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瑞鳳塚 金製銙帶. 서봉총에서 발견된 신라시대의 여성용 황금 허리띠. 현재 국립청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서봉총 금제 허리띠는 '경주 서봉총 출토 금제 허리띠'라는 명칭으로 2023년 12월 26일 보물로 지정됐다.
2. 내용
길이 120㎝.[1]사진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테마전 '과학으로 풀어보는 서봉총 금관' 강좌
1926년에 경주 노서동 제129호분 서봉총에서 당시 스웨덴 황태자였던 오스칼 프레드리크 빌헬름 올라프 구스타프 아돌프(Oscar Fredrik Wilhelm Olaf Gustaf Adolf)가 발굴한 신라시대 순금 허리띠이다.
이때 다수의 부장품이 함께 발견되었는데 그중 은제대합(銀製大盒)에 고구려의 연호인 연수 원년 신묘년 3월에 왕이 제작하였다는 기록이 남아있어 이 허리띠 또한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추적해보면 서기 391년, 451년, 511년 중 하나인데 서봉총의 무덤 양식인 돌무지덧널무덤은 4세기 후반부터 6세기 초반까지 축조되었으므로 511년은 너무 멀고 서기 391년이나 451년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즉 이 허리띠의 제작 연대는 4세기~5세기 경이다.
이 기고문(동아사이언스)에 따르면 구스타프 아돌프 황태자는 이 허리띠를 먼저 발견한 후 이어서 서봉총 금관을 발견하였다.
이후 1935년 평양의 기생인 차릉파가 서봉총 금관과 함께 이 금제 허리띠를 착용하여 사진을 찍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부 연구실에서 서봉총 금제 허리띠를 연구하는 모습.사진 출처 : 여기는 유물 종합병원… 우리 손으로 치료하지요
사진 출처
오직 신라 고분에서만 발견되는 정교한 황금 세공 기술을 보여주는 유물로, 신라시대 금세공기술 및 금속공예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여겨진다.
3. 국가문화유산포털 소개 글
‘경주 서봉총 출토 금제 허리띠’는 신라시대 고분인 서봉총(瑞鳳塚)을 일제강점기인 1926년 조선총독부박물관이 발굴했을 때 출토된 것이다. 쌍무덤[瓢形墳]의 북분에 해당하는 서봉총은 무덤 내부에 직사각형의 구덩이를 파고 덧널[槨]을 설치한 신라 특유의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槨墳]으로 발굴 당시 금관(보물), 금제 귀걸이, ‘연수원년신묘(延壽元年辛卯)’ 기록이 있는 은제 합 등 당시 신라 고분문화를 보여주는 의미 있는 유물들이 대거 출토된 중요한 무덤이다.
서봉총 출토 금제 허리띠는 목관 안에서 피장자가 허리에 착용한 상태로 발견되었다. 서봉총의 피장자는 황남대총 북분과 더불어 고리자루 큰 칼[環頭大刀]이 발견되지 않아 일반적으로 여성으로 여겨진다. 버클에 해당하는 띠고리[鉸具], 띠꾸미개[銙板], 띠끝꾸미개[帶端金具], 드리개[腰佩]로 구성되는 서봉총 출토 금제 허리띠는 원래 가죽이나 천과 결합된 허리띠였으나 오랜 시간을 거치며 이것들은 삭아 없어지고 금제 장식만 남아 있는 상태였다.
서봉총 출토 금제 허리띠에는 신라 금제 허리띠의 전개과정이 잘 반영되어 있다. 가장 이른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알려진 황남대총 남분 출토 금제 허리띠 이후 띠꾸미개[銙板] 중심 문양은 투각 삼엽문이 유지되었는데 서봉총 출토 금제 허리띠의 띠꾸미개[銙板]는 중심엽의 형태가 첨엽형으로 금관총 출토 금제 허리띠의 띠꾸미개[銙板]와 더불어 가장 화려한 장식성을 보여준다. 또한 다른 신라 고분에서 출토된 금제 허리띠의 드리개[腰佩] 장식에는 유리나 옥 등의 재질이 혼용되어 있는데 반해 서봉총 출토 금제 허리띠의 드리개[腰佩] 장식 대부분은 금제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제작 당시 허리띠 고유의 의장이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으며, 신라 고분에서 출토된 금제 허리띠 중 드리개[腰佩] 길이가 가장 길다는 점에서 예술적 가치를 지닌다.
‘경주 서봉총 출토 금제 허리띠’는 출토지가 명확하며 띠꾸미개[銙板] 내부 문양, 드리개[腰佩] 장식의 기법 등으로 볼 때 신라 금제 허리띠 중 가장 먼저 제작된 황남대총 남분 허리띠와 가장 마지막으로 제작된 금령총 허리띠 사이에 위치해 신라 금제 허리띠 제작기술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어 학술적 의미도 높다.
서봉총 출토 금제 허리띠는 목관 안에서 피장자가 허리에 착용한 상태로 발견되었다. 서봉총의 피장자는 황남대총 북분과 더불어 고리자루 큰 칼[環頭大刀]이 발견되지 않아 일반적으로 여성으로 여겨진다. 버클에 해당하는 띠고리[鉸具], 띠꾸미개[銙板], 띠끝꾸미개[帶端金具], 드리개[腰佩]로 구성되는 서봉총 출토 금제 허리띠는 원래 가죽이나 천과 결합된 허리띠였으나 오랜 시간을 거치며 이것들은 삭아 없어지고 금제 장식만 남아 있는 상태였다.
서봉총 출토 금제 허리띠에는 신라 금제 허리띠의 전개과정이 잘 반영되어 있다. 가장 이른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알려진 황남대총 남분 출토 금제 허리띠 이후 띠꾸미개[銙板] 중심 문양은 투각 삼엽문이 유지되었는데 서봉총 출토 금제 허리띠의 띠꾸미개[銙板]는 중심엽의 형태가 첨엽형으로 금관총 출토 금제 허리띠의 띠꾸미개[銙板]와 더불어 가장 화려한 장식성을 보여준다. 또한 다른 신라 고분에서 출토된 금제 허리띠의 드리개[腰佩] 장식에는 유리나 옥 등의 재질이 혼용되어 있는데 반해 서봉총 출토 금제 허리띠의 드리개[腰佩] 장식 대부분은 금제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제작 당시 허리띠 고유의 의장이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으며, 신라 고분에서 출토된 금제 허리띠 중 드리개[腰佩] 길이가 가장 길다는 점에서 예술적 가치를 지닌다.
‘경주 서봉총 출토 금제 허리띠’는 출토지가 명확하며 띠꾸미개[銙板] 내부 문양, 드리개[腰佩] 장식의 기법 등으로 볼 때 신라 금제 허리띠 중 가장 먼저 제작된 황남대총 남분 허리띠와 가장 마지막으로 제작된 금령총 허리띠 사이에 위치해 신라 금제 허리띠 제작기술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어 학술적 의미도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