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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대한성결교회 基督敎大韓聖潔敎會 Korea Evangelical Holiness Church | |
<colbgcolor=#5c121f><colcolor=#fff> 표어 | 회개와 상생으로 다시 뛰는 성결교회 |
약칭 | 기성 |
국가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설립 연도 | 1907년 |
총회장 | 류승동 목사 |
부총회장 | 안성우 목사, 노성배 장로 |
교인 수 | 385,728명 (아이굿뉴스, 2023년#) |
위치 | 서울특별시 강남구 테헤란로64길 17, 1~10층 (대치동) |
링크 | | | (교육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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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성결교회는 18세기 성공회 사제 존 웨슬리의 완전성화론 입장을 따라 19세기 미국에서 형성된 종파이다. 감리회의 형제교회로 19세기 말 미국 동부 및 중서부 지역에서 일어난 제2차 대각성운동 때, 피미 팔머, A.B. 심슨 등을 중심으로 일어난 성결운동(holiness movement)을 출발점으로 한다. 중생(Born again;重生)·성결(聖潔)·신유(神癒)·재림(再臨)의 사중복음이라는 용어는 A.B. 심슨이 처음으로 사용했다. 이후에 성결운동은 20세기 들어 오순절운동으로 발전됨으로, 성결운동은 경우에 따라서는 웨슬리안-성결운동 또는 성결-오순절운동으로 부르기도 한다.한국의 성결교회는 찰스 카우만과 나카다 주지가 설립한 동양선교회(OMS; 현 One Mission Society참조)를 출발점으로 한다. 동양선교회가 마틴 냅(M. W. Knapp)의 만국성결교회(International Apostolic Holiness Church, 이후 Pilgrim Holiness Church)에 뿌리를 둠으로, 현재 기독교대한성결교회는 The International Conference of the Wesleyan Church (현재 미국 중서부에 본부를 두고 있는 Wesleyan Church 교단은 옛 만국성결교회를 합병)와 국제교류를 하고 있다.참조 또한, 세계성결교회연맹(World Federation of Holiness Church; 구, 아태성결교회연맹)을 통해, OMS를 통해 설립된 한국, 일본, 대만 성결교회 중심의 정기적 교류도 하고 있다.
한국 성결교회의 주된 교단으로는 기독교대한성결교회(기성), 예수교대한성결교회(예성), 대한기독교나사렛성결회(나성)가 있으며, 3개 교단은 한국성결교회연합회를 조직해서 교류하고 있다.
2. 역사
한국 성결교회의 모체는 미국의 찰스 카우만(Charles E. Cowman)와 레티 카우만(Lettie B. Cowman) 부부, 어니스트 길보른(E. A. Kilbourne), 나카다 주지(中田重治)에 의하여 극동지방 선교를 목적으로 1901년에 설립된 동양선교회(東洋宣敎會, The Oriental Missionary Society)이다. 이 선교회는 1901년 일본 동경에 동양선교회 복음전도관을 창설하고 설교를 시작함으로써 비롯되었다.동양선교회는 처음에 교회가 아닌 전도관(mission hall)의 전도를 주로 하였으나, 점차 교인이 많이 모임에 따라 교회가 형성되고 교역자를 양성하기 위해 전도관 내에 성서학원(bible institute)을 세워 하나의 교파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원래 동양선교회는 어떤 교단에 소속된 단체가 아니고 복음주의적 신앙동지들로 구성된 선교회로, 창립자들은 감리회 출신이며 그 신학적 배경은 알미니안 계통의 웨슬리안 체험주의에 입각한 복음주의에 근거하고 있다.
그들이 내세운 전도표제인 중생(重生)·성결(聖潔)·신유(神癒)·재림(再臨)의 사중복음(四重福音)은 원래가 그들에게 큰 감명을 주었던 A.B.심슨(A.B. Simpson)의 사중복음, 즉 중생하게 하는 그리스도, 성결하게 하는 그리스도, 치료하게 하는 그리스도, 재림하는 그리스도라는 교리에 근거한 것으로, 이는 감리회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John Wesley) 사상의 유산이기도 하며, 복음주의사상의 계승으로 볼 수가 있다.
한국 성결교회는 일본 동경에서 동양선교회 소속 성서학원을 1907년 3월 졸업한 정빈(鄭彬)·김상준(金相濬) 두 사람이 1907년 5월초에 귀국하여 1907년 5월 30일 서울 종로구 염곡(現, 종로2가, 관철동)에 복음전도관을 세움으로써 시작되었다. 이 두 사람이 전도활동을 시작한 지 3년 뒤인 1910년에 두 사람의 강력한 요청으로 동양선교회는 영국인 존 토마스(John Thomas)를 초대 감독으로 한국에 파송함으로써 직접적인 선교활동을 시작하였다.
1911년 3월 경성성서학원(서울신학대학교 전신)을 창립하였으며, 1921년에 새로운 감독인 길보른이 부임하면서 명칭을 조선예수교 동양선교회 성결교회로 바꾸고, 이후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하게 된다. 1936년 교단분열이 일어나 약 10개 교회의 목회자들이 이탈하여 '하나님의 교회'[1]를 설립하게 되며, 이후 이들은 미국의 나사렛교회와 연합하여 대한기독교나사렛성결회를 만들게 된다.
이후 1943년 일제의 탄압으로 선교사들이 추방되고 교회가 강제해산되게 되며[2], 1945년 재건총회가 열리게 되고 1949년 기독교대한성결교회(기성)라는 이름으로 개정된다. 이후 6.25 전쟁으로 인하여 155명의 교인이 순교하고, 교단의 목회자 다수가 납북되고, 교단의 기반이 사실상 괴멸당하지만, 신도들의 힘으로 기적적으로 재건에 성공한다.
1961년, 교회일치운동에 대한 동참에 대한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되게 되며, 이후 예수교대한성결교회(예성)가 분열되어 독립해 나가게 된다. 이들은 지속적으로 통합을 위한 노력을 하였으나 번번히 실패하게 된다. 예성측에서 기성과의 통합을 위한 전제조건으로 NCCK(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3] 탈퇴를 들었었다. 이에 기성이 NCCK를 탈퇴하여 통합의 분위기를 조성하여 예성의 많은 교회가 기성으로 복귀하였으나 교단의 완전통합은 요원한 상황이다.
현재, 한국성결교회연합회 (기성, 예성, 나성의 교류기구)를 중심으로 "한국성결교회"라는 명칭을 공동 사용하자는 의견이 있으며, 나성은 2018년 총회에서, 예성은 2019년 총회에서 이에 대한 결의를 했으나 기성은 결의를 하지 못했다.[4]
3. 특징
- 대한민국에서 자생된 교단이다.
- 기독교대한감리회보다 보수적이고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과 비슷한 정도의 중도 성향을 보인다.
- 여성 안수를 허용한다.
- 유아세례가 허용된다.
- WCC, 교회협 회원 교단은 아니지만 에큐메니컬에 대해서는 관대한 편이다.
4. 조직도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조직도 |
5. 교단가
기독교대한성결교회 교단가 (성결의 노래) |
6. 교세
지방회가 각 지역별로 있지만 중부지방 특히, 서울특별시가 압도적으로 많고 그 다음이 대전광역시를 포함한 충청도 지역이다. 아래와 같이 지방회가 지역별로 분포되어 있다.- 서울지역
- 인천지역
- 경기지역
- 강원지역
- 충청지역
- 호남지역
- 영남지역
- 지역지방회
7. 주요 교회들
- 중앙교회 (한기채 목사)[5]
- 아현교회 (손제운 목사)[6]
- 성락교회 (지형은 목사)[7]
- 세한교회 (주진 목사)[8]
- 신길교회 (이기용 목사)[9]
- 신촌교회 (박노훈 목사)[10]
- 바울교회 (신현모 목사)[11]
- 천안교회 (윤학희 목사)[12]
- 천호동교회 (이기철 목사)[13]
- 한우리교회 (윤창용 목사)[14]
- 김해제일교회 (김신일 목사)
- 장충단교회 (장승민 목사)
- 새뜻교회 (김평중 목사)
- 은평교회 (유승대 목사)
- 한빛교회 (김진오 목사)
- 도봉교회 (조병재 목사)
- 서울제일교회 (최봉수 목사)
- 충무교회 (성창용 목사)
- 창원제일교회 (김덕주 목사)
- 만리현교회 (조준철 목사)
- 영광교회 (안세광 목사)[15]
- 영등포교회 (김신은 목사)
- 본교회 (조영진 목사)[16]
- 삼성제일교회 (윤성원 목사)
- 예수제자교회 (구),큰기쁨교회) (최종철 목사)
- 하늘빛교회 (신종은 목사)
- 금곡교회 (박대성 목사)
- 수원교회(이정환 목사)[17]
- 수정교회 (이성준 목사)
- 한신교회 (주신 목사)[18]
- 남천교회 (이인한 목사)
- 대전중앙교회 (박종운 목사)[19]
- 동대전교회 (최도훈 목사)[20]
- 군산삼학교회(이상일 목사)[21]
- 서대전교회 (박인기 목사)
- 백운교회 (류정호 목사)
- 대전삼성교회 (목사)[22]
- 성산교회 (이동영 목사)[23]
- 용인비전교회 (신용수 목사)[24]
- 더사랑교회(박용남 목사)[25]
- 가평더사랑 교회(조무진 목사)[26]
- 동광교회 (강영광 목사) [27]
- 수정동교회 (김창현 목사)[28]
- 대연교회 (임석웅 목사)[29]
- 서원교회 (장상호 목사)
- 서산교회 (김형배 목사)[30]
- 남군산교회 (이신사 목사)[31]
- 예산교회 (임형수 목사)
- 송현교회(신성훈 목사)
- 시온중앙교회 (김양운 목사)
- 밀알교회 (오세황 목사) [32]
- 횡성교회 (김도훈 목사)
- 동두천교회 (장헌익 목사)
- 동일교회 (최삼을 목사)
- 예수비전교회 (안희환 목사) [33]
- 장유제일교회 (오충영 목사) [34]
- 진주교회 (이명관 목사)
- 김해활천교회 (박성숙 목사)
- 로고스교회 (안성우 목사)
- 부평제일교회 (류래신 목사)
- 북아현교회 (신건일 목사)
- 베대스다 교회 (김용원 목사) [35]
- 영동중앙교회 (김영훈목사) [36]
- 백암교회 (이호균 목사) [37]
- 참좋은교회 (이상택 목사) [38]
- 약수동교회 (공수길 목사)
- 서호교회 (이호성 목사) [39]
- 개봉교회 (김덕래 목사)
8. 산하 기관
- 서울신학대학교
- 활천
- 한국성결신문
[1] 1962년 안상홍에 의해 설립된 곳과는 다르다.[2] 손양원 목사처럼 일제 당시 개별 교회나 목사가 탄압받은 적은 많았지만, 유이하게 침례교와 더불어 교단 해체령을 받은 교단이다. 당시 동양선교회 연회록을 보면 창시개명과 국민의례(동방요배와 일제의 승전을 기원하는 기도가 들어간다)까지는 어떻게 받아들인 것으로 보이는데 직접적인 신사참배 부분에서 문을 닫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상은 초기 교단 해산령을 받자 이명직 등이 타협을 시도했다. 이명직은 심지어 성서가 유대 사상에 기반을 두어 국체에 반하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면서 스스로 교단의 해산을 발표해버린다.[3] 교회일치운동에 앞장서는 교회 연합 기구이다.[4] 출처: 2019. 5. 29. 데일리굿뉴스 보도 "예성 신임총회장 문정민 목사, ‘한국성결교회’ 공동명칭 사용 촉구’"[5] 서울 종로구 충신길 22. 1907년 동양선교회 복음전도관이란 이름으로 세워진 대한민국 성결교회 최초 교회이다. '대한민국 성결교회의 모교회'라고 불린다. 복음전도관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처음에는 성결교회라는 생각보다는 복음을 전한다는 생각으로 세워졌다. 그래서 한국의 성결교회가 미국의 영향을 받아 시작했는가, 한국 자생 교단으로 시작했는가에 관해 학자마다 의견이 다르다. 무교동 12번지에 있다가 1980년 동대문으로 이전하였다. 무교동 구 예배당은 '임영빌딩'이라는 이름으로 개칭되어 상가 건물로 남아있다. 예성 분열 당시 예성에 참여했다가 1974년 기성으로 복귀하였다. 2010년 교단 통계 기준 등록 교인 4175명.[6] 서울 서대문구 신촌로 331. 서울신학대학교의 전신인 경성성서학원을 모태로 탄생한 교회로, 중앙교회와 함께 한국 성결교회의 산 역사로 불리는 교회이다. 매우 큰 교회 건물을 가지고 있다.[7] 서울 성동구 성수일로10길 33. 이단인 김기동의 성락교회와 구분하기 위해 성락성결교회라고 부른다. 2010년 교단 통계 기준 등록 교인 7370명.[8] 경기 수원시 권선구 일월로 21. 2010년 교단 통계 기준 등록 교인 5588명.[9]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로67가길 9. 신길역 인근에 있다. 신원그룹 박성철 회장이 원로장로이다. 지하주차장이 6층까지 있다. 2010년 교단 통계 기준 등록 교인 5815명.[10] 서울 마포구 신촌로12길 12. 2010년 교단 통계 기준 등록 교인 8120명. 같은 해 헌금액이 성결교회 중 1위였다.[11] 전북 전주시 완산구 유기전1길 6-31. 2010년 성결교회 최초로 등록교인수가 1만명을 넘었다.[12] 충남 천안시 동남구 중앙로 196. 2010년 교단 통계 기준 등록 교인 3211명.[13] 서울 강동구 양재대로111길 51. 대형교회이다. 2010년 교단 통계 기준 등록 교인 6500명.[14] 서울 강남구 강남대로54길 10. 옛 이름은 독립문성결교회이다. 독립문 로터리 현 영락농인교회 자리에 있었으나 1983년 도곡동으로 이전하였다. 기성으로부터 예성이 처음 분립된 곳으로 예성의 모교회라고도 할 수 있는 교회인데 1973년 예성을 탈퇴하고 기성으로 복귀하여 현재는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소속이다. 2010년 교단 통계 기준 등록 교인 6947명.[15] (구), 체부동교회[16] 비리사건을 일으킨 일광공영 이규태 회장이 이 교회의 원로장로이다. 수사 과정에서 교회 명의 계좌를 비자금 세탁에 유용한 사실이 드러나 물의를 빚었다.[17] 해방 이후 성결교회 부흥강사로 이름을 날렸던 이성봉 목사가 최초로 개척한 교회로, 이전에 송기식목사가 당회장으로 시무하던 교회이며, 경기도 남부 지역 성결교회의 모교회이다.[18] 1999년 구 한샘교회와 신기교회가 합병하여 생긴 교회로,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역사상 최초로 두 교회가 합병한 사례이다.[19] 1919년 설립된 대전 지역 성결교회의 모교회. 동대전교회, 서대전교회, 삼성교회 등 대전 지역 성결교회의 상당수가 이 교회에서 갈라져 나갔다.[20] 허상봉 목사가 과거에 담임이었다. 1975년 예배당을 신축한 후 교인수가 급증하여 10여년 만인 1986년 구 예배당 바로 옆에 새 예배당을 짓고 기존 예배당을 부설 예식장으로 운영하였으나 90년대 후반 교회 재정상의 이유로 구 예배당을 매각하였다. 구 예배당을 매입한 주체가 불교 단체인데다 개인 명의로 매입한 후 해당 단체로 명의변경을 하는 편법을 써서 논란이 있었다.[21] 성경 66권을 모두 가르치는 일에 올인한 목회자, 현 교회에서도 말씀 중심의 목회를 활발하게 펼쳐가고 있으며, 극동방송에서 라디오 성경강좌를 진행하고 있다.[22] 신청 목사가 과거에 담임이었다.[23] 이성준 목사가 과거에 담임이었다. 등록문화재 제169호였던 옛 대전사범학교 교장 관사를 목사관으로 사용하였으나 2012년 화재로 소실되어 현존하지 않는다.[24] 신용수 목사가 과거 담임이었다. 신용수 목사는 바울교회 담임목사로 청빙되었다가 2년 4개월만에 사임하고 비전교회로 재부임하였다. 바울교회에서 당회결의없이 자녀유학비로 ○억의 교회재정을 사용하고 선교사로 자녀이름을 올려 지출받는등 여러사안으로 권고사임을 받았고 교회 내에서는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신현모 목사와 목회자교환 방식으로 다시 재부임 하였다[25] 2019년 대연성결교회 50주년으로 개척한 울산의 교회이다.[26] 2020년 대연성결교회 에서 개척 했다.[27] 부산서지방회가 있다.[28] 부산초량교회, 부산진교회와 함께 부산에서 공동체의 역사가 100년이 넘는 유서 깊은 교회[29] 부산기독교총연합회 공동회장,부산성시화운동본부 2014해운대성령대집회 진행위원장. 117년차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총회장[30] 이기용 목사가 전 담임이였음. 지방회에서 청소년수련회 등. 여러가지로 청소년 사역으로 유명한 곳이였음 (태안군, 예산군, 홍성군)[31] 지역사회의 고아와 노인을 위한 봉사로 유명하다.[32] 강근호 목사가 과거에 담임이었다.[33] 코로나 시국에서도 현장예배를 멈추지 않았다.[34] 김종오 목사가 과거 담임이었다.[35] 장애우를 섬기며 보호하고 예수를 섬긴다. (해돋는 복지 센터)[36]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교회로 '예수님이 전부이신 교회'를 표방하는 건강한 교회이다[37] 제4대 담임목사인 서두성 목사가 한국전쟁시 순교하였고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순교성지로 지정되었다.[38] 강원동지방회 소속, 과거 삼척교회이며 황득주 목사가 과거에 담임이었다.[39] 용산구 서빙고동에 위치해있다. 미 8군 사령부의 이례적인 지원으로 교회 건축을 한 역사가 있고, 과거 지형은 목사가 담임으로서 말씀삶공동체 사역의 첫 시작을 했던 교회로 부흥을 했던 교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