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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0-03-11 14:08:13

대한성공회

파일:대한성공회 관구문양.jpg
1. 개요2. 역사3. 한국 관구 현황
3.1. 서울교구3.2. 대전교구3.3. 부산교구
4. 타 교단과의 교류5. 여담
5.1. 여성 성직자5.2. 타 교파와의 성찬례 교류 문제
6. 인물
6.1. 성직자6.2. 일반 신자

1. 개요

언어별 명칭
한국어 대한성공회 (大韓聖公會)
영어 Anglican Church of Korea
중국어 [ruby(大韩圣公会, ruby=dàhánshènggōnghuì)]
일본어 [ruby(大韓聖公会, ruby=だいかんせいこうかい)]
대한성공회 홈페이지.
대한성공회는 세계성공회공동체에 속한, 독립된 정식관구[1]이다.

세계적으로 성공회는 약 8천만 교인이 소속된 주류 교파지만, 대한민국에서 교인 수는 많지 않다. 국내에서는 주류 개신교 교단으로부터 이단으로 지정된 몰몬교여호와의 증인, 신천지보다도 교세가 더 작다. 한국에 있는 성공회 신자들 대부분은 대대로 성공회 신앙을 이어온 사람들이거나 천주교[2][3]에서 넘어온 사람들 또는 장로회감리회 같은 주류 개신교 교단에서 옮겨온 사람들이다. 다른 기독교 경험 없이 성공회에서 처음 기독교 신앙생활을 하는 새신자는 거의 없다. 이런 경향은 성공회가 타 개신교 교단과 달리 전도에 적극적이지 않기에 더 심해진다. '사회선교'나 문화예술이나 건축(대표적으로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등을 통해 선교하려는 생각이 강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유인물이나 휴지 등을 나눠주는 얌전한 길거리 전도도 거의 없다.

대한성공회 홈페이지에 의하면 2011년 2월 말 현재 5만여 명의 교인[4]이 있고 3개 교구(서울교구, 대전교구, 부산교구)와 100여 개의 성당이 있다. 서울특별시 시청역 3번 출구 덕수궁 옆에 서울주교좌성당성가(聖架) 수녀회 본원이 있으며[5], 구로구 항동에는 성공회대학교도 있다. 이외에도 성공회대학교 내에는 특수학교인 성 베드로 학교도 있다.

근본주의를 지양하면서, 사회 구원을 추구하며 소수자의 편에 서고[6] 권력을 향해 쓴소리를 하는 교단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성공회 공동체 내부 기준으로는 다양성을 중시하는 성공회 특성 때문인지 신자들의 성향 스펙트럼[7]이 넓은 편이다. 전국에서 성공회 교인이 그나마 많이 있는 지역은 인천광역시 강화군이고 인천 본토와 부천시, 광명시, 구로구 등지를 비롯한 경기도 서부권과 평택시, 충청도 일부[8]도 다른 지역보다는 성공회 성당들이 밀집한 편이다.

대한성공회는 앵글로-가톨릭(고교회파[9])이 주류라서[10] 전례 형식은 천주교의 현대식(바오로) 미사와 많이 비슷하다. 특히 수도권 지역은 하드코어 고교회파의 영향[11]이 일부 남아서 대부분의 한국 천주교 성당에 비해서 더 장엄한 느낌을 받기 쉽다. 감사성찬례[12] 시작 전에 복사십자가 들고 하는 입당식과 감사성찬례 중 신부의 향 피우기는 성공회 고교회파 성당에서는 연중 주일[13]에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한국 천주교 성당에서는 부활대축일이나 성탄대축일처럼 정말 중요한 축일에나 한다. 성공회 고교회파 성당에서 하는 감사성찬례 중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 낭송도 대부분의 한국 천주교 성당에서 하지 않는 것이다.[14] 물론 각 성당 사정에 따라 십자가를 들고 하는 입당식이나 유향 분향을 생략할 수 있다. 사실 우리나라 성공회 성당은, 담당 신부가 개혁주의 신학을 따를지언정, 대다수가 가톨릭적인 전례를 행한다.

과거 대한성공회는 전례적으로나 신학적으로나 고교회파였으나, 장로회 출신의 성직자 및 평신도가 늘어나면서 그리고 천주교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영향을 받아서 신학적인 면에서 고교회파 일색에서 많이 벗어났다. 현재 대한성공회는 전례적으로 고교회적 전통을 일부 이어나가고 있으나, 신학적 성향은 광교회[15]적 성향을 띄게 되었다.[16]

흔히 성공회를 신학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교파라고 생각하는데, 성공회 교인들은 이 말에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 성공회의 특징을 진보 혹은 보수 같은 특정 성향에서 찾기보다는, 이들을 모두 감싸는 포용성이나 유연성에서 찾는 것이 성공회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진보적인 목소리를 유독 강하게 낸다기 보다는, 한국 교회 내에서 꽤 이질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진보적인 목소리도 그 안에 포용하고 있는 것. 확실하게 맺고 끊는 것을 선호하는 우리나라의 주류 정서에는 잘 맞지 않다고도 볼 수 있지만, 이성적이고[17] 유연한[18] 신앙생활을 원하는 신자들에게는 꽤 좋은 선택지가 된다.

2. 역사

1890년 9월 29일 영국 성공회의 찰스 존 코프(Bishop Charles John Corfe, 한국 이름 고요한) 주교가 5명의 신부미국 펜실베니아 출신 의사로서 의료선교를 한 랜디스(한국 이름 남득시)와 함께 입국하였다. 한국인 교인이 한 사람도 없는 상황에서 주교가 선임되고 한 교회가 시작된 것으로, 이는 세계 교회사에서도 흥미로운 일이라고 한다.

1891년 인천 중구 내동에 첫 성공회 교회인 내동교회를 세웠다.[19]

1900년 강화군 강화읍에 강화성당을 세웠다. 서구의 바실리카 양식과 불교 사찰 양식을 대담하게 조합해서 세운 이 성당은 초기의 성공회 선교사들의 토착화의 의지를 보여 주는 증거물이 되고 있다.

1908년 첫 한국어 공동기도문을 발간하였다. 영국 성공회의 1662년 공동기도문을 번역했으나 축성경만은 1549년 것을 채택했다.

1914년 강화도에 지금의 성공회대학교의 전신인 성 미가엘 신학원을 세웠다.

1915년 김희준(마가[20]) 신부가 처음 한국인 성공회 신부가 되었다. 조선에 뿌리를 내린 성공회는 대한제국 개화기에 근대 서양식 교육을 보급하기 위하여 충남 천안에 신명학교를 설립하고, 인천, 여주, 진천 등지에 병원을 설립하였으며, 경기도 수원과 안중에는 보육원을 개설하였다.

1919년 3.1 운동 중 병천교회와 부속학교인 신명학교가 태극기 제작에 참여하여, 일제에 의해 강제 폐쇄당했다.

1924년 부산 중구 대청동에 대청동성당을 세웠다.[21]

1926년 서울 중구 정동에 서울주교좌성당을 세웠다.

1936년 천주교, 감리회, 재림교회, 성결교회, 구세군과 함께 신사참배를 시작하였다.[22][23]

1940년 일제에 의해 외국인 주교들이 추방되고 성공회대학교가 폐교당했다. 이 당시는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었고, 영국일본의 적국이었다. 일제는 국내에서 활동 중인 영국인 주교들과 영국 켄터배리 관구 소속인 한반도의 성공회를 가만히 둘 수 없었던 것이다.[24][25]

1950년 한국전쟁 중 서울주교좌성당 주임신부이던 윤달용(모이서[26]) 신부를 비롯한 6명의 성직자가 조선로동당에 의해 희생되었다. 희생된 성직자 중 윤달용(모이서) 신부는 당시 천주교로의 개종을 준비중이었다.

1965년 이천환(바우로[27]) 주교가 최초의 한국인 성공회 주교로 주교서품을 받았다. 또한 이 때까지는 교구(diocese)가 서울교구 하나밖에 없었으나, 대전교구가 분리됨으로서 2개의 교구를 유지하게 되었다.

1974년 대전교구에서 부산교구가 분리됨으로서 3개의 교구를 유지하게 되었다. 이로서 '한국 관구'가 성립되는 조건을 갖추게 된다.[28] 그러나 한국 관구는 이로부터 19년이 지나서야 이루어지게 된다.

1987년 6월 10일, 서울주교좌성당에서 박종철 군 고문치사 조작, 은폐 규탄 및 호헌철폐 국민대회가 개최되었다. 그날 오후 6시 저녁 기도 시간을 알리는 서울주교좌성당의 종소리로 6.10 항쟁이 시작되었다.

1993년 정식으로 한국 관구(province)가 성립되었다. 한국 관구로 독립하기 전에는 캔터베리 관구 소속이었기 때문에, 대한성공회 교회법 개정도 캔터베리 대주교의 최후 승인이 필요했다. 물론 지금은 대한성공회가 독립적인 관구로서 기능하고 있기 때문에 교회법 개정에 캔터베리 대주교의 승인 절차는 필요 없다.[29]

2019년 현재 대한성공회 의장주교는 성공회 대전교구 유낙준(모세) 주교이다.

3. 한국 관구 현황

서울교구·대전교구·부산교구의 총 3개의 교구가 있으며, 이 세 교구가 한국관구를 이루고 있다. 현재 유낙준 모세 대전교구 주교가 한국 관구의 관구장 주교로 재임하고 있다.

아래 나열된 교구(diocese) 산하 교무구(parish) 관할 구역은 성당이 위치하는 지역으로 한다.

3.1. 서울교구


파일:서울교구.jpg

교구장 주교: 이경호 베드로 주교
주교좌성당: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관할구역: 서울특별시, 인천광역시, 경기도, 강원도 북부(영동고속도로 이북)
중앙교무구[30] 서울특별시 북부(중구[31], 종로구[32], 노원구[33], 도봉구[34], 동대문구[35], 성북구[36], 용산구[37])
경기도 북부(고양시[38], 양주시[39], 양평군[40], 포천시[41], 동두천시[42])
강남교무구 서울특별시 남부(강남구[43], 강동구[44], 관악구[45], 영등포구[46], 송파구[47])
경기도 동부(성남시[48], 구리시[49], 남양주시[50], 하남시[51])
강원도 북부(춘천시[52], 강릉시[53])
서부교무구 서울특별시 구로구[54]
경기도 서부(광명시[55], 부천시[56], 김포시[57])
인천광역시(중구[58], 동구[59], 남동구[60], 부평구[61], 계양구[62], 서구[63])
남부교무구 경기도 남부(안양시[64], 군포시[65], 안산시[66], 수원시[67], 오산시[68], 평택시[69], 용인시[70], 이천시[71], 여주시[72])
강화교무구[73] 인천광역시 강화군[74]


3.2. 대전교구


파일:대전교구.jpg

교구장 주교: 유낙준 모세 주교
주교좌성당: 대한성공회 대전주교좌성당
관할구역: 대전광역시, 충청남도, 충청북도, 세종특별자치시, 강원도 남부(영동고속도로 이남), 전라북도, 전라남도, 광주광역시
중앙교무구 대전광역시[75]
강원교무구[76] 강원도 남부(원주시[77], 태백시[78])
충북교무구 충청북도[79]
충남교무구 충청남도[80]
전라교무구[81] 전라북도[82], 전라남도[83], 광주광역시[84]

농촌의 인구 감소와 함께 교세 감소가 겹쳐서 교회가 아예 문을 닫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문을 닫은 교회는 일종의 문화센터로 다시 문을 열었다고는 하지만 교회의 기능을 회복했다고 할 수 없다.

3.3. 부산교구


파일:부산교구.jpg

교구장 주교: 박동신 오네시모 주교
주교좌성당: 대한성공회 부산주교좌성당
관할구역: 부산광역시, 울산광역시, 대구광역시, 경상북도, 경상남도, 제주특별자치도
중앙교무구 부산광역시[85], 경상남도[86], 제주특별자치도[87]
북부교무구[88] 대구광역시[89], 경상북도[90], 울산광역시[91]

교무구가 2개밖에 없을 정도로 대한성공회에서도 교세가 가장 빈약한 지역이다. 사실 영남과 제주, 이 지역들은 성공회 뿐만 아니라 천주교와 다른 개신교 등 기독교 전반의 교세가 약한 지역이기도 하다.

대한성공회 내에서 상대적으로 저교회파 성향인 교구이다.[92] 대한성공회의 최초 주교인 찰스 존 코프 주교(영국 성공회 파송)가 1890년 인천제물포항에 발을 내딛기 전이었던, 1880년에 이미 캐나다 성공회 소속이자 일본 성공회의 개척자였던 알렉산더 크로프트 쇼(Alexander Croft Shaw, 1846년 6월 26일 ~ 1902년 3월 13일) 신부가 부산에 교회를 세워 목회를 하고 있었다. 이후 부산을 비롯한 영남 지역은 자연스럽게 서울에 있는 주교의 치리 하에 들어가게 되지만, 이런 특수한 초기 선교 상황이 지금의 부산교구의 모습에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현재 부산교구는 일본성공회 오키나와 교구 및 규슈 교구와 자매결연을 맺고 활발히 교류하고 있다.

4. 타 교단과의 교류

한국기독교장로회와 함께 교회일치운동에 가장 적극적인 교단으로, 다양성을 중시하다 보니 다른 주류 개신교 교단들은 물론 천주교와 정교회와도 적극 교류하며, 타 교단에 대해서 정말 웬만해서는 이단시하지 않는다. 그래서 위에서 이야기 했듯이, 천주교든 정교회든 다른 개신교든 타 종파에서 성공회로 옮길 때, 해당 기성 기독교 종파에서 세례 받은 것을 다 인정해준다.[93] 반면 그래서 이단에 대해서 취약하다는 평을 듣기도 한다.[94] 2020년 의장주교의 새해 사목교서에는 최근 일부 교회가 이단에 피해를 입고 있다며 이단을 경계하라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대한성공회는 한국기독교장로회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교단, 감리회와 활발히 교류한다. 한국기독교장로회의 경동교회[95],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의 새문안교회[96], 기독교대한감리회 정동교회[97] 등과 교환예배를 하기도 한다. 또한 매년 연초에 있는 교회일치 기도회[98]도 주로 서울주교좌성당에서 개최된다.

천주교정교회와 같은 보편교회들과도 교류를 하고 있다. 성공회는 천주교나 정교회도 같은 믿음의 형제로 보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이들과의 교류를 자연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특히, 한국 정교회와의 사이가 매우 돈독하다. 6.25 전쟁 중에 성당이 파손당한 정교회의 신자들이 새 성당이 지어지기 전까지 임시로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지하 예배당을 빌려 성찬예배를 드리기도 했었다.[99]

한국에서나 외국에서나 천주교 신부가 성공회로 개종해 사목하는 경우가 있다. 한국에도 구균하, 황인찬, 최석진, 정지원 신부 등 천주교 신부였다가 교리나 결혼을 이유로 개종하여 성공회 신부가 된 사람이 있다. 반대로 한국에도 성공회에서 천주교로 개종하는 경우가 있다. 한국전쟁 직전 윤달용(모이서) 신부가 천주교로 개종의 뜻을 밝히고 이를 준비중이었으나 한국전쟁으로 희생되어 이루어지지는 못했다. 대한성공회 대전교구 제2대 교구장을 역임한 노대영 주교는 영국으로 돌아간 후 천주교로 개종하고 천주교 신부로 재서품을 받았다. 또한 몇 년 전에는 대한성공회 신학생 전도사 한 명이 천주교로 개종하고 한 전통 천주교 단체[100]의 신학교에 입학했다. 다른 나라에서는 성공회 신부가 개별적으로 혹은 집단적으로 천주교로 개종하는 사례가 있다. 이러한 경우 천주교에서는 천주교로 개종한 성공회 성직자는 재서품[101]을 받는다. 단, 성공회에서 주교였지만 기혼자인 사람은 주교로 재성성받지는 못하고 신부로 재서품받는다. 천주교에서는 베네딕토 16세 교황 당시 성공회 출신 천주교 성직자를 위한 성직자치단 설립을 인가한 바 있다.

물론 교회일치운동에 앞장서는 건 대한성공회만의 특징이 아니라, 세계 성공회의 특징이기도 하다. 세계 성공회는 '본질적인 것에 일치됨, 비본질적인 것에 다양함'이라는 입장으로, 다른 종파와의 우애, 관용, 공존을 추구하고 있다.[102] 19세기 이래 천주교과 일치를 위한 대화가 끊긴 적이 없으며, 정교회와의 관계는 전통적으로 돈독했다. 구 천주교 위트레흐트 연합(Union of Utretch) 속한 복고 천주교교회, 필리핀 독립교회(The Iglesia Filipina Independiente), 성 토마 시리아 교회(The Mar Thoma Syrian Church of Malabar)와는 완전한 상통, 성사 교류[103]를 이루어냈다.#

영국 성공회의 중심지인 캔터베리 대성당에서 행해지는 강론에서도 마더 테레사 수녀나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신부, 마틴 루터 킹 목사와 같은 천주교 성인과 개신교 목회자들이 신앙의 모범으로 언급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또한 영국 성공회가 현재 관리하고 있는 (헨리 8세가 해산시키기 이전의) 옛 수도원 건물들에서 정기적인 천주교 미사를 드리는 것을 허락하는 경우도 있다.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설립자도 영국 성공회 신부였다.

다만 최근 들어 보편교회들과의 교류가 점차 어려워지는 상황이다. 여성 성직자 허용 문제와 성소수자에 대한 입장 차이가 제일 큰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 성공회가 여성의 성직자 서품을 허용함으로 인해서, 성공회의 사도전승을 인정하려 했던 정교회가 그 결정을 사실상 철회했다.[104] 여성의 서품은 보편교회에서 매우 강경한 입장을 취하는 문제로 이 당시 일부 정교회 주교들이 성공회의 이런 결정에 매우 격노했다고 전해진다. 천주교도 성공회의 여성 서품에 대해 정교회와 비슷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105][106]

성소수자에 대한 입장 차이는 여성 성직자 서품에 대한 논쟁이 꽤 쉬운 문제로 보이게 할 정도로 어렵고 복잡한 문제이다. 성소수자를 옹호하는 광교회파의 행보로 인해 보편교회들과 보수적인 개신교 교파들에게 경계의 대상이 된 것은 물론이고, 성공회 내부에서도 큰 분란이 일어났다. 세계 성공회가 동성결혼의 교회법적 인정을 강행한 미국 관구에게 3년간 관구로서의 자격을 정지시킨 것.[107]

5. 여담

  • 성공회는 선교 초기부터 한국 문화의 토양에 깊이 뿌리를 내린 교회가 되고자 토착화에 힘썼다. 그래서 한국 건축 양식인 한옥으로 지은 성공회 교회들이 지금도 강화군 강화읍(강화읍교회), 강화군 온수리(온수리교회), 청주시 수동(수동성당) 등에 남아 있다.
  • 대한성공회가 1945년 광복 당시 일본 관구 소속이 아니라 영국의 캔터베리 관구 소속이었던 것은 천운이었다. 다행히 성당과 교구 재산이 적산가옥으로 취급되어 몰수되는 상황을 비켜갈 수 있었다. 이에 반해, 정교회 한국 교구는 당시 일본 정교회 소속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광복 후에 교회 재산이 모두 적산으로 분류되어 몰수되는 날벼락을 맞았다.
  • 1908년 첫 한국어 공동기도문을 발간한 이래로, 1912년·1939년·1965년·1972년·1982년·1992년·1999년·2004년·2015년 개정을 하였다. 2004년판 부터는 공동기도문이 아니라 성공회 기도서가 공식 명칭이 되었다. 참고로 이전의 공도문들은 폐지되거나 금지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공도문으로 감사성찬례를 드릴 수 있다. 이는 성공회 성가도 마찬가지이다.
  • 공동번역 성서를 교단 차원에서 표준 성서로 채택해서 사용하고 있다. 대한성공회 외에 정교회 한국대교구와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 향린교회와 기독교대한복음교회 소속 민통선평화교회 등에서 공동번역성서를 쓰고 있다. 또한 개신교 중 교회 일치 운동에 참여하는 개교회들이 공동번역성서를 예배용 성경으로 사용하기도 한다.[108]
  • 제사 문제에 대해서는 천주교과 비슷한 입장이다. 제사 자체를 금하지는 않으나 제사에 조상숭배의 종교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금한다. 개신교 출신 성공회 신자가 상당수라서 그런지 현실적으로 차례나 제사를 지내는 신자는 별로 없는 듯 하다.
  • 유럽이나 북미의 성공회 고교회파[112]에서 아주 가끔씩 나오는 천주교와의 유사성을 강조하며 통합을 이야기하는 움직임은 국내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한국 천주교가 결혼한 남성 성공회 신부는 어찌어찌 인정한다 해도 성공회 여성 신부를 인정할 가능성은 없는데, 현재 대한성공회 안에서 여성 신부들은 성실히 자신의 소임을 다하고 있고 교인들도 여성 신부들을 잘 따르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국내 성공회 신자 중에는 진보적 관점의 신학을 지지하거나 적어도 사회 참여를 소홀히 하지 않는 신앙을 가진 사람이 꽤 많은데 이것도 역시 천주교와 잘 맞지 않는다. 대한성공회 내에서 우스개로라도 천주교와의 통합 이야기가 나오면, 감리회[113]기독교장로회[114]로 가면 갔지 천주교로 왜 가느냐는 반응이 나오곤 한다. 주로 청년이나 중년층에서 이런 분위기가 강하며, 특히 천주교 교리의 보수성 때문에 성공회로 온 신자의 경우가 그렇다. 대를 이어 성공회 신자인 사람이나 고교회적인 신앙을 고수하는 나이 지긋하신 분들의 분위기는 또 많이 다르다.[115] 현재는 적지 않은 신자들이 자기 신앙의 성향에 따라 다른 개신교 교파나 천주교로 떠나기도 하고, 반대로 다른 교파에서 회의를 느낀 신자들이 대안을 찾아 성공회 교회를 방문하기도 하는 실정이다.
  • 옆나라 일본은 성공회 신자 수가 6만 정도다. 그러나 일본은 기독교인이 다 해야 100만 정도밖에 안 되기 때문에[116] 일본 기독교 내에서 성공회의 입지는 꽤 큰 듯하다.[117] 나라 안에서 그리스도교 교세가 작은 가운데 그리스도교 내 교파의 입지가 큰 일본성공회와, 나라 안에서는 그리스도교 교세가 크지만 그리스도교 교세에서 너무 작은 교파인 대한성공회의 상황[118]이 대비가 된다. 일본성공회는 대한성공회와 매우 긴밀히 교류하며 양국 간의 우호 증진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지속적으로 "일본이 한국에게 저질렀던 과오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성공회의 성직자 뿐 아니라 평신도 중에서도 한국에 와서 직접 사죄를 하기도 했다.[119]
  • 미국에는 한인 성공회 교회들이 여럿 있는데, 첫 한인 신부는 박상준 요한 신부가 1916년 신부 서품을 받았다. (대한성공회 출신인 조광래 신부가 첫 한인 신부라고 잘못 알려진 경우가 흔하다.) 첫 한국인 신부 김희준 마가 신부를 배출한 대한성공회와 비교해 1년 차이 밖에 나지 않는다. 대한성공회 출신 신부가 한인 교회를 담당하는 추세이나 워낙 숫자가 미미하기 때문에 따로 요청하는 경우는 이제 드물고 이미 1.5세나 2세 신부들이 있다. 이들은 모두 미국 성공회에 소속되어 있고 한인 성공회 교회들도 모두 미국성공회 각 교구에 속해 있다.
  • 예수원을 세웠던 대천덕 신부 이후 아직 이렇다 할 신학자가 나오지 않는 상황이다. 현재 세계성공회에서는 주로 톰 라이트, C. S. Lewis, 존 스토트, 로완 윌리엄스, 스탠리 하우워어스 등 권의 신학자들이 성공회 신학을 대변한다.
  • 2011년 공식 통계상 성공회 신자 수는 5만 명이다. 하지만 실제 신앙생활을 하는 신자 수는 공식 통계보다 훨씬 적다고 하며, 공식 통계상 신자 수와 실제 신앙생활을 하는 신자 수의 간극이 꽤 크다고 한다.[120] 냉담자가 많은 것이다. 그리고 다른 개신교, 천주교를 떠나 성공회로 입교하는 사람도 있지만 반대로 성공회를 떠나 다른 개신교, 천주교로 옮기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한다. 그 중 저교회 성향인 사람은 개신교로, 고교회 성향인 사람은 천주교로 옮기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 2018년 서울, 대전, 부산교구의 각 교구의회에서 보고된 교적수 및 주일 감사성찬례 평균 출석자수는 다음과 같다.
    서울교구: 10,718명 / 4,722명
    대전교구: 2,673명 / 1,374명
    부산교구: 850명 / 387명
    총 14,241명 / 6,483명
    세 교구 모두 2010년 이전까지는 외연이 확장되는 추세였다가 2010년대 이후 감소하거나 정체되는 모습을 보인다.
  • 세계성공회공동체(Anglican Communion)를 이루는 같은 성공회 교회라도 각 성당마다 사목적 지향, 교회의 분위기나 정서 등은 각양각색이다.
  • 대한성공회 대전교구 소속 한 신부가 자신이 관장으로 있는 복지관에서 장애인들을 성추행한 사건이 사회에 드러나 파장이 일어난 적이 있다. 진보적 기독교 교단이라고 해서 성범죄 문제에서 자유롭지는 않다는 점이 드러난 셈이다. 특히 이 사건 후 대전교구 몇몇 신부가 인터넷에 사건을 적극적으로 폭로하고 다니는 사람을 고소한 사건도 일어나, 더욱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 전 서울교구장 김 아무개 주교의 횡령 의혹이 제기된 적이 있으며, 이에 항의하는 집회도 있었다. 김 아무개 주교는 의혹이 제기된 후 정해진 임기보다 앞서서 서울교구장에서 사임했다. 성범죄 문제와 마찬가지로, 진보적 기독교 교단이라고 해서 부패 문제에서 자유롭지는 않다는 점이 드러난 것이다.
  • 2010년 대한성공회 대구교회 조모 신부[127]가 종교간 대화에 참여하는 대한성공회 입장과는 배치되는 불교 폄하 활동에 참여하여 논란이 된 적이 있다.[128] 결국 당시 대한성공회 김근상 의장주교가 당시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자승스님에게 사과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 호주제 폐지 운동에 동참했으며 열린우리당, 국민참여당, 통합진보당 여성 부문에서 페미니스트들과 같이 활동했지만 지금은 페미니즘 비판 활동을 하고 있는 오세라비가 모태 성공회 신자였다고 한다. 유아세례를 받았고 결혼식도 성공회 성당에서 했지만 80년대 성공회를 떠났고 지금은 무종교인이다. 본인 페이스북 계정에서 성공회 성직자가 페미니즘에 너무 경도되었다고 언급한 적이 있으며 페미니즘 때문에 성공회 신부와 논쟁을 벌인 적도 있다고 한다.
  • 성공회 신부인 민김종훈 자캐오 등 몇몇 신부는 성소수자 인권 운동에도 활발히 참여할 뿐 아니라 여성 낙태권을 지지하고 메갈리아 성향의 급진 페미니스트를 두둔·옹호하는 등 페미니즘 운동에도 연대하고 있다. 자캐오 신부는 본인 페이스북 계정에 워마드 성체 훼손 사건 때 이를 옹호한 급진 페미니스트에게 쏟아지는 비판을 일체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설령 이 사건이 사실이라 해도 본인은 페미니즘 운동을 계속 지지할 것이라고 적었다.

5.1. 여성 성직자

2001년에는 대한성공회 최초로 여성이 신부서품을 받았다.[129] 주인공은 부산교구의 민병옥 카타리나. 1978년 성공회 신학대학원을 졸업했으나, 당시에는 여성의 서품을 허용하지 않아, 줄곧 전도사로만 머무르고 있다가[130] 졸업하고 23년이나 지난 후에야 신부서품을 받을 수 있었다. 대한성공회 내부에서 부산교구가 다른 교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교회파적이고 개방적이었기에 여성 신부서품이 가능했다는 평이 있다. 민병옥 가타리나 신부는 이후 10년간 사목한 후 2011년에 은퇴했다.

사실 대한성공회에서 최초로 여성이 부제고시에 합격한 것은 1994년이다. 주인공은 박미현 도미니카이다. 그러나 그녀는 합격했는데도 곧바로 부제품을 받을 수 없었고, 오랜 시간 기다려야 했다. 그나마 이것도 예전보다 발전한 것이었는데, 더 이전에 부제고시를 보았던 유명희 데레사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합격 판정 보류' 통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1998년 대전교구에서 이정운 페트라가 대한성공회 최초의 여성 부제가 되었고, 기약 없이 기다리던 그녀들도 부제품과 신부품을 받고, 사목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서울교구에서도, 2004년 김기리 미리암이 여자로서는 처음으로 신부서품을 받았다. 서울교구에서는 최초, 대한성공회에서는 5번째 여성 신부다. 그녀는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미학과 김문환 명예교수의 1남 1녀 중 둘째로, 본래 한국기독교장로회 경동교회에 다니다가 성공회로 옮겼다. 1998년 성공회대학교 신학대학원에 입학했지만 여성으로서 신부가 되는 것은 쉽지 않았고, 여성의 서품을 가로막는 제도와 싸운 끝에 신부가 될 수 있었다.# 성공회 성직자는 결혼 여부를 선택할 수 있는데, 위의 민병옥 신부가 독신인 반면 김기리 신부는 기혼이며, 남편 또한 성공회 신부라고 한다.

2007년에는 성가수녀회 오인숙 가타리나 수녀가 신부서품을 받아, 대한성공회 최초의 여성 수도신부가 탄생했다.[131] 한국전쟁 중 인민군에 의해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여동생과 함께 성공회 고아원에서 자란 오 수녀는, 자신을 헌신적으로 돌보아 준 수녀들에게 감동을 받아, 서강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한 후 성가수녀회에 입회했다. 그리고 수녀원장과 성공회대학교 영문과 교수 등을 지내며 활약하다가 신부로서의 부르심을 받아, 2007년 신부서품을 받았다. 2009년에는 성가수녀회 이양란 엘리사벳 수녀가 신부서품을 받아, 2번째 여성 수도신부가 탄생하였다.

위에 기술된 여성 성직자들을 필두로, 대한성공회는 지속적으로 여성들을 성직에 서품하였다. 최근에는 거의 모든 서품식에서 여성 부제/신부가 나오고 있으며, 현재 대한성공회에는 20여 명의 여성 성직자가 있다.

5.2. 타 교파와의 성찬례 교류 문제

천주교정교회에서는, 자기네 신자가 성공회 감사성찬례에 참석해서 성체를 영하는 것을 올바른 성체성사를 행했다고 보지 않아서 금지한다. 반대로 성공회의 입장에서는, 천주교 또는 정교회 신자가 성공회 감사성찬례에서 성체를 받아 모셔도(먹어도)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세례받은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라도 성공회 성찬례에 참여할 수 있다고 보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성찬례 교리로는 천주교이나 정교회 보다 훨씬 진보적이고 개방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천주교정교회에서는 성찬례를 행할 때, 포도주가 진짜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한다(화체설)고 믿는데 반해, 성공회는 이에 대한 견해가 자유롭다. 성공회 나름의 공식적인 견해가 있긴 있지만, 천주교와 정교회처럼 성변화를 믿는다고 해도 문제를 삼지 않는다.

그러니 혹시라도 성공회 감사성찬례에 참석해 보고 싶은 천주교 신자나 정교회 신자가 있다면, 그냥 체험을 위해 참석해야지 천주교 미사나 정교회 성찬예배에서의 영성체(성체성사)를 대신하러 가면 안 된다. 사실 성공회 측에서 천주교성찬례를 서로 교류하자는 요구를 몇 차례 했었으나, 천주교는 번번이 거절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아르헨티나에서 대주교로 있었을 때, 아르헨티나 성공회 대주교와 돈독한 관계를 가졌고[132], 천주교 미사에 참례할 수 없으면 성공회 미사에 참례하라고 독려했다. 교황으로 선출된 이후에도, 로마의 성공회 교회에 방문하여 '하느님의 자비가 모든 기독교 직분의 원천'이라는 매우 진보적인 발언을 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발언은 교리를 떠나 형제 교단에 대한 우애를 강조하는 측면에서 이해해야 한다. 또한 교황의 의견이라도 해서 전부 따라야 할 기준이 되는 것은 아니며 엄밀히 따져서 교황의 의견 중 따를 의무가 없는 개인 의견도 적지 않음을 고려해야 한다.

개신교 교파의 신자라면, 아무런 문제 없이 성찬례를 할 수 있다. 성공회는 정말 왠만한 기독교 교파의 세례를 모두 인정하고, 세례 교인은 성공회 교적 등록 여부와 상관없이 누구라도 성찬례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성찬례 참여 자격에 대해 너무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국내의 개신교 교파 중에 거의 유일하게 매주[133] 성찬례를 하기 때문에, 혹시라도 자신의 교회에서 성찬례를 너무 소홀히 하는 느낌이 든다면, 언제라도 가까운 성공회 교회에서 드릴 수 있다.

성공회의 예배인 감사성찬례는 천주교의 미사와 상당히 유사한 형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현대적이고 자유로운 찬양예배에 익숙한 개신교인이라면 다소 신기하고 어색할 수도 있으나, 기독교 예배의 다양한 형식 중 하나라 생각하고 기도서와 주보를 따라가면 된다. 실제로 성공회 같은 전례적인 예배에 호기심이 생겨 참석해보는 개신교인들이 의외로 많다.

참고로 서울주교좌성당에서 평일 감사성찬례를 드리는 경우 성요한성당(1층 성당)에서는 장궤를 하고 손으로 영성체를 받는다. 장궤를 하고 받지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 천주교와는 다르게 입으로 영성체하지는 않는다. 예전에는 대성당에서도 장궤를 하고 성체를 영했다. 아직도 장궤틀이 남아있다.

6. 인물

6.1. 성직자

  • 구균하 요나로렌스 - 천주교 신부였으나 교의에 대한 회의로 신부직을 내려놓고 무신론자로 지내다, 회심하고 성공회 신부가 된 경우.
  • 김근상 바우로 - 전 서울교구 교구장 겸 우리 관구장 주교. 2011년 부터 CBS(기독교방송) 이사로 재직하고 있다. 이사장으로 선출되어 2017년 7월부터 2년간 재임하게 되었으나 이런저런 논란으로 조기 은퇴하였다. 또 CBS에 파송할 수 있는 이사는 '현임 주교'였기 때문에 이사장직도 내려놓아야만 했다.
  • 김기리 미리암 -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최초의 여성 신부. 원래 한국기독교장로회 경동교회 출신이다.
  • 김성수 시몬 - 제2대 서울교구 교구장
  • 대천덕 르우벤[134] - 성공회 신부이자, 성공회 수도원예수원[135][136]의 설립자
  • 민김종훈 자캐오 - 대한성공회 '길찾는교회'의 담당 신부이자, '용산해방촌나눔의집'의 원장이다. 어린 시절부터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교단에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들을 위해 사목하겠다는 목적으로 순복음교회에서 전도사까지 되었다가, 성공회로 옮겼다. 우리나라 교계에서 드물게 성소수자를 위한 사목을 하는 성직자이다.
  • 민병옥 가타리나 - 대한성공회 최초의 여성 신부. 천주교나 정교회에서는 여성에게 신부 서품을 주지 않기 때문에, 한국 최초의 여성 신부이기도 하다.
  • 박동신 오네시모 - 현 부산교구 교구장 주교, 전 우리 관구장 주교. (2017-2018)
  • 박미현 도미니카
  • 오인숙 가타리나 - 성가수녀회 소속 수녀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수도신부.
  • 유낙준 모세 - 현 대전교구 교구장 겸 우리 관구장 주교
  • 유명희 데레사
  • 이경호 베드로 - 현 서울교구 교구장 주교 (2018-), 학부는 한신대학교 신학과. 김근상 바우로 전 교구장 주교의 조기 사임으로 인해 조기 취임. 2019년 성삼위일체 축일 강론 때 성공회의 정치 중립적 성격을 명확히 언급하는 영향력 있는 발언을 했다. https://youtu.be/1DZi3K_wG3M 29:06부터
  • 이양란 엘리사벳 - 성가수녀회 소속 수녀
  • 이재정 베드로 - 대한민국정치인이자 성공회 신부로, 참여정부에서 2006년부터 2008년까지 통일부 장관을 지냈고 2014년 6월 4일 경기도 교육감으로 선출되었다. 성공회에서는 이럴 경우에 휴직 처리가 된다. 언제든 다시 성공회 신부로 돌아갈 수 있는 것. 근데 돌아오시면 나이로는 벌써 원로신부다. 바로 은퇴 감사성찬례 해야 하실 듯
  • 신알렌 - 미국 성공회 최초의 한인 주교. 2014년 뉴욕교구의 보좌 주교로 선출됐다. #
  • 주낙현 요셉 - 서울주교좌성당 현 주임신부. 어릴 때 예장합동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했고 대학 때 한국기독교장로회에서 민중교회에 참여했다가 성공회로 옮겨서 성직자가 되었다. 학부는 연세대학교 신학과 출신.
  • 최석진 요셉 - 천주교 신부였다가 회심하고 성공회 신부가 되었다.
  • 황인찬 베네딕토 - 천주교 신부였다가 회심하고 성공회 신부가 되었다. 신부이면서 목수로 일하고 있다. 천주교 신부 시절 강원도 평창군의 대화성당을 설계하고 건축했다고 한다.

6.2. 일반 신자


[1] '관구(管區, province)'라는 개념이 국내의 개신교인들에게는 생소할 수도 있다. 성공회·정교회·천주교 등 주교제가 확립된 기독교 교파에서 교회를 지역에 따라 나눌 때 사용하는 가장 큰 단위라고 생각하면 된다. 관구는 최소 2개 이상의 교구로 구성된다. 대한성공회는 서울교구·대전교구·부산교구 3개 교구로 구성되어 있는 관구이다. 성공회는 전세계에 40개 관구가 있으며, 영국 켄터베리 관구의 관구장 주교가 '평등한 가운데 첫째(Primus inter pares)'가 되어 성공회를 대표하고 있다.[2] 천주교의 보수적이고 엄격한 교리 때문에 옮겨온 사람이다. 여성은 성직자가 될 수 없는 점이라든가 성소수자에 대한 태도 등의 문제에 반발하는 이들도 있다.[3] 다만 천주교의 입장을 설명하자면, 천주교에서 남성만이 성품성사를 받도록 하는 것은 결코 여성을 차별하거나 천대해서가 아니다. (천주교뿐 아니라 정교회에서도 여성의 서품을 허용하지 않는다) 또한 천주교는 성소수자를 미워하거나, 배척하거나, 저주하지 않는다. 반대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동성 간 육체관계와 동성결혼 같은 행위이지, 성소수자(사람)가 아니다. 동성애 성향을 가진 사람이라도 동성애 행위를 하지 않고 절제하여 정결을 지키며 산다면 천주교 신앙생활을 하는 데 문제가 없고, 구원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4] 한국의 경우 2011년 성공회 공식통계로는 5만명이나 실제 신앙생활을 하는 신자 수는 1만 명 미만이라고 성공회 안팎에 알려져 있다. 통계와 실제 교세와의 차이가 상당히 큰 것이다. 다른 교단 대부분도 통계와 실제 교세의 차이가 4-5배 정도 있다고 하지만 대한성공회는 다른 교단들에 비해서도 특별히 통계와 실제 교세의 차이가 큰 편이다. 대한성공회 교인 통계는 실제 교세의 8-10배 이상이라고 보면 된다.[5] 주한영국대사관과 가까운 위치에 있다. 사실 이 성당과 영국 대사관 모두 예전 덕수궁의 원래 권역 안에 있는 것이다. 덕수궁 건물 중 하나인 양이재 건물이 주교관으로, 현재 대성당 경내 안에서 신부관으로 사용되고 있다.[6] 성소수자를 위한 선교형 교회인 '길찾는 교회'가 있다.[7] 자유주의 신학관부터 보수적 복음주의 신학관까지. 다만 근본주의 신학관은 약한 편이다. 그러나 근본주의 성향을 가진 신자들도 없지는 않다.[8] 천안시, 아산시, 청주시, 진천군, 음성군[9] 18세기 경직되었던 영국 성공회에 존 웨슬리 등을 필두로 한 복음주의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그 당시 천주교적인 형식과 보편교회로서의 전통을 고수하던 부류에서 '우리가 고교회(high church)고 복음주의에 영향을 받은 너희들은 저교회(low church)다.'라며 만든 용어가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국교회에 남았던 청교도의 계통이거나, 당시 웨슬리 혹은 청교도(조지 휫필드 등)복음주의의 영향을 받은 성공회 신자들 중에 성공회에 남은 부류가 저교회파가 되었고, 성공회를 나간 부류가 감리회를 세우게 된다. 감리회의 기원은 존 웨슬리가 안수한 사역자들이다. 이들은 잉글랜드 국교회에서 완전한 개혁에 동의하던 주교들이, 국교회에서 받은 서품이 없던 목사들(청교도)을 강사로 임명하던 것과 잇닿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10] 한국에 처음 성공회가 전래된 19세기 말엽은 영국에서 옥스퍼드 운동이 활발하던 시기였다.[11] 대한성공회도 1980년대 이후 저교회파와 광교회파 성향이 강해졌고 고교회파는 아예 성공회를 떠나거나 고교회파적 정체성을 버린 경우도 있어서 고교회파 영향력이 많이 남아있다고 할 수는 없다.[12] 성공회의 미사.[13] 그렇지만 천주교 성당 중에서도 전통 천주교 성당에서는 복사 수만 충분하다면 연중 주일에도 십자가 입당식과 향 피우기를 한다.[14] 대부분의 한국 천주교 성당은 사도신경을 낭송한다.[15] 성공회 내에서 현대적 신학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부류로, 사회 참여를 강조한다. 성공회에서 진리 추구의 세가지 기준으로 제시하는 전통, 성서, 이성 중에 고교회파는 전통을, 저교회파는 성서를, 광교회파는 이성을 조금 더 중요시하는 부류라고 이해하면 될 것 같다.[16] 성공회는 보편교회(천주교)주의, 복음주의, 자유주의를 아우르는 신학의 스펙트럼을 보인다. 성공회 전통 안에서 성공회는 그들을 내치지 않고 보듬어 안고 있다. 다른 어떤 기독교 교파도 가지지 못한 이런 전통은 현재 성공회가 보이는 신학의 유연성과도 직결되며, 교회일치 운동에 앞장설 수 있는 사상적 토대가 된다. 그러나 이러한 유연함이 오히려 타 교파의 경계를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여성신부 서품을 허용하면서 천주교정교회와의 관계가 서먹해지는 것,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광교회파로 인한 내외부의 갈등 등이 그 예.[17] 기독교에서 말하는 희생은 지성(知性)의 희생이 아니다. 성공회는 모든 진리가 하느님에 대한 진리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성공회에는 전통적으로 존 폴킹혼이나 알리스터 맥그래스와 같은 과학자 출신 성직자들이 존재하여, 과학과 신학의 조화를 꾀했다. 성공회는 기독교가 역사상 언제나 그러했듯이 지금도 여전히 머리와 가슴을 모두 사로잡는 강력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창조과학을 옹호하는 보수적인 교회에 출석하다가 성공회 교회로 옮긴 교인들 중에는, 기독교인으로 살면서 애써 외면해오던 이성적인 장애물들 가운데 많은 부분이 해소되어 평안하다는 사람도 있을 정도이다.[18] 삼위일체론이라던지 예수의 고난과 부활 같은, 기독교의 핵심적인 교리에만 어긋나지만 않는다면, 어떤 주장을 한다고 해서 성공회 신자로 보지 않는다든지 교회에서 강제로 그 신자를 설득한다든지 하지 않는다.[19] 내리감리교회와 같은 동네에 있다.[20] 복음사가 성 마르코를 예전에는 마가 내지 말구라고 불렀다. 개신교에서는 지금도 '마가'라고 부른다.[21] 이후 1974년 부산교구가 대전교구에서 독립하면서, '대청동성당'은 부산교구를 치리하는 '부산주교좌성당'이 된다.[22] 1938년 장로회마저 신사참배의 압력에 굴복하였다. 이때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조선예수교장로회를 나온 장로회 교인들이 예장고신(고려신학)이라는 분파로 나누어졌다. 고신은 끝까지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믿음을 지켰다. 예수교장로회의 수많은 교파들 가운데 분리의 명분이 가장 마땅하고 옳았던 교파이지 않을까 생각된다.[23] 신사참배를 교단 차원에서 끝까지 거부한 것은 침례회의 전신인 동아기독교가 유일했다. 동아기독교는 교단이 폐쇄되고 32명의 목사가 투옥되어 고초를 겪는 등 혹독한 대가를 치루었다.[24] 어차피 이런 꼴을 당할 줄 미리 알았더라면, 불과 4년 전 하느님 앞에 큰 죄를 지으며 굴욕적으로 신사참배를 받아들이는 어리석은 짓은 안 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드는 장면이다. 악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하면 그 악은 차츰 더 큰 대가를 요구한다는 것을 역사는 가르쳐주고 있다.[25] 이와 관련하여 2015년에는 대한성공회와 일본성공회 간 메시지 교류가 있었다.[26] 모세를 예전에는 모이서라고 했다.[27] 사도 성 바울로를 예전에는 바울 내지 바우로라고 했다.[28] 성공회에서는 역사적/문화적 정체성을 공유하는 교구가 3개 이상이어야 한 관구로 독립할 수 있다.[29] 세계 성공회에는 40개의 관구가 있으며, 40명의 관구장 주교는 모두 평등하다. 단 켄터베리 관구의 관구장 주교가 '평등한 가운데 첫째'로 불린다.[30] 성공회에서는 각 교구의 주교좌성당이 있는 교무구를 중앙교무구라 부른다.[31] 서울주교좌성당, 성가수도회(수녀회), 약수동교회[32] 대학로교회[33] 상계동교회[34] 도봉교회[35] 동대문교회[36] 성북나눔교회[37] 용산나눔교회[38] 일산교회, 행신교회[39] 의정부교회[40] 연수리교회[41] 포천나눔교회, 예수평화마을[42] 동두천교회[43] 강남교회, 전례음악 등이 영국 성공회 분위기가 많이 난다. 성가대 지휘자가 영국 유학파다.[44] 강동교회[45] 봉천동교회[46] 영등포교회[47] 송파교회, 1987년 강남교회에서 분가하였다.홈페이지[48] 성남교회, 분당교회[138][49] 구리교회[50] 남양주교회[51] 하남교회[52] 춘천교회, 성프란시스수도원(수사회)[53] 강릉교회[54] 항동교회, 대학교회(성공회대학교 교내 교회), 성공회대학교[55] 광명교회. 광명교회가 영등포교회에서 분가되었음에도 강남교무구가 아닌 서부교무구로 편제되었다.[56] 부천교회[57] 김포교회[58] 내동교회, 한국 최초의 성공회 교회이다.[59] 화수동교회[60] 간석교회, 서창교회[61] 부평교회[62] 계양교회[63] 서인천교회[64] 안양교회[65] 산본교회[66] 안산교회[67] 수원교회, 세류동교회[68] 오산세마대교회, 제자교회라고도 부르고 성공회에서 청년신자 비율이 꽤 높은 곳이다.[69] 평택교회, 팽성교회, 안중교회, 대안리교회, 송탄교회[70] 용인교회[71] 이천교회[72] 여주교회[73] 하나만으로 교무구가 구성될 정도로 성공회 교세가 센 지역이다.[74] 강화읍교회, 내리교회, 냉정리교회, 넙성교회, 삼흥리교회, 석포리교회, 선수리교회, 송산교회, 온수리교회, 장화리교회, 초지교회, 흥황리교회[75] 대전주교좌교회, 성남동교회, 유성교회, 보문교회[76] 강원도 남부만이 대전교구 소속이고, 강원도 북부는 서울교구 소속이다.[77] 원주교회[78] 태백교회, 예수원[79] 내수교회, 금왕교회, 복대동교회, 초평교회, 복계교회, 대소교회, 대소원교회, 교현교회, 수동교회, 봉전교회, 음성교회, 묵방교회, 진천교회, 오창교회,산남동교회,광혜원교회[80] 공주교회, 금산교회, 당진교회, 온양교회, 예산교회, 병천교회, 봉항교회, 둔포교회, 백석포교회, 부대동교회, 봉명동교회, 원성동교회[81] 호남은 성공회 교세가 크지 않아서, 광주광역시/전라남도/전라북도를 묶어 한 교무구를 구성한다.[82] 전주교회, 경원동교회, 김제교회, 정읍교회[83] 여수교회[84] 광주교회[85] 부산주교좌교회, 동래교회, 서면교회, 덕포교회, 기장교회[86] 마산교회, 진주교회, 거제교회, 성분도수도원(수녀회)[87] 제주교회, 서귀포교회[88] 울산이 부산·경남이 소속된 중앙교무구가 아니라 대구·경북과 함께 북부교무구에 소속되어있다.[89] 대구교회, 서대구교회[90] 포항교회(이번 포항지진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상주교회, 영주교회, 구미교회, 성프란시스수도원(수녀회)[91] 울산교회, 서울산교회, 경주기도소[92] 흔한 일은 아니지만 평신도가 주교의 관면을 받아 감사성찬례에서 설교를 하기도 한다. 고교회파 교회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93] 장로회, 감리회세례명이 없는 개신교 교단 출신이 성공회에서 타 교파 영접식이나 견진성사를 받을 때 세례명을 설정할 수 있다.[94] 요즘 이단들은 너무 잘 알려져 있어서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새로 생긴 이단에 대한 대처가 늦을 수 있는 문제는 있을 수는 있다.[95] 한국 교회일치운동의 산실이자 기장 교단의 대표적인 교회이다.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첫 여성 신부인 김기리 미리암 신부가 성공회로 옮기기 전 다니던 교회라는 인연도 있다. 2017년 현재까지도 매년 1번씩 교환예배가 이어지고 있다.[96] 영락교회와 더불어 예장통합 교단의 대표적인 교회 중 하나이고, 또한 한국 장로회 역사에서 매우 비중이 큰 교회이기도 하다.[97] 인천내리교회와 함께 한국 감리회에서 역사상 비중이 큰 교회로 꼽힌다.[98] 천주교, 정교회, 성공회, 기타 개신교 연합[99] 사실 그 당시가 지금보다 더 사이가 좋았다. 그 때는 성공회의 여성 신부 서품이 이뤄지기 전이라서 전반적으로 당시 세계적으로 성공회와 정교회 간 사이가 상당히 좋았기도 했고 당시 대한성공회는 지금보다 고교회파 성향이 더 강했다. 그렇지만 최근 정교회 한국대교구에서 분립한 러시아정교회 대한교구의 경우에는 성공회에 대해서 꽤 비판적이고 성공회와 교류하는 것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100] 성 비오 10세회[101] 천주교에서는 성공회 사도전승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102] 성공회 안에 존재하는 여러 갈래의 신앙 태도(churchmanship)에 대해서도 같은 입장으로 공존하고 있다.[103] '서로의 주교가 상대 교단의 서품식에서 서로 안수하며 서로의 성직자를 교환하여 파송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해당 교단 신자들은 상대방 교단의 영성체에 참여하는 것도 가능해진다.[104] 한때 정교회 측에서 성공회를 자신과 같은 보편교회로 인정하려는 움직임이 일기도 했으나 성공회가 여성에게도 신부 서품을 주기로 결정을 하면서 결국 사실상 철회됐다. 정교회는 천주교에서도 인정하는 보편교회로써 만약 계획대로 정교회에서 성공회를 보편교회로 인정했다면 성공회의 보편교회로서의 입지가 매우 단단해지는 계기가 될 수도 있었다. 당시 성공회는 정교회가 여성 신부 서품에 절대 반대하고 있으며 여성에게 신부 서품을 줄 경우 보편교회로 인정을 못 받을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강행했던 것을 달리 생각해보면, 성공회가 그만큼 여성 신부 서품에 대해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105] 구 천주교교회도 여성의 서품으로 천주교가 아니라는 비판을 들었다.[106] 하지만 천주교와 정교회의 여성 성직자 반대는 21세기 여성인권과 양성평등의 가치에 위배된다는 지적도 상당히 받고 있다. 해당 종파 내 진보파가 여성 신부 인정을 지속적으로 주장해오는 것도 이 때문.[107] 이전 버전에서는 동성애자 신부 인정이라고 써져 있었으나, 사실은 동성결혼 인정 문제가 가장 주된 이유였다. 동성결혼의 교회법적 인정에 반대하는 영국 성공회도 정결 서약을 한 동성애자에 한정하여 제한적으로 성소수자 신부 서품을 인정하고 있다.[108] 주로한국기독교장로회의 일부 교회에서 쓰이고 있다. 하지만 향린교회는 2018년부터 표준새번역 성경으로 바꿔 사용하고 있다.[109] 전례독서는 주일 감사성찬례 전례독서(주일에 사용하며 가해, 나해, 다해 3년 주기로 구성)와 주간 감사성찬례 전례독서(짝수 해와 홀수 해 2년 주기로 구성)로 구분된다.[110] 연세대학교 이사회를 구성하는 12명의 이사 가운데 4명이 이렇게 개신교 교단들에게서 각각 파송을 받아 임명되었다.[111] 조선일보 일가로 알려진 그 방우영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사실상 주인 없는 연세대 이사회를 사유화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조카인 방상훈 조선일보 대표이사와 그 가족은 성공회 신자이다. 서울주교좌성당 1996년 증축 완료 당시에는 조선일보 사주 일가에서 성당에 증축 기념비까지 세워줬다. 우연의 일치인지 조선일보 사옥이 서울주교좌성당에서 꽤 가까운 거리에 있다.[112] 이미 유럽이나 북미의 성공회 고교회파의 적지 않은 수가 천주교에 귀의했다.[113] 감리회와 성공회 저교회파는 탄생부터 쌍둥이 같은 관계였다. 함께 태어나 다른 환경에서 자라게 된 것. 감리회 문서 참조. 한국의 감리회는 장로회의 영향을 많이 받아 약간 다르긴 하지만, 세계적으로는 현재도 둘 사이에 교리나 분위기가 대동소이한 편이다.[114] 진보적인 신학을 중요시하는 신자들의 경우에는 감리회보다 기장에 더 동질감을 느낀다.[115] 대한성공회가 고교회 일색에서 저교회나 광교회의 요소들을 차츰차츰 받아들이기 시작했던 70-80년대에 꽤 많은 모태 성공회 신자와 고교회파 성향 성공회 신자가 이미 성공회를 떠나 천주교로 교파를 옮기기도 했다.[116] 천주교가 약 50만명, 정교회는 약 1만명, 개신교가 약 50만명으로 집계된다.[117] 도쿄 소재 명문 대학 중 하나인 릿쿄대학이 일본성공회 재단이다. 윤동주 시인이 일본 유학 시절 다녔던 대학으로, 릿쿄대학 유학 당시 교목이었던 다카마츠 다카하루 교수에게 특별히 많은 가르침과 도움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118] 실제 신앙생활을 하는 신자 수는 1만 명 미만[119] 공교롭게도 김종필한일협정을 체결했던 오히라 마사요시 총리도 성공회 교인이었다.[120] 한국의 경우 2011년 성공회 공식통계로는 5만명이나 실제 신앙생활을 하는 신자 수는 1만 명 미만이라고 성공회 안팎에 알려져 있다. 공식통계상 신자 수와 실제 신앙생활 신자 수의 차이는 다른 교단에 비해서도 대한성공회가 큰 편이다.[121] 광명시 아방리 2길 10[122] 성공회대학교 정문 바로 길 건너[123] 오산시 세남로 14번길 25[124] 서울시 강남구 학동로 42길 34[125] 파주시 노을빛로 109동 14호[126] 서울 종로구 대학로 93, 대학로교회 성당을 함께 사용한다[127] 설교나 신학관은 저교회파 성향이었지만 전통적인 성공회 집안 출신인지라 전례적인 면에서는 고교회성향이 있었다. 현재는 미국 내 한인성공회에 있다.[128] 단순 참여가 아니라 아예 대구지역 목사들과 같이 불교비하 동영상 제작과 사찰 땅밟기를 주도해서 더 문제가 되었다. 진정한 교회일치[129] 영국에서는 1862년 여성이 첫 부제 서품을 받았다.(참고로 '부제'다. 잉글랜드 성공회의 신부서품은 1994년이다.) 영국 성공회와 대한성공회에서의 첫 여성 성직자의 서품 연도가 이렇게 차이 나는 이유는, 성공회에서는 교회 치리에 대한 많은 부분을 세계성공회공동체에 속한 각 지역 성공회 관구의 전통에 맡기기 때문이다.[130] 전도사라는 직책이 성공회에서 흔한 건 아니다. 성직자가 아닌 전업 교역자에게 직책을 줘야 할 때 주고 있다. 타 개신교 교파에서의 전도사의 의미도 목사가 아닌 전업 교역자 정도의 의미를 가지는 경우가 많다. 물론 신학대학원이나 그에 해당하는 과정을 마친 후 말이다.[131] 수도자수녀가 성직자인 신부를 겸하게 되는 것이다. 천주교정교회는 여성이 신부 자체가 될 수 없기 때문에 당연히 여성 수도신부도 있을 수 없고, 남성 수도신부만 있다(수사신부, 성직수사).[132] 여담으로 교황의 말에 따르면 48년째 지기로, 하느님께서 그를 의인이라 부르셨다 믿는다고 밝혔다.#링크된 책 90p[133] 더 엄밀히 말하면 모든 예배(감사성찬례)[134] Reuben Archer Torrey Ⅲ, 루번 아처 토레이 3세[135] 강원도 태백시 외나무골길 97(하사미동)[136] 대전교구 강원교무구 특수 선교 교회[137] 김종철, 김종희, 김종식 등 일가가 신앙을 공유하며 특히 어머니와 아내가 독실한 신자로 유명하다. 김승연 본인도 소년 시절에 성공회 성당에서 복사활동을 한 적이 있다. 참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