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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5 01:10:49

탄허

파일:탄허.jpg

呑虛
1913년 2월 20일 ~ 1983년 6월 5일 (향년 70세)

1. 개요2. 생애3. 예언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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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승려. 본관은 경주(慶州), 법호가 탄허(呑虛), 법명이 택성(宅成), 속명은 김금탁(金金鐸).

원래는 현대 한국 불교에서 "동아시아 고전 연구"로 매우 유명한 고승이라고 한다. 유교불교, 도교 3종교에 대해 20종[1] 80권의 책을 냈는데, 그 설명과 해석이 매우 정묘해, 탄허의 동아시아 고전 책으로 자신이 관심갖는 동아시아 고전을 공부한 승려들이 지금도 꾸준히 나온다고 한다. 하지만 세간에서는 '예언하는 승려'로 유명하다.[2]

2. 생애

탄허는 1913년 음력 1월 15일, 전라북도 만경군 군내면(현 김제시 만경읍) 대동리의 유학자 집안에서 독립운동가인 율재(栗齋) 김홍규 선생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김홍규는 보천교 고위 간부로서 김구 선생의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는 등 독립운동에 종사했다. 그는 6세에서 21세까지 사서(四書) 삼경(三經) 및 노장(老莊) 등 제자(諸子)의 전 과정을 마쳤다.

1934년 출가 전까지 여러 곳을 전전하며 한학, 유학[3] 등을 섭렵하였다고 한다.이후 22살 되던 해에 오대산 상원사로 출가하였고, 이후 월정사에 적을 두다 1949년 어느 날 절 뜰에서 개미들이 대량으로 죽어있는 모습을 발견하고는 불길한 예감이 들어 제자들을 데리고 경상남도 양산시통도사로 피신했다. 이후 그 불길한 예감은 적중해서 이듬해 여름에 6.25 전쟁이 발발했다.#

이후 1964년부터 7년간 동국대학교 대학선원 원장을 맡았다. 그는 불교의 교리는 물론 다양한 한학 방면에도 조예가 깊었고, 이를 바탕으로 당시 완역하지 못한 팔만대장경의 현대역 작업에 몰두한 끝에 한글대장경을 간행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1977년 12월 25일부터 1978년 2월 21일까지 월정사에서 화엄법회를 열었다. 이 법회에는 당시 촉망받던 전국의 학승 67명이 참여하였다. 이 중에는 2023년 기준 현 조계종 종정[4]성파스님도 있었다.

주역에 관심이 많았으며, 우익 지욱(蕅益 智旭, 1599년~1655년)이 주역을 천태 교학에 따라 불교식으로 해석한 《주역선해》에 주해를 달아서 펴내기도 했다. 또한 김항이 주창한 《정역》을 공부하기도 하는 등 구한말 여러 민족종교의 영향도 받았다.

그의 학문을 본받기 위해 양주동 박사[5]가 직접 절로 찾아가 그에게 장자 강의를 들으러 갔던 적이 있다.

3. 예언

그러나 세간에서 탄허가 유명해진 것은 그의 예지력이다. 탄허는 자신이 체득한 주역 원리를 바탕으로 세상을 풀어내고는 하였는데, 한국 전쟁을 예측함은 물론 5.16 군사정변, 베트남 전쟁효고현 남부 지진, 지축 변화로 인한 이상기온 현상, 한반도 동해안 침식 및 서해안 융기, 박근혜 대통령 당선까지 예언했다고 한다. 자신 또한 임종 6년 전에 입적 날자(년월일시)를 예언했고 이후 노자 도덕경 번역을 마지막으로 완성하고 일주일 뒤 예언한 날에 입적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믿기어려운 것같은 내용도 많다. 가령 재해나 전쟁으로 일본이 침몰하고 중국이 분열하며 세계 인구 절반이 죽지만 한국만은 어떠한 힘에 의해 이를 극복하여 통일되고 만주를 회복한 크고 아름다운 세계 제일의 국가가 된다는 이야기를 예언하기도 했다.
"월악산 영봉(靈峰) 위로 달이 뜨고, 이 달빛이 물에 비치고 나면 30년쯤 후에 여자 임금이 나타난다. 여자 임금이 나오고 3-4년 있다가 통일이 된다."
월악산 근처의 덕주사에서는 다음과 같은 예언을 했다. 당시에는 월악산에는 물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기에 아무도 이 말을 믿지 않았으나 예언 10년 뒤인 1985년 충주댐이 완공되면서 월악산의 달빛이 물에 비치기 시작했다. 충주댐은 공식적으로는 1985년 완공이나 1984년에 담수를 시작했으므로 월악산 영봉에 달이 뜬 해는 정확히 말하면 1984년이다. 그런데 1984년으로부터 정확히 30년 뒤인 2013년, 우리나라 최초의 여자 대통령이 탄생하면서 탄허스님의 통일예언이 현실이 되었다고 한때 여겨졌다.

그러나 박근혜 전 대통령을 ‘여자임금’으로 비정할 시 마지막 문장인 남북통일 예언은 실현되지 않은 것이 된다. 애초에 이 말이 인터넷상에서 이슈화된 것이 2015년이었는데, DMZ 목함지뢰 매설 사건서부전선 포격 사건 남북관계에 전운이 감돌면서 무슨 통일이 임박한 양 증거(?)로서 회자된 예언이었다. 그리고 2015년의 '위기'가 싱겁게 지나가고, 탄허가 지목했던 해도 별다른 사건 없이 지나가면서, 사람들의 예언에 대한 관심도 크게 낮아졌다.

일각에서는 여자임금 박근혜설의 일환으로 다른 해석을 내놓기도 했는데, 박근혜 대통령 이후로 또 다른 여성 대통령이 당선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이미 문재인윤석열, 두 남성 대통령이 당선됨으로서, 월악산 영봉에 달빛이 비친 시점으로부터 최대 39년 뒤까지는 새로운 여자 대통령을 만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세 번째 해석은 예언에서 여자 임금이 '나오고' 라 되어있는 부분을 여자 임금이 '당선되고' 가 아닌 여자 임금이 감옥에서 '나오고'라는 뜻으로 보는 견해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21년 12월 감옥에서 출소하였는데, 만약 이 예언의 내용이 위에서 서술한 내용이 맞다면 2025~26년 즈음에는 통일을 기대해 볼 수 있다.

네 번째 해석은 예전에 자주 쓰이던 표현처럼 '3-4년 있다가'가 아니라 또는 '삼사(=12)년 있다가', 또는 '34년 있다가' 로 보는 견해인데 그렇다면 각각 2025년, 2047년이 된다.

다섯 번째 해석은 '여자 임금'이 남한이 아닌 북한에서 나온다는 주장이다. 북한김주애가 본격적으로 우상화 시도가 이루어지고 국정원에서까지 후계자가 유력하다는 입장을 내놓으면서 그 동안 틀린 것으로 여겨지며 잠잠해졌던 탄허 스님의 통일 예언이 다시 거론되고 있다.

여자임금 김주애설의 가장 큰 지지 근거는 첫째로 월악산 영봉에 달이 뜨고 정확히 30년 뒤이자,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년도이기도 한 2013년에 김주애가 태어났다는 점. 즉 나타나다는 말이 당선되는게 아니라 세상에 태어나다로 본 것이다. 기본적으로 선출직인 한국 대통령은 여자임금이 될 수 없고 종신직이자 세습되는 직위인 북한의 최고지도자여야 한다는 논리이다.

이 가설을 따르자면 김주애가 처음 미디어에 등장한 2022년 11월을 기점으로 2025~2026년에 통일이 이뤄지거나, 아니면 좀 더 설득력 있는 설명은 지금은 황태녀 신분인 김주애가 북한의 지도자로 등극해서 실제로 ‘여자임금‘이 되고난 뒤 3~4년의 세월이 흐르면 통일이 이뤄진다고 할 수 있겠다. 후자의 경우 김정은이 사망하거나 상왕이 되어야 정확하게 연도를 비정할 수 있으며 2024년인 현재로는 언제가 될지는 미상.[6][7]

사실 탄허 본인의 학문적 성취와는 별개로 예언이 다 그렇듯이, 신빙성이 의문인 어중간하고 다의적인 구절을 제시한후 알아서 끼워 맞추는 식의 다른 예언들과 전혀 다를 바가 없어 각자 해석하기 나름인 소위 한국의 노스트라다무스다.

4. 기타

대한불교조계종 승려 원행(圓行)이 쓴 논픽션 <탄허 대선사 시봉 이야기>나 <10.27 법난>에 따르면 정승화 참모총장이 불교 신자였던 당시 오대산 월정사에서 머무르던 탄허를 종종 찾아뵙고는 했는데, 탄허는 평소 정 총장이 자신을 찾아올 때면 "당신은 너무 우유부단하니 본분에만 충실하면 된다. 나와 그렇게 약속할 수 있느냐?"라고 물었다고 한다. 1979년 10.26 사건이 벌어진 다음날 탄허는 제자 원행을 시켜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에게 전화 좀 걸어 보라고 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자 원행을 직접 서울로 보내 정 참모총장을 만나서 "오대산에 한 번 다녀가든지 전화를 한 통만 해 달라." 하고 전하게 했다. 하지만 원행은 참모총장 공관 앞에서 군인들에게 막혀 만나지 못하고 돌아와야 했으므로 끝내 정 총장은 탄허를 만날 수 없었다.

두 달 뒤에 12.12 군사반란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이 전두환에 의해 국군보안사령부 서빙고분실로 강제 연행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승화는 자신의 측근이었던 군법사 한 명을 월정사로 보내 '감옥에서 공부하고 싶으니 탄허가 강의한 화엄경을 보내 달라.'고 탄허에게 부탁했지만, 탄허는 "그 사람은 내 책을 읽을 자격이 없다. 가서 그 사람더러 '왜 나와 한 약속을 지키지 못했느냐'고 내가 묻더라고 전하라. 그는 이미 실기(失機)[8]했다." 하고 거절하며 돌려보냈다고 한다. 이듬해 1980년 10.27 법난이 벌어졌고, 정승화 전 총장은 불교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


[1] 예, 유교의 성리학 주역, 도교 노장사상 등.[2] 특히 대순진리회측에서 자신들이 전도에 주로 사용하는 예언서 격암유록(by 남사고)에 설명을 덧붙일 때, 탄허가 풀이한 《주역》내용을 악용하는 관계로, 세간에는 탄허 = 예언자 정도로 인식하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보는 격암유록은 현대에 만들어 낸 위서이다. 남사고 항목 참조.[3] 탄허의 학맥은 율곡 이이 학맥 기호학파 중 화서학파에 해당하며, 구체적으로는 화서 이항로 → 면암 최익현 → 이극종 → 탄허 김금탁의 사승 관계가 알려져있다.[4] 조계종의 정신적 지도자를 말한다.[5] 당시 마찬가지로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였다.[6] 김정은의 몸 상태를 보면 가능성은 낮지만, 최악(?)의 경우 김일성만큼 산다치면 2060년대 말이다.[7] 최근 북한에서 김주애에게 후계자수업을 진행중이라는 기사가 나왔다. #[8] 기회를 놓쳤다는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