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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보 제116호 | |
청자 상감모란문 표주박모양 주전자 靑磁 象嵌牡丹文 瓢形 注子 |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 (용산동6가, 국립중앙박물관) |
분류 | 유물 / 생활공예 / 토도자공예 / 청자 |
수량/면적 | 1개 |
지정연도 | 1962년 12월 20일 |
제작시기 | 고려 시대(12세기) |
<colbgcolor=#315288> 청자 상감모란문 표주박모양 주전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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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려 시대인 12세기 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고려청자 주전자이다.청자 상감모란문 표주박모양 주전자라는 이름을 풀이해 보면, 모란꽃 무늬를 상감 기법으로 표면에 새겨 넣었으며 형태는 호리병처럼 생긴 표주박 모양인 청자로 된 주전자라는 뜻이다. 상감 기법이란 흙으로 도자기를 빗어낸 뒤에 칼로 흙표면에 문양을 새기고 이 홈을 백토(하얀 흙)나 흑토(검은 흙)와 같은 색이 있는 흙으로 채우고 유약을 발라 도자기를 구워서 완성시키는 방식의 세공 기술이다. 상감 기법은 고려에서 독자적으로 개발한 도자 장식 기법으로, 고려 후기인 12~13세기에 크게 발달하였다.
청자 상감모란문 표주박모양 주전자의 출토지나 입수 경위 등에 관해 딱히 알려진 정보는 없다. 따라서 본 주전자 역시 현전하는 대다수의 고려청자들과 마찬가지로 일제강점기에 도굴로 유출된 유물로 보인다. 하지만 보존상태는 상당히 좋다.
청자 상감모란문 표주박모양 주전자는 1962년에 국보 제116호로 지정되었으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1]
2. 내용
2023년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전시 모습 |
국립중앙박물관 청자 상감모란문 표주박모양 주전자 설명판[4] |
청자 상감모란문 표주박모양 주전자는 주전자 머리에 달린 작은 병입(주입구)으로 물을 넣어서 몸통에서 위로 길게 뽑아 올린 주구(주둥이)로 내용물을 따르는 방식이다. 병입은 지름이 2cm로 아주 작은데, 여기에 끼워서 구멍을 막는 뚜껑도 함께 전해진다. 이 자그마한 뚜껑에도 번개 무늬(뇌문, 雷文)를 촘촘히 새겨놨다.[5] 위로 쭉 빼 올린 주둥이는 매끈하고 날렵한 모양인데, 주전자의 주둥이를 이렇게 만들면 물을 따르다가 멈추더라도 물방울이 튀지 않고 물줄기가 깔끔하게 똑 끊어진다고 한다. 또한 본 주전자에는 윗부분과 아랫부분에 걸치도록 붙여놓은 물음표 모양의 매끈한 손잡이가 달려 있다. 손잡이 윗 부분에는 작은 고리도 만들어 놨는데, 이는 끈 같은 것을 달아놓기 위한 용도로 보인다.
본 주전자의 주둥이와 손잡이가 몸통과 만나는 부분에는 퇴화기법[6]으로 만든 수많은 하얀 점을 찍어서 장식해놨다.
청자 상감모란문 표주박모양 주전자와 관련한 정보가 딱히 전해지는 것이 없어서 언제 어디서 만들었을지 명확하지는 않다. 하지만 이와 같은 표주박 형태의 청자 주전자가 주로 12~13세기에 만들어졌다는 점과 원숙하고 세련된 제작기법으로 보아, 아마도 전라남도 부안군 유천리에 있는 고려청자 도요지[7]에서 고려청자 제작이 전성기를 이루었던 12세기 경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한다.[8]
청자 상감모란문 표주박모양 주전자는 그 자체적인 우아한 형태가 잘 남아 있어 미적인 가치가 높을 뿐만 아니라 뚜껑까지 함께 전해져서 보존 상태가 상당히 좋고, 고려시대의 세련되고 뛰어난 청자 제작 수준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공예품으로서의 가치 등을 높게 인정 받아,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116호로 지정되었다.
3. 국보 제116호
12세기 중엽의 고려시대 청자 주전자로 고려자기 중에서 종종 확인되는 표주박 모양을 하고 있다. 물을 따르는 부리와 손잡이를 갖추고 있으며, 크기는 높이 34.4㎝,아가리지름 2㎝, 배지름 16㎝, 밑지름 9.7㎝이다.
세련된 유선형의 모양에 완벽한 비례의 아름다움까지 곁들여 조화시킨 이 작품은 목의 윗부분에 흑백상감으로 구름과 학무늬를 그려 넣었다. 잘록한 목은 골이 지게 패여있어 주름이 잡혀 있는 듯한 형태를 이루고 있다. 병의 아래 부분 몸통에는 활짝 핀 모란과 피지 않은 봉오리, 잎들이 꽉 짜여진 채 전체를 장식하고 있다.
그릇 형태나 유약색으로 볼 때 선이 매우 우아하면서도 안정감을 주며 은근한 빛을 머금고 있어 고려인의 조형성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세련된 유선형의 모양에 완벽한 비례의 아름다움까지 곁들여 조화시킨 이 작품은 목의 윗부분에 흑백상감으로 구름과 학무늬를 그려 넣었다. 잘록한 목은 골이 지게 패여있어 주름이 잡혀 있는 듯한 형태를 이루고 있다. 병의 아래 부분 몸통에는 활짝 핀 모란과 피지 않은 봉오리, 잎들이 꽉 짜여진 채 전체를 장식하고 있다.
그릇 형태나 유약색으로 볼 때 선이 매우 우아하면서도 안정감을 주며 은근한 빛을 머금고 있어 고려인의 조형성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4. 해프닝
앞서 개요 문단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본 유물은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되는 과정에서 황당한 사유로 보물로 지정되었다가 해제되는 촌극이 있었다. 본 주전자가 1963년 1월 21일에 보물 제341호 청자상감모란문표형병(靑磁象嵌牡丹文瓢形甁)으로 지정되었다가 지정 당일자로 보물 지정이 해제된 것이다. 지정해제 사유는 다름아닌 중복 지정이다.당시 정부는 문화재 관리를 위해 문화재 지정 등급과 지정 번호를 재정비하고 있었고, 이에 따라 1962년 12월 20일에 국보 제1호 서울 숭례문부터 본 유물인 국보 제116호 청자 상감모란문 표주박모양 주전자까지 총 116개의 국보를 지정했다. 그리고 한 달 뒤인 1963년 1월 21일에는 보물 제1호 서울 흥인지문부터 보물 제386호 창경궁 옥천교까지 총 386개의 보물을 지정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본 유물이 이미 1962년 12월 20일에 국보 제116호로 지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행정 착오로 인해 어처구니 없게도 1달 뒤에 보물로 중복 지정된 것이다. 물론 60년대 당시로선 행정 업무가 전산화 되지 않았기에 사람이 지정 작업과 그 일 처리를 직접 수기로 작성해야 했을 터이고 문화재 목록은 수백 개가 넘는데다 이름들도 길고 비슷비슷해서, 사람이 한 일인 이상 이러한 착오는 충분히 발생할 수 있었던 일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같은 유물을 국보와 보물로 중복지정한 것은 황당한 실수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행정 처리 과정에서 발생한 착오로 인해, 청자 상감모란문 표주박모양 주전자는 1963년 1월 21일 보물로 지정되자마자 해제됐으며 보물 제341호는 영구결번으로 남게 됐다.
5. 기타
20원 보통우표[9] | 20원 보통우표[10] | 170원 기념우표[11] |
청자 상감모란문 표주박모양 주전자는 1969년 6월 1일, 1977년 7월 25일에 발행된 20원권 보통우표[12]와 2000년 9월 1일 발행된 170원권 밀레니엄시리즈(일곱번째묶음) 기념우표의 도안으로 쓰이기도 하였다.[13]
6. 외부 링크
- 한국어 위키백과: 청자 상감모란문 표주박모양 주전자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청자 상감모란문 표주박모양 주전자
- 한국 미의 재발견 - 도자공예: 청자 상감 모란당초문 표주박모양 주전자
- 두산백과: 청자 상감모란문 표주박모양 주전자
[1] 본 유물은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되는 과정에서 작지만 황당한 촌극을 발생시키기도 했다. 1963년 1월 21일에 보물 제341호로 지정되었다가 지정 당일 바로 보물 지정이 해제된 것이다. 자세한 사정은 아래의 기타 문단 참조.[2] 가장 지름이 큰 부분의 길이로 보인다.[3] 출처: 두산백과 - 청자 상감모란문 표주박모양 주전자[4] 국보 지정 명칭과는 다르게 '청자 상감 모란 넝쿨무늬 조롱박모양 주자'이란 이름으로 되어 있다.[5]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청자 상감모란문 표주박모양 주전자[6] 퇴화기법이란 검은 흙(흑토)과 흰 흙(백토) 등을 물감처럼 물에 풀어 갠 뒤 이걸로 무늬나 그림 등의 문양을 그리고 그 위에 유약을 바르는 기법을 뜻한다.[7] 陶窯址=요지 또는 가마터[8] 출처: 한국어 위키백과 - 청자 상감모란문 표주박모양 주전자[9] 1969년 발행[10] 1977년 발행[11] 2000년 발행[12] 77년 발행된 20원권의 경우, 기존의 보통우표에 수해구제의연금 10원이라는 문구를 추가로 인쇄(첨쇄)한 것이다. 출처: 네이버카페 우표를 사랑하는 사람들 - 우표이야기29 이것은 주전자인가? 물병인가?[13] 2000년 발행된 170원권의 경우, 도안으로 청자 상감모란문 표주박모양 주전자뿐만 아니라 청자 상감모란국화문 참외모양 병과 강진 도요지의 전경이 같이 들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