽃잎을 주 모티브로 잡고 있어서 가야 문화만의 독창성을 보여주고 있다.
현재 전 세계에서 출토된 고대 금관은 총 14개로, 그 중 10개(혹 11개)가 한국에서 출토되어 대한민국은 세계 최고·최대의 금관 보유국으로 명성이 높다. 동아일보 : 가야 포함한 삼국시대는 세계 유일의 금관 공동체 이 10개의 한국 금관 중 신라의 것이 6개(아직 학계 검증이 안 된 호림 금관을 추가할 시 7개), 가야의 것이 3개, 고구려의 것이 1개로, 가야는 신라 다음으로 우수한 고대 황금 문명을 이룩했다는 사실을 이 금관을 통해 알 수 있다. 특히 오구라 컬렉션의 일환으로 일본에 불법 유출된 상태인 창녕 금관과 함께 가야의 세련된 공예술을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1971년 12월 21일, 대한민국 국보로 지정되었다.
3. 외부 링크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전 고령 금관 및 장신구 일괄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가야금관
- 두산백과 : 전 고령 금관 및 장신구 일괄
- 향토문화전자대전 : 전 고령 금관 및 장신구 일괄
- 영어 위키백과 : Crown of Gaya
- 한국어 위키백과 : 전 고령 금관 및 장신구 일괄
4. 국보 제138호
경상북도 고령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해지는 가야의 금관과 부속 금제품이다. 금관은 높이 11.5㎝, 밑지름 20.7㎝로 머리에 두르는 넓은 띠 위에 4개의 풀꽃 모양 장식이 꽂혀 있는 모습이다.
넓은 띠에는 아래위에 점을 찍었으며, 원형 금판을 달아 장식하였다. 드문드문 굽은 옥이 달려 있으나 출토된 뒤에 단 것이라고 한다. 풀꽃 모양 장식은 대칭되는 네 곳에 금실로 고정시켰는데 드문드문 원형 금판을 달았다. 부속 금제품은 원형, 은행형, 꽃형, 곡옥 외에도 금환(金環), 드리개(금제수식)들이 섞여 있어서, 부속품들이 금관의 어느 부분에 어떤 모양으로 붙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금관의 풀꽃 모양 장식은 나주 독무덤(옹관묘) 출토의 백제 금동관과 같은 형식이지만, 경주에서 출토되는 금관과는 다른 형식이라 흥미롭다. 또한 이 금관에서 주목되는 부분은 금관 장식인데, 끝을 펜촉처럼 다듬은 4개의 풀꽃 모양 장식을 세우고, 그 양 옆에 뿔처럼 튀어나오게 만든 돌기를 달아 굽은 옥을 걸 수 있게 하였다는 점이 특이하다.
넓은 띠에는 아래위에 점을 찍었으며, 원형 금판을 달아 장식하였다. 드문드문 굽은 옥이 달려 있으나 출토된 뒤에 단 것이라고 한다. 풀꽃 모양 장식은 대칭되는 네 곳에 금실로 고정시켰는데 드문드문 원형 금판을 달았다. 부속 금제품은 원형, 은행형, 꽃형, 곡옥 외에도 금환(金環), 드리개(금제수식)들이 섞여 있어서, 부속품들이 금관의 어느 부분에 어떤 모양으로 붙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금관의 풀꽃 모양 장식은 나주 독무덤(옹관묘) 출토의 백제 금동관과 같은 형식이지만, 경주에서 출토되는 금관과는 다른 형식이라 흥미롭다. 또한 이 금관에서 주목되는 부분은 금관 장식인데, 끝을 펜촉처럼 다듬은 4개의 풀꽃 모양 장식을 세우고, 그 양 옆에 뿔처럼 튀어나오게 만든 돌기를 달아 굽은 옥을 걸 수 있게 하였다는 점이 특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