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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3-24 09:17:47

논장

1. 설명2. 같이 보기

1. 설명

파일:17-Nalanda-Pandits_HHDL-Office-1-e1338579760327.jpg 파일:원효대사.jpg
티베트 불교에서 숭경하는 석가모니 부처와 날란다 17논사(論師)[1] 신라의 고승 원효[2]
대저 부처가 설한 것이 경(經)이요, 경에서 나온 것이 논(論)이니, 경은 논을 통해서 그 뜻이 드러납니다. 그런데 논은 소(疏)를 기다려서 뚫리고, 소는 의(義)를 모아 밝혀지며, 의는 사(師)를 통해서 서술됩니다. 이와 같이 서로 이어서 주역(紬繹)하는 사람들이 대대로 나왔습니다.
『대각국사문집(大覺國師文集)』[3] 권제15, 제종(諸宗)의 교장(敎藏)을 간행하며 선종(宣宗)을 대신해서 지은 글

論藏, Abhidhamma Piṭaka

불경의 삼장 가운데 가장 마지막으로 성립된 것으로, 석가모니 부처의 설법을 실은 경장과 석가모니 부처 이후 승속의 계율을 모은 율장에 이어 이들 경장과 율장에 대한 설명과 해석, 취지를 풀이한 것이 논장이다. 불경 가운데 '-론(論)'[4], '-소(疏)'[5]로 끝나는 제목이면 대부분은 논장이라고 보면 된다. 그리고 이들 논장을 주로 다루고, 저술하는 승려를 논사(論師)라고 한다.

인도 마우리아 왕조의 3대 군주로 인도를 최초로 통일한 아소카 대왕의 주도로 기원전 251년에 마우리아의 수도 파탈리푸트나 화씨성(華氏城)에서 당시의 고승인 목갈리풋타팃사의 주도로 1천여 명의 승려가 모여서 9개월에 걸쳐 이루어졌다는 제3차 결집[6]에서 처음으로 경장과 율장뿐 아니라 논장까지 결집에 포함되어 삼장이 갖추어지게 되었다.

불교의 가르침과 관련 계율에 대한 설명이 필요한 만큼 그 대상은 승가나 재가제자뿐 아니라 불교를 믿지 않는 일반 대중 전체, 심지어 불교를 적극적으로 배격하는 타종교의 비신자[7]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지기 마련이고, 따라서 대중에 다가가기 쉬운 말과 이해가 빠른 설명, 그리고 어떤 교리를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납득시킬 수 있는 논리력을 필요로 한다.

'불교의 입장에서 불교의 복잡하고 때로 모순되어 보이는 교리를 풀이해서 설명한다'라는 관점에서는 전근대 승려들의 논소에 불교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불교학자들의 논문이나 불교에 대한 개설서, 불교 교리에 토대하는 자기계발서[8]도 엄밀한 의미에서는 '논장'에 포함시킬 수 있다. 마찬가지로 현대에 언론이나 예능에 나와 불교의 가르침에 대해 설파하고 불교에 대한 교리 해설서를 내는 승려들도 '논사'의 범주에 들 것이다.

논장 가운데 특히 훌륭한 것은 석가모니 부처의 친설(경장)과도 동등한 자격이 주어지기도 한다.[9] 나가르주나의 대지도론은 다른 저서인 중론, 그리고 나가르주나의 제자인 제바(아리아데바)의 백론과 함께 삼론(三論)이라 불리고, 삼론종이라는 불교 종파의 소의경전이 되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신라의 승려 원효가 가장 많은 저술을 남겼고, 중국과 일본에까지 그 이름을 날렸다.

티베트 불교는 경전을 학습함에 있어 논서를 중시하는 논장(論藏) 위주 불교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동아시아 불교가 특정 경전을 소의경전으로 삼는 종파불교인데 비해, 티베트 불교는 여러 경전의 내용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주석을 단 논장을 주로 학습한다. 경전이 형성된 지 이미 오랜 시간이 흘렀고 대부분 함축적으로 서술되어 본래 뜻을 알기 어렵기 때문에 보살 선지식들이 경장을 해설한 논장에 의지하여야 경장의 뜻을 바르게 알 수 있다는 것이 논장을 주로 학습하는 이유이다. 따라서 경전의 해석에 있어 인도와 티베트 논사들의 검증된 논서들을 주된 전거로 삼으며, 검증되지 않은 사적인 가르침에만 의존하는 것을 매우 경계한다. 또한 '쌉쩨(sa bcad, 科目)'라고 하는 목차를 세세하게 달아 경론의 내용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또한 티베트 불교에서는 처음 경전을 펼칠 때에 읊는 이른바 '개경게'에서 "모든 불보살님께 예경합니다"라고 하면 경장, "일체지자[10]께 예경합니다."라고 하면 율장이고, "문수사리(문수보살)께 예경하나이다."라고 하면 논장이다. 문수사리 즉 문수보살이 석가모니 부처의 제자나 부처 주위의 많은 보살들 가운데서도 '지혜'가 제일이었다고 평가받는 것을 볼 때에, 논장에서 중시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짐작할 수 있다.

2. 같이 보기



[1] 1. 용수(150~250 / 龍樹 / དཔའ་མགོན་ཀླུ་སྒུབ་ / Nagarjuna)
2. 성천(170~270 / 聖天, 提婆, 聖提婆 / འཕགས་པ་ལྷ་ / Aryadeva)
3. 덕광(394-468 / 德光, 功徳賢 / ཡོན་ཏན་འོད་ / Gunaprabha)
4. 진나(480~540 / 陣那, 域龍, 大域龍 / ཕྱོགས་ཀྱི་གླང་པོ་ / Dinnaga)
5. 청변(490, 500~570 / 淸弁 / ལེགས་ལྡན་འབྱེད་ / Bhavaviveka)
6. 불호(470-540 / 佛護, / སངས་རྒྱས་སྐྱངས་ / Buddhapalita)
7. 월칭(600~650 / 月稱 / ཟླ་བ་གྲགས་ / Chandrakirti)
8. 적천(685~763 / 寂天 / རྒྱལ་སྲས་ཞི་བ་ལྷ་ / Shantideva)
9. 무착(395~470 / 無着 / ཐོགས་མེད་ / Asaga)
10. 세친(400-480 / 世親 / དབྱིག་གཉེན་ / Vasubandhu)
11. 석가광(8세기 초 / 釋迦光 / ཤཱ་ཀྱ་འོད་ / Shakyaprabha)
12. 법칭(6-7세기 / 法稱 / ཆོས་གྲགས་ / Dharmakirti)
13. 사자현(8세기 중엽 / 師子賢 / རྒྱལ་སྲས་སེང་གེ་བཟང་པོ་ / Haribhadra)
14. 성해탈군(6세기경? / འཕགས་པ་རྣམ་གྲེལ་སྡེ་ / Araya Vimuktisena)
15. 적호(725~790, 728~788/ 寂護 / ཁན་ཆེན་ཞི་བ་འཚོ་ / Shantarakshita)
16. 연화계(740~795 / 蓮華戒 / པད་མའི་ངང་ཚུལ་ / Kamalashila)
17. 아티샤(982-1054 / 燃燈吉祥智 / ཇོ་བོ་རྗེ་ / Atisha Dipankara Shrijnana)
[2] 한국에 전해지는 불경 논서 관련해서는 양으로나 질로나 원효의 저술이 가장 독보적이다. 특히 십문화쟁론은 인도에서 진나(디그나가)의 문도가 와서 찬탄하면서 수입해 갔다고 하는데, 이 진나가 날란다 17논사의 한 명으로 유식(唯識)의 입장에서 인명학(因明学)이라는 새로운 불교논리학을 확립한 인물이다.[3] 고려의 고승 대각국사 의천의 문집이다.[4] 대지도론, 청정도론, 현관장엄론, 금강삼매경론[5] 유명한 원효의 대승기신론소가 여기에 속한다.[6] 결집이 이루어진 장소의 이름을 따서 화씨성 결집, 또는 천인 결집(집법)이라고도 부른다.[7] 불교에서 으레 '외도'라 불리는 존재들이 여기에 해당한다.[8] 요컨대 코이케 류노스케초역 부처의 말 같은 것[9] 이는 기독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 기간 동안 예수 본인이 직접 한 설교만이 아니라 예수의 12사도, 나아가 사도 파울로스성 아우구스티노, 요한 크리소스토모 등의 교부들의 저술 역시 성경과 같은 반열에 올려 우대하는 것과 같다.[10]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는 분, 즉 석가모니 부처에 대한 경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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