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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2-27 08:56:37

교조주의/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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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각 나라의 불교에서 보이는 교조주의 사상
2.1. 세계의 불교2.2. 개념에 대한 오해
2.2.1. 한국의 불교
2.2.1.1. 불교정화운동은 교조주의적인가?
2.2.2. 초기불교로의 회귀문제2.2.3. 수행적 관점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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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계의 교조주의를 대표하는 예시 인물 중 하나인 '아신 위라투'. 미얀마승려로, 이슬람에 대해 강한 반발심을 보여, 테러마저 불사하는 위험한 인물이다. 이 사람은 이디 아민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던 바벳 슈뢰더 감독이 다큐멘터리로 만들었다.

불교교조주의를 서술하는 항목.

워낙 기독교근본주의가 강한 편이라 불교에서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불교에서도 마찬가지로 극단적인 교조주의 불자들이 존재하는 편이다. 특히 태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양상의 이슬람·불교간 대립이 이어지고 있다.

2. 각 나라의 불교에서 보이는 교조주의 사상

2.1. 세계의 불교

불교는 이미 교리나 일화에서부터 드러나듯, 비교적으로 타 종교나 사상에 대해 온건하다는 인식이 강하다. 이는 모든 갈등과 싸움 또한 집착과 갈애의 결과물로 보는 불교의 특성에 기인하는데, 집착과 갈애를 내려 놓아야 한다는 석가모니의 핵심 가르침(지혜)과 이러한 깨달음을 통해 자연스레 얻어지는 바른 행위(자비)가 불가사상을 떠받치는 양대 기둥임을 생각해 볼 때,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고 상대에게 총질을 한다는 것은 불자들에게 있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가사상은 근본주의에 근접할수록 흔히 보이는 교리적 무결성에 집착하는 것에서 기반한 대립과 불화에 관계가 없을 것으로 여겨진다.

다만 문제는 이것은 불교의 가르침을 진정으로 깨달은 경우에 한한 것이고, 불교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오해, 본질을 무시하고 일부 행위에 집착하여 벌어지는 행동이나 발언이 불교의 문제로서 지적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불교가 타 종교와 민족들에게 관용적인 태도를 보이기에 오히려 특정 민족성에 크게 편향되어 공격성을 지닌다고 오해할 수도 있겠으나, 이러한 사례의 절대다수는 불교 교리적인 문제로 배타성/공격성을 보인다기보다 민족주의적인 문제를 근간에 두고 타인을 배척하는 태도를 보이는데 하필 그 대중성이 불교도의 옷을 입고 드러나는 것일 뿐이다. 이를테면 미얀마와 스리랑카의 불교도들에게 극심한 차별을 당하는 로힝야족이나 타밀족의 경우, 불교로 개종한다 해도 박해가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는 해당 사례가 불교의 문제라기보다 민족주의의 문제라는 근거가 된다. 불교도로 개종한다 해도 여전히 억압이 가해진다는 것에서 해당 문제가 불교의 본질적인 문제보다는 불교의 탈을 쓴 배타주의의 문제에 가깝다는 것이다. 다만 그렇다고 불교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지, 그러한 차별과 배타주의가 용인되고 있는 지역 불교계의 문제는 유효하다. 애당초 불교는 남과 나를 따로 분별하여 볼 필요가 없다고 가르치고 있다. 즉 불교의 가르침이 불교계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중국에 의해 합병당한 티베트의 경우 또한, 중국이 달라이 라마를 납치했다는 헛소문을 진실로 받아들여 독립운동이 촉발하고서부터는 폭력적인 항거로 저항하였다. 그러나 이것 또한 불교의 본질적인 문제라고 보기보다는 티베트민중의 정신적 지주인 달라이 라마 14세를 납치했다는 것에서 오는 극도의 분노에서 기반하였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러나 이후 티베트인들이 관세음보살의 화신이라 믿는 달라이 라마가 비폭력 노선을 지향하며 폭력저항은 힘을 많이 잃었다. 티베트인들에게 달라이 라마는 현신한 부처의 이미지를 갖는다. 이 때문에 부처가 폭력을 쓰지 말라 했으니 티베트인 역시 이러한 가르침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 때문에 비폭력적인 저항운동의 일환으로 소신공양이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다.

한편, 소신공양의 사례는 한국에서도 종종 일어난다. 대표적으로 4대강 정비 사업에 반발해 소신공양한 문수스님이라든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당시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촉구하며 소신공양한 정원스님 등이 있다.

이러한 불교계의 모습에 대하여 변호하는 목소리도 있다. 소신공양이라는 것은 보통 정치적인 색채를 띄고 있는데, 이처럼 불교계가 극단적 행각을 벌일 때에는 거의 필연적으로 다른 외부적 요인과의 결합이 확인된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는 근본주의라고 보기에는 많은 어폐가 있다. 불교계와 종단의 문제라고 볼 순 있을지 몰라도, 불교가 가지고 있는 가르침인 공(空), 방하착(放下着)등의 가르침을 생각해본다면 이러한 행태가 불교의 가르침과는 관련이 없는 문제임을 알 수 있다. 기독교이슬람교 등의 종교도 이러한 문제에 대한 비판에 "그러한 것은 진정한 그리스도교/이슬람의 모습이 아니다"라는 변명을 하는 것을 보고서 불교도 이러한 변명을 하는 것일 뿐이라고 볼 수 있겠으나, 불교의 가르침은 이러한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의 교리와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음을 간과한 주장에 불과하다. 이러한 종교에서 발생하는 원리주의교리경전에 대한 대단히 보수적인 적용에서 발생한 것이 대부분의 경우이다. 이러한 적용이 현대의 사회관념과 마찰을 일으키며 사회문제로 대두된 것이다. 여타 종교의 원리주의가 해석의 차이에서 문제를 일으키지만 결국 교리와 직접적 결부점이 있다는 점에서 불교에서 교조주의적 경향의 형성이 여타 종교와 근본적인 차이가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자결은 몇 가지 경우를 제외하면 불교 교리에서 옳지 못한 행동으로 분명하게 규정되어 있다. 불교에서는 항상 모든 극단을 지양하고 '중도(中道)'를 가르치는데, 일반적인 불교도가 가장 극단적인 선택이라 여겨지는 자결을 택한다는 건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물론 그 목적과 내용에 따라 소신공양이 매우 거룩한 행위로 인정받는 경우가 많지만, 이는 앞서 말했듯 정치적이거나 기타 이념적인 측면에서의 얘기지 불교의 원리적 해석에서는 분명 잘못된 행위다.

2.2. 개념에 대한 오해

2.2.1. 한국의 불교

2.2.1.1. 불교정화운동은 교조주의적인가?
이하 서술내용은 한국 불교, 특히 조계종에 한하여 작성되어 있다.

조계종8.15 광복 이후부터 일본의 불교에 영향을 받아 개변되었다는 여러 요소(대표적으로 대처승)들을 제거하고 한국만의 불교를 형성하고 이를 계승하기 위하여 정화운동을 벌였다. 이러한 조치는 이승만이 '대처승 배격과 비구 위주의 종단 재건'에 관한 교시를 내리며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불교정화운동을 행하던 시기의 조계종은 불교의 발전과 교단개혁, 허례허식 철폐라는 가치관을 바탕으로 나이에 상관없이 신도들은 [승려]]에게 존칭을 써야 한다는 방침을 내리고, 일제강점기를 들어 국가에게 몰수되고 금전적 지원이 미비하여 토지를 매각해 축소된 절들과 노후화된 여러 사찰들을 중창불사하는 움직임이 강화되었다. 절에서 하는 천도재와 사십구재 등도 수행적 측면에서 허례허식화된 측면이 크다며 대폭 단순화하고 축소했다. 이걸 강력하게 밀어붙인 승려 중 하나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로 유명한 성철. 서울 조계사는 명색이 조계종의 중심사찰이라는 점 때문인지 이때 간략화한 사찰의례를 계속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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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법(佛法)에 대처승(帶妻僧) 없다."
당시 일본 불교의 잔재인 대처승에 반발하여 '불교정화운동'을 벌이는 모습

불자보감(불자독송집)에 "토속신 전각에 참배하지 말라"고 적거나, 불교와 민간신앙의 결합을 불교의 입장을 강조하는 쪽으로만 설명했다는 것에서 불교가 교조주의적으로 변질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있었으나 이는 불교의 본질적 가르침인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을 마치 우상숭배에 대한 경계로 왜곡한 것에서 온 판단에 불과하다. 참배하지 말라는 것은 그것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을 수 없으니 무의미하다는 의미에 불과하다. 수행자의 입장에서 추구하고자 하는 바는 깨달음을 득하여 열반에 이르는 것이기에 민간신앙의 역할은 단순히 이것을 보하는 것에 불과하기에 불교의 가르침을 더욱 중시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현재의 불자보감에 참배하지 말라는 내용이 사라진 것은 이러한 말을 오해한 이들의 항의에서 기원한 것이다. 이후 불교정화운동을 진행했던 조계종은 견원지간인 태고종승려를 초청해서 사라진 전통 재법을 다시 진행도 했다. (구미래 저, <한국인의 죽음과 사십구재> 참조.)

내용을 살펴보면 "현실적인 신도들의 바람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는 공통점이다. 당연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절에서 여는 각종 법회/재가 절의 재정에 상당부분을 차지한다. 지금도 노보살/노거사[1]들이 절에 칠성불공, 산신불공 등의 이름으로 바치는 각종 돈이나 쌀 등의 재화가 많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그 반작용으로 각종 사고와 신도들의 반대에 부딪히면서 점차 사그라들었고, 지금은 대규모 절 개축불사만 하는 정도다.

승려에 대한 존대 문제는 승려들의 자질 문제와 맞물려 여전히 문제다. 특히 2012년 조계종 승려들의 흡연/도박 행위가 언론을 타면서, 그 사이 한국 불교계 내부에서 쉬쉬하던 승려들의 자질 문제가 표면으로 드러났다. 2015년에는 승려들의 성보 도둑질 의혹사건이 불거지면서 논란이 일었다. 현재 성보 도둑질은 허위고 모 불교 언론사의 허위기사라는 게 밝혀졌지만 과거 성보 분실은 사실이며, 이외 대처승 문제나 비리 문제 등과 관련해 조계종과 진보 성향 불교 언론들의 충돌이 심해지는 중이다.

사실 불교개혁 문제는 이미 구한말을 거쳐 일제강점기부터 한국 불교계 내부에서 나오던 문제였다. 당시 한국 불교계는 기존의 구습에서 벗어나는 한편, 일본 사회에서 대중화한 일본 불교의 모습을 보고 한국 불교 역시 일본 불교처럼 민중과 더욱 가까이 결합하여 불교의 위상을 높이자는 주장이 있었다. 이 과정에서 대처승 문제가 나와 타락한 승려들의 논의로 치부하는 경향도 있으나, 이는 만해 한용운 같은 독립운동에 크게 기여한 승려나 불교계 인사들도 불교의 대중화의 일부로 대처승 제도를 도입하자는 것이었지, 이는 단순히 타락한 승려들의 주장은 아니었었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성이 일본 불교와 한국 불교를 통합하고자하는 여러 사회적 움직임에 의해 변질되고 이용되어 이후 불교정화운동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중요한 것은 당시의 개혁주의자들이 한국 불교 내 토속신앙 관련 건물/문화의 철폐, 승려가 양복을 입고 머리를 기르는 것 등 각종 개혁을 외친 까닭은 종단과 승려 개인의 배를 불리자는 게 아니라, 개혁과 대중화를 거쳐 한국 불교를 건설적으로 발전시키자는 목적에서였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은 여러 오해에서 기원한 비판에 직면하여 큰 잡음들을 일으켰다.

하지만 여기서 확실히 해두어야 할 것은, 교단 내부에서 비불적 요소를 제거하는 것과, 외부에 나가서까지 타 집단에 시비를 거는 것은 전혀 다른 행위로 구분지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흔히 근본주의가 위협이 되는 것은 후자와 같이 그 사상이나 이념이 다른 외부사상을 폭력적으로 핍박하기 때문이지, 전자에서처럼 교단 내부에서 교리와 어긋나는 사상을 제거했기 때문이 아니다.

불교 내에서 기복신앙을 덜어 수행의 본질에 더 집중해보려 하는 것까지 '극단적 근본주의'라고 부르는 건 분명히 어폐가 있다. 아마도 불교가 토속화된 역사가 길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 테지만, 조금만 생각해봐도 극단주의는 아니라는 건 쉽게 알 수 있다.

2.2.2. 초기불교로의 회귀문제

사실 이쪽이 '종교로서의 교조주의'의 정의에 가장 부합한다.

근래 남방불교가 국내에서 관심을 받기 시작한다. 예전에서는 소승불교라고 하였는데 지금은 남방불교상좌부 불교라 불린다. 스리랑카, 동남아시아 지역의 불교로서 소승불교라는 말은 대승불교 측에서 나온 비하적 표현이라 하여 현재는 사용을 지양하는 추세이다.

이 남방불교와 교조주의가 결합하여, 일각에서는 기존의 대승불교(특히 선종을 비롯한 동아시아 불교)를 전면 부정하고 초기불교로 돌아갈 것을 강요하고 있는데 실제로는 기존의 남방불교와도 다른 교조주의에 가깝다. 예컨대 아함경이나 이른바 부처님의 말씀을 담았다는 '빠알리 니까야'등 "초기불교만이 진짜 불교의 가르침이니 이것만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나와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물론 빠알리 니까야도 100% 부처의 진설인지 확증할 수 없어 논란이 많다. 경전이 문자로 기록된 것 자체가 부처의 열반 후 수백 년 뒤의 일이므로, 중간의 구전 과정에서 아무런 변형 없이 그대로 전승되었다고 장담할 수 없다. 대다수 학자들은 이 불경의 일부분은 아함경 등 타 불경과의 겹치는 내용 및 논지의 일관성 등으로 볼 때, 부파불교 이전 수행 공동체의 가르침이리라고 본다. 따라서 일부 부처의 진설을 포함할 가능성이 있지만, 아직 확증이 어렵다.

이러한 교조주의에 반대하는 학자들은 "근본불교(Original Buddhism)라는 개념은 그저 서구 기독교 신학 방법론의 영향을 받은 것일 뿐"이라고 반박하기도 한다. 적어도 현재 제도권에서 활동하는 불교학자들 중 이런 교조주의에 편승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초기불교나 부파불교를 전공했다 하더라도, 정석적으로 훈련받은 학자라면 '이거 빼고 나머지 다 틀렸다'라는 식의 흑백논리가 얼마나 위험한지 알기 때문에 그런 식의 접근을 함부로 시도하지 않는다. 참조 링크. 데바닷타가 왜 하극상을 펼치다 지옥에 떨어졌는지는 이들의 행위를 보면 금방 알 수가 있다.

초기불교 교조주의자들의 주장은 불교라는 종교의 역사성과 정통성을 내세운다는 점에서 일견 그럴듯해 보이지만, 사실 허점이 상당히 많다. 우선 남방불교 교조주의자들은 남방상좌부와 초기불교를 동급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빈번한데, 이것부터 바로잡자면 사실 이 둘은 같은 개념이 아니며 같은 개념일 수도 없다. 이것은 '원숭이가 인간으로 진화했다'라는 명제와 같은 오류를 내포하고 있다. 원숭이와 인간은 같은 조상을 공유하는 것이지, 원숭이가 인간으로 변한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남방상좌부와 북방대승은 '초기불교'라는 같은 조상을 공유하는 것이지 남방상좌부 그 자체가 초기불교인 것이 아니다. 다만, 남방상좌부가 자긍심있게 다루는 팔리어 '니까야'가 마가다 프라크리트로 되어 있었을 부처의 원음에 가깝다는 연구 결과가 수두룩하기 때문에 실제로 읽어봐도 바로 느낌이 온다. 초기불교 교단을 논할 때 니까야가 자주 인용됨이 사실이다. 아마 이것이 남방상좌부 = 초기불교라는 오해를 낳은 원인인 듯하다.

그러나 만일 '니까야'를 '초기경전'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하더라도, '상좌부'가 '초기불교'이냐와는 또 다른 문제다. 왜냐하면 상좌부는 니까야를 해석하는 자신들만의 철학 체계와 논장이 분명히 따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니까야 무오류설을 지지하는 극단적 문자주의 무리들은 상좌부의 '청정도론'과 같은 논서조차도(!!!) 배격하기도 한다. 경/율/론 삼장에서 '론'은 부처의 원음이 아니니 아예 제외하자는 것이다.

이쯤에서 짚어볼 수 있는 재밌는 사실이 하나 있다. '그렇다면 대승은 교조주의와 전혀 상관이 없는가?' 묻는다면 또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다. 지금에 와서는 대승이 수만 가지 방편을 채택하여 불교를 오염시켰다는 비판을 듣지만, 인도에서 발한 초기대승은 이런 것과 거리가 상당히 멀었다. 되려 그것은 당시 부파교단들의 논장불교(아비달마)를 강하게 비판하며 '부처의 원음으로 돌아가자.'는 캐치프레이즈 아래에 시작된 불교 정화 운동이었다. 이것은 대승 쪽에서 전승되는 기록으로 현대 불교학의 주류는 이것에 크게 이견을 내지 않지만 이에 반하는 연구 결과도 더러 있음을 밝힌다. 대승불교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시작했는지는 고고학적 사료가 너무 부족한 관계로 온전한 실상을 알기란 영영 불가능할 가능성이 크다. 대승 논장의 시작점으로 이야기되는 '중론'을 예로 들면, 지속적으로 경장의 내용을 환원시키며 모든 석가세존 설법의 중심인 '연기'로 돌아갈 것을 강하게 주장한다.

단, 한국 불교는 중관학이 아니라 거의 철저히 유식학에 기반하고, 또 조계종의 정화 운동이 반쯤 실패로 돌아가며 결국 불교 안에서 토속신앙 및 선불교와 관계없는 신앙적 전승들을 몰아내는 데에 실패했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이 분야에 대한 연구시도 및 성과가 매우 적다.

단적으로 '빨리어 경전' 번역은 어느 정도 되었고 조계종 종단본 불교성전에도 이 내용이 반영된 것과는 반대로, 정작 대승 '산스크리트어 경전' 직역은 제대로 운도 못 떼었다. 물론 학자들끼리는 논의되고 있고, 관련된 교양서적도 몇권 있긴 하다. 하지만 일반 불자들이 체감할 정도로 저변 확대가 충분히 되었느냐? 결코 그렇지 않다. 아직도 대승경전은 무조건 한문으로 쓰였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산스크리트어도 산스크리트어지만, 티벳어본도 이렇다 할 지속적 연구가 없다. 현재는 있던 책도 절판되고 값이 올라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상황이다.

아무튼 이쪽이나 저쪽이나 근본주의자들은 매한가지로 명백한 사실 한 가지를 간과한다. 그것은 바로 그 어떤 훌륭한 가르침이나 수승한 교단도, 결국 시간이 지나고 많은 사람들이 유입되면 반드시 왜곡되고 변질된다는 이치이다. 즉, 어떤 계파가 자꾸만 원음에서 멀어지는 것은 그 교단의 '사상'이 비천하고 외도스럽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 역사의 작용 방식이 원래 그런 식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조건적으로 내 사상과 내 경전만 이야기하는 태도를 버리고 '왜 그들이 그 시점에 이런 생각들을 떠올렸는가? 그들은 대체 누구에게 반발하여 이런 사상들을 쏟아낸 것인가?'…와같이 그 사상이 시작된 지점의 역사/공간적 '맥락'을 함께 따져보는 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예컨대, 지금 내가 '원음'이랍시고 사람들에게 설하며 새로운 교단을 만든다 해도 그 교단 역시 시간이 지나면 변질되어 또다른 근본주의의 공격을 받게 되리라는 것이다. 그들은 후일 이들을 가리켜 "부처의 원음을 호도한 외도"라고 깎아내릴 텐데, 전혀 사실이 아니지 않은가?

인터넷이 발전되는 현재에 와서는 불자들이나 승려들 중에서 불교 관련으로 블로그나 SNS를 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는데, 이 가운데 교조주의적인 사고방식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블로거들이 상당수 존재한다. 특히 경전을 절대적으로 여기면서 경구를 논리적으로 접근하려들거나 혹은 과학과 비교 분석하려 하는 사람들을 닥치고 단멸론자라고 주장한다든지, "경전은 믿을 수 있어도 스님은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등등. 정작 현 달라이 라마텐진 갸초'불교의 가르침과 과학 이론이 충돌하면 그냥 과학을 믿으라\'고 말한 바 있다. 종파가 다르긴 하지만 어쨌든 불교계의 네임드 승려가 하는 말인 만큼, 불교 내에서 교조주의가 태동하는 것에 대해 일침을 가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교조주의자들은 이런 말을 해도 전혀 듣지 않고 위에 서술했듯이 단멸론자 및 "불교를 버렸다"라는 식으로 비난으로 일관한다는 점인데, 파계나 논란으로 퇴출당하지 않는 이상은 종파에 등록된 스님들이다. 애초에 본인들이 좋아하는 경전에서도 스님을 비난하면 지옥 간다라고 적혀 있기에 이를 모르는 건 아닐 텐데 맘에 안 든다고 이러는 건, 경전을 믿어야 한다고 주장해놓고 자기들은 그 경전 내용을 따르지 않는 내로남불에, 승려 비방을 하였으니 스스로 업을 지는 자살 행위를 한 것이다.

더 심한 경우에는 종단에 소속된 승려들을 전부 종단 권력자들이라 부르면서 사실상 불교 내부에 숨어들은 정치 깡패들처럼 취급하는데, 아무리 스님들 중에서도 거짓말로 현혹시키거나 물의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많다지만 반대로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불교와 중생들을 위해 솔선수범하는 깨끗한 스님들도 분명히 있다. 승려란 직종은 어떤 의미로는 중생과 부처님의 사이를 연결시켜 주는 일종의 중간 다리에 해당되는 존재라 볼 수 있는데, 정작 경전에 집착하여 그 의미를 해석해주는 스님들을 무시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그 연결 고리를 끊어버림과 동시에 책으로만 배운 겉핣기식 공부만 주장하는 우물 안 개구리/일반화에 불과할 뿐이다.

게다가 저자가 확실하고, 종교를 만들고 경전이 만들어진 지 역사가 오래되지 않은 기독교, 이슬람과 달리, 불교는 이와 정반대인데다가 최초의 경전이 만들어진 지 몇백 년이 지나도록 각 부파마다 분열과 갈등 속에 구전으로 전해졌다. 즉, 가장 친설과 거리가 멀다.

또한 이미 사라진 불교 문화를 다시 일으켜야 한다는 좋았던 옛날 편향주의자까지 늘어나고 있다. 대표적으로 탁발 문화를 없애버린 것 때문에 혜민 같은 풀소유자가 늘어나고, 앞으로도 같은 문제가 늘어날 수도 있으니 "탁발 문화를 부활시켜야 한다"는 주장. 다만 부활시킨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닌 데다가, 탁발 문화를 부활시켜야 한다는 의견은 탁발을 악용하여 돈을 뜯어내는 가짜 승려 문제 등을 고려하지 않는 무리수이므로 현실성이 없다. 한국 조계종에서 탁발을 금지한 것도 이런 가짜 승려 때문이었고, 탁발을 유지하는 동남아 불교에도 풀소유 승려는 여전히 있다.

이렇듯 그냥 자기 맘에 안 들면 죄다 과격한 언동으로 비판하는 경전 근본주의자까지 생겨나고 있다.

본인들이 자각은 안 해도 이들의 행동은 그저 안 그래도 위태로운 불교를 더 위태롭게 만드는, 그야말로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웅덩이를 흐린다 하는 속담을 제대로 보여주는 상황이다. 더욱이 제대로 된 불교 신도가 이 점을 지적하면 "그래 나 경전근본주의자다. 그래서?"라고 모르쇠로 일관해버린다. 정말 제대로 된 불교 신자라면 지적한 부분을 반성하고 참회하는 등 개선의 여지가 있어야 하는데, 이들은 그것도 없다.

물론, 과학의 발달로 사회에 유물론이 만연하고 거기에 영향을 많이 받은 사람과 스님들이 윤회는 없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그들의 정법과 율을 지키려는 노력은 정말 큰 공덕인 것이다. 핵심은, 근본주의에 빠지지 않으면서, 편협하고 맹목적이 되지 않으면서 부처님의 말씀을 잘 이어져 나가게 하는 것이다. 세속이 그러하다고 해서 불교가 같이 세속화 되어버리면 불교는 죽은 것이라는 말의 뜻을 우리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관건일 것이다.

2.2.3. 수행적 관점

불교는 기본적으로 각자의 '수행'이란 것을 중요시한다. 다른 종교와의 가장 큰 차이점이기도 한데, 수행이라는 것은 단순히 어떤 기도나 영적체험이 아니라 불교의 정체성 그 자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중요한 영역이다. 원리원칙대로 비단 출가자(다른 종교로 치면 성직자 격)만이 아니라 재가자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부분이기 때문에 더더욱 중요하다.

일단, 한국 불교는 널리 알려졌다시피 원효의 '화쟁'에서 기인한 통불교성격을 띤다. 통불교라 함은 그 의미 자체가 서로 다른 관점과 쟁점을 모두 화해시켜 통합함을 뜻하므로 정체성 논란이 있음이 황당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대한불교조계종은 공식적으로는 간화선 수행을 하는 남종선을 정통 불교 수행법으로 보고, 중국 남종선 중 임제종파의 법맥을 잇는다고 자부한다.

게다가 한국에서 불교를 표방하는 종단들은 진각종이나 미륵종같은 일부를 제외하면 태고종을 비롯한 다른 한국 불교 종단들 또한 상당수 선종에 속한다. 미륵종은 본래 증산도 계열의 무을교(戊乙敎)였으나 1964년부터 대한불교미륵종으로 개칭했다.(참조사이트.)

한국 불교의 본질이 이런데 현대불교가 대중포교를 중시하면서 크고 작은 문제가 드러나고있다. 예를 들어 일반인이 접근하기 힘든 간화선보다 염불선이 일반화되고 있다. 또 승려들의 간화선 수행이 축소되고 있다.. 불교학이 발전함에 따라 선불교의 정체성 자체도 도전 받고 있는데 선불교 사상의 근본이 되는 <대범천왕문불결의경>은 위경이다. 유명한 염화시중의 미소도 이 경전에 실린 내용이다. 그리고 남방불교 수행법이 경쟁적으로 유입되고 있다. 이런 여러 가지 크고 작은 문제들이 대두되어 선종은 존립 자체를 두고 과거와는 달리 크나큰 도전에 직면했다.

남방불교는 기존에 소승이라 폄하되었기 때문에 그곳의 수행 또한 외면받기 일쑤였다. 하지만 초기불교의 모습이 더 살아있다는 장점이 있어 불교 근본주의 운동이 거세짐에 따라 다시 주목받았다. 특히 간화선보다 대중들이 접근하기 쉬운 위빠사나 수행이 들어오면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포교당/대중선원에서 간화선보다 염불선과 위빠사나를 중시하는 등 갖은 논쟁이 일어나고있다. (링크 모음:@@@### )

현대에 들어 화자되는 극단적 교조주의 불교는 이러한 선불교의 정체성 문제에 대해 여과 없이 남방불교를 대체재로 삼는다. 즉, 교조주의로 회귀하면서 한국불교에 깃든 '전통적'이고 '한국적'인 맛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행태는 조계종을 넘어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고, 선방에서조차 이미 승려들의 40%가 전통적인 간화선을 하지 않고 다른 수행방법을 선택하는 판이라# 간화선이 아예 사라지게 생겼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올 정도이다.#. 논쟁이 한창 불거지기 시작할 무렵 대한민국을 방문한 미얀마의 고승 파욱 스님은, 상좌부 불교의 자존심을 드러내며 간화선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윗물이 이러니, 벌써 이로 인한 혼란이 일반 신도층까지 퍼져 아예 조계종에서 수행법 관련 혼란과 논쟁을 정리한 책을 교단에서 펴내기까지 했지만#1#2 한번 일어난 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또한 쉽게 넘길 문제도 아니다. (대승비불설 문서 참고.)

조계종에서도 2013년 간경과 염불 수행을 안거로 인정하고#실상사에서 간경안거를 시작하며# 봉선사에 염불원을 설립하고#(기사는 2014년이지만 2013년에 설립.#) 염불만인회를 꾸준히 개최하는 등# 노력하지만, 기사에 나오듯이 화두선 외 수행을 상당히 뒤늦게 인정했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다. 더군다나 그마저도 조실이나 방장, 선원장 자격 기준이 되는 수선안거로는 인정되지 않아 여전히 형평성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청화 스님이 조계종 원로 대접을 그나마 받음이 신기할 지경이다. 청화 스님 문중은 유일하게 염불을 주력 수행으로 삼았다. 더군다나 염불과 간경을 안거로 인정한 후에도 후발조치가 매우 미흡했다.#

여기에 조계종의 고승 송담선사가 2014년 탈종을 선언하는 등# 가뜩이나 혼란스러운 조계종은 더욱 위기를 맞았다. 한국불교계 교세 2위인 태고종 역시 교단 지도부의 충돌로 잡음이 끊이지 않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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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성 평신도는 '보살', 남성 평신도는 '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