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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法 (법학)
1.1. 체계1.2. 해석방법과 한계1.3. 관련 어록1.4. 각종 오해와 통념들1.5. 관련 누리집
2. 法 (언어학)3. 法 (수학)4. 불교의 관념5. 관련 문서

1. 法 (법학)

/ Law

임마누엘 칸트는 "법학자들은 아직도 법의 개념에 관한 정의를 찾고 있다"라고 하면서 법의 개념을 정의하지 못하는 법학자들에게 의문을 제기한 바 있으며, 그 칸트가 죽은 지 200년도 지난 지금 역시 별로 나아진 바는 없다. 하지만, 법의 정의(定義)가 무엇인지, 법이 말하는 정의(正義)는 무엇인지에 대하여 알아내고자, 세계의 수많은 법학자가 지금 이 시각에도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음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따라서, 법은 현재진행형으로 계속하여 발전해 나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법은 권리 위에 잠자는 자를 보호하지 않는다.[1]
- 루돌프 폰 예링 (독일의 법학자)

법이란 도덕률의 최소한[2]으로 볼 수 있는 것으로서 소속집단[3]의 권력에 의하여 강제되는 규범을 말한다. 도덕이라는 개념이 와닿지 않는다면 조금 우회해서 인간 사회에 필요한 '최소한의 질서'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도덕과 법은 교집합이 많긴 하지만 어느 한쪽에 포함되는 부분집합 관계가 아니며 사회의 체제에 따라 법과 개인의 도덕관념이 일치할 수도 있고 다를 수가 있다. 법에 규정되어있지 않은 특정 행동, 지위 등은 허용되어 있다는 뜻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으나 확실하지 않은 경우 인터넷을 찾아보거나 물어보는 것이 답이며, 섣불리 행동했다가 지능범죄로 가중처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 이러한 보편적인 법의 특성으로 인해 일반인의 도덕 관념과 충돌하는 법률이 그 사회에 실재할 수 있으며, 반대로 도덕과 법의 관념상 부정되거나 금지되어야 한다고 여겨지는 것이 특정 사회나 지역에서는 그 사회 구성원의 대다수의 동의 하에 허용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예컨대 친구에게 사소한 거짓말을 하는 것은 도덕적으로는 옳지 않지만 법적으로 처벌받지는 않는다는 것이 일반적인 사회의 법이다. 또한 북한의 경우 독재자인 김씨 일가는 다른 사회 구성원에 비해 훨씬 많은 혜택을 누리고 이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일반적인 나라의 법 규범과 충돌하는 것이지만 북한의 경우 김씨 왕조이고 모든 사람들이 어릴 때부터 교육을 통해 김씨 왕조를 숭배하는 것을 당연시하도록 세뇌를 당하기 때문에 이러한 체제유지를 위한 법이 개인의 도덕 관념과 충돌하게 된다. 하지만 만약 개인이 이러한 북한의 법을 따르지 않고 개인의 도덕 관념을 앞세우고 행동하게 된다면 북한 사회로부터 격리를 당하게 된다. 즉 모든 사람이 평등한 사회가 아닌 특정 개인, 특정 일가, 특정 집단이 기득권 행세를 하는 사회의 경우 그 특정 개인, 특정 개인,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만 법이 불공평하게 활용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법이 항상 도덕 관념을 내포하는 것은 아니게 된다.

법은 구속력을 띤다는 점에서 양심이나 도덕, 종교, 관습과 크게 차별화된다. 관습·종교·도덕 등은 그 위반의 경우에도 자율적·심리적 강제를 받을 뿐이고 개인의 선택이지만, 법은 개인이 선택할 수 없으며 위반할 경우에는 국가에 의해 물리적 강제를 통한 행동의 자유를 제한당하거나 수위에 따라 여러 가지 다양한 처벌을 받아 육체적, 심적 고통을 느끼게 된다. 따라서 법은 국가 내에 존재하는 다른 어떠한 사회의 강제규범보다도 강력하며 개인의 공공의 이익에 반하는 행위를 억제하는 사회 질서 유지 기능을 담당한다고 할 수 있다. 흔히 '나라가 왜 나한테 이래라저래라야?'라고 하는데, 그게 바로 법이다.

일반적으로 법률은 일반인의 법관념에 따라 변하지만, 국가의 이해관계나 그 외의 여러 가지 사유로 인해 일반인의 법관념과 다를 수도 있다.

아나키즘, 자유방임주의, 마르크스주의 등에서는 법(부르주아적 규범)은 고사(孤死)한다고 하였으나[4] 사회주의 체제의 완성에 법학이 고양된 토머스 홉스는 '만인(萬人)의 만인에 대한 투쟁에서 오는 사회적 혼란을 해결하고 조화와 복지를 도모하기 위하여' 법은 필요하다 했다. 즉 사회와 공권력의 통치가 미치는 곳에는 반드시 법이 존재한다.

소련 법학자, 오이겐 파슈카니스는 심지어 이행기 체제의 노동자국가에서는 부르주아적 규범인, 법[5]이 필요하다고 까지 주장하였다. 다만 이는 한시적일 뿐이며 소련에서 도구로써의 법을 제정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프롤레탈리아의 법'이 되는 것이 아닌 부르주아적 규범으로 존재한다고 보았다. 종국적으로 마르크스의 법고사론을 이어나갔기에 견지한 입장이다.[6]

법률(독일어 Gesetz)과 혼동되는 경우가 잦은데, 법률은 실질적 의미에서는 모든 법규범(法規範)을 말하지만 형식적 의미에서는 국회의 의결(議決)을 거쳐서 대통령이 서명·공포함으로써 성립하는 법률이라는 이름을 가진 규범을 말한다. 따라서 법이 법률보다는 더 큰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2020년 4월 6일 기준으로, 대한민국의 '법률'은 총 1528개가 존재한다. 법률이 아니지만 법에는 속하는 것으로는 헌법, 명령, 조례, 규칙 등이 있다. 때문에 입법부는 이름과는 달리 절대로 '법을 만드는 곳'이 아니며, '법률을 만드는 곳'이라고 해야 옳은 표현이다.
파일:법_한자.jpg

법을 뜻하는 한자 法는 본래 灋가 본자(本字)로서 灋은 水(물 수)+廌(해태 치)+去(갈 거)의 형태로 되어있는 문자이다. 여기서 水는 흐르는 냇가를, 廌는 시비(是非)를 가려 의롭지 않은 존재를 로 밀어버리는 공명정대함을, 去는 해태에 의해 사람이 처벌받는 모습 또는 소리를 나타내는 부호이다. 고로 원래 법이라는 글자는 해태의 공명정대함 아래 내려지는 심판을 의미한다. 따라서 동양권에서의 법의 전통적 의미는 주로 죄에 대한 엄벌의 의미라고 한다.

현대에 남은 글자인 水+去로 파자(破字)하면 "물 흐르듯이 당연한 것"이라는 해석도 존재한다.

'법'에 대해 과거에는 통치자가 부여하는 엄벌을 정당화하고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강압적인 도구로서의 인식이 주된 것이었다면, 민주주의와 사회가 발전해나가는 오늘날에는 사회 질서 위한 보편적인 규칙이라는 인식이 생겨남으로써, '법'에 대한 해석이 조금씩 달라지게 되는 것을 반영한 것일 수도 있다.

법과 관련된 지식과 학문은 반드시 배워야 유사시에 손해보지 않고 살아 남을 수 있다. 만에 하나 모르고 그랬든 고의로 그랬든 간에 법에 있는 내용을 무시하면 범죄 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간주되어 처벌 등의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므로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법을 지키도록 노력하는 것이 자신과 타인에게 이롭다. 물론 진짜 존재 자체를 몰랐다면 법의 무지에 의해 처벌받지 않을 수도 있다.[7][8]

보통 한 나라당 법을 하나씩 정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연방제 국가에서는 행정구역(, (州)[9]마다 법을 따로따로 만들게 내버려 두되, 헌법으로 주법을 통제하여 국가가 붕괴되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도록 하고 있다.

많은 사이트 운영자들도 으레 스스로를 법으로 자칭하기도 한다. "짐이 곧 국가다"라는 발언을 했다고 알려진[10] 과거 프랑스 루이 14세의 발언도 이런 사상에 부합한다.

소크라테스가 죽으며 '악법도 법이다(dura lex, sed lex)'라는 말을 남겼다는 말이 있지만, 사실이 아닌 카더라에 불과하다.[11] 버트런드 러셀의 서양철학사 등을 보면 알겠지만 소크라테스에 관하여 남아있는 기록들에 대하여 학자들의 신용도는 그다지 높지 않다. 실제로는 죽으라면 죽어주마 이 더러운 세상이라는 말을 했다 카더라.[12]

'법이 가해자에게 관대하다'고 인식되는 경향이 있는데, 실제 형법과 형사소송법은 가해자를 벌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부당한 공권력의 권력남용과 억울한 피의자의 발생을 막기 위한 기제로서 역할하기도 한다. 형법의 기본 철학은 10사람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억울한 1명을 만들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아내를 죽인 것으로 유명한 O. J. 심슨도 명확한 직접적 증거를 발견하지 못해 무죄로 판명되었다. 그러나 이런 사태가 연이어 벌어지며 끝내 대중들에게는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제대로 안 하며 무관심만 하고 있는 법"이라는 악명으로 인식되게 되었다.

단, 법이 가해자에게 관대한 게 딱 한 가지 있다. 그건 바로 비속살해이다. 왜냐하면 현행법에는 존속살해만 있고 비속살해에 대한 가중처벌이 없다는 것이다. 비속살해는 부모가 자식을 살인하는 행위를 뜻하는데 법은 어리고 어린 어린이의 목숨은 필요 없다는 듯이 부모이자 어른인 부모의 생명만 존속살해로 가중처벌을 시킨다는 걸 보면 법이 가해자에게 관대한 유일한 사례라고 봐도 무방하다. [13]

현대 우리말에서 '법대로 하자, 법대로 해봅시다'라는 말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자'가 아니라 싸우자!라는 말으로 쓰인다. 이런 인식은 법률이 국민의 법감정과 괴리를 일으키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법조계 높으신 분들께서는 국민들의 준법·법의식이 낮음을 규탄하며 하루 빨리 사법체제를 존중하는 풍토가 형성돼야 한다는 발언을 자주 하며, 실제로도 고등학교 교과서에서는 여러 법에 대한 부정적 속담[14] 및 관용구[15]를 예시로 들며 법치체제를 가벼이 여기는 국민들을 비판한다.

이러한 인식이 자리잡은 대표적인 이유로는, 예로부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자들이 통치를 원활하게 하기 위하여, 혹은 상류층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하여 법을 도구로 악용한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서양에서는 그나마 시민 혁명 후 법을 국민이 구성한 의회에서 만든 역사가 길지만, 아시아, 특히 대한민국에서 국민이 법을 제대로 만들기 시작한 역사는 민주화 이후 30년도 채 되지 않고, 왕조-일제강점기-군사독재로 이어지는 역사를 겪었기에 일반 국민들이 법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지기가 어려웠다. 왕조를 제외하고 일제강점기군사독재 기간만 추려내도 그 기간이 무려 83년에 이른다. 즉 한국 국민의 대다수가 법이 국민이 아닌 높으신 분들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역사적 배경을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인과응보높으신 분들이 저런 말을 해봐야 역효과가 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쌓인 과오가 많다 보니 법이 공정하게 작동하는 모습을 보여줘도 얼마나 오랜 세월이 지나야 국민들의 사법불신이 해소될지 알 수가 없는데 근래에도 높으신 분들이 큰 죄를 저지르고도 솜방망이 처벌을 받거나 사법부의 악습과 폐단은 21세기 초인 현재에도 거의 그대로라 국민들의 사법불신이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어들지는 않는 상황이다. 정치 이데올로기 중에서 '법을 되도록이면 존중하자'라고 주장하는 공화주의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제대로 된 공화정에서는 법이 자유를 지켜주는 반면, 군주정이나 참주정(독재정)에서는 법이 자유를 침해하는 데 악용된다고 본다.

한편 다른 쪽에선 현재 있는 법이 과연 공정한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회의적인 반론들이 다양하게 존재하고 있으며 사법불신을 무조건 잘못된 것으로 낙인찍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또한 법에 대한 비판과 불신은 한국뿐만이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에도 다 있음을 지적한다.[16]

법은 해석과 적용도 중요하며 어떤 법적인 근거와 논리로 이를 주장하느냐에 따라서 그 결과(판결 등)가 크게 달라진다. 판사들과 검사, 변호사 등 전문적인 법률 전문가들조차도 같은 사건을 두고 어떻게 결론을 내릴지 의견이 갈리는 경우가 다반사인 것이 이것 때문이다.[17] 때문에 법이 사회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판단의 기준이 되는 것임을 부정해서는 안되지만 이 기준조차도 사실은 불안전하며 불변하지 않아 시대가 변하면서 계속해서 바뀌는 존재라는 것 또한 인지해야만 한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법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너무 강해지면 문제가 꽤 심해진다. 법을 무시하는 수준임은 불명이나 문제는 법 때문에 우리가 노예가 되었고 법 때문에 악당이 행복해졌다고 하는 건 약과법이 곧 악이고 무법이 곧 선이라고 확신하는 경우마저 생긴다. 다만 옛날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극소수에 불과한 고위층, 상류층, 지도층 등의 사리사욕을 위해 절대다수의 하위 계층이 피해를 보는 악법이 만들어지는 문제가 끊이질 않아서 이런 극단적인 사고를 지닌 사람이 계속 생겨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18]

법 자체는 공평하고 평범하지만,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사람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권력자에게 내리는 판결과 힘 없는 사람에게 내리는 판결은 너무나 다르고, 법이 권력(전관예우, 고위 공직자, 자산가, 대중주의)에 휘둘리기 때문이다. 판사도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이 휘둘리게 되는 것도 있지만[19], 눈 앞에 봐도 권력 앞에 무너지는 법의 모습에 자연스럽게 사법불신이 생길 수밖에 없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청와대 게시판이 생기고 난 후 사법부, 입법부가 아닌 행정부에 법적으로 호소한다는 것은 그만큼 법에 대한 신뢰가 밑바닥 수준임을 방증한다.

1.1. 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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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법체계를 기준으로 나열한다.
  1. 헌법
  2. 법률
  3. 대통령령 / 국회규칙 / 대법원규칙 / 헌법재판소규칙 / 중앙선거관리위원회규칙[20]
  4. 총리령[21]
  5. 부령
  6. 지방자치단체조례
  7. 지방자치단체행정규칙

1.2. 해석방법과 한계

법은 원칙적으로 불특정 다수인에 대하여 동일한 구속력을 갖는 사회의 보편타당한 규범이므로 이를 해석함에 있어서는 법의 표준적 의미를 밝혀 객관적 타당성이 있도록 하여야 하고, 가급적 모든 사람이 수긍할 수 있는 일관성을 유지함으로써 법적 안정성이 손상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그리고 실정법이란 보편적이고 전형적인 사안을 염두에 두고 규정되기 마련이므로 사회현실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안에서 그 법을 적용함에 있어서는 구체적 사안에 맞는 가장 타당한 해결이 될 수 있도록, 즉 구체적 타당성을 가지도록 해석할 것도 또한 요구된다. 요컨대, 법해석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법적 안정성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구체적 타당성을 찾는 데에 두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가능한 한 법률에 사용된 문언의 통상적인 의미에 충실하게 해석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나아가 법률의 입법 취지와 목적, 그 제·개정 연혁, 법질서 전체와의 조화, 다른 법령과의 관계 등을 고려하는 체계적·논리적 해석방법을 추가적으로 동원함으로써, 앞서 본 법해석의 요청에 부응하는 타당한 해석이 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한편, 법률의 문언 자체가 비교적 명확한 개념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원칙적으로 더 이상 다른 해석방법은 활용할 필요가 없거나 제한될 수밖에 없고, 어떠한 법률의 규정에서 사용된 용어에 관하여 그 법률 및 규정의 입법 취지와 목적을 중시하여 문언의 통상적 의미와 다르게 해석하려 하더라도 당해 법률 내의 다른 규정들 및 다른 법률과의 체계적 관련성 내지 전체 법체계와의 조화를 무시할 수 없으므로, 거기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대법원 2009. 4. 23. 선고 2006다81035 판결)
법률의 합헌적 해석은 헌법의 최고규범성에서 나오는 법질서의 통일성에 바탕을 두고, 법률이 헌법에 조화하여 해석될 수 있는 경우에는 위헌으로 판단하여서는 아니된다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서 권력분립과 입법권을 존중하는 정신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따라서, 법률 또는 법률의 위 조항은 원칙적으로 가능한 범위안에서 합헌적으로 해석함이 마땅하나 그 해석은 법의 문구와 목적에 따른 한계가 있다. 즉, 법률의 조항의 문구가 간직하고 있는 말의 뜻을 넘어서 말의 뜻이 완전히 다른 의미로 변질되지 아니하는 범위내이어야 한다는 문의적 한계와 입법권자가 그 법률의 제정으로써 추구하고자 하는 입법자의 명백한 의지와 입법의 목적을 헛되게 하는 내용으로 해석할 수 없다는 법목적에 따른 한계가 바로 그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범위를 벗어난 합헌적 해석은 그것이 바로 실질적 의미에서의 입법작용을 뜻하게 되어 결과적으로 입법권자의 입법권을 침해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 1989. 7. 14. 88헌가5,8,89헌가44(병합) 결정)
하위법령은 그 규정이 상위법령의 규정에 명백히 저촉되어 무효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관련 법령의 내용과 입법 취지 및 연혁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서 그 의미를 상위법령에 합치되는 것으로 해석하여야 한다(대법원 2016. 6.10. 선고 2016두33186 판결).
일반적으로 특별법이 일반법에 우선하고 신법이 구법에 우선한다는 원칙은 동일한 형식의 성문법규인 법률이 상호 모순·저촉되는 경우에 적용된다. 이때 법률이 상호 모순·저촉되는지 여부는 법률의 입법목적, 규정사항 및 적용범위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16. 11. 25. 선고 2014도14166 판결).

1.3. 관련 어록

나는 고아가 부자에게 넘어가지 않도록 하고 과부가 권력을 가진 이에게 넘어가지 않도록 했으며, 1세켈 가진 사람이 1미나 가진 사람에게 넘어가지 않도록 했다. 그리고 양 한 마리 가진 사람이 황소 한 마리 가진 사람에게 넘어가지 않도록 했다. 나는 나의 장수들, 나의 어머니, 나의 형제들과 자매들, 그리고 지인들과 충성하는 자들을 정착시켰다. 그러나 나는 그들 마음대로 사람들을 강제노동 시키지는 못하게 했다. 나는 증오와 폭력, 우투에게 하는 저주를 사라지게 하여 수메르 땅에 정의를 확립하였다.
- 우르-남무 법전 서언[22]
당시에 신실한 영주이며 신들을 경외하는 나 함무라비가 정의를 이 땅에 세워 악한 자들과 사악한 자들을 없애고 약자들이 강자에게서 상해를 입지 않도록 태양신과 같이 사람들 위에 떠올라 국가를 밝히도록, 아누와 엔릴은 사람들을 잘 살게 하도록 나의 이름을 불렀다.
- 함무라비 법전 서언[23]
법은 권리 위에 잠자는 자를 보호하지 않는다
- 루돌프 폰 예링(독일의 법학자)
법의 목적은 평화, 이에 이르는 수단은 투쟁이다.
- 예링
법을 공부하려는 이는 먼저, 법(ius)이라는 명칭이 어디서 유래한 것인지 알아야 한다. 그런데 그것은 정의(iustitia)로부터 명명된 것이다. 켈수스(Celsus)[24]가 정묘(精妙)하게 정의(定義)하였듯이, 법이란 선(善)과 형평의 기술인 것이다.
- 울피아누스(Ulpianus)[25]
부패한 사회에는 많은 법률이 있다.
- S.존슨(영국의 문학자)
악법도 법이다.
- 소크라테스[26]
가장 엄격한 법은 최대의 죄악이다.
- 라틴의 속담
사회가 있는 곳, 거기에 법이 있다.
- 서양의 속담
국민의 안녕이 최고의 법이다.
-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
지나치게 온건한 법은 거의 준수되지 않고, 지나치게 엄격한 법은 거의 시행되지 않는다.
- 벤저민 프랭클린
법을 만드는 사람은 법을 파괴하지 말라.
- 서양의 속담
법은 국가의 시민이 서로 재판하기 위한 하나의 공약이다.
- 아리스토텔레스
법의 집행은 법을 제정하는 것보다도 중요하다.
- 토머스 제퍼슨
최선의 법률은 관습에서 나온다.
- 주베르(프랑스의 모럴리스트)
최선의 법률가는 바르게 살며, 열심히 일하고 가난하게 죽는다.
- D.웹스터(미국의 정치가)
법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틀림없이 법 때문에 멸망한다.
- 조지 고든 바이런
나쁜 사람들이 없다면 좋은 법률가도 없을 것이다.
- 찰스 디킨스
법률은 인간을 지배하고 이성은 법률을 지배한다.
- T.풀러(영국의 경구가)
아무리 엄한 법률일지라도 게으른 자를 부지런하게, 낭비하는 자를 절약하게, 취해 있는 자를 술이 깨게 할 수는 없다.
- S.스마일즈(영국의 저술가)
모든 법률은 노인과 남자에 의해 만들어졌다. 젊은이와 여자는 예외를 좋아하고, 노인은 규칙을 좋아한다.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1.4. 각종 오해와 통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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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관련 누리집

2. 法 (언어학)

언어학에서 말하는 '법' 혹은 '서법'에 대해서는 서법 문서를 참고하라.

3. 法 (수학)

유한체의 원소의 개수를 뜻한다. 표수라고도 한다.

4. 불교의 관념

원어는 산스크리트어 'dharma'로, 달마(達磨), 담마(曇摩), 담무(曇無) 등으로 음차하여 표기하는 불교의 중심 관념이다.
인도의 종교, 사상, 또는 불교의 중요한 개념으로, 불교에서는 <법(法)>으로 한역된다. 이 말은 <유지한다>, <지지한다>를 의미하는 동사의 어원 dhr-에서 파생하여, 그런 작용을 실체화한 명사로, <유지하는것>, <지지하는것>의 원뜻이다. 불교에서는 <임지자성(任持自性)ㆍ궤생물해(軌生物解)>, 즉 고유한 성질을 가지며 사물의 이해를 생성시키는 것이라고 해석되고 있다. 단, 이 말은 상황에 따라서 다양한 뉘앙스로 이용되는데 그 뉘앙스를 생각하면 다르마는 다음의 네 가지로 분류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다르마 [dharma] (종교학대사전, 1998. 8. 20.)
규범으로서의 다르마
힌두교에서는 보통, 다르마만으로 힌두교 그 자체를 의미한다. 힌두 교도에게 다르마라는 것은 베다 성전의 권위를 인정하고,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라는 네 개의 계급(바루나)과 학생기, 가주기(家住期), 임서기(林棲期), 유행기(遊行期)라는 네 개의 생활단계(아슈라마)마다 정해진 사회적 의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또한 베다 성전 등에 의해서 정해진 제식을 올바른 순서에 따라서 진행하는 것이다. 다르마가 올바르게 지켜지지 않을때, 인간사회는 혼란에 빠지고 허위와 부정의가 횡행 한다고 한다. 과거 베다시대에는 천칙(天則, 리타)이라는 것이 세계 질서의 근원이라고 하였는데, 결국 그 개념은 이 다르마에 의해서 표현되었다. 또한 베다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네 개의 계급과 네 개의 생활단계를 인정하지 않고, 따라서 베다에 따른 제식을 인정하지 않는 종교, 가령 불교나 자이나교에서도 다르마는 매우 중시한다. 이 경우에 다르마는 사회규범이라기 보다는 해탈을 궁극적으로 하는 종교적 목표로 사람들을 이끄는 <정의로운 가르침>(교법)이나 <진리>를 의미한다. 가령 불교에서는 <제행무상>, <제법무아>, <일체개고>, <열반적정>의 네 가지(또는 처음의 세 가지)가 모든 다르마의 요약(법인), 즉 불교의 기인이라고 하였다. 오늘날의 힌두어로 불리는 불교는 <보우드 다르무>, 즉 <부다(불타) 무리의 다르마>라고 한다.

선업(善業)으로서의 다르마
위의 사회적 규범으로서의 다르마를 준수함으로써 사람은 사후에 천계에서 다시 태어난다는 좋은 과보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이는 인과응보의 업(카르만)의 이론인데, 여기에서 다르마는 선업이라고도 풀이 되었다. 다르마를 행함으로써 자신 속에 잠재적인 힘으로서의 다르마를 축적하면, 얼마 후에 잠재적인 힘으로서의 다르마가 성숙했을 때, 좋은 과보, 악과(樂果)가 초래된다고 한다. 덧붙여서 악업은 이와 대비적으로 <아다르마>(비법)라고 한다.

사물로서의 다르마
<유지하는것>, <지지하는것>이라는 어원에서 생겨서, 불교에서 다르마는 신심을 중심으로 세계를 성립시키는 다양한 요소로서도 이해되었다. 그 중 하나의 분류가 오온(五蘊), 12처, 18계라는 것이다. 오온이란 것은 신심을 기본적으로 구성하는 색, 수(受), 상(想), 행(行), 식(識)이라는 5개의 그룹이다. 색온은 신체와 세계를 형성하는 물질의 그룹, 수온(受蘊)은 지각작용의 그룹, 상온(想蘊)은 감수된 지각을 마음에 표상하는 작용의 그룹, 행온(行蘊)은 어떤 행위가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 때, 그 결과를 초래하는 원인이 되는 작용의 그룹, 식온(識蘊)은 상식적인 의미에서 판단작용의 그룹이다. 12처는 육내처(六內處, 육입)와 육외처(六外處)로 분류된다. 육내처라는 것은 눈, 귀, 코, 혀, 몸, 뜻, 즉 시각기관, 청각기관, 후각기관, 미각기관, 촉각기관이라는 5종의 외적기관과 그들과 밀접하게 결합하면서 의식을 초래하는 내적기관(意)의 작용으로 육근(六根)이라고도 한다. 육외처(六外處)라는 것은 색, 소리, 향기, 맛, 촉감, 법(뜻의 대상이 되는 개념), 즉 지각의 대상으로, 육경(六境)이라고도 하며, 외계 전체를 덮는 것이다. 18계라는 것은 이 12처(육근육경(六根六境))에 육식(六識)을 더한 것이다. 육식이라는 것은 안식(眼識),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 의식(意識), 즉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및 인지기능이다. 정리하면 인식을 작용, 대상, 기능의 각 측면에서 분석하는 동시에, 존재하는 것 모두를 다르마로 분류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와는 별도로 모든 다르마를 오위 75법으로서 정리하는 방법도 행하여졌다. 이는 법을 먼저 유위법(有爲法, 여러 연에 의해서 발생한 것)과 무위법(無爲法, 절대적 존재)으로 나누고, 유위법을 삼색법(물질적 현상), 심왕(인식주관), 심소법(마음에 수반해서 작용하는 여러 현상), 심 불상응행법(물질도 마음도 아닌, 관계나 힘, 개념 등)의 4위로 나누고, 그 각각을 다시 세분하며, 한편 무위법을 제5위로 하고, 허공무위공간, 택멸무위(열반), 비택멸무위(끝이 없어서 현재화되지 않은 존재)의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성질, 속성으로서의 다르마
다르마는 또한 어떤 것을 있는 대로 본다는 특징에서 발해서 성질, 속성이라는 의미도 가진다. 특히 인도의 철학적 여러 학파는 이 의미의 다르마를 중시하고, 지식론, 논리학에서 모든 것을 다르마와 그 다르마를 가진 기본(다르민) 및 그 양자의 관계로 성립된 것으로 생각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다르마 [dharma] (종교학대사전, 1998. 8. 20.)

5. 관련 문서



[1] "권리 위에 잠자는 자"라는 것은 자신의 권리를 지켜줄 누군가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지키기 위하여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 사람을 의미한다. 법은 기본적으로 사건 당사자의 청구 또는 요구가 있을 때에만 관여할 수 있기 때문에 당사자의 치열한 노력이 없으면 그 권리 또한 지킬 수 없는 것이다.[2] 19세기 독일의 대표적인 법학자인 게오르크 옐리네크(G. Jellinek)의 정의. 그는 한 사회의 구성원이 공감하는 도덕 가운데 강제성을 두어서라도 반드시 지키게 해야 하는 것의 부분집합으로 정의했다.[3] 국가의 경우 국법, 지방의 경우 지방법 혹은 조례 등[4] 마르크스주의에서는 프롤레탈리아 독재를 통해 기존 부르주아 계급의 투쟁 도구이자 피지배계급에 대한 핍박 수단인 국가와 법률이 소멸될 것이라고 보았다. 혁명 이후 사회주의 체제의 완성에 있어 법학이 그 과정의 고양인 단계에 있다고 보았고 국가의 군사적·방위적 기능, 경제적·조직적 기능, 문화적·교육적 기능을 높이기 위한 목적을 띤 합법성의 의의를 강조하였다. 뿐만 아니라 시민의 여러 권리를 옹호하기 위해서도 법의 역할을 강조하였다. 여기서 고사라 함은 인위적 제거가 아닌 자유로운 해체를 의미한다.[5]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형성된 법[6] 법의 일반이론과 맑스주의. : 법률적 기초개념에 대한 비판의 시도. 오이겐 파슈카니스 저 / 박대원 역 | 신서원 | 2008년 03월 15일 출판[7] 법을 아니꼽게 보거나 약자나 법적 처벌을 받는 것이라는 식의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핵폭탄을 가진 흉악범이나 테러범한테 법적 처벌을 할 수 있을까? 등등의 말을 하는데 아니면 테러범이나 흉악범이 법을 아니꼽게 볼지도...아마도 이런 사람들은 법을 어기거나 범죄 행위를 저지르고도 떵떵거리면서 잘 사는 캐릭터가 나오는 범죄물이나 피카레스크 작품의 영향을 받은 것일 수도 있다. 다만 가상이 아닌 현실에서도 힘의 논리를 완전히 배제하기란 어렵고 높으신 분들이 중죄를 저지르고도 무죄나 솜방망이 처벌을 받은 사례를 보고 법에 실망해서 비뚤어지는 경우가 꽤 많기는 하다. 4차 산업혁명이나 인공지능에 대한 얘기에서 공권력의 힘을 능가하는 개인이나 집단이 등장하는 것에 대해 우려하는 것도 법 자체는 힘의 논리에 얽매이지 않지만 형벌의 집행은 범법자보다 강한 힘을 가진 공권력이 범법자에게 강제력을 행사하는 힘의 논리에 기반한 행위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권력이 지나치게 강해져도 기술독재로 변질될 우려가 있기에 가장 이상적인 방안은 힘의 균형을 적절하게 맞추는 것이다.[8] 다만 한국은 왕조-일제강점기-군사독재로 이어진 역사 덕분에 높으신 분들에 의해 법이 악용되어 사법살인이 자주 일어났고 민주화를 이뤄낸 뒤에도 높으신 분들이 솜방망이 처벌을 받거나 유전무죄 무전유죄와 같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어서 법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지기 어렵다. 그리고 법이 높으신 분들을 위해 존재하며 법이 올바르게 작동하는 듯한 모습도 그저 생색내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늘상 존재했던 점을 보면 권력욕, 물욕 등등의 이기적인 욕망에 쉽게 휘둘리는 인류 자체의 문제가 가장 클지도 모른다.[9] 우리나라의 행정구역과 동일하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우리말로 어떻게 표현할지는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거의 국가와 유사할 정도의 독립성을 유지한다.[10] 실제로는 볼테르가 지어낸 말이다.[11] 실제로는 로마 시대의 어느 법학자가 간통억제법의 가혹함을 언급하면서 남긴 말이다. 소크라테스가 라틴어로 말했을 리는 없다.[12] 심지어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에 대해 묘사하는 부분들을 소설 취급;; 하고 있기도 하다. 실제로 소크라테스가 독을 마시고 죽는 부분은 정말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명장면 중 하나다.[13] 사실상 아동 학대 피해자가 법에 대해서 반감을 갖게 된 결정적인 이유로 볼 수 있다. 심지어 심각해질 경우 자국 혐오까지 이어질 정도로 대한민국사법부가 아이의 목숨보다 어른의 목숨을 소중하게 대하며 방치한 끝에 얻은 참혹한 대가 중 하나라고 보면 된다.[14]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 법 없이도 살 사람 등[15] 법대로 하자!=연 끊을 각오해[16] 일본의 엔자이가 대표적이다.[17] 이것 때문에 또 다른 논란이 생겼는데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같은 사건에 대해서도 의견이 갈리는 등 규칙으로서의 법이 가지는 권위와 일관성이 손상되었다.[18] 인류사에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 문제가 자꾸 나타나는 걸 보면 생물인 이상 이기적인 본성을 완전히 떨쳐낼 수가 없는 인류의 한계일지도 모른다.[19] 판사도 검사도 사람이다. 승진하여 출세하고 싶고 많은 돈을 만지고 싶어하는 것은 일반인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끝끝내 개인의 욕심을 억제하여 자신의 직무를 다하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돈과 출세욕에 눈이 멀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권리들을 악용하여 적극적으로 자신의 영달을 추구하는 사람들도 있다.[20] 이른바 각 헌법기관은 자체적으로 헌법과 법률의 시행을 위한 명령을 발할 수 있다. 대통령령에서의 대한민국 대통령은 국가수반이 아닌 행정부의 수반으로서의 대한민국 대통령을 말한다. 원칙적으로 헌법기관이 발령한 명령은 다른 헌법기관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즉, 대통령령은 국회나 법원에는 적용되지 않는다.[21] 총리령과 부령은 같은 것으로 취급받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부령은 각 중앙행정기관 중에서 ~부로 끝나는 기관들의 장이 발령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법제처, 경찰청, 검찰청, 소방청, 특허청, 기상청, 방위사업청, 병무청, 기상청, 통계청, 국세청, 관세청, 산림청, 문화재청, 농촌진흥청, 식품의약품안전처 등은 부령을 발할 수 없다. 그리고 특별법에 의한 중앙행정기관인 금융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도 부령을 발할 수 없다. 각 청들은, 그 상급기관인 행안부(경찰, 소방), 법무부(검찰) 등에서 부령을 만드는 방식을 취하고 처, 위원회는 총리령으로 부령을 대신한다.[22] '''함무라비 법전보다 300년가량 먼저 만들어진, 현전하는 가장 오래된 법전. 우르 제3왕조의 창시자 우르-남무(BC 2112~2095)가 편찬했다.[23] 우르-남무 법전과 함무라비 법전의 서언은 채홍식 역주 《고대 근동 법전과 구약성경의 법》에서 간접 인용하였다. 읽어보면 둘 다 서언 자체는 임금의 자기자랑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법전이 가진 목적의 표현이기도 하다.[24] 울피아누스와 마찬가지로 로마 시대의 대법학자.[25] 로마법 대전 학설휘찬에 맨 처음 나오는 내용이다.[26] 소크라테스는 이 말을 한 적이 없다. 악법 문서 참조.[27] 실제 진나라의 재상들이나 장군들을 보면 다른 제후국 출신들이 많다.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이 사실상 운명공동체였던 시대상황에 비추어 볼 때 이들이 진나라로 이주할 때 자신의 영향력 하에 있는 백성들을 데리고 이주했을 것이고 그 백성들은 주군의 영지에 정착하게 되었을 것이다.[28] 진나라 멸망 이후 전한도 옛 진나라의 영토인 관중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초한전쟁에서 승리하여 천하의 주인이 될 수 있었다. 이 지역은 북송시대까지 1천년이 넘게 중화문명의 경제/문화적 중심부 역할을 하게된다.[29] 사실 복잡한 것이, 청소년을 약하게 처벌하게 된 것은 일부 말대로 청소년의 인권을 너무 보장해서가 아니라, 청소년에 대해 통제, 지시, 계도만을 강조하는 사회적 관점에서 나온 것이 더 크다. 정작 그러다보니 제대로 사법정의를 세워야 할 부분에 대해서는 처벌이 약해서 결국 피해자의 피해에 대한 응보도 이루어지지 못하고 가해자도 갱생시키지 못하며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에게 개운치 못한 결말을 낳게 되기 쉽다. 정작 범죄로 가기 이전에 가해자들의 갱생이 적극 필요한 교육 현장에서의 가벼운 비행행위 단계에는 인프라 부족 등의 이유로 실질적으로 거의 관심이 없으며, 피해 학생들에 대한 상담이나 지원 역시 거의 없는 실정이다. 일단 보호관찰사나 상담/임상 심리사 등의 전문가가 가해자/피해자 청소년 모두에게 가까이 있어야 한다.[30] 개인의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는 형벌. 징역, 금고, 구류가 있다.[31] 사극에서 흔히 나오는 대사 "네 죄를 네가 알렷다" 이거 하나만으로 충분히 설명 가능하다.[32] 왜냐하면 무고죄의 피해자는 무고를 당한 사람이 아니라 국가이기 때문이다. 이는 무고죄의 보호법익이 '국가의 형벌권'이기 때문.[33] 유엔에서도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고 하여 형법상 폐지를 권고한 바 있다.[34] 과거에는 천안시에도 있었으나, 외국인 전담 교도소로 바뀌었다.[35] 주마다 전부 법이 다른 게 미국이다. 일례로 미시간 주는 사형제도를 폐지했지만 몇몇 지역들은 여전히 사형제도가 유지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단, 보스턴 폭탄 테러 사건과 같이 심각하고 중대한 사건의 경우 사형제 폐지주에서 일어난 사건이라 하더라도 연방 차원에서 사형판결을 내리는 경우도 종종 존재한다.[36] 성마다 전부 법이 다른 게 중국이다. 일례로 광둥성은 사형제도를 폐지했지만 허베이 성은 중국에서 가장 사형집행이 많이 일어나는 성이다.[37] 대한민국도 사형제도가 존재하나 집행하지 않으므로 제외.[38] "(일제강점기는) 다들 빈곤한 시절이었으므로 합격자라면 누구라도 자신을 역경의 승리자로 포장하고 싶었겠지만, 객관적인 자료는 다른 이야기를 전한다. 고등시험 합격자 중에는 유난히 면장집 아들이 많다. 당시 기준으로는 사회경제적으로 최상부에 속했다. 부잣집 출신일 수록 상급학교에 진학할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았던 시대다. 재력은 거의 그대로 학력에 반영되었다. 개천에서 난 용은 허상일 뿐 실체가 아니었다."(김두식, 법률가들, 23~24면)[39] 굳이 예를 더 든다면 홍준표 현 대구시장이나 김미애 국회의원도 포함된다.[40] 일례로, 이 분은 본인이 금수저이면서도 로스쿨생들을 "부모 잘 만나서 별 고생 안하고 입학한 어린 애들"이라고 폄하했다가, '부모 잘 만나서 10년 동안 사시 공부해 패스한 국회의원 아들'이 적반하장한다고 비웃음을 샀다.#[41] 이 시점은 사법시험 합격자 수가 정점(약 1000명)을 찍고 난(2001년) 얼마 후이다.[42] 정확히 말하면 수사권 자체는 까마득한 규문주의 시절부터 있었는데 근대에 들어오면서 무죄추정의 원칙 등이 생겨난 것이다. 즉 무죄추정의 원칙 때문에 피고인의 유죄를 확실히 입증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수사권이 주어진 게 아니라, 과거에는 피고인이 그저 조사와 심리의 객체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공정한 방어를 위해 무죄추정의 원칙, 변호사 선임권 등의 잡다한 권리가 주어진 것이다.[43] 검사는 증거를 수집하고 확보하기 위해 수사관을 동원할 수 있고, 법적 지식을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피고인에게는 무엇이 있는가?[44] 로스쿨 도입에 일조한 노무현 전 대통령도 사법시험 합격자 출신이다.[45] 참고로, 피고인의 진술도 역시 그 자체가 증거이지만, 피고인의 자백 만으로는 유죄 판결을 하지 못하고 보강 증거가 있어야 한다(자백보강법칙).[46] 미국이 1950년대에 성범죄를 피해자의 진술만으로 유죄를 때렸다가 나중에 무고한 피해자들이 쏟아져 나왔었던 관계로, 미국은 진술만으로 유죄를 때리지 못한다. 증거는 맞는데, 그거 가지고 처리를 했다간 반발 여론이 터져나올 게 뻔하기 때문이다. 형사소송법의 대원칙 중에는 '열 명의 범죄자를 놓쳐도, 한 명의 피해자는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