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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8-27 16:03:37

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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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관련 수행법
2.1. 사마타 Samatha, 지(止)2.2. 위빠사나 Vippasana, 관(觀)2.3. 아나파나사티 Ānāpānasati, 수식관(隨息觀)2.4. 간화선(看話禪)
3. 역사4. 여담5. 관련 문서

1. 개요

참선(參禪)은 불교의 수행법이다. 선(禪)이라는 단어는 팔리어 자나(jhāna, 𑀛𑀸𑀦)에서 비롯되었으며, '선정(禪定)'이라고도 한다. '선(禪, 산스크리트어: Dhyāna, 마음을 고요히 집중시키는 명상)'을 '참구(參究, 깊이 살펴 탐구함)'한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 이는 단순히 명상이나 조용히 앉아 있는 것 그 이상으로, 마음의 본성을 직접 보고 깨달으려는 적극적인 내면 탐구 행위이다.마음이 자극이나 번뇌에 조건반사적으로 이끌려 반응하지 않고 가만히 놓아두도록 훈련하는 연습이 위주가 되며, 이를 위해 집중, 관찰 등 다양한 방법을 이용한다.

참선, 사티, 위빠사나와 같은 불교수행법을 현대 심리학/정신의학에서 활용하여 만든 치료법으로 마음챙김(Mindfulness)이 있다.

2. 관련 수행법

불교 수행에는 인간의 마음을 정화하고 깨달음, 해탈에 이르게 하는 두 가지 요소가 있다. 바로 사마타(Samatha)와 위빠사나(Vipassanā)이다. 사마타는 산란한 마음을 고요히 하고 한 대상에 집중함으로써 정(定)을 이루는 수행이며, 위빠사나는 지혜롭게 모든 현상의 본질을 관찰하고 통찰하여 혜(慧)를 얻는 수행이다. 이 두 수행은 초기불교와 상좌부불교에서 균형을 통해 해탈에 이르는 필수적인 수행 방식으로 강조되며, 대승불교에서도 ‘지(止)와 관(觀)’이라는 용어로 통합적으로 계승되어 수행의 뿌리가 된다.

사마타 위빠사나 수행법의 차이점

2.1. 사마타 Samatha, 지(止)

사마타(Samatha)는 팔리어로 ‘평정’, ‘고요함’, ‘안정’을 의미하며, 산란한 마음을 하나의 대상에 집중시켜 고요하게 만드는 수행이다. 한자어로 삼매(三昧)이다. 이는 명상의 기초가 되는 훈련으로, 끊임없이 흔들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집중력을 기르는 데 목적이 있다. 수행자는 호흡, 불상, 자비심, 빛 등 하나의 명상 대상을 정하고 그 대상에 마음을 지속적으로 집중하면서 잡념과 욕망, 분노 등 번뇌를 가라앉히는 것을 실천한다. 이 수행이 깊어지면 선정(禪定) 상태에 이르며, 감각적 자극과 번뇌가 사라지고 깊은 평온을 경험하게 된다.

사마타는 괴로움의 원인 자체를 뿌리째 제거하지는 않지만, 위빠사나 수행의 기초가 되는 집중력과 심리적 안정을 제공하여 해탈을 위한 기반을 다져 준다.

2.2. 위빠사나 Vippasana, 관(觀)

위빠사나는 '통찰' 또는 '있는 그대로 꿰뚫어 봄'이라는 뜻의 팔리어 단어로, 현상에 대한 깊은 관찰을 통해 무상(無常), 고(苦), 무아(無我)의 진리를 체득하는 수행이다. 위빠사나 수행은 마음챙김(사티)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변하는 몸과 마음의 현상을 관찰하며, 그것이 고정된 실체가 아님을 스스로 체험하게 만든다. 이를 통해 집착과 무지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위빠사나는 단순한 지적 이해가 아니라 직접적인 체험을 통한 통찰을 강조하며, 단순히 명상 대상에 집중하는 사마타와 달리, 몸과 마음의 움직임, 감정, 감각, 생각 등의 변화를 지속적으로 알아차리는 자각의 힘(사티, sati)을 통해 수행된다.

위빠사나는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을 핵심으로 삼으며, 마음이 고요하고 명료한 상태에서 세계의 실상을 꿰뚫는 지혜를 개발하게 한다. 이 지혜는 괴로움의 근원인 탐진치를 통찰하고 그것을 제거하게 하며, 해탈과 열반에 도달하게 하는 직접적인 길이다.

2.3. 아나파나사티 Ānāpānasati, 수식관(隨息觀)

아나파나사티(Ānāpānasati)는 초기불교에서 매우 중요한 수행법으로, ‘들숨과 날숨에 대한 알아차림’을 뜻한다. 대승불교에서는 이 수행법을 ‘수식관(隨息觀)’이라고도 불렀다. 즉, 자신의 호흡에 집중하여 들이쉬고 내쉬는 과정을 있는 그대로 주의 깊게 관찰하는 수행이다. 이 수행은 마음을 고요하게 하고 번뇌를 잠재우며, 집중력과 통찰력을 동시에 길러 깨달음에 이르는 길로 여겨진다. 아나파나사티 수행은 불교 수행의 두 가지 핵심 요소인 사마타와 위빠사나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수식관이란 ‘호흡을 따라가는 관찰’이라는 뜻으로, 수행자가 자신의 호흡에 자연스럽게 주의를 기울이고 그것의 흐름과 변화를 세밀하게 관찰하는 과정을 말한다. 이 과정에서 마음은 외부 자극이나 잡념에서 벗어나 한 곳에 집중되면서 점차 안정된다. 이는 불교 수행의 한 축인 사마타(Samatha), 즉 ‘마음의 고요함과 집중’을 이루는 단계에 해당한다.
하지만 아나파나사티(수식관)의 수행은 단순한 집중에 머무르지 않는다. 집중(사마타) 상태를 바탕으로, 호흡의 변화를 세밀히 관찰하는 과정에서 수행자는 마음의 모든 작용이 ‘무상(無常)’하고 ‘고(苦)’하며 ‘무아(無我)’임을 체험적으로 깨닫게 된다. 이러한 통찰은 곧 위빠사나, 즉 ‘통찰 명상’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불교 경전인 《마하사마나팁파타나 수트라》와 《아나파나사티 수트라》에서는 아나파나사티 수행이 집중(사마타)과 통찰(위빠사나)의 기초가 되며, 궁극적으로 번뇌를 소멸하고 깨달음에 이르는 길임을 밝히고 있다.

따라서 아나파나사티는 단순한 호흡 관찰을 넘어 마음을 집중시키고 동시에 그 마음의 작용과 현상 세계의 본질을 깊이 통찰하게 하는 사마타와 위빠사나가 서로 아우르는 통합된 수행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마음을 정화하고 깨달음에 이르는 불교 수행의 핵심이자 근본적인 방법이다.

2.4. 간화선(看話禪)

선불교에서는 화두(話頭)라 하여, 특정한 주제를 정해 좌선을 하면서 끊임없이 본래면목을 궁구(窮究)하는 수행이 있다. 이러한 선(禪) 수행을 간화선이라 부른다. 세간에는 위빠사나 수행자들과 간화선 수행자들 간에 커다란 대립이 있는 것처럼 알려지기도 했으나, 기실 그 내면을 살펴보면 백지 상태에서 한 번에 그림을 그릴 수 없듯이 간화선을 수행하는 분들도 시작은 위빠사나에서 시작한다.[1]

간화선 수행의 진행은 보통 세 단계로 이루어진다. 먼저 화두에 대한 집중을 통해 마음의 산란함을 멈추고, 마음이 점점 고요해지며 사마타적 안정 상태에 들어간다. 그다음에는 화두에 대한 의심이 점점 깊어지면서, 단순한 궁금증이 아닌 존재 전체를 관통하는 실존적 물음으로 확장된다. 이 의정이 극에 달한 순간, 수행자는 기존의 사유 틀이 무너지고, 화두가 깨지며 진리의 직관이 일어나는 깨달음의 순간—돈오(頓悟)를 맞이한다. 이 과정은 위빠사나적 통찰 수행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이며, 간화선은 이처럼 사마타적 집중과 위빠사나적 통찰이 결합된 수행 방식이다.

3. 역사

초기불교와 부파불교에서의 자나는 색계 4선정을 가리키는 용어였다.[2] 이때의 선정은 아나빠나사띠(안반수의)를 통해 유도되는 마음의 상태를 지칭했다. 아나빠나사띠란 가부좌[3] 자세로 앉아 호흡을 깊이 하면서,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모습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여러 생각들을 끊임없이 관찰하고, 들여다보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 수행방법이다. 꾸준히 하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외부 사물에 얽매이지 않게 되며, 완숙한 경지에 이르면 관찰하는 습관과 맞물려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는 능력이 매우 강해진다고 한다. 이 수행은 세간에 사마타(samatha) 수행으로 알려져 있으며, 마음 작용의 관찰 및 통찰 명상인 위빠사나(Vipassanā)와 연동되어 그 효율을 높여준다. 이 두 가지 명상은 석가모니 붓다도 수행자 시절부터 "득도 후에도 '꾸준히' 수련"한 방법이다.

다만 사마타와 위빠사나를 굳이 이분법적으로 구분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불교 수행자들 사이에도 많은 논란이 되고 있으며, 본질적으로는 구분할 수 없다고 보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사마타를 통해 깊은 선정 상태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선정의 구성 요소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하는데, 이것이 위빠사나와 겹치기 때문이다. 또한 위빠싸나를 통해 현상을 세밀하게 보게 되면, 여태껏 무지에서 비롯되었던 애착과 집착이 엷어지면서 사마타가 더욱 견고해지는 효과도 있다.

붓다고사의 논서 《청정도론(Visudhimagga)》에 따르면, 선정을 닦을 때는 호흡 외에도 40가지에 이르는 다양한 수행 주제를 활용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불, 물, 땅, 바람, 색채, 빛, 허공 등 10가지 까시나를 관찰 및 시각화하여 명상하거나, 붓다, 법, 승가, 계, 천신 등 10가지 대상을 계속해서 생각하거나, 시체의 부패 과정을 관하는 부정관(paṭikūlamanasikāra) 수행을 하거나, 자애, 연민, 함께 기뻐함, 평온 등 4가지 거룩한 마음가짐을 갖거나, 지/수/화/풍의 4대를 분석하거나, 음식을 혐오하는 인식을 수행 주제로 삼기도 한다.

색계와 무색계 선정은 외도 요가수행자들의 수행법에도 있었지만, 불교에서만은 멸진정(nirodha-samāpatti)이라는 특유의 선정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이 선정은 무색계의 번뇌를 떠나 있으며, 무여열반의 적정에 버금가는 경지다. 색계 선정과 무색계 선정이 범부가 경험할 수 있는 선정이라면, 멸진정은 부처와 아라한 등 성자가 모든 심상(心想)을 다 없애기를 바라서 닦는 선정이다. 상좌부 불교에서는 아라한의 경우 한 번에 7일 동안 멸진정 상태를 끊어지지 않고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선정(jhāna)은 기원후 1세기에서 4세기 사이에 '선나(禪那)'라는 음역으로 처음 중국에 전래되었다. 이때의 수행법은 설일체유부에서 정리한 방법들로, 색계, 무색계, 알아차림, 부정관, 자애명상, 여래의 32상 관법[4] 등을 포함했다. 이 중 최종적으로 심념처(마음에 대한 알아차림) 수행이 오늘날 선불교 수행의 뿌리가 되었으며, 선(禪)이라는 한자어의 일차적인 지칭 대상이 되었다.

4. 여담

5. 관련 문서



[1] 애초에 위빠사나 수행법은 북방 불교계에서도 음차한 '비발사나' 혹은 '수식관', '안반수의'등의 이름으로 전래되어 불교 참선수련의 기초를 차지하고 있다. 다만 북방불교 쪽 승려들이 후대에 만들어진 선종 계통의 수행법을 더 우월하게 여기는 시각은 있다. 대등하게 본다면 근본주의항목에 링크글들에 나온 것처럼 간화선 중시파와 남방불교 도입파간의 충돌이나, 선방 수좌들이 간화선을 안 한다는 비판이 나올 수도 없고, 선불교를 놓고 정체성 문제로 갈등을 빚지도 않을 것이다.[2] 니까야에서 무색계 4선정은 선정(jhāna)이 아니라 입처(入處, āyatana)라는 용어로 대신 지칭했다. 무색계가 '선정'이라는 용어로 불리게 된 것은 후대의 주석서와 논서에서였다.[3] 초심자들은 대개 10분 ~ 50분 동안 이 자세를 유지한 상태로 끊임없이 호흡과 마음작용을 관찰한다. 이렇게 보면 별것 아닌 것 같은데, 이 자세를 유지하는게 생각보다 어렵다. 때문에 한 쪽 발만 걸치는 반가부좌 자세를 취하는 경우도 있는데, 나이가 젊은 초심자들은 대체로 자세를 제대로 취할 것을 권유받는다. 일종의 첫 번째 관문인 셈. 단, 가부좌는 초기불교에서는 현대만큼 크게 강조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가부좌 항목 참조.[4] 특히 여래의 32상 관법은 염불 수행으로 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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