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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6-08-22 11:44:30

사미자


<colbgcolor=#7e796c><colcolor=#fff> 사미자
史美子|Sa Mi-ja
파일:사미자.jpg
출생 1940년 5월 9일[족보상] ([age(1940-05-09)]세)
경기도 경성부 냉천정
(現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냉천동)
본적 경기도 파주시[2][3]
본관 청주 사씨[4][5]
신체 160cm|60kg|240mm
배우자 김관수(1937년생)[6][7]
자녀 딸 김희주(1962년생)[8]
장남 김용하(1964년생)[9]
차남 김용훈(1975년생)[10]
학력 서울미동국민학교 (44회 / 졸업)
이화여자중학교 (졸업)
이화여자고등학교 (졸업)
종교 성공회 (신명: 헬레나)
데뷔 1963년 동아방송 1기 성우
(데뷔 [age(1963-01-01)]년차)
링크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 개요2. 생애3. 활동4. 출연 작품5. 방송6. 여담7. 둘러보기8. 관련 문서

1. 개요

파일:당신뿐이야 사미자.jpg
▲ 드라마 '당신뿐이야' 中
대한민국배우, 성우.

2. 생애

1940년 5월 9일 경기도 경성부 냉천정(현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냉천동)에서 아버지 사종순(史宗淳, 1894.6.13~1953.9.28)과 어머니 청주 한씨 한인삼(韓仁三)의 딸(1894.4.2~1964.1.22) 사이의 4남 1녀 중 막내 딸로 태어났다. 10살 되던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했고, 전쟁 이후 아버지가 사망해서 줄곧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랐다.

이후 서울미동국민학교이화여자중학교·이화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3. 활동

1963년 DBS 1기 성우로 데뷔했다.

1966년[11] TBC 특채 탤런트로서 배우로 전향, 중견 탤런트로서 국민적 스타가 되었으며, 노년기에는 각종 예능프로그램에도 많이 나오고 있다.

젊은 시절에는 대한민국 여배우에서도 손가락에 꼽히는 미인이었다. 특히 TV 탤런트 중에는 독보적이었다. 초반에 유부녀임을 숨기고 연예계 생활을 시작했으나 얼마 되지 않아 밝혀졌다. 그래서인지 타고난 미모와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여주인공 역할은 들어오지 않았고, 초반부터 아줌마나 할머니 역할을 많이 맡았다.[12][13] 드라마뿐 아니라 영화에서도 배역을 가리지 않고 출연해 1970년대부터 대중에게 어머니 역을 잘해내는 배우로 인식되는 데 성공한다.조사1조사2

지금과 달리 가족극과 통속극이 주류였던 시절이라 사미자와 같은 중노년역 전문배우의 입지는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만큼 컸다. 1986년 배우 출연료 1위일 정도로 큰 사랑을 받았다.# 한국 코카콜라 첫번째 여성 CF 모델로 코카콜라 125주년 행사에 초대 받을 정도로 광고에서도 깊은 족적을 남겼다.# 아직까지도 코카콜라 측에서 콜라를 명절 선물로 주고 있다고 한다. 사미자는 연기에 있어서도 80년대 당시 언론통폐합으로 TBC에서 KBS로 자리를 옮겨졌음에도 주눅들지 않고 활발히 연기 활동을 이어갔고, 사미자 본인은 단막극 드라마게임에 주연으로 출연할 때제일 연기가 절정일 때로 기억하고 있다.[14] 그리고 조연 배역까지 포함해 드라마게임의 최다 출연자(35편) 역시 사미자였다. 드라마게임의 제작진으로부터도 600회를 기념해 그 공로를 인정받았다.

특히나 깐깐한 시어머니나 깍쟁이 장모 역으로 잘 등장했는데, 동갑이자 같은 TBC 출신인 여운계와 함께 이런 역의 달인이라 할 만한 뛰어난 연기력을 보여주었다. 춘향전의 월매 역할을 이보다 더 어울리게 소화한 배우는 없었다. 아씨 때도 악역으로 김희준(1943)이 맡은 아씨를 괴롭히는 통지게집 딸이었다고 하며, 장희빈에서도 장희빈의 수족 역을 맡아 화제가 됐다.

아래 김태희와의 비교 사진은 아주 유명하며 참고로 이 사진을 찍을 당시 사미자는 이미 출산한 후였다.

파일:external/file.thisisgame.com/20080731114851_1064.jpg

최은희, 신상옥의 수기, 김정일 왕국에 따르면, 김정일이 "사미자 참 연기 잘해요"라고 연기력을 높이 평가했다. 이를 두고 KBS의 반공 드라마 지금 평양에선에서 김정일과 사이 좋지 않던 계모 김성애 역할을 표독스럽게 잘 했다고 칭찬한 것으로 와전되어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당시에 방영되던 MBC 일일 연속극에 나오는 연기를 보고 지나가는 식으로 한마디 한 것이다.

2016년 당신은 선물 이후로 현재까지 연기 활동이 없다. 대신 예능 방송에 간간이 얼굴을 비추고 있으며, 2026년에는 '오미자 말고 사미자'라는 채널도 개설하여 유튜브 활동도 시작하였다.

4. 출연 작품

5. 방송

가족오락관 외 다수.

6. 여담

7. 둘러보기

사미자의 주요 수상 이력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파일:동양방송 로고_White.svg 연기대상 대상
신설 <colbgcolor=#FFFFA1,#5D5E00> 이순재
김성원
여운계
김희준
사미자
(1970년)
안인숙[23]
(1971년)
파일:동양방송 로고_White.svg 연기대상 최우수 여자 연기상[24]
안인숙
(1974년)
사미자
(1975년)
허진
(1976년)

역대 파일:bluedragonfilmawards_logo.png
파일:bluedragonawards3.png
여우조연상
제6회
(1969년)
제7회
(1970년)
제8회
(1971년)
황정순
(규방)
사미자
(떠나야 할 사람은)
전계현
(화녀)

}}} ||

8. 관련 문서


[족보상] 3월 29일[2] 과거에는 본적이 자기 출신지로 잘못 기재되어 있었으나, 파주는 아버지의 고향으로 본인은 서울특별시 출신임을 밝혔다.[3] 기린공파(麒麟公派) 집성촌이다.[4] 기린공파(麒麟公派) 20세손 상○(相○) 항렬이지만, 항렬자를 쓰지 않았다.(족보)[5] 다만 큰오빠 사상직(史相稷, 1920.4.7~1985.8.25), 둘째 오빠 사상필(史相弼, 1921.3.28~생사불명), 셋째 오빠 사상익(史相益, 1934.9.18~1963.3.28), 넷째 오빠 사상완(史相完, 1937.9.16~1991.10.29) 등 오빠들은 모두 항렬자를 사용했다.[6] 金寬洙, 1937년 7월 11일~[7] 광산 김씨 김영식(金永植, 1899.8.3~1984.12.11)의 삼남이다. 한국 성공회 2대 주교인 김성수의 사촌 동생이다. 1961년 12월에 뽑기 시작한 최초의 방송사 공채 TV 탤런트인 KBS 공채 탤런트 1기생으로 뽑혀 KBSMBC에서 탤런트로 활동했으나 1973년에 은퇴하고 사업가로 변신했다.[8] 金喜珠, 1962년 9월 30일~[9] 金容夏, 1964년 3월 14일~[10] 金容勳, 1975년 7월 24일~[11] TBC 공채 1기인 선우용여의 데뷔작이자 출세작이 1966년 방영된 상궁나인인데, 사미자도 같이 출연한 사진이 있다.[12] 여기에는 결혼한 여배우를 한물갔다는 식으로 취급한 시대 분위기뿐 아니라, 사미자가 성우 출신이라는 이유도 있었다. 1960년대 지상파 TV 방송국 개국으로 탤런트 수요가 갑자기 늘면서 원래 성우였던 사람들 상당수가 탤런트가 됐는데, 처음부터 방송국 탤런트 공채로 들어온 사람들과 성우 출신으로 탤런트가 된 사람들 사이에 묘한 경쟁의식이 피어났고, 방송국에서도 탤런트 공채 출신을 집중적으로 밀어주며 성우 출신들이 차별 받았다. KBS 쪽이 더했는데 사미자는 언론통폐합으로 TBC 출신으로 KBS에 들어와 차별이 더욱 심했다.[13] TV 방송국이 새로 생기던 당시엔 공채 탤런트는 죄다 젊은 사람으로 뽑고, 모자란 인원을 기존 라디오 방송국 전속 성우와 영화, 연극 쪽에서 끌어다 썼다. 그래서 나이 든 탤런트가 적었다. 당시엔 분장 기술이 떨어져서 젊은 배우가 노역을 할 때엔 꾸민 티가 많이 났는데(그나마 흑백 TV라 꽤 가려졌는데도 티가 났다.), 나이 든 역할도 충분히 해낼 만큼 목소리 연기가 되니 분장의 미흡함을 커버하고 노역에 더 잘 맞았던 덕이기도 하다.[14] 1편당 단 1번 방영되는 단막극인지라 휘발성으로 기억이 어려워 시청자들에게 연속극 속 어머니, 할머니로 기억되는 게 감사하면서도 아쉽다고.. 2시간 분량의 단막극을 NG 없이 찍어 하루에 4시간 만에 촬영해내 드라마게임 제작진의 무한한 신뢰를 얻었다니 드라마게임에 출연할 때를 사미자 본인도 제일 뿌듯해한다.[15] 사미자가 맹인 여검객 역할로 주연을 맡은 무협영화[16] 90회부터 출연했다.[17] 군번 53830[18] 2015년 무한도전불만제로 특집에 출연해 정준하의 마이크를 채워준 예능국 국장이 바로 이 분이다. #[19] 연예인 공식 달인은 6대 우리말 달인인 최원정, 김기만 팀이 유일하며 그 뒤 704회에서 유병재가 연예인 2번째 명예 달인이 되었다.[20] 당시 대기업 신입사원의 초봉이 20~30만원 정도였다[21] 김관수는 1기, 백일섭은 5기이다.[22] 사미자의 주장이란 친정에서 결혼을 반대해서 혼전 임신이라고 속여 결혼했다는 것. 결혼 전 해에 약혼한 사진이 있어서 어느 쪽이어도 사실 좀 애매한 경우라 진실은 당사자만이 알 듯.[23] 1971년에는 대상 없이 남자·여자 주연상이 최고의 상이었다.[24] 당시에는 대상이 따로 없었고, 최우수 남자·여자 연기상이 최고의 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