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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5-12 10:41:19

만경대혁명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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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경대혁명학원
Mangyongdae Revolution Academy
파일:만경대혁명학원 로고.png
<colbgcolor=#005522> 형태 <colbgcolor=#ffffff,#191919>국립초중고등학교
개교 1947년 10월 12일
원장 김성봉
부원장 방원남
국가
[[북한|]][[틀:국기|]][[틀:국기|]]
소재 북한 평양시 만경대구역

1. 개요2. 연혁3. 구성4. 매체에서5. 교가6. 졸업생 목록
6.1. 수령6.2. 국가수반급6.3. 당6.4. 군6.5. 정6.6. 기타6.7. 만경대학원 출신 설이 있는 인물6.8. 만경대 출신으로 알려졌지만 아닌 경우
7.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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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북한의 특수 교육 기관. 사실상 특권층 자제 전용 학교인데 개교 목적부터 일반 학교와 판이하게 다르며 일종의 유년사관학교라고 볼 수 있다. 중국태자당 급의 아이들을 전부 모아 놓고 교육하는 곳이라고 보면 된다.

2. 연혁

파일:통일전망대 MBC 로고.png 파일:김팀장의 북한 확대경.png
<rowcolor=white> 만경대혁명학원
(2023년 2월 2일 공개분)

북한 측의 기록에 의하면 1947년 10월 12일평양 대동군 재경리면 간리에서 설립된 '평양혁명자유가족학원(平壤革命遺家族學院)'이 직계 모체라고 한다. 김일성이 항일 빨치산으로 활동하던 당시 전사한 동료들의 자녀들을 위해 세웠다고 하며 1948년에 대동군에서 만경대구역으로 이전했다. 이에 따라 '만경대혁명자유가족학원(萬景臺革命遺家族學院)'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나중에 현재 명칭인 '만경대혁명학원'으로 이름이 바뀐다.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전쟁에서 전사한 조선인민군 군인들의 유자녀들도 원생으로 받아들이면서 휴전 후 현재의 이름으로 최종 개칭했다.

1958년에 북한 내각 결정 제6호에 따라 유치원부터 소학교, 초급중학교, 고급중학교까지 대학 직전의 모든 교육 체계[1]를 소화할 수 있도록 확대 개편되었으며 2000년대 들어 혁명유가족들과 전사자 가족들의 수가 자연적으로 줄어들자 김정일은 만경대혁명학원과 강반석혁명학원 과정을 점차 줄여 장기적으로 학원을 없앨 계획을 세웠지만 김정은 정권에선 김정일의 계획안을 폐기하고 유치원 낮은반(1세부터 입학)에서부터 고급중학교 과정까지 완편하였고 혁명학원 입학 대상도 혁명유가족들과 전사자 가족들을 포함하여 현대 북한의 국가 유공자 자녀들까지 넓혔다. 실제로 2022년 10월 열린 설립 75주년 행사에서 공개된 사진을 통해 전 학교급에 걸쳐 상당한 규모의 재학생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졸업생의 절반 가량은 김일성종합대학, 김책공업종합대학, 김형직사범대학 등과 같은 북한의 명문 대학에 진학하며 나머지 절반 가량은 군 장교로 임관하는데 학원을 다닌 기간만큼 군경력이 인정되어 의무 복무 기간에서 공제된다. 군 장료로 임관하는 경우에는 각군 사관학교(강건명칭종합군관학교, 김정숙해군대학, 김책명칭공군대학)의 1년 특별 과정에 진학한 후 곧바로 야전 임관하며 향후에도 큰 문제가 없다면 고급 군사 교육기관(김일성군사종합대학, 김정일군정대학 등) 진학이 보장되어 있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사실상 유년사관학교로 여겨지기도 한다.

졸업생의 진로를 봐서도 알 수 있듯 북한에서 자타공인 최고의 엘리트 교육기관으로, 그 위상이 매우 높은데 이 학원을 졸업하고 중대한 범죄에 연루되지 않는다면 출세가 보장되어 있다. 특히 김정은이 2022년 10월 설립 75주년 행사에 참석하여 "만경대혁명학원 졸업생 가운데 공화국정부 수반이 3명, 조선인민군원수 3명이 나왔다"고 대놓고 연설할 정도로 북한에서 수위의 교육기관이다.

평양혁명자유가족학원 시기에는 성별을 가리지 않고 원생을 받아들였지만 전쟁 중이었던 1951년에 남포혁명학원이 개원하고 1972년에 김일성의 어머니인 강반석의 이름을 딴 강반석혁명학원으로 개칭되면서 만경대혁명학원은 남학생만, 강반석혁명학원은 여학생만 받아들이는 식으로 성별 분류가 이루어졌다.[2]

3. 구성

파일:external/gdb.voanews.com/6A0AA20B-F094-4E83-994C-B564E9134487_w640_r1_s.jpg
컴퓨터 교육을 받는 만경대혁명학원 학생들
파일:열병식 만경대혁명학원 상징기.png
2023년 열병식의 만경대혁명학원 상징기

다른 북한의 교육 기관들이 내각 밑의 교육성 관할 하에 있는 것과 달리 이곳과 강반석혁명학원은 국방성 관할 하에 있어서 다른 학교들과 비교하면 넘사벽 급의 클래스를 자랑한다. 당장 원장부터 현역 조선인민군 육군 소장으로, 2022년 기준으로 원장은 오룡택이다. 원생들은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하고 체육 등의 과목을 제외하면 항시 교복을 착용하고 생활하도록 되어 있다. 다만 말이 교복이지 색상과 디자인이 6.25 전쟁 당시 북한군 장교 정복과 똑같은 군복이고 교육 과목 중에도 군사학이 당당히 포함되어 있는 등 사관학교에 준하는 엄한 똥군기를 자랑한다.

이 때문에 원생들은 좋던 싫던 군대 문화에 익숙해져야 한다. 학교 과정을 고급중학교까지 마치더라도 졸업하는 것이 아니라 2년 간 조선인민군 군관 교육을 추가로 받아야 졸업할 수 있다. 학원 재학 기간은 군사 경력으로 인정받기 때문에 7년의 의무 복무 기간에서 재학 기간만큼이 공제된다. 북한에서 이는 상당한 특혜로 다른 사람들은 의무복무로 골치를 썩을 때[3] 곧바로 대학에 진학하거나 사회의 직장에서 경력을 관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열악한 야전 부대에서 근무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점이 있으며 여기에 북한 정권 차원에서 이 학원 졸업생들을 주요 기관의 요직에 우선 채용하니 출세길이 막힘 없이 열린다고 보면 된다.

상당히 엄격한 학제로 유명하지만 그만큼 북한 정권에서 작정하고 밀어주고 있기 때문에 타 교육기관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특혜를 받는다. 시설 면에서는 서구 선진국의 학교들과 비교해도 교육 여건이 비슷해 보일 정도로 우수하다. 교육 기자재도 매년 새로 인쇄한 교과서가 배부되며 만경대혁명학원용은 특별히 고급 용지에 컬러 인쇄한 교과서가 배부된다. 북한 최고 지도자들의 교육계 시찰 때도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며 북한 지도층 인사들의 대다수가 이 학원 출신이라 북한 체제의 권력 세습의 첫 단계로 매우 중요시되고 있다. 물론 외교관 전문 양성 기관인 평양외국어학원이나 '민간'교육기관으로는 최고급에 속하는 남산제1중학교[4] 출신도 북한 사회에서 상당히 후한 대접을 받지만 선군정치가 아직도 통하는 북한 체제의 특성 상 만경대혁명학원 출신자를 더 우대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김일성훈장을 두 차례 수여받았으며(1972, 1986) 김정일훈장을 한 차례(2012)년 수여받았다.

2023년 2월 8일 북한 열병식에서 '조선혁명의 피줄[5]을 굳게 이어가는 만경대혁명학원'이라는 슬로건이 식별되었다.

4. 매체에서

북한 영화 <생의 흔적>에선 주인공 진주의 아들인 광일이 이 학교에 들어간다. 작중 묘사에 따르면 진주의 남편이 푸에블로호 피랍사건 때 순직한 것으로 인하여 그것에 대한 공로로 만경대혁명학원에 입학하는 것으로 나온다.

그 다음 세대, 즉 광일의 세대를 다룬 후속작 <이어가는 참된 삶>에서 광일은 해군 군관으로 나온다.[6]

상기한 정치인이나 고위군인이 되는 길 중에서 군인으로서 출세길이 열린 경우라고 볼 수 있다.

5. 교가

2014년 경 만경대혁명학원교가가 모란봉전자악단의 신작음악회에서 연주되었다. ‘신작’음악회이기 때문에 때문에 모란봉전자악단에서 제작한 듯 하다. 성악조원은 리옥화, 라유미, 김유경, 정수향, 신원 미상, 김설미가 처리하였다.

6. 졸업생 목록

대부분 북한 핵심 엘리트들의 2세들이 이 곳에서 수학 과정을 마쳤으며 심지어 수령(김정일)도 한 명 배출한 북한 최고의 명문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김정은은 이곳에 입학하는 대신 스위스로 유학갔다. 김정은의 자녀들이 이곳에 입학했는지는 불명이다.

6.1. 수령

6.2. 국가수반급

김정은이 설립 75주년 기념행사에서 "만경대혁명학원 졸업생 가운데 공화국정부 수반이 3명, 조선인민군원수 3명이 나왔다"고 언급했는데 여기서 공화국정부 수반은 아래의 강성산, 연형묵, 최영림이 해당한다. 최룡해는 국가수반급이 맞지만 내각 총리를 역임하지는 못했다.

6.3.

6.4.

김정은이 설립 75주년 기념행사에서 "만경대혁명학원 졸업생 가운데 공화국정부 수반이 3명, 조선인민군원수 3명이 나왔다"고 언급했는데 여기서 조선인민군원수는 아래의 김영춘, 현철해, 리병철이 해당한다.

6.5.

6.6. 기타

6.7. 만경대학원 출신 설이 있는 인물

6.8. 만경대 출신으로 알려졌지만 아닌 경우

7.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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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치원 1년제-소학교 4년제-초급중학교 3년제-고급중학교 3년제[2] 이러한 성별 격리는 노선은 달랐지만 마찬가지로 전체주의 사회였던 나치 독일과 비슷한데 나치 시절 독일 청소년들은 남아=히틀러유겐트, 여아=독일 소녀 동맹으로 엄격하게 분리되어 교육을 받았다. 사실 이 경우에는 북한도 남한과 마찬가지로 남녀칠세부동석 개념이 확고한데다가, 1990년대 이전까지 대학생들의 이성교제도 통제되는 등 남녀칠세부동석 개념이 남한보다 오래남아있어서 그런것이다.[3] 법적으론 의무 복무 기간이 짤 없이 7년으로 잡혀 있으나 북한에서 '군 복무'라는 것은 굉장히 폭넓은 의미로 꼭 군 직속 기관이 아닌 유관 사업체에서 근무해도 군 복무를 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즉, 집안에서 어느 정도 지원이나 인맥을 동원할 수 있다면 대부분 실질적인 군 생활은 1년 내외에서 끝나며 정말 찢어지개 가난한 사람들만 쌩으로 7년을 군복무한다고 알려져 있다.[4] 김정일의 모교이기도 하다.[5] 핏줄[6] 다만 광일은 연평해전에서의 부상으로 의병 제대하게 된다.[7] 참고로 응게마는 김일성과 호형호제하는 관계였고 1979년에 최측근이었던 조카 테오도로 오비앙의 쿠데타로 축출되어 처형되기 직전에 자식 3명을 북한에 보냈다. 북한에 보내진 응게마의 자식들은 모두 만경대혁명학원에 다니다가 90년대에 북한을 떠났으며 특히 모니크 응게마는 '모니카'라는 이름으로 해외를 전전하다가 2007년에는 남한에 이주하여 서울의 한 의류회사에 취업한 후 2013년에 '모니카 마시아스'라는 이름으로 <나는 평양의 모니카입니다>라는 제목으로 한국어 회고록을 출판해 남한에서도 어느 정도 인지도를 쌓았고 오늘날에는 영국 런던에서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