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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계 러시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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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3. 현황4. 문화5. 여담6. 유명인7. 관련 문서

1. 개요

폴란드계 러시아인러시아에 거주하는 폴란드인 후손들이다. 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 내에서는 소수 집단이 되었으나, 러시아 제국 시절에는 그 규모나 영향력이 상당한 수준이었고, 소련 시절에는 러시아인 중 폴란드계 조상을 두고 있는 경우나 리투아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벨라루스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내 거주 인구를 합쳐 3백만여 명 정도에 달했다 한다.

2. 역사

파일:Farewell_Europe by Aleksander Sochaczewski.png
일단 인접하고 같은 슬라브 계통인데다가 아예 동군연합-지배로 사실상의 한 나라였던 시절도 있다.현대 기준으로도 유전적으로 러시아인은 (같은 동슬라브인을 제외하면)[1] 폴란드인과 가장 가깝다.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카톨릭화와 귀족정화에 불만을 품은 귀족들[2]은 러시아로 망명했고, 러시아 전제정에 불만을 품은 러시아인 귀족들은 폴란드-리투아니아로 망명하였다. 마찬가지로 어느 한쪽의 농노제나 상황이 악화되면 농민들은 다른 한쪽으로 도망쳤다. 결국 양국 사이에서 엘리트층부터 하층민들까지 주기적인 교환(?)이 이루어졌다.

중세 말 폴란드 왕국이 오늘날 벨라루스와 리투아니아 일대의 동군연합을 맺은 것을 계기로, 많은 폴란드인들이 벨라루스 지역에 정착하고 루테니아(중세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 일대)의 귀족 계층이 폴란드인들과 동화되면서 벨라루스 일대에는 상당한 수의 폴란드인들이 살게 되었다. 루스 차르국의 팽창 과정에서 리투아니아 대공국은 스몰렌스크 등 동부 영토 상당수를 상실하고 많은 폴란드계 귀족들이 루스 차르국에 투항하는데, 이들이 바로 오늘날 러시아인들 중 폴란드계 성씨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직계 기원 중 하나이다.
루스 차르국과 크림 칸국과의 전쟁에서 많은 영토를 상실한 리투아니아 대공국은 결국 폴란드 왕국과 연방 형태로 통일하면서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으로 거듭나는데, 이 과정에서 루테니아인 귀족들의 폴란드화가 가속화되었다. 그러나 폴란드 리투아니아 연방은 흐멜니츠키 봉기 이후 상당수 영토를 루스 차르국에 상실한 이후 몰락하고, 결국 18세기 말 러시아 제국, 프로이센 왕국,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에 의해 분할되면서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은 멸망했다. 이후 프랑스로 이주한 폴란드인들도 상당히 많았지만, 독립 봉기 과정에서 러시아로 유배당한 폴란드인들도 적지는 않았다. 러시아 제국의 지배하에서 폴란드인들은 19세기 두 차례[3]에 걸쳐 대규모 저항운동을 했지만, 잔인하게 진압당하고 민족주의 활동가 상당수가 시베리아의 이르쿠츠크, 옴스크, 크라스노야르스크, 튜멘 등으로 유배를 당한다.
시베리아는 러시아 제국 당국의 시각에서도 거리도 까마득히 멀고 생활환경 또한 가혹하여 유형지로나 안성맞춤이었다. 그리하여 폴란드 '반역도당' 10만여 명, 러시아 정치범 5,000여 명, 죄수 4,000여 명이 1914년 이전에 시베리아로 보내졌다. 간혹 아이들이 포함되기도 한 5,000여 명 가량의 여성도 남편의 추방 대열에 동참했다.
하버드 C.H. 베크 세계사 1870~1945

하지만 러시아 제국 내 폴란드인 사회가 일방적인 탄압과 박해의 역사로만 점철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러시아 제국은 영토를 확장하는 와중에 현지 기득권 사회는 별로 간섭하지 않던 편이었고,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 일대의 폴란드인 지주들이나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 일대의 독일인 지주들은 19세기 중반까지는 침해하지 않고 존중해주었다.[4]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이 실패한 직후 1815년 러시아 제국 귀족 인구 전체의 무려 64%가 폴란드계였다.

하지만 니콜라이 1세가 등극하여 지주귀족들의 이익권을 침해하여 전제정을 복원하려는 노력을 시작하고 1860년대의 농노제 폐지를 포함한 여러 대개혁들이 실시되면서 지주-귀족계층과 중앙정부 사이에 노골적인 대립각이 세워지면서 상황은 바뀐다. 물론 이는 계급적인 이유였지만 러시아 제국 서부 지역에서 지주계층의 대부분은 폴란드인이었고 때문에 폴란드인들의 반발이 거셀 수 밖에 없었다.

1861년 1월 봉기 이후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 서부, 리투아니아 일대의 폴란드인 지주 상당수가 시베리아로 유배당하고, 프리비슬린스키에서는 강제적인 러시아화 정책이 이어졌다. 여기에 반발한 폴란드인들 상당수가 미국이나 프랑스, 브라질 등으로 이민하였는데 이들은 출국하면서 러시아 제국 여권을 지참해야 했다. 이 점에 있어서는 프로이센 여권이나 오스트리아 여권을 들고 출국해야 했던 여타 폴란드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상술한 것처럼 시베리아는 서유럽 문화를 이식받은 폴란드인 유형자들이 유입되면서 더 유럽화될 수 있었다. 1863년 야쿠티야 일대로 강제이주당한 폴란드인들은 사하인들에게 감자 농사를 가르쳤으며, 사하인들에 대한 민족지학적 연구를 시도하였다. 폴란드계 러시아인들은 사할린 아이누 연구 관련하여서도 상당한 업적을 남겼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니콜라이 2세는 전쟁에서 승리하면 폴란드 차르국을 복원시키겠다는 공약을 내세워 폴란드인들의 지지를 받고자 했으나 혁명으로 제정이 붕괴되면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폴란드 제2공화국이 독립하지만 소련 영내에 남게 된 폴란드계 인구도 적지 않았다. 스탈린대숙청 당시 소련 내에는 폴란드 지주들이 도입한 반동 문화를 소련에서 끝장내야 한다는 식의 분위기가 퍼졌고, 이 때문에 소련 인민 중 폴란드계 성씨만 가지고도 숙청 대상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스탈린 대숙청 시대에는 숙청 인원 할당량을 채워야했던 요원들이 폴란드계 성씨를 가진 인원들을 무작위로 추려서 반동분자로 숙청시키는 경우도 많았는데, 이들 중 상당수는 몇 세대 이전 시베리아나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당해서 완전히 러시아화한 사람들이었다.

1950년에는 흐루쇼프 해빙기가 들어서면서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폴란드 제2공화국에서 포로가 되어 혹은 숙청 대상이라 시베리아로 강제이주당한 사람 중 25만여 명이 폴란드 인민공화국으로 귀국하기도 했다.

소련 해체 이후 폴란드계 러시아인들 중 일부는 다시 미국으로 이주하여 폴리시 러시안 아메리칸(Polish-Russian American)이 되는 경우도 생겨났는데, 이들은 일반적인 폴란드계 미국인들과는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3. 현황

2010년 러시아 인구 조사에서 스스로를 폴란드계 러시아인이라 응답한 경우는 4만 7천여 명 정도였다. 그러나 러시아인들 중 스스로를 폴란드계라고 자각하지는 않지만 폴란드계 성씨를 사용하는 경우 혹은 증조부모나 고조부모가 폴란드계인 경우는 상당히 많은 편이다. 폴란드-리투아니아와 루스 차르국 사이의 전쟁 중 폴란드인 귀족들이 귀순 혹은 투항하는 경우도 드물지는 않았으며, 폴란드 분할 이후 폴란드 독립 운동가들이 러시아 제국의 시베리아 영토로 유배된 이후 현지에서 여타 러시아인들과 동화된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르쿠츠크 등 일부 시베리아 도시 주민들 중 상당수는 폴란드계 조상을 두고 있기도 하다. 카자흐스탄 내에도 한 때 4만여 명 이상의 폴란드계가 거주했다.

러시아 제국의 아슈케나즈 유대인 상당수는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출신 유대인이기도 했다. 폴란드 리투아니아 연방은 전성기 때 전 세계 유대인들의 3분의 2 가까이가 거주한다는 기록마저 있을 정도로 유대인 인구가 많았던 반면, 표트르 대제가 개혁을 시행하기 이전 러시아는 상업이 지지부진한 국가였고, 그나마도 무슬림 타타르인들의 비중이 더 높았다. 그러나 흐멜니츠키 봉기폴란드 분할로 영토를 팽창하면서 19세기 러시아는 유대인 인구가 많은 대표적인 나라로 거듭났다. 러시아 제국 내에서도 유대인 인구가 제일 많았던 지역은 폴란드의 지배를 받았던 우크라이나 일대였으며, 유대인 인구 비중이 가장 높았던 지역은 벨라루스 지역이었다. 러시아의 유대인들은 특정한 경우가 아닌 이상 오늘날 폴란드계 러시아인으로는 분류가 되지는 않는데, 이는 근현대 폴란드 민족주의와 아슈케나짐 사이에 갈등 때문에 서로 타자로 인식하게 된 것이 그 이유이다. 물론 폴란드-리투아니아 시절 동유럽에 정착한 유대인들이 러시아 유대인들의 직계 기원이라는 점은 서로 부인하지는 못하지만...

4. 문화

러시아인의 성씨 뒤에 붙는 스키(인명)는 폴란드계 후손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오늘날 러시아 각지(특히 시베리아)의 가톨릭 성당 및 가톨릭 유적들은 러시아 제국 시절 폴란드계 러시아인들이 남긴 유산이다. 시베리아의 도시 이르쿠츠크가 시베리아의 파리라고 불릴 정도로 문화적으로 융성해진 데에는 시베리아로 유배를 당했던 폴란드계 후손들의 노력 또한 적지 않았다. 심지어 하얼빈시의 러시아 타운에도 폴란드인들을 위한 성당이 건설되었을 정도였다. 폴란드계 러시아인 중 적지 않은 수가 현재도 가톨릭을 믿고 있으나, 상당수 폴란드계 러시아인들은 현재 정교회를 믿고 있다. 러시아인과 다를 바 없이 살고 있어서 자신의 정체성을 폴란드인에서 찾는 경우보다는 조상 중에 폴란드인이 있었다 정도로 아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유대계 성씨라고 해서 유대인 정체성보다는 조상 중에 유대인이 있는 것으로 아는 경우가 많은 것과 비슷한 이치.

러시아 제국 시절과 소련 시절 반폴란드 정책의 결과 폴란드어 대신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소련 시절 벨라루스에서 러시아로 이동한 경우 등등은 오늘날에도 폴란드어 구사가 가능한 사람이 많다.

5. 여담

1905년에서 1945년까지 사할린 섬 남부가 가라후토라는 이름으로 일본의 영토로 남아있었을 때, 잔류 러시아인중에는 폴란드계 러시아인도 포함됐다. 이들은 잔류 러시아인들과 달리 폴란드 국적을 가지고 있었고 사할린 섬 남쪽이 소련의 영토가 되고 폴란드 혈통의 잔류 러시아인들이 전부 폴란드로 떠났다.

6. 유명인

7. 관련 문서



[1] 같은 동슬라브 민족들끼리는 생물학적 구분이 사실상 무의미하다.[2] 대게 옛 리투아니아의 정교회 루스 계열 귀족들이었다.[3] 11월 봉기1월 봉기[4] 시대가 시대인데다가 러시아 땅이 너무 커서 중앙집권화와 전제정을 추구한다 할지라도 지방유지들을 일일히 제거하는게 불가능해서 최소한 1860년대 이전까지는 중부 러시아를 제외하면 반란을 일으키지만 않는다면 적당히 간섭하지 않은 편이다.[5] 폴란드계 유대인 혈통이다[6] 해외 폴란드인 디아스포라 커뮤니티 중에서 유독 친러 성향이 강하다.[7] 상당수의 폴란드인들이 카자흐스탄으로 강제이주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