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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6-01-05 01:13:45

원측


1. 개요2. 사상

1. 개요

원측[1](圓測, 생몰 613년~696년)은 신라의 승려로 중국으로 건너가 유식학을 연구하였으며, 그의 학풍을 따르는 서명학파(西明學派)[2]가 성립했다. 신라로 귀국하려 하였으나 측천무후의 반대[3]로 신라로 귀국하지 못하고 중국에서 입적하였다. 원측의 사상은 도증(道證)이 신라로 귀국하며 신라로 전해져 태현(太賢)을 거쳐 신라 법상종의 토대가 되었으며, 원측의 저술은 티베트와 일본에도 영향을 미쳤다.

2. 사상

당시 동아시아 불교에서는 공유논쟁(空有論爭)[4]과 불성논쟁(佛性論爭)[5]이 있었다. 원측은 공유논쟁에선 배타적으로 특정 학파를 지지하는 것을 배격하고 둘 모두를 인정하였으며, 불성논쟁에선 구유식의 실유불성(悉有佛性)[6]과 신유식의 오성각별(五性各別)[7]을 두고 중생을 구분하되 모든 중생이 성불할 수 있다고 보았다. 전반적으로 구유식의 영향이 크나 구유식의 9식설[8]이 아니라 신유식의 8식설을 취하고 있어 신유식의 영향도 볼 수 있다.
[1] 원측은 자(字)다. 휘(諱)는 문아(文雅)다.[2] 이 학파의 이름은 서명사(西明寺)에서 딴 것이다. 이는 규기 라인의 자은학파(慈恩學派)와 대립되는 것으로 본다.[3] 송고승전에 따르면 측천무후가 원측을 생불(生佛)처럼 대우했다고 하니 긴밀한 관계였던 것으로 보인다.[4] 중관학파유식학파사이의 논쟁[5] 구유식과 신유식 사이의 논쟁[6] 모든 중생이 불성을 가지고 있다는 입장이다.[7] 중생을 다섯으로 나누며, 중생들 중에 불성이 없는 중생도 있다는 입장이다.[8] 진제(眞諦, Paramārtha)의 설로 8식에 더해 9식으로 청정식인 아말라식(阿摩羅識, amala-vijñāna)을 인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