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거양성체 때의 모습. 계단의 높이에 따라서 사제, 부제, 차부제다. |
1. 개요
라틴어 : Missa Tridentina
프랑스어 : Messe tridentine / Rite tridentin
독일어 : Tridentinische Messe
스페인어 : Misa tridentina
이탈리아어 : Messa tridentina
영어 : Tridentine Mass / Traditional Latin Mass (약어: TLM)
정식 명칭은 로마 전례 특별 양식(Forma Extraordinaria)에 의한 미사 성제이다.[1]
트리엔트 공의회[2] 권고에 따라 1570년에 「로마 미사 경본」이 반포된 후부터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 개혁 전까지는 물론 지금도 계속 전세계의 로마 예법[3] 가톨릭교회에서 봉헌되고 있는 전통 미사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후 새 미사가 도입되었을 때는 새 미사 정착을 위해 15년간 거의 금지되다시피 했지만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장상 주교의 허락이 있을 경우 트리엔트 미사 봉헌을 허용한다"는 교서를 발표했고 2007년 7월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발표한 자의교서 「교황들」에 따라 모든 사제는 교구장 주교나 수도회 장상의 허락 없이도 자유로이 트리엔트 미사를 드릴 수 있게 되었었다.
"바오로 6세가 반포한 「로마 미사 경본」은 라틴 예법 가톨릭 교회의 ‘기도 법칙’(Lex orandi)의 통상적인 표현이다. 그러나 비오 5세 성인이 반포하고 요한 23세 복자가 재간행한 「로마 미사 경본」도 동일한 ‘기도 법칙’의 특별한 표현으로 간주해야 하고 그 유서 깊은 오랜 관습에 마땅한 경의를 표해야 한다. 교회의 기도의 법칙에 대한 이 두 표현이 어느 방식으로든 교회의 ‘믿음 법칙’(Lex credendi)에서 분열을 자아내서는 안 된다. 실제로 이는 단일한 로마 예법의 2가지 방식이다."
베네딕토 16세, 자의교서 「교황들」(Summorum Pontificum), 『사도좌 관보』(Acta Apostolicae Sedis: AAS) 99(2007) 779.
베네딕토 16세, 자의교서 「교황들」(Summorum Pontificum), 『사도좌 관보』(Acta Apostolicae Sedis: AAS) 99(2007) 779.
“두 「로마 미사 경본」 사이에는 아무 충돌이 없습니다. 전례의 역사에는 성장과 발전은 있지만 단절은 없습니다. 이전 세대가 거룩한 것으로 여긴 것은 우리에게도 여전히 거룩하며 위대한 것으로 남아 있고, 갑자기 전적으로 금지되거나 해로운 것으로 여겨질 수 없습니다.”
베네딕토 16세, 1969년 전례 개혁 이전의 로마 전례 사용에 관한 자의교서 「교황들」(Summorum Pontificum) 발표에 즈음하여 주교들에게 보내는 서한, AAS 99(2007) 798.
베네딕토 16세, 1969년 전례 개혁 이전의 로마 전례 사용에 관한 자의교서 「교황들」(Summorum Pontificum) 발표에 즈음하여 주교들에게 보내는 서한, AAS 99(2007) 798.
그러나 프란치스코 교황이 2021년 7월 자의교서 「전통의 수호자들」(Traditionis Custodes)을 발표하면서 트리엔트 미사를 봉헌하기 위해서는 또다시 교구장 주교의 허가가 필요하게 되었고 교구장 주교도 교황청과 상의한 후에야 트리엔트 미사 봉헌을 허가해 줄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더 이상 합법적으로 전통주의 가톨릭 단체를 설립하는 게 불가능해졌다. 교서 이탈리아어 원문 및 영어, 독일어 번역본 한국어 번역본
제1조 성 바오로 6세 교황과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결정에 따라 반포하신 전례서들은 로마 예법의 기도 법칙(lex orandi)의 유일한 표현이다.
제2조 교구장 주교는 자기에게 맡겨진 개별 교회에서 모든 전례 생활의 지도자이고 촉진자이며 수호자로서, 자기 교구에서 전례 거행을 규정하는 일은 교구장 주교의 소관이다. 따라서 사도좌의 지침에 따라 자기 교구에서 1962년 『로마 미사 경본』을 사용하도록 승인하는 것은 교구장 주교의 독점적 권한이다.
프란치스코, 자의교서 「전통의 수호자들」(Traditionis Custodes)
제2조 교구장 주교는 자기에게 맡겨진 개별 교회에서 모든 전례 생활의 지도자이고 촉진자이며 수호자로서, 자기 교구에서 전례 거행을 규정하는 일은 교구장 주교의 소관이다. 따라서 사도좌의 지침에 따라 자기 교구에서 1962년 『로마 미사 경본』을 사용하도록 승인하는 것은 교구장 주교의 독점적 권한이다.
프란치스코, 자의교서 「전통의 수호자들」(Traditionis Custodes)
2. 명칭
흔히 트리엔트 미사(Sancta Missa Traditio Latina) 또는 전통 라틴 미사, 트리덴티노 미사[4]라고 불린다.[5] 옛 미사, 옛 양식(Vetus Ordo Missae, Forma Antiquior) 등으로 불리기도 했다. 제대가 벽에 붙어있어 가끔 '벽미사'라고 부르기도 한다. 엄밀히 말하면 현행 미사도 사실은 라틴어로 된 미사 경본이 표준판이고 벽에 붙은 제대에서 드려도 문제가 없으며[6] 그에 따라 미사를 봉헌하는 본당도 있으므로 부정확한 표현이다. 이에 반하여 이 문서에서 '지금', '현재'라고 명시된 시점의 자국어로 봉헌되는 '새 미사'는 미사 경본의 제목에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인준됨'이라는 내용이 들어있기 때문에 바오로 6세 미사라고 부르기도 하며 노부스 오르도 미사(Novus Ordo Missae), 새 미사, 현대 미사라고도 부른다.트리엔트 미사를 '로마 전례 특별 양식'이라고 표현할 때 '특별'이라는 말은 '통상'이라는 말에 대비되는 것으로서 기도 법칙의 '통상적인 표현'인 새 미사와 구분되는 '특별한 표현'이라는 것이다.
3. 개혁 전후
성 비오 5세는 커다란 사목적 열정으로 또한 트리엔트 공의회의 권고에 따라 교회 예식 전체를 쇄신하고 ‘교부들의 규범에 따라 쇄신되고’ 개정된 경본들이 출판되도록 감독하였으며, 이 경본들을 라틴 교회에서 사용하도록 하였다. 그 전까지는 서방 교회에서도 지역마다 전례 양식이 조금씩 달랐다. 즉, 성 비오 5세가 반포한 「로마 미사 경본」은 진정한 의미에서 서방교회의 첫 번째 통합 미사 양식이다.개혁 당시에는 역사가 200년 이상된 전례를 거행하는 지역 교회는 「로마 미사 경본」을 받아들이지 않을 자유가 있었으나 그런 전례 전통이 있는 곳마저 자청해서 「로마 미사 경본」을 받아들였다. 자기네 고유한 전례 전통을 지킨다는 자부심보다는 여러 지역 교회가 같이 쓰는 '표준판'을 함께 쓴다는 매력이 컸던 듯하다. 여기에는 인쇄술도 한 몫 하는데 이전까지의 경본은 그 내용이 방대하고 두껍기 때문에 필사할 때 오탈자가 있을 수밖에 없는 반면 「로마 미사 경본」은 인쇄술 덕분에 똑같은 사본을 보급할 수 있었다. 다만 최초의 인쇄된 미사 경본은 1474년에 등장해서 이미 거의 100년 전에 인쇄되긴 했다. 성 비오 5세 교황이 반포한 「로마 미사 경본」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 몇 번 개정이 있었으나 대폭 개정이라고 할 만큼 내용에 커다란 변화는 없었다.[7] 마지막 개정 결과물로 1962년판이 존재하는데 정확히 말하면 1963년에 인쇄된 판본이다. 1962년에 요한 23세 교황에 의해 미사 경본에 수정이 가해졌고 이게 실제로 반영된 것이 1963년이기 때문이다. 1962년판 미사경본, 특히 실제 미사에 사용되던 제대용 경본은 트리엔트 미사를 지지하는 신자와 고서적 수집가들에게 최고의 소장품 중 하나로 선호된다. 현재 1969년 전례 개혁 전 로마 전례라고 말할 때는 1962년판을 기준으로 한다.
트리엔트 공의회 때 여러 문제를 논의하면서 전례 문제도 불거졌다. 교부들은 각 지역 교회마다 전례가 달라서 통일성이 없고 신학적 비판을 거치지 않은 대중신심이 전례에 영향을 끼친 것도 있어서 교부 시대의 로마 전례로 돌아가기로 뜻을 모아 통합 미사 경본을 발간할 것을 결의하고 공의회를 폐막한다. 그 후 비오 5세는 트리엔트 공의회의 결정에 따라 1570년에 『 로마 미사 경본』[8]을 공포했다. 이후 4세기 동안 트리엔트 미사는 라틴 예법에서 사실상 유일무이한 교범으로 인식됐다. 1870년부터 1962년까지 세부적인 개정 작업이 없지는 않았으나 큰 틀은 1570년판과 다를 게 없었다.
앞서 인용한 베네딕토 16세의 발언처럼 전례 개혁 후에도 트리엔트 미사는 여전히 유효하며 현재 트리엔트 미사 방식을 봉헌한다고 해서 결코 교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 하지만 1969년부터 1984년까지는 교회법상 합법적으로 트리엔트 미사를 봉헌할 수 있는 방법이 거의 봉쇄되어 있었기 때문에 당시 형성된지 오래되지 않은 전통주의 가톨릭 성향 단체 및 신자들과 여러 충돌이 있었다. 지금도 새 미사의 합법성과 유효성 인정·대축일 새 미사 봉헌 등의 문제로 교황청과 화해하지 못한 전통 가톨릭 단체들이 존재하며, 교회 내 진보파는 지금도 트리엔트 미사를 공공연히 백안시[9]하기 때문에 논쟁거리가 되곤 한다.
4. 특징
강론을 제외하고 전부 라틴어로 미사를 거행한다. 물론 사제가 입장할 때와 퇴장할 때와 영성체 때 자국어로 행렬 노래를 부를 수 있으며 독서와 복음을 강론 중에 다시 한 번 자국어로 읽을 수 있다. 그렇지만 라틴어 사용은 트리엔트 미사의 근본적 요소 중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당장 눈에 띄는 가장 큰 특징은 미사 중 사제가 회중과 같은 방향으로 함께 제대를 바라본다는 점이다. 이를 "전례적 동쪽(Ad Orientem)"이라고 한다. 쉽게 설명하면 제대를 벽에 붙이고 사제가 회중들을 등지는데 회중을 등진다는 통속적인 표현이기 때문에 이 미사를 봉헌하는 사제들은 이 표현을 사용하지 않으려고 한다.
오랫동안 제대는 성당의 동쪽으로 향하도록 배치했는데 그 이유는 동쪽이 어두움에서 승리한 태양, 즉 빛이 솟아오르는 방향이기 때문이다. 햇빛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그리스도는 초대교회부터 정의의 태양(Sol Justitiae), 불굴의 태양(Sol Invictus), 구원의 태양(Sol Salutis)으로 상징되었다. 그래서 성당 내부의 제대를 동쪽에 자리하게 한 것이다.
이렇게 동쪽으로 향하게 하는 성당 건축은 동방교회에서 시작하였다. 최소한 3세기부터는 동방교회 문헌에서 성당 건물이 동쪽을 향해야 하며 신자들도 기도할 때 동쪽을 향해야 한다는 규정이 나타난다. 그러나 같은 시기에 서방에서는 이런 원칙이 없었으며 심지어 5세기 레오 1세 대교황은 이런 원칙을 이교 사상의 영향이라고 생각하고 반대했다. 5세기 문헌에 일부 성당이 동향을 따라 지었다는 기술이 있으므로 일부 성당은 동향을 하였으되 대부분은 동향하지 않았으며 레오 1세 대교황은 동향하는 관습에 부정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서방교회에서는 갈리아 전례가 동방교회의 영향으로 동향원칙을 받아들였는데 6세기 이후에 갈리아 전례가 로마 전례에 크게 영향을 끼치면서 이때부터 서방교회 전체에 제대를 성당 동쪽에 두는 건축이 일반화된 듯하다.
서방교회에도 동쪽을 바라보는 관습이 정착하다가 필연적으로 성당도 제대를 동쪽 벽에 붙이고 회중과 사제가 같은 쪽에서 제대를 바라보는 양식이 되었다. 이 형태가 굳어지자 제대가 동쪽을 향하지 않은 경우에도 제대를 벽에 붙이고 성직자와 회중들이 같은 쪽에 서게 되었다. 한국의 오래된 성당, 일부 성지의 성당에는 벽쪽에 제대가 설치된 경우가 꽤 있는데 대부분 동쪽을 향하도록 되어 있다. 과거 쓰던 벽쪽 제대는 그대로 두고 새로 제대를 설치하여 신자와 사제가 마주보고 미사를 드릴 수 있게 개조한 곳이 대부분이다.
제대의 위치와 사제-회중 간 자세의 차이는 그저 가장 눈에 띄는 차이에 불과하다. 실제 전례 양식을 살펴보면 신자석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여러 중요한 부분에서 큰 변화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새 미사는 여러 사제들의 공동 집전이 가능하지만 트리엔트 미사에서는 서품식에서의 공동 집전만 가능하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지만 사제는 하루에 적어도 미사 1대를 봉헌해야 했다. 그래서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성당은 주 제대와 함께 부속 제대가 최소 2곳이 있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었다. 지금도 명동성당 같은 경우 지하 성당을 포함하여 주제대와 부속제대, 총 8곳의 제대가 남아있으나 현재 사용하는 제대는 2~3곳에 불과하다. 가끔 옛날 전통을 아시는 분이나 옛날에 이곳이 제대였음을 아시는 신자들은 앞에서 예를 표하시거나 제대의 성석에 친구(親口)[10]하곤 하는데 이유를 모르는 젊은 사람들은 '저기에 뭐가 있길래 저러나' 하면서 제대 위를 둘러본다.
성당에 들어와서 제대나 십자고상, 예수상 등에 인사할 때는 새 미사 때처럼 그냥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것이 아니라 전통에서는 궤배, 즉 무릎 인사를 해야 한다. 궤배를 하는 방법은 왼쪽 무릎은 세우고 오른쪽 무릎은 바닥에 닿게 꿇고 인사한다. 손은 기도손 또는 오른손은 가슴에 왼손은 무릎에 댄다. 옛날 성화를 봐도 다들 그 자세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9세기 또는 그 이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성당 장면이 나온다면 거의 100%로 모든 신자가 이렇게 인사한다. 한국에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자체적으로 궤배에서 허리를 굽히는 절 형식으로 바뀌었지만[11] 트리엔트 미사에서는 제대를 향해 절할 때는 궤배를 하는 것이 원칙이니 한국이라고 하더라도 반드시 궤배해야 한다. 유럽에서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한 사람들은 궤배를 하는 경우가 특히 많은 것 같다. 유럽 신자들은 트리엔트 미사가 아니라 새 미사를 드릴 때도 궤배를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현재는 여자 신자들이 미사보를 아예 안 쓰거나 미사 때만 쓰는 경우가 많은데 전통적인 원칙에 따르면 성당에 들어갈 때는 미사가 없어도 무조건 미사보를 써야만 한다. 미사 때만이 아니라 모든 성사 때와 기도할 때거나 다른 전례가 있을 때에도 미사보를 쓰도록 하고 있다.[12] 현대 예절에서는 미사보를 구입한 후에 사제에게 축복받지 않는 일이 많은데 전통 예절에서는 미사보 또한 다른 성물과 동일하게 사제에게 축복받고 나서 사용할 수 있다. 물론, 나이든 신자들은 미사보에도 축복을 받고 쓰는 일이 많으며 신부도 미사보 축복을 거절하는 일은 없다.
4.1. 장궤 입영성체
제대 앞 장궤틀. 명동성당에 가도 볼 수 있다. 성찬 전례 때 성체를 모시기 위해 장궤하는 신자들을 위하여, 또한 제대와 회중석을 분리하기 위하여 설치한다. |
영성체 시 밑을 수반으로 받친다. 수반은 손잡이가 달린 성반으로 성체가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마련된 제구. |
현대 일반양식 미사경본에서는 각국 주교회의가 정한 바에 따라 서서 영성체를 할 수 있고, 허락된 지역에서는 입영성체 외에 손영성체가 허용된다. 한국 천주교에서도 장궤하거나 서서 영성체를 할 수 있으며 입영성체 외에 손영성체가 허용된다.[13][14]. (미사/성찬 전례 문서의 올바른 영성체 규정 문단 참조.)
그러나 특별양식(트리엔트) 미사에서 영성체를 할 때에는 기본적으로 장궤 입영성체만을 한다. 장궤 입영성체란 무릎을 꿇고 혀로 성체를 모시는 것으로, 서서 영성체하거나 손으로 영성체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밑에 성체의 가루가 떨어지지 않도록 접시나 긴 천을 받친다. 현대 미사의 비정규 성체분배자를 인정하지 않고 오직 사제만이 성체를 분배한다.
여기서 유의할 것이 하나 있다. 전례 개혁 후의 현대 일반양식 미사에서도 장궤 입영성체는 기본 영성체 자세이며, 금지된 적이 없다. 손영성체는 “허락된 지역에서“, ”영성체하는 이가 원할 때” 손영성체를 할 수 있다고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160항과 161항에도 명시되어 있고, 입영성체를 한다는 이유로 사제나 비정규 성체분배자가 이를 거절할 수 없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에서 발간한 「한국 천주교 사목 지침서」 78조도 “영성체는 혀로나 손으로 자유로이 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도 한국 교회에서는 규정에 무지한 사람들이 마치 손영성체가 원칙이거나 입영성체를 할 수 없다고 가르친다. 이는 분명히 잘못되었고 그렇게 가르치는 것이 오히려 규정 위반이다.
외국에서는 당연히도 전통신심에 따라 무릎을 꿇거나 입으로 영성체하는 이들이 많이 있고,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는다. 최근 성직자와 평신도의 국제 교류가 예전보다 많아지고, 영성체에 관한 이런 분위기가 한국에도 전해지면서 다행히도 많은 사제들이 그동안 사실상 손영성체만을 강제하던 한국의 관행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있다. 그러나 지방 본당이나 제대로 교육되지 않은 비정규 성체분배자들은 여전히 장궤 입영성체를 하려는 신자에게 영세 여부를 묻거나 심하면 영성체를 거절하는 등의 사태가 여전히 벌어지고 있다. 이는 잘못된 것이다.
교황청은 "신자가 영성체 시 장궤 입영성체를 비롯해 입으로 하는 영성체를 요구할 수 있고 받을 수 있다."라며 누누히 강조해 왔다.[15] 여러 전례 규정과 교황청 훈령이 한목소리로 이와 같이 가르치는데도 한국 천주교의 적지 않은 구성원들은 입영성체에 부정적인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는 베이사이드 성모 발현이나 마리아의 구원방주 같은 일부 이단들이 장궤 입영성체만이 옳다고 선전한 데 대한 반발의 영향도 있다. 하지만 베이사이드 이단이 한때 활발히 활동했던 미국에서 장궤 입영성체가 금기시된 적이 없음을 고려한다면 한국 천주교의 장궤 입영성체를 비롯한 입영성체 자체에 대한 거부 반응은 부정적 선입견으로서 올바른 대처라고 할 수 없다.
4.2. 전통 제대
제대가 지금처럼 벽에서 떨어진 식탁의 모습이 아니고 동쪽을 향하여 벽에 딱 붙어 있으며 감실이 중앙에 놓이고[16] 그 위에 십자고상[17]이 올려진다. 감실을 중심으로는 좌우에 3개씩 촛대 6개를 놓는데 전례의 등급에 따라 초 몇 개를 켜는지가 달랐다. 그리고 현대 제대에서는 제대보를 2장 내지는 1장만 덮는 경우도 있지만 트리엔트 미사에서는 제대 윗부분만 덮는 짧은 아마포 2장 위에 제대 옆으로도 길게 늘어지는 3번째 아마포를 덮는다. 전통 제대에서 3장을 까는 이유는 실수로 성혈을 쏟더라도 아마포가 성혈을 전부 흡수하여 땅으로 흘러내리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_사실 현대 제대도 전통 제대로 바꿀 수 있다(!)._ 트리엔트 미사를 봉헌하려면 트리엔트 미사를 드릴 줄 아는 사제, 트리엔트 미사 경본 등도 중요하지만, 우선 전통 제대가 있어야 한다. 한국에는 전통 제대를 만들 줄 아는 전문가가 극히 드물고 외국 사이트에서 주문하려면 그 가격이 최하 한화로 700만 원 정도이며 그에 따르는 관세도 만만치 않다. 게다가 이미 놓인 현대 제대를 치우기도 무리이므로 한국에서 트리엔트 미사를 드리려고 한다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현대 제대를 전통 제대로 리모델링하는 것이다.
위에서도 설명했듯 성당과 제대가 동쪽을 향하는 것은 동방교회에서 유래하여 서방교회까지 유입된 관습으로, 기도할 때에 동쪽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일출을 자연이 보여주는 그리스도 부활의 표징으로 여겼기 때문에 동쪽을 중요하게 여겼으며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할 때에도 동쪽에서 온다는 전승이 생겼다. 초기 로마 전례에서는 제대가 벽에 붙어있지 않았으며 오늘날 미사 때처럼 사제와 신자들이 제대를 사이에 두고 서로 얼굴을 마주보는 형상이었다. 대교황 레오 1세는 동쪽을 바라보는 관습을 이교도의 유산이라고 타매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동방교회에서 동쪽을 바라보는 관습이 유입되자 제대가 벽에서 떨어져 있는 것은 아주 불편해졌으며 사제와 신자들이 똑같이 동쪽을 바라보려면 제대가 동쪽 벽에 붙어 있어야 편했다. 성공회나 정교회에서는 아직도 제대를 동쪽에 두는 관습을 유지하는데 현대의 대도시에서는 부지 문제로 성당을 설계할 때 제대를 동쪽에 두기 어려워서 성당 구조를 일부러 비트는 등 갖가지 건축적 잔재주를 부리기도 한다. 가톨릭의 새 미사는 꼭 제대를 벽과 분리해야 한다고 규정하지 않았는데도 결과적으로 초기 로마 전례의 형태로 되돌아갔다.
제대 안에는 보통 성인의 성유물, 특히 유골 조각을 모셨다. 이 시기 교회법에는 "모든 성당의 제대에는 반드시 성유물이 있어야 한다"고 규정했다. 심지어 바티칸에서 적절한 성유물을 구하지 못한 성당들을 위해 성유물을 조금씩 나눠주었을 정도였다. 제대가 그리스도를 상징하기 때문에 성인의 유물이나 유해는 신자를 상징하며 제대에 성유물을 봉안함은 교회의 머리인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의 지체들의 결합을 상징했다. 즉, 총체적으로 교회를 상징한다. 지금은 반드시 성유물을 제대에 봉안해야 한다는 규정이 폐지되었으므로 이렇게 하지 않지만 진위 여부가 확실한 성유물이 들어오면 성당 제대에 안치하는 경우가 있다.
제대 위에는 경문카드라고 하여 미사 중 주요 경문들이 쓰인 카드 3장을 올려놨는데 각각 중앙의 감실 앞, 오른쪽 끝의 독서편, 왼쪽의 복음편 끝에 놓였다. 중앙에 있는 경문카드에는 Gloria(영복경, 지금의 대영광송)과 복음성경 낭독 전에 바치는 기도문(Munda cor meum; 전능하신 천주여, 나의 마음과 나의 입술을 깨끗하게 하소서),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 헌병헌작 시 바치는 기도문, 축성경, 거양성체/거양성혈 때 바치는 기도문이 적혀있다. 제대 오른편에 있는 경문카드에는 사제가 물과 포도주를 섞을 때 바치는 기도문과 성체를 만지는 손가락을 씻을 때 바치는 기도문이 적혀있다. 제대 왼편에 있는 경문카드에는 마침복음경인 요한 복음 1,1-14의 내용이 적혀 있다.
이러한 벽제대는 서울의 명동성당과 옛 용산예수성심신학교 부속성당, 중림동 약현성당과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에 지어진 몇몇 오래된 성당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중에서는 멀쩡한 제대를 뜯어내고 현대식 제대로 교체한 성당도 있다. 대표적으로 천주교 부산교구의 중앙성당이 있다. 약현성당도 1969년에 제대를 뜯어냈지만 복원했고 1999년 화재로 불타서 다시 복원했다.
5. 순서
1962년판 라틴어-영어 통상문. 트리엔트 미사의 구조를 엿볼 수 있다.트리엔트 미사는 장엄미사[18]와 창(唱)미사, 독송(讀誦)미사[19] 이렇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장엄미사는 집전 사제 외에 부제, 차부제를 거느리고 성찬 전례문과 기타 경문을 뺀 대부분의 기도문과 경문을 노래하듯이 하는 미사로 주로 1급 축일 또는 주일에 드려졌다. 창미사는 장엄미사에서 부제와 차부제가 빠진 형식으로 주일에 주로 봉헌되었다. 독송미사는 사제가 복사 한 명만 대동하고 모든 미사 경문을 말로 드리는 형식으로, 대개 평일 미사가 여기에 해당된다.
대략적인 트리엔트 미사의 모습. 위에서 아래로 주교 집전 장엄미사, 창미사, 독송미사 순이다.
본격적 준비는 제의실에서 이루어지는데 여기서 일단 사제는 전례복을 착용한다.
차례로 개두포 → 장백의 → 띠 → 수대 → 영대 → 제의 순으로 착용한다. 각 제의를 입을 때 외우는 경문이 따로 따로 있는데 다음과 같다.
사제는 머리 위에 개두포를 덮었다가 스쳐 내려가 목과 어깨 부분에서 멈추며 두 끈으로 몸통을 고정시키면서 아래의 경문을 외운다. Impone, Domine, capiti meo galeam salutis, ad expugnandos diabolicos incursus. (주여, 내 머리에 구원의 투구를 씌우사 마귀의 공격을 막게 하소서.) 그 다음 장백의를 입으면서 아래의 경문을 외운다. Dealba me, Domine, et munda cor meum; ut, in sanguine Agni dealbatus, gaudiis perfruar sempiternis. (주여, 나를 결백하게 씻으시어 내 마음을 조찰케 하시고 어린양의 피로 결백하게 되어 당신을 섬기게 하소서.) 띠를 허리 부분에 착용하면서 아래의 경문을 외운다. Praecinge me, Domine, cingulo puritatis, et extingue in lumbis meis humorem libidinis; ut maneat in me virtus continentiae et castitatis. (주여 조찰함의 띠로 나를 매어 주시고 내 안에 사욕을 없이 하시어 절제와 정결의 덕이 있게 하소서.) 사제는 수대의 십자가 부분에 친구를 한 후 다음과 같은 경문을 외며 왼쪽 손목에 수대를 착용한다. Merear, Domine, portare manipulum fletus et doloris; ut cum exsultatione recipiam mercedem laboris. (주여, 체읍과 통고를 씻어버리는 수대를 가지게 하사, 내 수고를 그친 후에 상급을 즐겨 받게 하소서.) 다음은 영대 순인데, 트리엔트 미사에서는 사제는 영대를 X자로 교차해서 착용하고 주교는 11자로 착용하게 되어있다. 이 때 다음과 같은 경문을 외우면서 영대를 두른 뒤 띠로 고정시킨다. Redde mihi, Domine, stolam immortalitatis, quam perdidi in praevaricatione primi parentis; et, quamvis indignus accedo ad tuum sacrum mysterium, merear tamen gaudium sempiternum. (주여, 주께 봉사하기에 합당치 못하오나 원죄의 타락으로 잃은 불사불멸의 영대를 내게 도로 주시어 주의 영원한 즐거움을 누리게 하소서.) 마지막은 제의를 착용한다. 제의는 고딕식과 로마식이 있는데 로마식은 팔 부분이 없다. 동영상에 나오는 제의는 고딕식 제의. 착용할 때 바치는 경문은 다음과 같다. Domine, qui dixisti: Jugum meum suave est et onus meum leve: fac, ut istud portare sic valeam, quod consequar tuam gratiam. Amen. (주여, 주께서 말씀하시길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하셨으니 나로 하여금 주의 은총을 얻어 누리도록 이 미사를 잘 집전하게 하소서. 아멘.) |
이렇게 제의를 다 입은 사제는 머리에 비레타를 쓰고 좀 전에 차려놓은 제구들을 모두 들고 미사 경본을 든 복사를 앞세우고 제대로 간다. 제대 앞에서 절을 하고 올라가 성낭에서 성체포를 꺼내어 펴놓고 그 위에 성작을 놓는다. 그리고 제대의 오른편으로 가서 미사 경본을 펴놓는다.
일단 평일 미사는 이렇고 주일이나 1급 축일의 장엄미사, 창미사는 아래와 같이 성수 예절이 진행된다. 평일 미사 때는 성수 예절을 건너뛰고 바로 예비 미사로 진행한다. 주님 수난 성지 주일 미사 때에도 성수 예절은 나뭇가지 축복과 행렬로 대체되며, 주일에 주교 집전 장엄미사 때에는 성수 예절을 생략한다.
5.1. 성수 예절
주일 미사에 한정해서, 사제는 제의를 입기 전에 영대 위에 깝빠를 입고 머리에 비레따를 쓴 뒤 복사나 부제, 차부제와 함께 입장한다. 입장한 후 사제는 제대 앞에서 무릎절을 한 뒤 <Asperge me>를 선창하면서 제대와 복사들에게 성수를 뿌리고 회중을 순회하면서 성수를 뿌린다. 이 때 바치는 노래는 시편 51편을 바탕으로 한다.
P. Asperges me C. Domine, hyssopo, et mundabor: lavabis me, et super nivem dealbabor. Ps. 50 Miserere mei, Deus, secundum magnam misericordiam tuam. V. Gloria Patri, et Filio, et Spiritui Sancto, R. Sicut erat in principio, et nunc, et semper, et in saecula saeculorum. Amen Asperges me, Domine, hyssopo, et mundabor: lavabis me, et super nivem dealbabor. |
주여, 힛솝 채로 나를 뿌리소서. 나는 곧 깨끗하여지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나는 눈보다도 희여지리이다. 천주여, 주의 자비에 따라 나를 긍련히 여기소서. 영광이 부와 자와 성신께 처음과 같이 또한 이제와 항상 무궁세에 있어지이다. 아멘. 주여, 힛솝 채로 나를 뿌리소서. 나는 곧 깨끗하여지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나는 눈보다도 희여지리이다. |
부활시기의 성수예절 때는 <Vidi Aquam>이라는 성가를 부르는데 이 성가는 가톨릭성가 67번 <성전 오른편에서>라는 성가의 가사는 이 시편을 번역한 것이다. Vidi Aquam은 부활성야에 집전사제가 성수예절을 할 때도 부른다.
P. Vidi aquam C. egredientum de templo, a latere dextro, alleluia: et omnes ad quos pervenit aqua ista salvifactci dunt, et dicent: Alleluia, alleluia. Ps. 117 Confitemini Domino, quoniam bonus; quoniam in seculum misericordia ejus. V.Gloria Patri, et Filio, et Spiritui Sancto, R. Sicut erat in principio, et nunc, et semper, et in saecula saeculorum. Amen |
나 성전 우편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보았노라. 알렐루야. 이 물의 침입함을 받은 모든 이가 거룩케 되었으니 이에 말하되 알렐루야 알렐루야 하리로다. (성영 117,1) 주를 찬송할지니 대저 저 어지시고 저의 자비는 영원하시도다. 영광이 부와 자와 성신께, 처음과 같이 또한 이제와 항상 무궁세에 있어지이다. 아멘. |
사제가 회중에게 성수를 뿌리고 제대로 돌아오면서 다시 제대에 무릎을 꿇으며 예를 표한 뒤 일어서서 제대를 향해 아래의 기도를 바친다.
P. Ostende nobis, Domine, misericordiam tuam. S. Et salutare tuum da nobis P. Domine, exaudi orationem meam. S. Et clamor meus ad te veniat. P. Dominus vobiscum. S. Et cum spiritu tuo. P. Exaudi nos, Domine, sanctae Pater, omnipotens aeterne Deus et mittere digneris sanctum Angelum tuum de caelis, qui custdiat, foveat, protegat, vistet, atque defendat omnes habitantes in hoc habitaculo. Per Christum Dominum nostrum. S. Amen |
계) 주여, 주의 자비를 우리에게 보이소서. (부활 때에는 알렐루야를 더한다) 응) 응) 또한 주의 구원을 우리에게 내리소서. (부활 때에는 알렐루야를 더한다) 계) 주여 나의 기구를 들어 허락하소서. 응) 또한 나의 부르짖는 소리가 어전으로 오르게 하소서. 계) 주께서 너희와 함께 계셔지이다. 응) 또한 사제와 함께 계셔지이다. 빌지어다. 거룩하신 주시요 전능하신 성부시요 영원하신 천주여 우리를 들으시고 하늘로조차 인자로이 네 거룩한 천신을 보내사 이 집에 머무는 모든 이들을 보호하며 보존하며 심방하며 호위하게 하시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인하여 하소서. 응) 아멘. |
주일을 제외한 월~토요일 미사 때에는 성수 예절을 생략한다.
5.2. 예비 미사
성수예절이 끝나면 사제는 복사의 도움을 받아 깝빠를 벗고 제의를 입은 뒤 (평일미사의 경우 제대 오른편으로 가서 미사 경본을 펴놓은 사제는 내려와) 사제는 제대 층계 아래에 서서 시작 성호경과 함께 제대에 올라가기 전 바치는 경문인 '층하경'을 바친다. 이 때부터 미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복사와 회중은 여기서 모두 장궤하고 마찬가지로 시작 성호경을 긋는다.
층하경은 시편 43(42)편인 'Judica Me'로, 유배생활을 하던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그리워하던 심정이 잘 표현되어 있는 기도이기 때문에 신약의 제사 거행 준비에 적절한 기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약간의 즐거움과 희망도 내포되어 있어서 위령 미사와 고난주일부터 성목요일까지는 층하경에서 시편 43편은 생략한다. 또한 2월 2일 성모 취결례 축일에 초의 강복과 행렬이 있는 경우, 재의 수요일 미사 전에 재 축복과 뿌림 의식이 있는 경우, 부활 성야 미사, 삼일기도와 대기도의 날(4월 25일) 미사 전에 행렬이 있는 경우에는 층하경 전부를 생략한다.
미사가 시작하면서 회중은 장궤하고, 성가대는 초입경(현대 미사의 입당송)을 부른다. 초입경은 전례력에 따라 그날 그날마다 다르다.
P. In nómine Patris,+ et Fílii, et Spíritus Sancti. Amen. 층하경 - 시편 43(42) P. Introíbo ad altáre Dei. S. Ad Deum qui lætíficat juventútem meam. P. Júdica me, Deus, et discérne causam meam de gente non sancta: ab hómine iníquo, et dolóso érue me. S. Quia tu es, Deus, fortitúdo mea: quare me repulísti, et quare tristis incédo,/ dum afflígit me inimícus? P. Emitte lucem tuam et veritatem tuam: ipsa me deduxerunt et adduxerunt in montem sanctum tuum, et in tabernacula tua. S. Et introibo ad altare Dei: ad Deum qui laetificat juventutem meam. P. Confitebor tibi in cithara, Deus, Deus meus quare tristis es anima mea, et quare conturbas me? S. Spera in Deo, quoniam adhuc confitebor illi: salutare vultus mei, et Deus meus. P. Gloria Patri, et Filio, et Spiritui Sancto. S. Sicut erat in principo, et nunc, et semper: et in saecula saeculorum. Amen P. Introibo ad altare Dei. S. Ad Deum qui laetificat juventutem meam. P. Adjutorium nostrum in nomine Domini. S. Qui fecit coelum et terram. |
+ 성부와 +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인하여 하나이다. 아멘. + 나는 천주의 제대로 나아가리다. * 나의 즐거움이요 기쁨이신 천주께로 나아가리다. + 천주여, 나를 옳다고 판단하시고, 거룩하지 않은 무리에 대하여 나의 송사를 변호하소서. 무도하고 간교한 사람들에게서 나를 구하소서. * 천주여, 주는 나의 힘이시온데, 어찌하여 나를 저버리시나이까. 어찌하여 나는 원수에게 억눌리어, 슬퍼하며 걷고 있나이까. + 주의 광명과 진리를 내리시어, 나를 주의 거룩한 산으로 이끌고, 주의 장막으로 인도하소서. * 이에 나는 천주의 제대로, 나의 즐거움이요 기쁨이신 천주께로 나아가리다. + 그러면 천주여, 나의 천주여, 나는 거문고 울리며 주를 찬미하리다. 나의 영혼이여, 어찌하여 슬퍼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산란한고. * 너는 천주를 신뢰할지어다. 내가 다시 주를 찬미하리니, 주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천주시로다.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신께, * 처음과 같이 또한 지금과 항상, 무궁세에 있어지이다. 아멘. + 나는 천주의 제대로 나아가리다. * 나의 즐거움이요 기쁨이신 천주께로 나아가리다. + 나는 천주의 제대로 나아가리다. * 나의 즐거움이요 기쁨이신 천주께로 나아가리다. |
그리고 사제와 복사는 고죄경을 외워 죄의 용서를 청하는데 이는 그리스도가 성체성사를 세우시기 전에 사도들의 발을 씻어주사 마음의 결백을 요구하신 뜻에 그대로 응하는 것이다. 고죄경을 바칠 때는 지금처럼 주먹이나 손바닥으로 가슴을 치지 않고 손가락 끝을 세워서 쿡쿡 찌르는데 이는 스스로가 죄인임을 좀 더 확실히 지각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고백기도를 할 때 사제와 회중이 따로 따로 바쳤고 회중의 고백기도문에는 라틴어로 '그리고 사제여, 당신에게(et tibi, pater/et te, pater)'이라는 구절이 있어 이 부분에서는 고개를 들어 사제를 바라보았다. 이는 새 미사에서 없어진 구절이다.
이후 사제는 제대로 올라가면서 정화를 위한 기구문을 침묵 중에 염한다. 이때 신자들은 주일 미사 때는 일어서고 평일 미사 때는 계속 무릎을 꿇는다.
이어서 제대에 오른 사제는 허리를 굽혀 성해가 있는 제대에 친구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성인의 유해나 유물이 모셔져 있는 성석[20]에 친구한다. 이는 전례변혁 후의 미사에서도 마찬가지이며 기도문을 바꾸었을 뿐이다. 한국 천주교는 입을 맞추는 예식이 문화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머리 숙여 인사하는 것으로 바꾸었는데 몇몇 나이 많은 성직자 중에는 친구하는 예를 쉽사리 찾아볼 수 있다.
사제는 미사 경본이 있는 곳에 가서 성호를 긋고 초입경을 외운 후에 제대 중앙으로 가서 Kyrie를 바친다.
지금의 자비송과 달리 '끼리에 엘레이손(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를 3번씩 반복한다. 각 문구마다 3번씩 반복하는 이유는 구품천사론을 반영한 것이다. 자비송 악보는 주간이나 축일에 따라 불려지는 버전이 엄청나게 많다.
영복경은 보통 미사 때 주례 신부가 라틴어로 선창하는 기도이다. 이것은 환희의 노래이므로 장림 시기와 사순 시기 중 축일이 없는 미사와 위령 미사 때는 바치지 않는다. 그리고 주일 외에 사제가 녹색 제의를 입는 미사 때에도 바치지 않는다. 4급 헌원미사 때에는 천사헌원미사와 토요일 성모 미사를 제외하고는 영복경을 외우지 않는다. 영복경에서 천주께 경의를 표하는 부분인 "천주"(Deo)와 "예수 그리스도"(Jesu Christe)에서는 고개를 숙여 절한다. 새 미사와는 달리 트리엔트 미사에서는 영복경에서도 성호를 긋는데 정확히는 영복경 제일 마지막 구절인 '주는 성신과 함께 천주 성부의 영광 안에 계시나이다'(Cum Sancto Spiritu in gloria Dei Patris) 부분에서 성호를 긋는다.
끼리에나 영복경이 끝나면 사제는 제대에 친구한 다음 회중을 향해 돌아서서 양팔을 벌리고 'Dominus vobiscum(주께서 너희와 함께 계셔지이다)'라고 하면 회중은 'Et cum spiritu tuo(또한 사제의 영과 함께 계셔지이다)'라고 화답한다. 그 다음 사제는 'Oremus(빌지어다)'라고 말하고 축문을 외우는데 축문은 그날 경본을 참조해야 한다.
축문이 끝나면 오른쪽 독서편에서 당일 독서를 낭독한다. 이 때 신자들은 모두 자리에 앉아서 말씀 봉독을 듣는다. 현재 새 미사에서는 독서를 평신도가 봉독하지만 트리엔트 미사에서는 사제 또는 부제가 봉독한다. 트리엔트 미사에서는 독서가 하나밖에 없으나 특별한 축일 때와 사계제일에는 2개 이상의 독서를 봉독하기도 한다. 독서 때 대부분은 신약성경의 서간이나 사도행전을 봉독하지만 일부 전례 시기 및 특별한 축일에는 구약성경을 봉독하기도 한다. 사제는 서간을 읽는 동안 두 손을 미사 경본에 놓는다. 이것은 그 내용에 동의한다는 뜻이며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신자들을 향하여 이 책을 여닫을 권리가 있음을 뜻한다. 당일 독서가 끝나면 복사는 'Deo gratias'(천주께 감사하나이다)라고 응답한다.
독서를 봉독한 후 사제는 이어서 그 뜻을 재음미하고 또 다음에 복음을 들을 마음의 준비를 하기 위하여 그날 미사 경본에 나오는 층계경이나 알렐루야를 봉독한다. ‘알렐루야’는 히브리어로 ‘천주를 찬미하라’는 뜻인데 기쁜 때에만 부르는 것이므로 장림시기와 사순시기에는 바치지 않는다. 대신 연경을 염하는데 이것은 흔히 통회와 보속을 의미하는 시편의 구절들로 되어 있다. 예수부활과 성신강림, 성체첨례 등에는 특별한 부속가를 바친다.
그 동안 사제는 제대 중앙으로 와서 복음을 합당하게 전하기 위하여 상체를 깊이 숙이고 마음과 입술을 깨끗이 해 달라는 기도를 바친다. 복사는 미사 경본을 제대의 왼편에서 오른편으로 옮겨 놓는다. 그래서 제대의 왼편을 ‘독서편’ 이라고 하고 제대의 오른편을 ‘복음편’ 이라고 한다. 복음집을 제대 오른편으로 옮기는 이유는 일반적으로 왼편보다 오른편을 더 우월하게 여기기 때문이며 전에는 그리스도를 ‘떠오르는 빛’ , 즉, 태양에 비유하여 성당의 성소가 동쪽을 향하도록 지었는데 그렇게 보면 제대의 오른편은 빛이 적은 북쪽이므로 복음의 진리로 암흑을 쫓는다는 의미도 있다. 이것은 구약에서 신약으로, 즉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민족에게도 신앙이 전해졌음을 상징하기도 한다.
사제가 복음을 낭독하기 전에 'Dominus vobiscum'(주께서 너희와 함께 계셔지이다)이라고 하면 'Et cum spiritu tuo'(또한 사제의 영과 함께 계셔지이다)라고 화답한다. 사제는 'Sequentia sancti Evangelii secundum N.(「아무」에 의한 거룩한 복음의 계속(시작).)'라고 말하고 회중들은 'Gloria tibi Domine(주께 영광이 있어지이다)'라고 화답한다. 트리엔트 미사나 새 미사나 똑같이 사제는 '「아무」에 의한 거룩한 복음의 계속(시작).'라고 말하면서 복음집에 소성호를 긋고 또 자기 이마와 입과 가슴에도 소성호를 긋는다. 회중도 사제를 따라 똑같이 소성호를 긋는다. 이는 복음을 머리(지성)와 입과 마음에 품겠다는 뜻이다. 그리고는 곧 봉독을 시작한다. 이때 신자들은 모두 일어선다. 이는 복음집에 경의를 표하기 위함이다.
복음 봉독이 끝나면 사제는 사제석으로 가서 왼팔에 찬 수대와 제의를 탈의한 후 강론대로 가서 강론을 하지만 간소하게는 제의는 탈의하지 않고 수대만 빼서 미사 경본 위에 걸쳐놓고 강론을 한다. 비레타를 쓰고 강론하는 사제도 있다.
강론이 끝나면 사제는 다시 제의와 수대를 착의한 후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을 바친다. 그런데 이것은 미사 때마다 하는 것이 아니고 모든 주일과 모든 1급 축일 및 1급 헌원미사, 그리스도와 성모의 2급 축일, 성탄, 부활, 성신강림의 팔일 동안, 사도와 복음사가 축일 및 성 베드로좌 축일(2월 22일) 때에만 바친다. 신경을 외울 때는 영복경에서와 같이 하느님에게 경의를 표하는 부분이 있는데, 바로 맨처음 언급되는 "천주"(Deum)와 "예수 그리스도"(Jesum Christum)에서는 고개를 숙이고, "그이는 성신에 의하여, 동정이신 마리아에게서 인성을 취하시고, 사람이 되셨나이다."(Et incarnátus est de Spíritu Sancto ex María Vírgine: Et homo factus est)에서는 장궤하고 일어서며, "흠숭을 받으시며"(simul adoratur)에서는 고개를 숙인다. 신경 마지막 부분인 "후세의 영생을 바라나이다."(Et vitam ventura sæculi)에서는 십자성호를 그으며 마친다.
여기까지가 말씀 전례인 예비 미사이고 그다음이 성찬 전례인 교우 미사(제헌 전례)가 시작된다.[21]
5.3. 교우 미사
교우 미사에서는 사제가 소리를 내는 부분이 거의 없다.
먼저 성가대가 봉헌경(Offertorium)을 바치는데 초대 교회 시절에는 신자들이 빵과 포도주 등 예물을 들고 성가를 부르며 행렬하며 그 예물들을 제대 위에 바쳤으나 세월이 흘러 없어졌으므로 성가를 그렇게 많이 부를 필요도 없어졌기 때문에 전통 라틴 미사에 와서는 그 자취로 남은 것이 짤막한 ‘봉헌경’이다. 예비 미사가 끝나면 사제는 이 봉헌경을 바친다. 그리고는 성체포를 벗겨내고 헌병을 한다. 이어서 사제는 서간편으로 가서 복사에게 주수병을 받는데 이 때 복사는 주수병에 친구를 하고 사제에게 드린다. 사제는 주수병에 십자성호를 긋고 물과 포도주를 섞은 뒤 제대에서 헌작한다. 미사주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물은 그리스도의 인성을 뜻한다. 헌병 헌작이 마치면 사제는 서간 편으로 가서 복사의 도움을 받아 손을 씻으며 시편 25편을 외운다. 그리고 제대 중앙에 와서 허리를 굽히고 기도를 바치는데 이러한 모든 동작에는 기도문이 다 정해져 있지만 복사만 들을 수 있을 뿐, 신자들은 듣지 못한다. 장엄미사 시 여기서 사제가 제물과 제대에 분향한다.
사제는 제대에 친구하고 교우를 향하여 첫 두 마디는 소리내어 염하고 제대로 향해 기도를 한다.
P. Oráte, fratres: ut meum ac vestrum sacrifícium acceptábile fiat apud Deum Patrem omnipoténtem. S. Suscípiat Dóminus sacrifícium de mánibus tuis ad laudem et glóriam nóminis sui, ad utilitátem quoque nostram, totiúsque Ecclésiæ suæ sanctæ. P. Amen. |
+ 형제들이여, 기구할지어다. 나와 그대들이 드리는 이 제사가 전능하신 천주 성부의 뜻에 맞갖도록 기구할지어다. * 주께서 당신의 손으로 이 제사를 받아들이시어, 주의 이름에는 찬미와 영광이 따르고, 또 우리와 온 성교회에는 축복이 따르게 하셔지이다. + 아멘. |
그 후 사제가 묵념축문을 바친 다음 감사경을 바치는데 이것은 감사의 찬미가이다.
보통 주일에 바치는 감사경은 성삼감사경이며 사순시기나 파스카 기간, 승천시기에는 생략한다. 그리고 평일에는 평일감사경을 따로 바친다.
이것이 끝나면서 사제는 두 손을 합장하고 몸을 굽혀 ‘Sanctus’(거룩하시다)를 3번 하는데 이때 복사는 종을 3번 친다. 미사 거행이 로마 전문(Canon)으로 들어간다는 신호이다. 회중은 서있다가 Sanctus가 끝나면 장궤한다.
이때부터 사제는 허리를 굽혀 천주께 제헌을 받아 주시기를 빌며 회중이 거의 듣지 못할 정도로 굉장히 작은 목소리로 로마 전문을 바치면서 교회를 위한 기도(Te igitur)[22]와 자기가 기도해주고 싶은 산 이들을 위하여 기도(Commemoratio pro vivis)를 바치고(Meménto, Dómine, famulórum famularúmque tuárum...) 천상의 성인들을 기억하면서 그들의 전구를 청한다(Communicantes). 노부스 오르도 미사에서는 이 부분을 모두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소리 내어 바치는 것과 달리 트리엔트 미사에서는 소리 내어 바치면 그 내용이 속화(俗化)된다고 보기 때문에 미사성제의 신비(神秘)를 이해 및 표현하고 있는 침묵 중에 바쳐야 한다.
그다음 사제는 두 손으로 제물을 덮으면서 제물이 가납되기를 기도한다. 사제가 제물을 두 손으로 덮을 때 복사는 종을 한 번 친다. 미사 거행이 성체 성혈 축성 직전에 이르렀다는 신호이다.
P. Hanc ígitur oblatiónem servitútis nostræ, sed et cunctæ famíliæ tuæ, quæsumus, Dómine, ut placátus accípias: diésque nostros in tua pace dispónas, atque ab ætérna damnatióne nos éripi, et in electórum tuórum júbeas grege numerári. Per Christum Dóminum nostrum. Amen. |
이러므로 주여, 비오니, 주의 종인 우리와 주의 온 회중이 봉헌하는 이 제물을 너그러이 받아들이시고, 주의 평화 안에 우리의 나날을 인도하시며, 영벌을 면하게 하시어 주의 간선자들 반열에 들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옵나이다. 아멘. |
그리고 이어서 거룩한 변화를 위하여 제병과 성작에 십자성호를 5회 그으며 기도한다.
사제는 그다음 몸을 굽히고 두 손으로 제병을 들고 경건하게 성체축성경을 바친다.
Qui prídie quam paterétur, accépit panem in sanctus ac venerábiles manus suas, et elevátis óculis in cælum ad te Deum Patrem suum omnipoténtem, tibi grátias agens, bene+díxit, fregit, dedítque discípulis suis, dicens: Accípite, et manducáte ex hoc omnes: HOC EST ENIM CORPUS MEUM. |
우리 주께서 수난 전날 저녁에, 거룩하시고 존엄하신 당신 손에 빵을 드시고, 하늘을 우러러 보시며, 전능하신 천주 성부께 사례하신 후 축성하시어, 당신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시며 말씀하셨나이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먹으라. 이는 바로 내 몸이니라. |
그러면 즉시 제병이 성체로 변한다. 사제는 곧 무릎을 꿇고 절하여 공경을 드린다. 그 때 복사는 종을 1번 친다. 사제는 일어나 성체를 머리 위로 높이 들어 공경하라고 신자들에게 보인다. 그래서 이를 '거양성체'라고 한다. 이때 복사는 종을 3번 친다. 이 때 교우들은 잠깐 성체를 바라보며, 성 토마스 사도와 같이(요한 20,28), 속으로 "내 주시요 내 천주시로소이다." (Dominus meus et Deus meus) 하고 고백하며 허리를 굽혀 조배한다. 이후 사제는 다시 성체를 내려 성체포 위에 모시고 또 무릎을 꿇어 조배한다. 그때 복사는 또 종을 한 번 친다.
이 때부터 사제는 축성된 작은 성체 가루를 하나도 잃지 않기 위해 영성체 후 손을 씻기 전까지 성체를 쪼갤 때를 제외하고는 엄지와 검지를 떼지 않는다.
사제는 다시 몸을 굽히고 두 손으로 성작을 들고 그 안에 있는 미사주를 향하여 성혈 축성경을 경건하게 바친다.
Símili modo postquam coenátum est, accípiens et hunc præclárum Cálicem in sanctas ac venerábiles manus suas: item tibi grátias agens, bene+díxit, dedítque discípulis suis, dicens: Accípite, et bíbite ex eo omnes: HIC EST ENIM CALIX SANGUINIS MEI, NOVI ET AETERNI TESTAMENTI: MYSTERIUM FIDEI: QUI PRO VOBIS ET PRO MULTIS EFFUNDETUR IN REMISSIONEM PECCATORUM. Hæc quotiescúmque fecéritis, in mei memóriam faciétiss. |
저녁을 잡수신 후 같은 모양으로 거룩하시고 존엄하신 당신 손에 귀중한 이 잔을 드시고 성부께 다시 사례하신 후 축성하시어, 당신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나이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마시라. 이는 바로 내 피의 잔이요, 새롭고 영원한 계약의 잔이니라. 신앙의 신비여! 너희와 많은 사람을 위하여 이 피를 흘려 죄를 사하여 주리라. 너희는 이 예를 행할 때마다 나를 기념하며 거행하라. |
그러면 즉시 포도주가 성혈이 된다. 사제는 무릎을 꿇어 조배한다. 그 때 복사는 종을 한 번 친다. 사제는 일어나 성작을 머리 위로 들어 공경하라고 신자들에게 보인다. 이때 복사는 종을 3번 친다. 역시 이 때도 교우들은 속으로 "내 주시요, 내 천주시로소이다"을 고백한다. 이후 사제는 다시 성작을 성체포 위에 놓고 또 무릎을 꿇어 조배한다. 그때 복사는 또 종을 한 번 친다.
그 다음 사제는 역시 낮은 목소리로 경문을 암송하면서 이 제사를 받아주기를 구하고 죽은 이들을 위하여 기도하며(Meménto étiam, Dómine...) 다시 천상의 성인들을 기억하면서(Nobis quoque peccatoribus) 그들과 함께 한 몫을 얻게 하여 주기를 청한다.
이어서 사제는 성작에 덮었던 성작덮개를 벗기고 무릎을 꿇는다. 그리고 일어서서 오른손에는 성체를, 왼손에는 성작을 들고 "Per ip+sum, et cum ip+so, et in ip+so, est tibi Deo Patri + omnipoténti, in unitáte Spíritus + Sancti, onis honor, et glória."를 외우며 성작 위에 십자를 5번 긋는다. 이때 복사는 종을 1번 친다. 사제가 "Per ómnia sæcula sæculórum." 하고 말하면 복사와 회중은 아멘이라고 응답하며 일어선다.
그리고 주님의 기도(천주경-Pater Noster)를 바친다. 새 미사와 달리 사제와 복사, 회중이 함께 바치지 않고 사제가 "빌지어다."(Oremus)부터 "우리를 유감에 빠지지 말게 하시고"(Et ne nos inducas in tentationem:)까지 바치며, 복사와 회중이 마지막 부분인 "흉악에서 구하소서"(Sed libera nos a malo.)를 바친다.
P. Orémus. Præcéptis salutáribus móniti, et divína institutióne formáti, audémus dícere: Pater noster, qui es in cælis: Sanctificétur nomen tuum: Advéniat regnum tuum: Fiat volúntas tua, sicut in cælo, et in terra. Panem nostrum quotidiánum da nobis hódie: Et dimítte nobis débita nostra, sicut et nos dismíttimus debitóribus nostris. Et ne nos indúcas in tentatiónem: S. Sed libera nos a malo. |
빌지어다. 구원에 유익한 명령을 받고, 천주의 가르침을 따라 감히 아뢰나이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시여, 주의 이름의 거룩하심이 나타나며, 주의 나라가 임하시며, 주의 거룩하신 뜻이 하늘에서 이룸 같이, 땅에서 또한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 죄를 면하여 주심을, 우리가 우리에게 득죄한 자를 면하여 줌 같이 하시고, 우리를 유감에 빠지지 말게 하시고, 또한 우리를 흉악에서 구하소서. |
그다음 사제는 낮은 목소리로 아멘이라고 말한다.
사제는 성작 수건으로 성반을 닦아 오른손에 쥐고 십자 성호를 그으며 "Libera nos, quaesumus, Domine..."(주여, 비오니 우리를 이전과 지금과 이후의 모든 악에서 구하시고...)를 조용히 바친 다음 무릎을 꿇고 성체를 반을 쪼개고 다시 조각으로 나누며 소리내어 "Per omnia saecula saeculorum."(영원에서 영원으로)을 말하면 복사와 회중은 "아멘"이라고 응답한다. 그다음 사제는 성작 위에 십자성호를 그으며 소리내어 "Pax Domini sit semper vobiscum."(주의 평화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어지이다)이라고 하면 복사와 회중은 "Et cum spiritu tuo." 하고 응답한다. 이 때 사제와 복사 그리고 복사끼리 서로 평화의 인사를 나눈다. 노부스 오르도 미사와 달리 트리엔트 미사에서는 사제와 회중 간의 평화의 인사나 회중끼리의 평화의 인사는 없다.
사제는 성체를 나눈 세 부분 중 제일 작은 것을 성작에 담는데, 이는 그리스도가 부활할 때 그의 육신과 피가 다시 결합되었음을 뜻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성체와 성혈을 향하여 겸손되이 허리를 굽히고 오른손으로 가슴을 3번 치며 ‘Agnus Dei’(천주의 어린양)를 3번 외우고 왼손에 성체를 들고 오른손으로 가슴을 치면서 ‘Dómine, non sum dignus…’(주여, 내가 주를 내 집에 모시기에…)를 세 번 외운다. 가슴을 칠 때마다 복사는 종을 친다. 영성체를 시작한다는 신호이다. 이어서 사제는 성체를 영한다. 그다음 무릎을 꿇고 성작을 벗기며 기도한 다음 성작으로 십자성호를 그으며 기도하고 나서 성작을 들어 성혈을 영한다.
사제가 성작을 들어올려 성혈까지 영하고 성작을 제대에 내려놓을 때 복사를 따라 교우들도 3번 가슴을 치며 소리내어 고죄경을 바친다. 여기서 영성체 전에 회중의 고죄경을 바치는 이유는 성체를 모시기 전에 회중 각자의 소죄와 미사 중의 분심잡념으로 흐트러진 마음을 뉘우치고 용서를 청해 영성체를 준비하기 위해서다. 교우들이 고죄경을 바치면 사제는 회중을 향해 약간 돌아서서 용서를 청하는 기도를 바치고 회중은 아멘으로 응답한다. 이어서 사제는 사죄경을 외우며 교우들을 향해 십자성호를 긋는다. 이때 교우들도 따라서 십자성호를 긋는다.
이후 사제는 감실에서 성체가 담긴 성합을 꺼내 성합에서 회중용 성체를 집어 성합 채 받는 채 회중을 향해 돌아서서 "Ecce Agnus Dei, ecce qui tollit peccáta mundi."(보라, 세상의 죄를 제거하시는 천주의 어린양이시로다)라고 하면 회중은 "Dómine, non sum dignus, ut intres sub tectum meum: sed tantum dic verbo, et sanábitur ánima mea."(주여, 내가 주를 내 집에 모시기에 합당치 못하오나, 오직 한 말씀만 하시면 내 영혼이 곧 나으리다)라고 3번 말할 때마다 고죄경을 바칠 때처럼 자기 가슴을 친다.
이제부터 영성체 시간이다. 만일 성체를 영할 교우들이 있으면 이때 사제는 이를 위하여 특별히 준비해둔 작은 성체가 들어 있는 성합을 들고 내려가 성체를 영해준다. 이때 성가대가 있다면 그날의 영성체경을 노래한다. 영성체 시간 동안 회중은 모두 장궤한 상태로 있다가 자기 차례가 되면 앞으로 나가 제대를 향해 궤배한 다음 장궤 입 영성체를 한다. 손 영성체나 서서 영성체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그리고 사제는 교우들에게 성체를 영해 줄 때 다음과 같이 외운다.
Corpus Dómini nostri Jesu Christi custódiat ánimam tuam in vitam æternam. Amen.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네 영혼을 지키어, 영원한 생명을 보장하셔지이다. 아멘. |
노부스 오르도 미사와 달리 트리엔트 미사에서는 사제가 아멘이라고까지 말하기 때문에 교우들은 영성체할 때에 아멘이라고 응답할 필요 없이 그냥 입만 벌리고 영하기만 하면 된다.
교우들은 영성체를 한 후에도 제자리로 돌아가 자리에 앉지 않고 장궤한 상태에서 영성체 후 묵상을 한다. 미사 중 영성체 하지 않는 경우 신자들은 신령성체의 기도를 할 수 있다. 교우들의 영성체가 끝나고 성합에 아직도 성체가 남아 있으면 제대 가운데에 있는 감실을 열고 그 안에 모셔둔다. 그러면 회중은 모두 자리에 앉는다.
그다음 사제는 복사에게 청하여 성작에 물을 붓게 하고 그것을 마신다. 그리고 성작을 들고 서간편으로 가서 아직 붙어있는 자기 양손의 엄지와 검지 위에 물을 부으라고 복사에게 청한다. 성체 축성 이후에 사제의 양손의 검지와 엄지는 아직까지 서로 붙어 있었으니 이는 혹시라도 거기에 묻은 성체가루가 떨어져 버려질까 하는 염려 때문이다. 사제는 성작을 들고 제대 가운데로 가서 자기의 손가락을 씻은 물을 마시고 성작수건으로 성작 안을 닦는다. 그리고 성체포를 거두어 성낭 안에 넣고 나올 때와 같이 이제 물러갈 준비를 한다.
사제는 서간편으로 가서 그날의 영성체경을 바친다. 사제가 영성체경을 바친 다음 제대 가운데로 가서 교우들을 향하여 "Dominus vobiscum." 인사를 하면 회중은 "Et cum spiritu tuo." 하고 말하며 일어선다. 그러면 사제는 다시 서간편으로 가서 영성체 후 기도를 바치고 미사 경본을 덮는다.
다시 제대 가운데로 돌아가 신자들에게 같은 인사를 하고 "Ite, Missa est."(미사가 끝났으니 평안히 갈지어다)라고 말하면 교우들은 "Deo gratias."(천주께 감사하나이다)라고 응답한 다음 모두 장궤한다. 그러면 사제는 교우들을 향하여 크게 십자 성호를 그어 강복한다.
그리고 복음편으로 가서 요한 복음 1장 1~14절을 읽는다. 이 미사성제가 지닌 신비인 ‘이에 말씀이 강생하여 사람이 되사’(ET VERBUM CARO FACTUM EST)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 구절에서 사제와 복사, 회중은 모두 장궤한 다음 일어선다. 복음 봉독이 끝나면 회중이 "Deo gratias."라고 응답함으로써 미사성제는 끝난다.
사제가 복사들이 퇴장할 때에 교우들은 성가대와 함께 성가를 부른다.
5.4. 평일미사 후
참고로 새 미사와 달리 트리엔트 미사에서는 평일미사에는 미사 후 기도문을 바치는데 이 기도문은 교황 레오 13세에 의해 첨가되었기 때문에 '레오 기도문'이라고 부른다. 레오 13세가 환시를 보신 후부터 트리엔트 미사에서는 평일미사 후에 레오 기도를 바치게 되었다.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어느 날 미사 후 교황은 추기경 회의실에 있다가 갑자기 바닥에 주저앉았다. 의사를 부르러 갔고 즉시 몇 명의 의사가 왔다. 맥박은 뛰지 않았고 이미 약해진 늙은 몸의 호흡은 더 약해지는 것 같았다. 갑자기 그는 회복되어 말했다. "나는 참으로 무서운 광경을 보았다!" 그는 미래에 모든 나라들 안에서 교회를 거슬러 미쳐 날뛰는 사탄과 잘못 이끄는 권력들을 보았는데, 그때 성 미카엘 대천사가 때마침 나타나서 사탄과 그의 무리를 지옥으로 던져버렸다. 이것이 바로 교황 레오 13세가 평일미사 후에 전세계에서 암송하라는 기도가 만들어진 이유이다.
Ave Maria (성모송) - 3번 반복 Ave Maria , gratia plena, Dominus tecum benedicta tuin mulieribus, et benedctus fructus ventris tui Jesus Sancta Maria, Mater Dei, ora pro nobis peccatoribus, nunc et in hora mortis nostrae. Amen. Salve Regina(성모찬송) Mater misericordiae, vita, dulcedo, et spes nostra, salve. R. Ad te clamamus, exsules filii Evae. V. Ad te suspiramus gementes flentes in hac lacrymarum valle. R. Eia ergo, Advocata nostra, illos tuos misericordes oculos ad nos converte. V. Et Jesum, benedictum fructum ventris tui, nobis, post hoc exilium, ostende. R. O clemens, o pia, o dulcis Virgo Maria. V. Ora pro nobis, sancta Dei Genetrix. R. Ut digni efficiamur promissionibus Christi. Oremus. Deus, refugium nostrum et virtus, populum ad te clamantem propitius respice; et intercendente gloriosa et immaculata Virgine Dei Genetrice Maria, cum beato Joseph, ejus Sponso, ac beatis Apostolis tuis Petro et Paulo, et omnibus Sanctis, quas pro conversione peccatorum, pro libertate et exaltatione sanctae Matris Ecclesia, preces effundimus, misericors et benignus exaudi. Per eumdem Christum Dominum nostrum. R. Amen. Oratio ad Sanctum Michael (성 미카엘 대천사께 바치는 기도) Sancte Michael Archangele, defende nos in proelio, contra nequitiam et insidias diaboli esto praesidium. Imperet illi Deus, supplices deprecamur: tuque, Princeps militiae coelestis, Satanam aliosque spiritus malignos, qui ad perditionem animarum pervagantur in mundo, divina virtute, in infernum detrude. R. Amen. Cor Jesu Sacratissimum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이여) - 3번 반복 V. Cor Jesu(고개 숙인다) sacratissimum, R. Miserere nobis. |
5.5. 영상
트리엔트 미사에 대한 기본 설명
6. 한국 현황
한국에서는 1969년 전례개혁 후 트리엔트 미사를 정기적으로 봉헌하는 단체가 오랫동안 존재하지 않았다. 파현우 라이문도 신부 등 몇몇 고참 사제가 계속 봉헌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하지만 그것도 1980년대를 마지막으로 사라졌다. 지금도 다른 나라에 비해 인지도 자체가 낮은 편으로, 봉헌하는 곳도 적은 편이다. 게다가 프란치스코 교황의 자의교서 《전통의 수호자들》 때문에 교구장 등 장상의 허가하에만 트리엔트 미사를 봉헌할 수 있게 되면서 한국에서는 더욱 상황이 안 좋아졌다.한국에서는 현재 성 비오 10세회#, 성 비오 10세의 마리아 군대#, 전통라틴전례회#, 팔로티회 양덕원 공동체#에서 트리엔트 미사를 정기적으로 봉헌하고 있다. 이들 단체 외에 충청도에 있다는 교황공석주의자 모임[23]에서 1년에 한두 차례 트리엔트 미사를 봉헌한다는 소문이 있지만 외부인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
성 비오 10세회 성모무염시태성당
성 비오 10세회는 전례개혁에 의한 새 미사 도입 후 한국에서 최초로 다시 트리엔트 미사를 봉헌하기 시작했다. 1987년부터 한국에 사제가 방문하여 트리엔트 미사를 봉헌하기 시작했는데 초창기에는 1년에 1-2차례만 방문하여 봉헌하다가 1993년부터 1달에 1차례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봉헌하기 시작했고 2013년부터[24]는 1달에 2차례 방문하면서 정기적으로 봉헌하고 있다. 현재 한국에서 봉헌되는 트리엔트 미사의 대부분은 성 비오 10세회에서 하고 있는 실정이다.
성 비오 10세회는 현재 서울특별시 서초구에 위치한 성모무염시태성당[25]과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에 위치한 김제공소[26] 2곳에서 트리엔트 미사를 정기적으로 봉헌하고 있다. 한국에 사제가 상주하지 않고 필리핀이나 싱가포르[27]에서 신부가 방문하는데 성모무염시태성당은 1달에 2차례 김제공소는 1달에 1차례 신부가 방문하여 트리엔트 미사를 봉헌[28]한다. 한 차례 방문할 때마다 짧게는 이틀에서 길게는 이레 정도 머무르며 미사를 봉헌한다. 2013년부터 2018년까지는 토마스 오노다 신부와 프랑소와 레네 신부[29]가 번갈아가면서 한국에 방문했지만 2018년 2월부로 레네 신부가 뉴질랜드로 전근되면서 현재는 오노다 신부와 성 비오 10세회 아시아관구 사제 중 1명이 번갈아가면서 한국에 방문한다.
2024년 6월 21일 성 비오 10세회의 첫 한국인 사제로 김민재 론지노 신부가 서품받으면서, 앞으로 한국인 사제가 성모무염시태성당과 김제공소에 방문하여 미사를 집전할 수 있게 되었다. 실제로 김민재 신부가 귀국하여 7월 7일 성모무염시태성당에서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미사를 집전했다.
성 비오 10세회 김제공소
김제공소가 위치한 김제시 금산면은 19세기 말부터 천주교 교우촌이 형성됐고 지금도 면 단위 지역에서 유일하게 본당이 2곳이다. 2013년 상반기에 이곳에 사는 천주교 신자 몇 명이 우연히 인터넷을 통해 성 비오 10세회를 알게 되고 먼저 성 비오 10세회에 연락했는데, 이것이 계기가 되어 공소가 설치됐다고 한다. 김제공소는 2015년과 2017년에 피정이 열리는 등 성 비오 10세회 주관 피정 장소로도 사용되곤 한다.
김제공소는 2013년 9월부터 2018년 1월까지 1달에 2차례 사제가 방문했지만 2018년 1월을 마지막으로 프랑소와 레네 신부가 뉴질랜드로 전근되면서, 2018년 2월부터 현재까지 1달에 1차례만 사제가 방문하고 있다.
성 비오 10세의 마리아 군단 성 비오 10세의 마리아 군단 성당
2012-2013년 성 비오 10세회 분열이 한국지부에도 영향을 미치면서[30] 2012년 10월부터는 한국에서도 성 비오 10세회와 성 비오 10세의 마리아 군단이 각기 따로 트리엔트 미사를 봉헌하기 시작했다.성 비오 10세의 마리아 군단은 현재 서울특별시 은평구 불광동에 위치한 성 비오 10세의 마리아 군단 성당[31]에서 정기적으로 트리엔트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성 비오 10세회와 마찬가지로 한국에 신부가 상주하지는 않고 필리핀에서 신부가 방문하는데 1달에 1차례 방문하여 트리엔트 미사를 봉헌[32]한다. 한 차례 방문할 때마다 보통은 사흘에서 길게는 이레 정도 머무르며 미사를 봉헌한다. 2018년 10월까지는 프랑소와 샤잘 신부와 피코 신부가 번갈아가면서 한국을 방문[33]했지만 11월부로 피코 신부가 프랑스로 전근되면서 현재는 샤잘 신부만 한국에 방문한다.
성 비오 10세의 마리아 군단은 리처드 윌리엄슨 주교가 2013년 5월·2015년 5월·2018년 5월·2018년 6월 4차례에 걸쳐 견진성사 목적 등의 이유로 방한한 적[34]이 있다. 2020년 4월 부활절을 맞이해서 다시 한 번 방한하려고 했으나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취소했다.
성 요한의 집[35]
전통라틴전례회는 현 회장이 단체 창립 전 2004년부터 전통 전례 관련 네이버 카페 '신앙의 신비'[36]를 개설하여 운영하고 있었다. 단체를 창립하기 전 현 회장이 혼자 활동하던 시기에는 성 비오 10세회 등 다른 전통 가톨릭 단체와 교류·협력하며 활동하다가, 2007년 전통라틴전례회라는 이름으로 단체를 정식 창립하고 2010년부터 단체 주관으로 트리엔트 미사를 봉헌하기 시작했다. 2010년부터 현재까지 성 요한의 집[37]에서 1달에 하루[38] 파리외방전교회 허보록 필립보 신부[39]에 의해 봉헌되고 있다. 성 요한의 집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 트리엔트 미사를 봉헌한 적도 있지만[40] 2015년부터는 그런 적이 없다.
허보록 필립보 신부[41]는 파현우 라이문도 신부의 후임으로 한국 천주교 사회복지 사업을 담당하기 위해 한국에 파견되었다. 지금도 원래 직무는 사회복지 사업이고 이로 인해 바쁘기 때문에 더 자주 트리엔트 미사를 봉헌하고 있지 못하는 실정이다. 전통라틴전례회 운영 인터넷 네이버 카페 '신앙의 신비' 회원 중에 다른 사제도 있긴 하지만 각자 맡은 바 직무에 바쁘거나 등의 이유로 전통라틴전례회의 오프라인 활동에 정기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사람은 없다.
혹자가 전통라틴전례회를 한국 천주교의 유일한 교회법상 합법 전통 가톨릭 단체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으나 정확히 하자면 전통라틴전례회는 교구 인가를 받은 단체는 아니며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등과 같이 별도 인가를 받지 않은 임의단체에 해당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활동하는 다른 전통 가톨릭 단체와 다르게 교회법상 불법 상태에 있지는 않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가 전파되었을 때 전국에서 신자가 모이는 전통라틴전례회의 전통 미사 특성상 방역 안전을 위해 회중이 참례하는 전통 미사 봉헌은 무기한 중단되었다.
팔로티회 양덕원 공동체에서는 한 폴란드인 사제 주도로 트리엔트 미사가 봉헌되기 시작했으며 주일과 대축일마다 트리엔트 미사가 봉헌된다.
7. 여담
-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폐막 후 베이사이드 등의 이단이 트리엔트 미사를 배타적으로 강조했고 전례개혁 후 한동안 트리엔트 미사를 교회법상 합법적으로 봉헌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트리엔트 미사를 봉헌하는 사제와 신자들은 불온한 취급을 받았다.[42] 베이사이드 성모 발현 추종자 집단 등 이단은 "트리엔트 미사가 아니고서는 전례로서 효력이 없다"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켰다.[43]
-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 전례에 젖어 있는 많은 가톨릭 신자들은 옛 전통이 유지되었으면 하는 생생한 바람을 표현하였다. 이런 이유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교황청 경신성사성 1984년 회람 서한 《4년 전》(Quattuor Abhinc Annos)의 특별 허가로 트리엔트 미사 경본을 특정 조건에서 다시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으며 1988년에 자의 교서 《하느님의 교회》(Ecclesia Dei)에서 주교들에게 트리엔트 미사를 바라는 모든 신자에게 이러한 권한을 관대하게 부여하도록 권고했다. 2009년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이 정책을 계승하는 차원에서 자의 교서 《교황들》을 통하여 트리엔트 미사를 더 폭넓게 허용했다.
- 2007년 7월 7일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자의 교서 《교황들》(SUMMORUM PONTIFICUM)을 통해 성전(聖傳)에 의한 트리엔트 공의회 전례 양식의 트리엔트 미사 성제를 특별 양식(Forma extraordinaria) 미사 성제로 선포하여 교구장 또는 장상의 허락 없이 트리엔트 미사를 봉헌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 하지만 한국 천주교에서는 아직도 교구장 주교 눈치를 많이 봐야 한다. 실제로 광주대교구에서는 사제의 트리엔트 미사 봉헌을 가로막은 사례가 있었으며 수원교구에서는 트리엔트 미사 봉헌 단체에 전화를 걸어 다른 장소에서 트리엔트 미사를 드리지 말라고 주문한 적이 있었다. 게다가 현재 한국 천주교 사제와 수도자, 평신도의 대부분은 전례 개혁 후 출생했거나 입교했기 때문에 트리엔트 미사에 대해 굉장히 피상적인 수준에서 인식하고 있거나 아예 그 존재를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다시 말해서 트리엔트 미사가 봉헌되던 시절의 천주교를 기억하는 교우들이 별로 없다는 얘기다.
- 프란치스코 교황은 2021년 7월 16일 자의교서 《전통의 수호자들》(TRADITIONIS CUSTODES)을 반포했다. 이 자의교서에 따라 현재 트리엔트 미사를 봉헌하는 사제들은 계속 미사를 봉헌해도 될지에 대해 주교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자의교서 발표 후 서품되는 사제들이 트리엔트 미사를 봉헌하기 위해서는 주교에게 공식 요청서를 제출해야 하고 주교는 허용하기 전 교황청과 협의해야 한다. #
- 2007년까지 명동성당에서는 매주 토요일 저녁 7시 특전 미사로 라틴어 새 미사를 봉헌했지만 신자 참석 저조와 기타 여러 이유 때문에 라틴어 새 미사를 더 이상 봉헌하지 않게 되었고 그 시간은 영어 미사로 대체되었다. 그러다가 2013년부터 주요 미사곡만 라틴어로 부르게 되었다. 그렇지만 라틴어 새 미사는 파주 참회와 속죄 성당 등 한국 천주교의 여러 성당에서 정기적·부정기적으로 봉헌 중이다.
- 충북 청주교구 서운동성당에서 사순시기인 2021년 3월부터 매주 화요일마다 트리엔트 미사의 형식과 일견 유사한 방식(예: 벽 제대 설치, 주요 기도문의 라틴어 봉독)으로 라틴어 새 미사를 봉헌하였다.[44] 이 성당의 주임 신부인 김웅렬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가 "혼란스러울 때는 전통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는 등 전통에 호의적인 인물임이 반영된 듯하다. 김 신부는 지난 2021년 8월 29일 주일미사를 끝으로 정년 은퇴했다. 유튜브 채널을 통해서도 시청할 수 있다.
- 한국 사극의 미사 재연은 대부분 틀렸다.[45] 조선 후기에 봉헌된 미사는 1969년 전례 개혁 전 미사기 때문에 당연히 트리엔트 미사여야 하지만 미사 장면을 묘사하는 대다수 사극은 새 미사를 묘사한다. 그래도 가톨릭평화방송에서 방송했던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최양업 토마스 신부 관련 드라마에서는 트리엔트 미사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냈다.
- 대한성공회 1939년과 1965년 공도문(公禱文)은 트리엔트 미사의 미사통상문 한국어 번역과 상당히 유사하다. 그렇지만 1939년과 1965년 공도문에 의한 감사성찬례는 한국어로 봉헌되었으며 전례 내용의 핵심인 전문(Canon)에 서로 차이가 있고 트리엔트 미사와 달리 레오 13세 교황 기도문이 없다. 현재 대한성공회는 1939년이나 1965년 공도문에 의한 감사성찬례를 정기적으로 봉헌하는 성당은 없으며, 단지 서울주교좌성당에서 2016년 5월·10월 전례 연구 차원에서 1965년 공도문에 따른 감사성찬례(미사)를 봉헌한 적이 있다. 당시 공도문은 천주경 등 용어까지 같은 시기 한국 천주교와 비슷한 부분이 많다.[46]
[1] 2007년 교황 자의교서 「교황들」에 의하여 이와 같이 선포되었다.[2] 트리엔트는 이탈리아 북부에 있는 도시이다. 트리엔트(Trient)는 독일어식 발음이고 이탈리아어로는 Trento(트렌토), 라틴어로는 Tridentum(트리덴툼). 1918년까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영토였다가 나중에 이탈리아의 영토가 되었다. 한국 천주교에서도 '트리엔트'와 '트렌토'로 표기가 오락가락하는데 공의회 문헌집에서는 '트렌토', 덴칭거 한국어판에선 '트리엔트'로 표기하였다.[3] 한국 천주교가 여기에 해당하며 동방 가톨릭 교회는 해당하지 않는다.[4] '트리엔트'의 라틴어 명칭[5] 트리엔트 미사를 라틴어 미사라고 부르는 것은 엄밀히 말해서 부적절하다. 왜냐하면 새 미사도 라틴어로 드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천주교에서는 감곡 매괴 성모순례지 성당과 명동성당 등지에서 라틴어 새 미사를 봉헌한 예가 있고 이 외에도 여러 곳에서 봉헌되기 때문에 일일이 다 적을 수는 없다.[6] 프란치스코 교황도 2014년 주님 세례 축일 미사에서 벽에 붙은 제대를 사용했다.[7] 실제로 1570년부터 1870년까지 300년 간은 아예 개정이 없었고 그 후 개정도 전체 내용의 극히 일부에 해당한다.[8] 비오 5세, 교황령 「처음부터」(Quo Primum), 1570.7.14.[9] 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article_view.php?aid=292892 명시적으로 '트리엔트 미사'라고 쓰진 않았다. 하지만 저 기고문을 작성한 아시아가톨릭뉴스 편집자 윌리엄 그림 신부는 전부터 부정적으로 트리엔트 미사를 언급해 왔기 때문에 이 기사에서 언급하는 '라틴어 미사'가 '트리엔트 미사'를 의미하고 있다고 이해할 수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평화신문》이나 《가톨릭신문》을 비롯한 일반적인 천주교 계통 언론매체들과 달리 진보 성향이 뚜렷하다)도 이 사제의 기고문을 게재하곤 했다.[10] 입을 맞춘다는 뜻.[11] 단, 그렇다고 해서 궤배가 금지된 것은 아니다.[12] 미사보를 쓰는 것은 성서에 근거를 두고 있다. 관련 링크.[13] 『로마 미사 경본』 55면,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160항과 161항.[14] 「한국 천주교 사목 지침서」 제78조[15] 「구원의 성사(Redemptionis Sacramentum)」 90-92항, 교황청 경신성사성, 2004년.[16] 1969년 전례 개혁 이후 제대와 감실이 분리되지만 전통 제대에는 감실이 제대 중앙에 위치한다.[17] 현대 제대와 달리 십자고상과 제대가 서로 분리되어 있지 않으며 십자고상 뒷편에 성상을 놓는다. 동유럽 가톨릭 성당에는 이콘을 모신 곳도 종종 있다.[18] 대미사라고도 불린다.[19] 낭독미사라고도 불리며 과거 한국 천주교회에서는 ‘소(小)미사’로 번역하였다.[20] 대리석판 가운데 감실을 만들어 성유물을 봉안하고 대리석 덮개를 덮은 후 교구장 직인이 찍힌 종이 봉인을 바른다. 천주교 부산교구 중앙성당에 가면 볼 수 있다. 원래 제대는 교회의 머리인 그리스도를 상징했으며 위에도 언급된 바 같이 성유물을 안치함은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교회의 지체가 결합된, 총체적인 교회를 상징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제대에 친구하는 것이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제대에 인사한다는 의미보다 성유물에 인사한다는 의미로 바뀌었다. 이 때문에 전례개혁에서는 중세 이전 모습대로 머리인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제대에 인사하는 의미로 복구했다.[21] 말씀 전례가 예비미사라고 불린 이유는 고대에는 예비신자들에게 말씀 전례까지만 참례가 허용되어서이고 성찬 전례가 교우미사라고 불리는 이유는 이 전례까지가 교우들에게만 참례가 허용되어서다. 초대 교회 때에는 두 전례 사이에 부제가 예비신자들에게 나가 있으라고 선언하는 경문이 있었다.[22] 이때 교황과 교구장 주교의 이름을 말하고 모든 교우를 언급한다. 주례자가 주교인 경우 기도문 안에서 '주의 종인 교황 아무개(una cum famulo tuo Papa nostro N.)'와 다음에 오는 주교 부분에서는 '주의 부당한 종인 나와(et me indigno servo tuo)'라고 읽는다. 주례자가 교황인 경우 '주의 양떼를 다스리도록 택하신 부당한 종인 나와(una cum me indigno famulo tuo, quem gregi tuo præesse voluisti)'라고 읽는다.[23] 성 비오 10세회의 한국 진출 초창기에 협력했던 한양대학교 김인호 명예교수가 이 모임 지도자로 있다는 소문이 있다.[24] 동시에 이 해 9월부터 김제공소에서도 정기적으로 트리엔트 미사가 봉헌되기 시작했다.[25]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대로 55길 17 중추빌딩 5층(우편번호 06604). 지번주소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동 1697-12 중추빌딩 5층'. 평범한 오피스텔 건물인 중추빌딩 5층에 입주해있다.[26]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금산면 수류7길, 97(우편번호 54344). 지번주소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금산면 화율리 189-1'. 김제공소는 김제시에 사는 어떤 가톨릭 교우의 요청으로 2013년 9월 문을 열었다.[27] 싱가포르에는 성 비오 10세회 아시아관구가 있다.[28] 미사 시간표는 http://sspx.or.kr/bbs/board.php?tbl=schedule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29] 이미 1988년부터 1993년까지 한국에 몇 번 방문한 적이 있다고 한다.[30] 분열 당시 한국 방문 사제 중에서 오노다 신부와 프랑스와 샤잘 신부가 서로 입장을 달리했고 신자들도 오노다 신부의 입장을 지지하는 그룹과 샤잘 신부를 지지하는 그룹으로 나뉘어졌다.[31] 서울특별시 은평구 통일로 870 M타워 4층(우편번호 03344). 지번 주소 '서울특별시 은평구 불광동 484-319 M타워 4층'. 평범한 상가 건물에 입주해 있다.[32] https://cafe.naver.com/ArticleList.nhn?search.clubid=29516371&search.menuid=4&search.boardtype=L[33] 1월에는 샤잘 신부가 방한한다면 2월에는 피코 신부가 방한하는 식이었다.[34] 2012년 5월에 방한한 적도 있으나 그 때는 성 비오 10세회가 아직 분열되기 전의 성모무염시태성당 방문이었다.[35] 천주교 사회복지기관 시설이다.[36] 원래 이름은 '전통 라틴 미사 성제'.[37] 경기도 군포시 군포로456번길 19-4(우편번호 15856). 지번 주소 '경기도 군포시 당동 915-15'. 성 요한의 집 자체는 천주교 사회복지 기관이다.[38] 예외적으로 1달에 이틀 드리는 경우도 있다.[39] 프랑스인.[40] 2014년 1월 19일에 서울대교구 정릉4동성당에서 해당 본당 교우들과 함께 트리엔트 미사를 봉헌한 적이 있으며 수원교구 성당 2곳에서도 트리엔트 미사를 봉헌했다. 하지만 2015년부터 성 요한의 집 외 다른 장소에서 트리엔트 미사를 봉헌하지 못했다. 수원교구로부터 "성 요한의 집 외 다른 장소에서 트리엔트 미사 봉헌은 삼갔으면 한다"는 사목상의 권고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41] 1990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사제로 서품된 허보록 신부는 전통 가톨릭 단체 전반에서 꺼리는 성령쇄신운동에 호의적이며 원래 트리엔트 미사에 특별한 관심이 있는 사제는 아니었으나 2010년 인터넷 네이버 카페 '신앙의 신비' 관리자 겸 '전통라틴전례회' 창립자이자 현 회장의 부탁으로 성 요한의 집에서 트리엔트 미사를 봉헌하기 시작한 후 전통에 열심을 가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 2019년 João Silveira는 허보록 필립보 신부를 인터뷰 했는데 인터뷰 내용은 성 비오 10세회 아시아관구 소식지에 게재되었다. 프랑스 전통 가톨릭 단체 중 하나인 Paix liturgique는 한국의 트리엔트 미사 현황과 전통 가톨릭 단체들의 활동 현황에 관하여 João Silveira를 인터뷰했다. 참고로 Paix liturgique와의 인터뷰에서 언급되는 교수는 성 비오 10세회 성모무염시태성당의 트리엔트 미사에도 출석한 적이 있는 가톨릭 신자다.[42] 새 미사 공포 후 한동안 트리엔트 미사를 교회법상 합법적으로 봉헌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할 만큼 어려워지면서 트리엔트 미사를 정기적으로 봉헌하는 단체와 신자들의 존재 자체가 (은퇴 사제 등 약간의 예외를 제외하면) 교회의 최고 교도권에 대한 불순명으로 간주되었다. 1984년의 제한적 허락과 2007년의 전면적 허락으로 이런 인식은 상당히 약해졌지만 트리엔트 미사 봉헌이 (교회법상 합법적이든 불법적이든 가톨릭 교회에서 가장 보수적인 축에 속하는) 전통주의 가톨릭 단체들에 의해 주도되는 현실에서 트리엔트 미사 참례 자체는 지금도 무엇인가 특이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43] 성 비오 10세회도 새 미사의 유효성은 인정한다.[44] 원래 김웅렬 신부는 완전한 트리엔트 미사를 드리는 것을 고려했으나 현대의 평신도들은 교회 전통에 익숙하지 않고 특히 그레고리오 성가를 아예 모르기 때문에, 트리엔트 미사의 형식을 일부만 가져와 라틴어 새 미사로 봉헌하게 되었다.[45] 그렇지만 스캔들 - 조선남녀상열지사(···)에서 제대로 사용하는 상이 벽에 붙어있는 모습으로 나온 적이 있다.[46] 다만 성공회 강화성당은 매 주일마다 벽제대 미사를 봉헌하지만 과거 공도문이 아닌 현행 공도문으로 봉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