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갑스(Даргавс, Дӕргъӕвс)의 오세트인 유적지[1] |
1. 개요
영어: Ossetians, Ossetes러시아어: Осетины
오세트어: Ирон адӕм, Ирӕттӕ, Дигорӕнттӕ
오세트인은 러시아, 조지아, 튀르키예의 소수민족이다. 이란어군 계통의 오세트어를 사용하는 이란계 민족이지만, 이들이 사용하는 오세트어 사용자는 페르시아어 사용자와 의사소통이 어렵다. 또한 페르시아인들과 달리 종교적으로도 대다수가 정교회 신도이다.
오세트는 "사람" 이라는 뜻이다.
2. 설명
19세기에 촬영된 오세트인 남성. |
오세트인의 주된 거주지는 캅카스 산맥의 북오세티야와 남오세티야인데, 북오세티야는 러시아 연방에 속한 자치공화국이며, 남오세티야는 명목상 조지아 소속이나 사실상 미승인국으로 되어 있다. 총인구 70만 명 중 2021년 기준으로 러시아에 485,646명이 거주하며[2] 본거지인 북오세티야 공화국에 439,949명이 산다. 남오세티야에 2015년 기준 48,146명이 거주하며, 인근 국가인 튀르키예, 시리아와 조지아 등에도 분포한다.
유전자 검사 결과, 북오세트인들의 부계 유전자는 북캅카스인에 가까우며 남오세트인들은 조지아인에 가까운 편이다. 또한 모계 유전자는 다른 캅카스인들에 비해 이란계 유전자가 높게 검출되는 것을 통해 캅카스인의 오세티야 이주는 남성들에 의해 주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오세트인은 보통 예술과 스포츠에 뛰어나지만, 상업에는 약하다는 스테레오타입이 있다. 오세트인, 유목민과 군인에서 화가 및 조각가로 거듭나다.
3. 역사
3.1. 중세~근대
서기 11세기 알라니아(Alanien)의 영토 |
한편 극소수만이 살아남게 된 알란인의 후손들은 계속해서 이어지는 킵차크 칸국의 침략을 피해 조지아 북부의 깊은 협곡에 숨어살게 되었다. 고립된 알란인의 후손인 오세트인은 외부와는 고립된 채 산지에 숨어살았기 때문에 오랜 기간동안 고대 알란인의 문화와 언어, 전통, 종교를 오늘날에도 원형에 가깝게 보존할 수 있었다.
이러한 산악 민족 알란인의 후손인 오세트인은 크게 정교도인 이론인(Иронцы, Ирӕттӕ), 무슬림인 디고르인(Дигорцы, Дыгурӕттӕ 또는 Дигорӕнттӕ)으로 나뉜다. 이론인과 디고르인은 북오세티야에 주로 거주한다. 오세트인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이론인은 13세기 조지아인의 선교로 정교회를 믿지만, 소수민족인 디고르인은 16–17세기 카바르다인의 선교로 수니파 이슬람을 믿는다. 이론인의 하위 부류에는 쿠다르인(Кударцы, Къуыдайрӕгтӕ), 드발인(Двалы, Туаллӕгтӕ), 치산인(Чсанцы, Чысайнӕгтӕ)이 존재한다.
쿠다르인, 드발인, 치산인은 남오세티야에 주로 거주한다. 쿠다르인은 남오세티야 서부의 쿠다르 협곡에 거주하던 오세트인이다. 드발인은 중세 조지아의 중북부 지역인 드발레티(დვალეთი)에 거주하던 캅카스계 민족으로 본래 캅카스계 민족이지만 오세트인에 동화되었다. 치산인은 이러한 드발인의 하위 부류이며 남오세티야 동남부에 거주하는 오세트인이다. 쿠다르인, 드발인, 치산인의 후손은 오늘날 조지아와 분쟁 중이기도 하다.
중동의 양대 열강인 오스만 제국과 페르시아의 각축장인 캅카스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주변의 다른 민족들은 전부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등 고립무원의 상황에 놓였던 오세트인들은 18세기 말 북쪽에서 러시아 제국이 남하해오자 러시아와 동맹을 맺고 러시아의 캅카스 정복에 적극적으로 협력했다. 그 덕분에 오세트인들은 캅카스 전쟁 당시 완강한 저항으로 러시아 당국에 찍힌 주변의 다른 민족들에 비하면 훨씬 후한 대우를 받았다.
3.2. 현대
2차대전 당시 독일 국방군이 캅카스 지역에 쳐들어오자 캅카스 제민족은 소련의 영도 하에 독일군에 맞섰고 그 중에서도 오세트인은 특히 격렬하게 저항했다. 실제로 독일군과 루마니아군이 주요 도시였던 블라디캅카스를 포위했으나 결국 철수했을 정도였다. 오세트인의 결사항전을 높이 평가한 소련 당국에서는 독일군의 간첩이라는 혐의로 체첸인·인구시인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키고 체첸인구시 ASSR의 영토를 떼어서 북오세티야 ASSR에 편입시켰다. 인구시인은 이를 억울해하며 소련 해체 이후에는 오세트인에게 소련이 떼어준 영토를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그 결과 1992–1994년까지 오세트계 북오세티야와 인구시계 인구셰티야 사이에 무력 사태가 발생해 수백여명이 목숨을 잃었다.2004년 북오세티야에서 체첸 반군이 베슬란 학교 인질사건을 벌여 어린 학생들을 상대로 테러와 인질극을 벌였다. 그 결과 무려 341명이 사망하고 700여명이 부상당하는 초유의 대사건이 터지기도 했다. 이 사건 이후 이치케리야 체첸에 대한 인식은 크게 악화되었다.
오세트인이 주 민족인 정치체 중 북오세티야는 러시아 중앙정부과 사이가 괜찮지만, 남오세티야는 조지아 중앙정부와 사이가 좋지 않다. 러시아 내전 당시부터 오세트인과 조지아인은 서로 전쟁을 벌였고, 소련 붕괴 직후인 1991년에도 독립국가를 수립하려는 오세트인과 조지아 중앙정부 사이의 전쟁이 재발했다. 이후 러시아가 평화유지군을 파견하여 한동안 갈등이 멎었지만 2008년 조지아의 선제공격으로 남오세티야 전쟁이 발발했다. 이 전쟁으로 러시아는 그동안 명목으로나마 인정하던 조지아의 남오세티야 영유권마저 부정하고 남오세티야의 독립을 인정했다.
4. 종교
자세한 내용은 오세트 신화 문서 참고하십시오.원래는 자연 속에 존재하는 여러 신들과 정령들을 숭배하는 오세트 신화를 지녔으며 이는 전통적인 민간 신앙의 형태로 오세트인의 문화에 남아있다. 오늘날의 오세트인이 주로 믿는 종교는 정교회이며, 아스교(Ассианство, Уацдин)라 불리는 신이교 운동도 존재한다. 북오세티야의 오세트인은 이슬람을 믿기도 하지만 오세트인 가운데 무슬림은 정교도나 신이교도보다도 소수이다.
5. 사르마트 아마존의 후예
왼쪽 순으로 오세트인, 체르케스인, 카바르다인, 체첸인 |
오세트인은 여자를 존중한다. 오세트인의 예법에 따르면 말을 타고 가다가 여성을 만나면 말에서 내려 여성이 지나간 다음에야 말에 올라탈 수 있다. 만약 남자들이 앉아있는 곳에 여성이 지나간다면 남자들은 무조건 자리에서 일어나야 한다. 아무리 나이가 많은 노인이라도 예외일 수 없다. ... 보통 북동 캅카스 지역의 민족들은 여성을 열등하게 여겼다. 이 지역 여성들은 가정에서도, 지역사회에서도 발언권이 없었다. 캅카스 지역의 다른 민족들의 풍습과 비교해보면 오세트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가 얼마나 높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오세트 사회가 보여주는 여성 존중은 알란족, 그 이전에는 사르마트족의 풍습에서 유래했다. 사르마트 여성들은 남성들과 동등한 권리를 가졌으며, 처녀들은 남자들과 함께 전투에 참여했다.[4] 바로 여기서 북캅카스 지역에 산다는 아마존 여전사들에 대한 그리스 신화가 유래했다. 오세트 여성은 남자와 자유롭게 사귀었다. 물론 처녀성은 매우 엄격하게 지켰다. 또 오세트 여자들은 캅카스의 다른 민족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는데, 아름다우면서도 부지런하고 정절을 지키기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민족의 모자이크 러시아. pp. 253–254. 한국외국어대학교 러시아연구소
민족의 모자이크 러시아. pp. 253–254. 한국외국어대학교 러시아연구소
오세트인의 전통 의상은 여느 캅카스 제민족처럼 초하를 입으며, 사르마트인이나 알란인과 마찬가지로 여성 의상과 남성 의상이 거의 차이가 없었다고 한다.
6. 인물
오세트인은 성씨가 이름 앞에 오며 어말이 티(-ти, 북부 디고르식) 또는 트(-ты, 북부 및 남부 이론식) 형태인 성씨를 사용하나 대체로 러시아어식 성씨 형태로 알려져 있다.* 알란 가글로예프: 제5대 남오세티야 대통령
* 겐나디 베코예프
* 아나톨리 비빌로프: 제4대 남오세티야 대통령
* 발레리 게르기예프
* 빅토르 잔기예프[5]: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 장기에프의 모델이 된 소련의 레슬링 선수.
* 스타니슬라프 체르체소프
* 알란 자고예프
* 알렉산드르 자소호프[6]: 정치인. 주 시리아 대사(1986–1988), 1990년 소련 공산당 정치국원, 소련 붕괴 이후 2대 북오세티야-알라니야 공화국 대통령(1998–2005), 연방평의회(러시아 상원) 의원(2005–2010) 역임.
* 이사 플리예프[7]: 2차대전 당시 활약한 소련군 장군. 독소전쟁에서 기병-기계화 집단을 이끌어 큰 활약을 했다. 이후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쿠바 주둔 소련군 사령관으로 역사에 다시 등장한다.
* 콘스탄틴 플리예프
* 투간 소키예프
* 아르투르 타이마조프
* 하지무라트 가찰로프
* 레오니트 티빌로프
[1] 일종의 공동묘지로 가장 오래된 것은 12세기에 조성된 것이다. 집처럼 생긴 무덤양식들이 즐비하여 이 곳에 붙은 별명이 '죽음의 도시(город мёртвых)'이다.[2] 러시아 인구의 0.38% 비중이며, 열다섯 번째로 많은 민족이다.[3] 북오세티야와 남오세티야는 알라니아 왕국을 계승한다는 명목에서 공식명칭에 각각 '알라니야(Алания, Алани)'와 '알라니야국(Государство Алания, Паддзахад Аллонстон)'을 추가하였다.[4] 최소한 적을 한 명 이상 죽이기 전까지는 결혼이 허락되지 않았다고 한다.[5] 오세트어 이름은 전지아트 빅토르(Зӕнджиаты Виктор).[6] 자소흐트 알륵샨드르(Дзасохты Алыксандр).[7] 플리트 이셔(Плиты Исс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