曹洞宗
1. 개요
중국 선종(禪宗)의 오가칠종(五家七宗) 가운데 하나로, 묵조선(黙照禪)의 전통을 대표하는 종파이다. 이 종파는 당말에 활동한 동산양개(洞山良价)에 의해 창립되었다.2. 상세
조동종의 수행은 간화선을 중심으로 한 임제종과 구별되며, 특히 공안을 들고 깨달음을 촉구하는 자극적 방식보다는, 조용히 앉아 고요히 자기 자신을 관조하는 묵조선을 핵심으로 삼는다. 이 수행은 화두를 놓고 의심하는 ‘화두선’과 달리, 언어와 개념, 의식적 분별을 모두 내려놓고 그저 ‘있는 그대로’를 관하고 머무는 데 중점을 둔다. 이 방식은 수행자에게 어떠한 깨달음의 목표도 설정하지 않으며, 도달해야 할 진리의 경지조차 긍정하지 않는다. 조동종의 수행은 곧 ‘좌선이 불법’이라는 전제 위에 성립하며, 앉아 있는 것 그 자체가 이미 완성된 진리의 표현으로 간주된다.이처럼 조동종은 일체의 노력과 목적지향성을 초월한 수행관을 바탕으로, 인간의 본래면목과 불성(佛性)이 현재 이 자리에서 그대로 드러나 있다는 선불교의 핵심 명제를 침묵과 자각의 방식으로 실천하는 전통이다.
3. 중국
| 중국의 불교 종파 | |
| 교종 | 정토종 · 삼론종 · 성실종 · 열반종 · 율종 · 지론종 · 섭론종 · 천태종 · 구사종 · 법상종 · 화엄종 |
| 선종 | 북종선 · 남종선(위앙종 · 임제종 · 조동종 · 운문종 · 법안종) · 우두종 |
| 밀교 | 진언종 |
송나라 시기에 들어와 조동종은 대혜종고가 이끄는 간화선 중심의 임제종에게 비판을 받기도 했다. 특히 묵조선이 무기력하고 무집중적인 ‘무기공안(無氣公案)’이라는 비난을 받으면서 중심에서 멀어지게 된다.
4. 일본
| 일본의 불교 종파 | |||
| 남도육종 | 화엄종 · 법상종(남사파 · 북사파 · 북법상종) · 율종 · 성덕종 | ||
| 일련종 계통 | 일련종 · 일련정종 · 창가학회 | ||
| 천태종 계통 | 천태종 · 천태사문종 · 천태진성종 | ||
| 정토교 계통 | 정토종 · 정토진종 · 시종 · 융통염불종 | ||
| 선종 계통 | 임제종 · #일본 | ||
| 진언종 계통 | 진언종 · 진언율종 | ||
중국과 달리 일본에서는 도겐(道元, 1200~1253) 선사가 중국 조동종을 적극적으로 계승, 일본 조동종을 개창하면서 주요 선수행 방식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도겐은 '그저 앉는 것(只管打坐, 지관타좌)'을 수행의 핵심으로 삼으며, 좌선 자체가 깨달음이며 수행이라는 철학을 정립하였다.
소의경전(所依經典)은 반야심경이며, 양대본산(兩大本山)은 후쿠이현 요시다군 에이헤이지정에 위치한 에이헤이지(永平寺)와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 츠루미구에 위치한 소지지이다.
- 일본 조동종 홈페이지 (일본어)
5. 한국
한국 불교에서는 중국으로부터 조동종이 직접적으로 전승되진 않았다. 송나라의 대혜종고부터가 묵조선을 삿된 선이라고 비판하며 간화선을 주창했고, 고려 후기에 간화선이 수용되면서 묵조선에 대한 교학적 경계심이 축적되어 있었기 때문이다.구한말에 일본 불교가 들어오면서 다케다 한시(武田範之, 1863-1911)[1]에 의해 한국 내 조동종 포교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조동종은 포교소를 두고 신도를 모았으나, 정작 재가 신자의 대부분은 일본인이었고 조선인들도 조동종 사찰을 '일본인들 다니는 절'로 취급하며 가지 않았다.
게다가 1910년 이회광의 원종과 조동종 사이의 연합 맹약 때문에, "한국불교를 일본에 팔아넘기려 한 종파"로서의 부정적 이미지가 깊이 각인되었다. 한용운, 박한영, 오성월 등은 이를 두고 "종단을 팔고 조사를 갈아치우는(賣宗, 改宗易祖)" 행위로 보아 극렬하게 비판했다. 을사조약으로 한국인들에게 증오의 대상이 되었던 이토 히로부미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운 절인 박문사도 조동종계 사찰이었다. 묵조선 역시 왜색·소극적 좌선·무기공에 빠지기 쉬운 수행이라는 의심을 받으면서 주변화되었다. 해방 이후 조선 거주 일본인들과 승려들이 히키아게샤가 되어 일본으로 되돌아가자, 조동종 사찰도 급속히 소멸했다. 해방 후 일부 한국 선승들은 도겐의 《정법안장》이나 조동선 문헌을 읽었고, 묵조선적 요소를 수행론적으로 검토하기도 했으나, 종단의 공식 표지로 전면에 내세우지는 않았다.
다만 현대에 이르러 묵조선을 강조하는 설지 스님 등 일부 선승과 사상가들에 의해 재조명되고 있으며, 침묵과 직관, 무목표성의 철학으로 여전히 살아있는 수행 방식으로 주목받고 있다. 1989년에는 대한불교조동종이 간화선 일색의 환경에서 묵조선풍을 되살린다는 취지로 중창을 표방했다.[2]
소의경전(所依經典)은 금강경, 화엄경, 법화경 등이며, 총본산(總本山)은 서울특별시 노원구 상계동에 위치한 도선사(導善寺)이다.
경주 구 서경사(사이쿄지, 西慶寺)가 이 종파 아니면 정토진종이라고 한다. 이 절은 당시 문화재 약탈꾼이자 조선총독부박물관 경주분관장(=일제 경주박물관장)이던 모로가 히데오, 시바타여관 주인이자 서경사 창건 주동자 시바타 단쿠로, 쿠리하라 골동품점 주인 후루무라와 결탁하여 경주에서 출토된 문화재들을 빼돌려 돈 많은 일본인들에게 팔기 위해 모아두는 창고로 악용된 전적이 있다. 애초에, 서경사 자체가 그 전부터 이미 신라유물들을 팔아치운 돈으로 지어지기도 했다. 즉 범죄수익 자랑질용(...) 사찰이었던 것. 또 전후 사망한 일본인 추정 시신을 가져가는 것을 깜빡해 지하실에 한 구가 남아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있는지는 불명. # ## ###
[1] 국가주의자였으며, 미우라 고로와 친분이 있었다. 을미사변 피의자로 지목되어 체포되기도 했다. 이후에는 흑룡회 결성에 참여하여 한일 병합 운동에 가담했다.[2] 조동종에 대하여 :: 최광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