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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토 유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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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장소 | 정지산 유적 |
대한민국 국보 제157호 | |
<colbgcolor=#315288> 무령왕비 금귀걸이 武寧王妃 金製耳飾 | |
소재지 | 충청남도 공주시 관광단지길 34, 국립공주박물관 (웅진동) |
분류 | 유물 / 생활공예 / 금속공예 / 장신구 |
수량/면적 | 2쌍 |
지정연도 | 1974년 7월 9일 |
제작시기 | 백제시대 |
1. 개요
武寧王妃 金製耳飾.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송산리 고분군에 위치한 무령왕릉에서 1971년 여러 유물들과 함께 출토된 무령왕비의 순금 귀걸이 2쌍.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1점, 국립공주박물관에 1점씩 각각 소장 중이며, 2쌍 모두 대한민국 국보 제157호로 지정되어 있다.2. 내용
두 줄 수식 달린 금귀걸이. 길이 11.8㎝.
한 줄 수식 달린 금귀걸이. 길이 8.8㎝.
1971년 백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금귀걸이 2쌍으로, 유물의 제작 연대는 6세기경이다.
발굴 당시 무령왕릉에서는 모두 5쌍의 금귀걸이가 발견되었는데, 그 중 1쌍은 국보 제156호로 지정된 무령왕 금귀걸이이고, 나머지 4쌍은 왕비의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 중 2쌍은 원판형의 장식만을 매달은 단순한 형태인 반면, 본 귀걸이 2쌍은 장식성이 매우 뛰어나 국보로 지정될 수 있었다.
형태는 큰 것과 작은 것이 각각 다른데, 길쭉한 귀걸이는 영락을 붙인 사슬모양 연결 금구에 탄환 모양의 끝장식을 매달았고 작은 귀걸이는 심엽형(心葉形) 영락을 달고 그 끝에 금판을 달아 장식하였다. 이렇게 귀에 걸리는 중심 고리처럼 금판을 둥글게 말아 접합하는 형태로 속이 비어 있게 제작하는 방식은 경주 부부총 금귀걸이의 것과 유사하고, 귀걸이에 화려한 황금 달개를 달아 장식하는 것은 금관총 금귀걸이, 황남대총 금귀걸이, 천마총 금귀걸이, 금령총 금제 가는고리 귀걸이, 양산 금조총 금귀걸이, 양산 부부총 금귀걸이, 경주 노서동 금귀걸이, 경주 노서동 138호분 금귀걸이, 경주 황오동 금귀걸이, 경주 계림로 금귀걸이, 호우총 금귀걸이, 금귀걸이, 경주 월성로 금귀걸이, 경주 황남동 1호분 금귀걸이, 경주 황남동 82호분 금귀걸이, 경주 황남동 151호분 금귀걸이, 서봉총 금귀걸이, 은령총 금귀걸이, 대구 내당동 금귀걸이, 대구 비산동 금귀걸이, 대구 달성 55호분 금귀걸이,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신라 금귀걸이, 도쿄국립박물관 소장 신라 금귀걸이, 대영박물관 신라 금귀걸이, 경산 조영동 금귀걸이, 경산 임당동 1호분 금귀걸이, 창녕 교동 12호분 금귀걸이, 창녕 계성Ⅱ지구 1호분 금귀걸이, 의성 대리리 45호분 금귀걸이, 포항 대련리 금귀걸이, 합천 옥전 28호분 출토 금귀걸이, 합천 옥전 M4호분 출토 금귀걸이, 합천 옥전 M6호분 출토 금귀걸이, 호림박물관 소장 신라 금귀걸이, 이왕가박물관 소장 신라 금귀걸이 등과 비슷하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 세공기술의 우아함과 작품의 예술성, 화려함은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이 금귀걸이가 더 높다고 평가받는다.
백제 귀걸이는 신라, 가야에 비해 출토 사례가 열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극히 적어 그 특징을 파악하기가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연대가 확실한 이 무령왕릉 금귀걸이 2점은 6세기 경 백제뿐 아니라 삼국시대의 장신구를 파악할 수 있는 기준점을 제공해주고, 신라·가야·왜와의 교류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기준점을 마련해주어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의가 있다.
이러한 점을 인정받아 무령왕비 금귀걸이는 1974년 7월 9일 대한민국 국보로 지정되었다.
3. 외부 링크
4. 국보 제157호
공주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백제 때 귀고리 2쌍으로 길이는 11.8㎝, 8.8㎝이다. 왕비의 귀고리로, 굵은 고리를 중심으로 작은 장식들을 연결하여 만들었다.
한 쌍은 복잡한 형식으로 길고 짧은 2줄의 장식이 달려 있고, 다른 한 쌍은 1줄로만 되어있다. 앞의 귀고리 중 긴 가닥은 금 철사를 꼬아서 만든 사슬에 둥근 장식을 많이 연결하였으며, 맨 밑에는 작은 고리를 연결하여 8개의 둥근 장식을 달고 그 아래 탄환 모양의 장식을 달았다.
짧은 줄의 수식은 다른 한 쌍의 것과 거의 같은 수법이나 탄환 장식은 달지 않고, 잎사귀 모양의 장식과 담록색의 둥근 옥을 달았다.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공주박물관에 각1쌍씩 보관되어 있다.
한 쌍은 복잡한 형식으로 길고 짧은 2줄의 장식이 달려 있고, 다른 한 쌍은 1줄로만 되어있다. 앞의 귀고리 중 긴 가닥은 금 철사를 꼬아서 만든 사슬에 둥근 장식을 많이 연결하였으며, 맨 밑에는 작은 고리를 연결하여 8개의 둥근 장식을 달고 그 아래 탄환 모양의 장식을 달았다.
짧은 줄의 수식은 다른 한 쌍의 것과 거의 같은 수법이나 탄환 장식은 달지 않고, 잎사귀 모양의 장식과 담록색의 둥근 옥을 달았다.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공주박물관에 각1쌍씩 보관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