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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6-09 14:51:30

완전통제구역



1. 북한의 정치범수용소2. 1의 수용소에 대해 다룬 도서
2.1. 구성
2.1.1. 1장: 그들이 울고 있다2.1.2. 2장: 야수로 길들여지는 사람들2.1.3. 3장: 벼랑 끝에 선 사람들2.1.4. 4장: 연민의 정2.1.5. 5장: 운명의 탈출
2.2. 여담

1. 북한의 정치범수용소

북한 정치범수용소의 최고 보안 등급 수용구역. 언젠가 석방될 가능성이 있는 혁명화구역과는 달리 이곳에 수감되면 죽어서도 나올 수 없다.

2. 1의 수용소에 대해 다룬 도서

북한의 정치범수용소 중 한 곳인 회령 수용소의 경비병이었던 탈북자 안명철의 저서로, 시대정신에서 발매했다.

특이하게도 이 책에는 다른 수용소 생존자의 수기와 달리 북한군 내부의 비리, 갈등과 북한 군인들의 생활상이 담겨있다. 이 사람이 신병 시절부터 탈북 전까지 군대에서 생활해왔기 때문에 이에 대해 더 잘 알기 때문이다.

2020년대에는 절판된 책이라 중고책을 사서 봐야 한다.

2.1.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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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 1장: 그들이 울고 있다

안명철이 자대에 배치된 직후를 다룬 에피소드 모음이다.

2.1.2. 2장: 야수로 길들여지는 사람들

수용소 내부에서 보위원과 경비병이 벌이는 암투 및 그 와중에 죽어나가는 수감자를 다룬 에피소드 목록이다.

2.1.3. 3장: 벼랑 끝에 선 사람들

2.1.4. 4장: 연민의 정

2.1.5. 5장: 운명의 탈출

2.2. 여담

그의 수기에는 정치범수용소의 수감자들의 생활상이 잘 담겨있는데 그 생활상을 묘사한 그림, 글은 강철환의 수기[27]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생생하고 처참하게 나타나 있다. 단적인 예로 이 책에서 수용자를 묘사한 그림의 경우 누더기 옷, 중노동, 영양실조로 망가진 수용자의 모습은 인간이 아니라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올 것이다.
[1] 불타 죽은 사람 2명, 질식사한 사람 5명.[2] 꽁초를 모아 보니 '남조선과 미군의 팀스피리트 합동군사 연습에 동원된 병력 수'가 나왔다.[3] 목에 붙이는 보호대.[4] 1988년 당시 26세였고, 북송선에 타고 왔다가 아버지는 증발하고 어머니는 관리소에서 죽었다.[5] 1990년 기준, 북한 원으로 2000원이다.[6] 배가 고파서 쥐를 잡으려고 몰래 산을 올랐다가 들켰고, 사건 전에도 보위원에게 찍힌 정치범이라 괘씸죄도 붙었다.[7] 안명철이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화성 정치범들은 무기고와 초소를 습격해서 무기를 확보하려 했지만, 스파이 때문에 실패했고 모두 처형당했다고 한다.[8] 조선인민경비대 제2209군부대 경비대대.[9] 함경북도 온성군 종성로동자구 죽기골.[10] 13호 운수대 김복남과 동명이인이다.[11] 회령은 백살구가 명물이지만 정치범은 먹을 수 없다. 안명철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정치범을 챙겨 준 것이다.[12] 안명철은 탈북 후 대한민국에 정착한 뒤에야 그 노래가 '남조선' 노래인 걸 알았다.[13] 안명철은 들키는 걸 최대한 막으려고 몰래 가사를 한진덕에게 적어준 뒤, 낮 시간에 기타를 연주해서 듣게 하는 방식으로 노래를 가르쳐줬다.[14] 쓸 내용이 없어서 10장만 썼지만, 지도원은 한진덕과 량기철만 처벌했다.[15] 22호 관리소에서 채굴된 석탄은 청진의 제철소와 화력발전소 연료로 쓰인다.[16] 석탄을 조구통에서 실어주는 사람.[17] 1993년 기준 28세, 최희유는 24세.[18] 어머니와 언니는 농장에 배치됐고, 최순애는 탄광, 최희유는 운수대(자동차 수리)였다.[19] 최순애는 안명철에게 보고하러 1갱 밖으로 나와서 살았다.[20] 안명철에 따르면 최순애가 권용옥이 사회에서 입은 옷을 보고 부러워했다고 한다.[21] 북한 함경북도 회령시 행영리.[22] 김경숙은 탄광으로 쫓겨났다.[23] 북한에서는 자살을 지상락원 선전에 반대되는 행동으로 간주하여 자살자의 유족들을 정치적, 사회적으로 매장해버리는 것으로 알려져있다.[24] 첫째남동생인 안정철은 1994년 시점에 혜산에 거주한다며 이름만 언급된다.[25] 이 때 어머니는 철도원으로 근무하느라 병원에 오지 못했고 소식을 듣자 일하다 말고 울었다고 한다.[26] 동생들도 데리고 탈북하기에는 회령에서 홍원·혜산까지의 거리가 너무 멀었다.[27] 글로만 묘사되어 있고, 강철환은 요덕 수용소에서도 혁명화구역(석방이 될 가능성이 있는 곳) 출신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