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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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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특징3. 여담

1. 개요

四天王

불교에서 수미산제석천을 호위하기 위해 수미산의 중턱 사방에 위치한 사천왕천(四天王天)의 동서남북 네 지역을 관장하는 4명의 호법신을 가리킨다. 동서남북 각 방위를 지키고 있다.

2. 특징

四天王
사천왕
동방
지국천왕
서방
광목천왕
남방
증장천왕
북방
다문천왕
파일:보림사 사천왕상.jpg
(좌상): 서방 광목천왕 (우상): 북방 다문천왕
  (좌하): 남방 증장천왕 (우하): 동방 지국천왕 [1]

불교 우주론에서는 세계의 중심에 수미산이라는 어마어마한 산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사천왕은 수미산 중턱에서 수미산 주변에 있다는 대륙 네 곳을 지키는 천부의 왕들이다. 사대천왕(四大天王), 호세사천왕(護世四天王)이라고도 부른다.

조선시대 후기에 관습화된 사천왕의 모습은 다음과 같다.

사천왕상의 지물(持物)은 나라, 시대, 지역별로 상이하므로 일괄적으로 단정지어 말할 수 없다. 상기한 사천왕의 지물은 조선 후기에 들어서 일반화되었다. 예를 들어 통일신라 유적인 석굴암을 봐도[2] 사천왕 중 다문천왕만 탑을 들고 나머지 셋 다 을 쥐었다.석굴암 사천왕상 다만 넷 중 유독 다문천왕은 이미 삼국시대부터 보탑을 든 도상으로 일관적으로 묘사된다. 감은사의 쌍탑에서 나온 사리기도 이러한 도상을 따랐다. 시대에 관계없이 다문천왕만큼은 거의 일관되게 보탑을 들었기 때문에, 사천왕상 유물이 있다면 먼저 다문천왕부터 파악하고 다른 천왕들을 구별한다. 그런데 천왕들이 동서남북을 맞춰 배치되지 않았다면, 다문천왕만 파악하고 다른 천왕들은 구분하지 못하기도 한다.[3]

그들을 보고 싶으면 조금 큰 의 입구마다 거의 반드시 있는 천왕문(사천왕문)으로 가면 된다. 절에 따라 해탈문이나 금강문은 있는 데도 많고 없는 데도 많지만, 천왕문은 좀 이름나고 오래된 절이면 거의 반드시 있다. 천왕문에 들어가면 사천왕 조각상이 왼쪽에 2좌(서방광목천왕, 북방다문천왕), 오른쪽에 2좌(동방지국천왕, 남방증장천왕)로 구성되어 있는 구조다. 사천왕은 동서남북 네 하늘을 지키며 불법을 수호하는 역할이므로 보통 우락부락하고 강인한 근육질로 묘사하며 자세도 위압적이다. 크기도 3~6미터로 사람을 압도하도록 거대하게 만든다. 마구니, 잡귀를 발로 밟고 있는 경우도 있다.

보통 국내 절에서는 천왕문 안에 사천왕상을 모시고 입구 좌우로 인왕의 모습을 그리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그들이 불법에 귀의하는 사람을 수호하는 명을 석가모니에게 받았기 때문이라고. 당연히 수호자답게 몹시 우락부락하고 험상궂게 생겨먹었다. 불교의 이미지와 판이한 편. 그리고 지물로 파악하기 힘들더라도 얼굴을 천왕들이 맡은 방위에 따라 오방색에 맞추어 칠해 놓아서 얼굴색으로 정체를 파악할 수 있는 경우도 많다.

단, 사찰 입구의 천왕문에 사천왕이 좌우로 2좌씩 있음은 중세 이후의 양식이고, 그 이전의 고대 사찰들은 불상이 안치된 사찰의 중심건물인 금당 안에 사천왕상을 배치했다. 이는 불상을 봉안한 좌대를 상징적으로나마 수미산이라고 간주했기 때문이었다. 불상이 있는 곳이 수미산이라면, 사천왕상을 불상 주변으로 배치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발상이다. 지금까지도 우리나라 불교에서는 불상을 모신 좌대를 흔히 '수미단(須彌壇)'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지만 지금까지 남은 고대 사찰 건축물이 많지 않아서 보기 힘들고[4] 대신 일본에는 유명 관광지인 도다이지를 비롯해서 사천왕이 부처 바로 옆에서 지키고 있는 곳이 꽤 많다.

의 입구 등에 세워진 우락부락한 두 명의 상은 보통 인왕(금강역사)이지만 사천왕 중 다문천과 광목천만 세워 이천왕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인왕만을 세우는 경우는 주로 일본에서 많이 보인다. 인왕은 상의탈의를 하고 상투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에 외견상으로 쉽게 구분된다.

우리나라 절의 사천왕은 대체로 알록달록하고 동글동글해서, 사찰에 따라 간혹 귀여운 느낌까지 들 정도인데 이러한 모습은 조선시대에 정립된 양식이다. 그 이전 삼국시대의 사천왕 유물을 보면 대단히 날렵하고 험상궂게 생겼다. 경주 사천왕사의 사천왕 녹유신장상, 석굴암 사천왕상을 보면 알 수 있다.

사천왕은 불교가 전래된 뒤에는 군신으로 숭배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사천왕은 호국의 상징으로 숭상받아, 나당전쟁 때인 670년671년 당에서 귀국한 명랑(明朗)의 요청으로 사천왕에게 호국을 기원하는 절을 지었다. 그리고 당의 수군이 신라에 다다르기도 전에 풍랑에 두 번이나 휩쓸려 침몰하는 바람에 신라는 무사할 수 있었다고 한다.[5]

오늘날 남아있는 사천왕상 중에는 한쪽 발을 들고 있는 경우가 있는데, 빈 곳은 시간이 지나며 분실, 훼손된 생령좌(生靈座)가 자리했던 곳이다. 생령좌는 원래 사천왕에게 억눌린 귀신 조각의 자리인데, 시대에 따라 탐관오리나 색녀 모습의 조각상을 놓는 등 시대상을 재미있게 반영한다.

3. 여담


[1] 보림사의 사천왕상. 보물 제1254호. 현존하는 조선시대 사천왕상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이전에 제작된 유일한 상이다. 손에 쥔 물건이 일반적인 설명과 다른 까닭은 불경마다 다르게 말하기 때문. 여담이지만 사천왕의 표정이 제각기 다르다. 동방 지국천왕은 슬퍼하고, 남방 증장천왕은 화를 내며, 서방 광목천왕은 기뻐하고, 북방 다문천왕은 즐거워하고 있다.[2] 석굴암 본존불 앞의 석굴이 가장 좁아지는 통로 옆 벽면에 사천왕 부조가 있다. 일반 사찰의 천왕문처럼 석굴암도 똑같이 입구를 지키는 역할로 배치해 둔 것.[3] 2012년 서울 도봉서원 터에서 발굴된 옛 영국사 유물도 그러했다. 발굴된 금강령에 오대존명왕과 사천왕을 조각했는데, 오대존명왕의 방위와 사천왕의 방위를 서로 맞추지 않았고 다문천왕을 제외한 다른 천왕들도 지물들이 서로 비슷비슷했다. 그래서 학자들도 다문천왕만 구분하고 다른 천왕은 '모른다.' 할 수밖에 없었다.[4] 일반적인 사찰 형태는 아니지만 신라 때 만든 석굴암이 이런 케이스로 사천왕이 본존불 바로 앞을 지키고 있다.[5] 일본의 경우 일본서기에 따르면 왜국에 처음 불교가 전래되고 불교를 숭상할 것이냐 말 것이냐를 두고 왜국 내에서 내전이 벌어졌을 때, 쇼토쿠 태자(불교 지지)가 호세사천왕상을 만들어서 머리에 이고 전승을 기원해 승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때 사천왕에게 처음 발원했던 대로 사천왕의 이름을 딴 절을 지은 것이 현재 오사카에 남아 있는 시텐노지(四天王寺)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