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용산 신학교와 원효로 예수성심성당 순교자들의 유해를 모셨던 최초의 근대식 신학교 성당 | ||
기본 정보 | ||
위치 | <colbgcolor=#FFFFFF>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19길 49 | |
교구 | 천주교 서울대교구 | |
관리 | 성심수녀회 (02-701-5501) | |
홈페이지 | 성심수녀회 한국관구 | |
건축 정보 | ||
구분 | 용산신학교 | <colbgcolor=#FFFFFF> 원효로 예수성심성당 |
착공 | 1891년 5월 6일 | 1899년 6월 9일 |
축성 | 1892년 6월 25일 | 1902년 4월 14일 |
문화유산 정보 | 사적 제520호 | 사적 제521호 |
지정일자 | 2012월 6월 20일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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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소재 옛 용산신학교와 원효로성당은 원래는 가톨릭대학교/성신교정의 전신인 예수성심신학교(聖心神學校)와 부속 성당 건물이다. 지금은 성심수녀회 한국관구와 학교법인 성심학원에서 관리하고 있다.신학교와 성당 건물은 지난 1982년에 함께 사적 제255호로 지정되어 보존되었으나, 두 건물의 역사성과 특성을 고려해서 2012년에 공동 지정을 해제하고, 각각 사적 520호와 521호로 나눠서 지정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2. 용산 예수성심 신학교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60513a><colcolor=#fff> 1855 - 1876 | 성 요셉 신학교 | |||
1877 - 1946 | 용산예수성심신학교 | ||||
1947 - 1958 | 성신대학 | ||||
1959 - 1963 | 가톨릭대학 | ||||
1964 - 1991 | 성심여자대학 | ||||
1992 - 1994 | 성심여자대학교 | ||||
1995 - 현재 | 가톨릭대학교 |
서울 용산신학교 서울 龍山神學校 | |
분류번호 | <colbgcolor=#FFF,#2d2f34> 대한민국 사적 제520호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19길 49 (원효로4가) |
분류 | 유적건조물 / 교육문화 / 근대교육문화 / 학교시설 |
면적 | 690㎡ |
지정연도 | 2012.06.20 |
제작시기 | 1892년 |
성심여자중학교&성심여자고등학교 교정 예수성심상 |
이어 신학교육을 담당한 예수성심신학교는 1885년(고종 22) 부엉골[2]에서 처음 문을 열었으며, 이듬해인 1886년 조불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되어 천주교 신앙의 자유가 보장되면서 천주교회에서는 성직자들이 참수된 한강가의 새남터와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피를 흘린 당고개가 가까이 바라보이는 이 일대[3]의 부지를 구입, 1887년 3월에 서울특별시 용산구 현 위치로 옮겨졌다.
두 건물 모두 프랑스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인 코스트(Coste) 신부[4]가 설계하였다. 예수성심신학교 교사 건물은 1891년 5월 6일 공사를 시작하여 1892년 6월 25일 축성식을 올렸다. 건물의 양식은 명동성당 주교관과 흡사한 조오지안 양식의 벽돌조 건축물인데, 둥근 아치형 창호와 더불어 간결하고 장중하게 치장된 내부구조가 특이하다.
성당은 그 10년 후인 1902년에 축성되었다.
이 자리에 있던 신학교는 종로구 혜화동으로 이사를 갔고(現 가톨릭대학교/성신교정), 성심수녀회에서 천주교 서울대교구로부터 이 땅을 넘겨받아 수녀원 및 성심학교를 세웠다. 성심국민학교(여학교), 성심여자중학교, 성심여자고등학교가 있었으나, 지금은 성심여중고만 남아 있다.
한편 성심수녀회는 강원도 춘천에 성심여자대학교도 세웠다. 성심여대는 경기도 부천으로 이전했고[5], 이후 1995년 가톨릭대학교에 흡수되어 가톨릭대학교/성심교정이 되었다.
3. 원효로성당
서울 원효로 예수성심성당 서울 元曉路 예수聖心聖堂 | |
분류번호 | <colbgcolor=#FFF,#2d2f34> 대한민국 사적 제521호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19길 49 (원효로4가) |
분류 |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 천주교 / 성당 |
면적 | 709㎡ |
지정연도 | 2012.06.20 |
제작시기 | 1902년 |
성당은 1899년 6월 9일 신학교 부속성당으로 착공되었고 1902년 4월 14일 축성식을 올렸다. 이 건물의 특이한 점은 지형을 이용하여 전면 일부는 언덕 아래에 3층으로, 언덕 위는 단층으로 되게 하여 작은 건물이지만 당당한 외관을 보여주고 있으며, 내부의 천장구성과 장식은 고딕양식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원효로 성당은 19세기 말의 성당 건축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건축사적 의의를 갖는다.
옛 용산신학교 성당은 많은 순교자들의 유해가 안치되었던 곳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를 비롯해 조선교구 초대 교구장 브뤼기에르 주교, 2대 교구장 성 앵베르 범 라우렌시오 주교, 3대 페레올 고 요한 주교, 4대 성 베르뇌 장 시메온 주교, 5대 성 다블뤼 안 안토니오 주교, 6대 펠릭스 클레르 리델 주교, 7대 블랑 백 요한 주교, 8대 교구장이자 이 성당 봉헌식을 집전한 귀스타브 샤를 마리 뮈텔 주교에 이르기까지 8명의 역대 조선교구장 주교들의 유해가 모두 이 성당에 안치되어 있었다.
또한 기해박해(1839년) 순교자인 성 모방 신부나 베드로 신부, 성 샤스탕 정 야고보 신부를 비롯해 배론 신학당을 세우고 병인박해(1866년) 때 순교한 성 오메트르 오 베드로 신부, 성 위앵 민 루카 신부, 성 브르트니에르 백 유스토 신부, 성 도리 김 헨리코 신부, 성 볼리외 서 루도비코 신부 등의 유해도 이 성당을 거쳤다. 이곳에 안치되었던 순교자들의 유해는 그 후 혜화동 신학교 성당을 비롯해 명동성당, 절두산 등지로 옮겨 모셔졌고, 역대 교구장들의 유해는 용산 성직자 묘지로 옮겨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