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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4-08 20:29:51

비이원론

1. 개요2. 사상3. 사상가

1. 개요

비이원론(非二元論, 영어: Non-dualism)은 세계를 근본적으로 둘로 나누어 설명하는 이원론(dualism)에 반대하는 사상적 입장이다. 존재와 인식, 주체와 객체, 정신과 물질 같은 대립 구도를 부정하거나 초월하려 하며, 모든 것은 본질적으로 하나임을 강조한다.

일원론과 공통점이 있지만,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단순히 단수만 언급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복수, 다원주의적 다양성 자체는 궁극적 하나에 도달하는 일종의 통로로써 묘하게 긍정하는 면도 있으며, 궁극적 하나에 대해 수사 없이 간단명료하게 지칭하는 것은 너무나 부정확하다는 우파니샤드 전통에 따라 이원론적 개념을 일일이 열거하고 그것을 부정하는 식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힌두교 베단타 학파의 중심 철학 Advaita Vedanta는 종종 non-dualism으로 번역되곤 한다. Advaita는 비이차성(non-secondness)을 의미한다. Advaita Vedanta는 샹카라 이후 인도 육파철학 중 주류가 되었다. 일본과 한국에서는 불이일원론(不二一元論)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힌두교의 불이(不二)가 모든 현상적인 차별(二)을 넘어선 절대적 하나(一)인 불이일원론(不二一元論)이지만, 불교의 불이(不二)은 둘(二)도 아니지만 하나(一)도 아닌 중도를 지칭하므로, 비이원론을 불이일원론으로 번역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2. 사상

우리들은 생각, 이미지, 느낌, 감각, 지각과 같은 경험의 내용물에 너무나 사로잡힌 나머지, 모든 지식과 경험에 대한 알아차림을 잊어버리고는 합니다. 알아차림은 모든 경험의 배경에 항상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변치 않는 알아차림의 단순한 경험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아차림 그 자체를 무시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스스로가 알아차림의 존재라는 단순한 사실을 간과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스스로의 본질적인 모습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그 대신 생각, 이미지, 기억, 느낌, 감각, 지각들이 모인 것이 자신의 모습이라고 착각하고 살아갑니다.
루퍼트 스피라, <알아차림에 대한 알아차림>[1]

말 그대로 모든 것은 둘이 아니라 하나라고 주장한다. 유일절대의 브라만과 개인의 아트만은 실제로 동일하다. 분리된 자아라는 것은 허구라는 점현성공안, 본래면목을 중요 논리로 삼는 점에서 족첸이나 선불교의 조사선과 일치한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조사선 계통의 영성가들은 자신들의 철학적 준거를 이쪽에 두는 경우도 많은 편이다. 상좌부 불교 중 태국 숲속 수행처 전통에서도 고승들의 설법에서 불이일원론을 연상케 하는 구절이 자주 언급된다.[2]

논리적으로 세련되며, 반박이 어려운 특성을 지녔기 때문에 덕현, 지산, 대성, 현각[3]과 같은 엘리트 출신 스님들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다. 모든 종교를 극단적으로 비판하는 U. G. 크리슈나무르티조차 불이일원론을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평가를 남겼다.

3. 사상가

주요 현대 사상가로는 라마나 마하리쉬, 스리 니사르가닷따 마하라지, 루퍼트 스피라, 크리스 나이바우어가 있다.


[1] 알라딘: 알아차림에 대한 알아차림[2] 다만 교학적 차원에서 상좌부 불교는 불이일원론이라 보기 어렵다. 여기서는 원인과 조건에 따라 오온이 생멸함은 인정하되, 그 생멸하는 본바탕에 대해서는 따로 규정하거나 논하지 않는 대신 부정어법을 통해서만 간접적으로 서술한다. 상좌부는 성자(ariya)의 흐름에 들 만큼 번뇌의 뿌리가 약해지지 않은 이상 열반을 대상으로 삼아서 관찰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보며, 범부에게 있어 '번뇌가 없는 마음'이란 미지의 영역과 같다. 따라서 번뇌가 없는 상태의 마음을 추상적으로 생각하기보다는, 계율을 지키고 열심히 수행해서 번뇌의 뿌리를 약화시키는 것이 더 실속이 있고 낭비가 없다고 여기는 것이다.[3] 현각스님이 레겐스부어크에 설립한 선원의 이름이 불이선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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