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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2 09:40:33

폴란드 유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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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어: Polscy Żydzi
히브리어: יהדות פולין(Yahadut Polin)
파일:마이클 슈드리히.jpg
현 폴란드 공화국 수석 랍비 마이클 슈드리히[1]
1. 개요2. 역사3.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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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폴란드 유대인은 역사적으로 폴란드 지역에 거주한 유대인을 가리킨다. 폴란드 유대인의 분포는 시대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그 이유는 역사적으로 폴란드의 국경이 자주 변했기 때문이다.[2]

2. 역사

유대인의 폴란드 거주는 현재로부터 1천년전 이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025년 폴란드 왕국 건국 당시부터 폴란드-리투아니아 전반기까지, 폴란드는 유럽에서 유대인에 가장 관용적인 국가였다. 당시 폴란드는 유럽 각국에서 박해당하는 유대인들의 피난처가 되었고, 자연스레 아슈케나지 유대인을 포함 유럽 유대인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예를 들어 카라임 유대인들이 빌뉴스를 중심으로 번영하였으며 네덜란드의 세파르드 유대인들은 빌뉴스의 예시바로 유학을 갔다. 또한 아슈케나지 정통파로 분류되는 하시딤 또한 폴란드에서 발흥한 교파이다. 16세기 중순 폴란드에 거주하는 유대인이 전체 유대인의 3/4에 달했다는 기록을 담은 문헌도 있다.

후반기 폴란드-리투아니아가 대홍수 당시 자국 내 정교도의 봉기, 정교도 러시아와 개신교 스웨덴의 침공을 받아 가톨릭에 기반한 민족정체성이 발전하고 프로테스탄트의 종교개혁과 가톨릭 교회 측의 대항종교개혁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유대인에 대한 관용은 상대적으로 줄어갔다. 1795년 폴란드 분할로 폴란드 유대인의 거주지는 프로이센 왕국합스부르크 제국, 러시아 제국으로 삼분되었다. 외세의 지배 하에 놓인 폴란드에서 민족주의가 부흥함에 따라 폴란드 내의 반유대주의도 증가했다.

폴란드 내 반유대주의의 증가는 폴란드 유대인들의 해외 이민으로 이어졌다. 중세 당시에는 유대인 박해가 극심하여 유대인 인구가 극소수에 불과하던 헝가리는 폴란드 분할 이후 다시 유대인 인구가 번성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폴란드 유대인들이 가장 선호한 이민지는 바로 아메리카 대륙이었다. 이를테면 오늘날 미국 유대인의 약 92%가 아슈케나지 유대인이고, 이들 중 상당수가 폴란드 유대인 조상을 두고 있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폴란드계 브라질인 인구 대다수는 브라질 유대인이기도 하다.

동유럽에서 유대인은 러시아 내전 당시 적군과 백군, 민족주의 세력 모두에게 심각한 테러를 당했고 부활한 폴란드에서도 상당한 수준의 반유대주의를 겪었다.[3] 그 때문에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여 유대인의 민족국가를 수립한다는 시오니즘에 호의적이었다.[4] 폴란드 정부는 대중에 비하면 덜 반유대적이지만 그들도 유대인이 폴란드에 너무 많이 산다며 불만스러워했다. 그래서 시오니스트와 폴란드 정부는 유대인을 팔레스타인으로 이주시킨다는 데에 의견이 일치했다.[5] 하가나, 베타르, 이르군 등 팔레스타인에서 활동하게 될 유대인 준군사조직들은 폴란드군으로부터 무기를 지급받고 훈련받았다.

이미 현대적인 시오니즘 운동 발흥 이전부터 폴란드 유대인들의 예루살렘 이주는 간헐적으로 이루어지던 상황이었다. 문헌상 언급되는 최초의 예루살렘 이민은 18세기 초반에는 시에들체 출신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이주였다. 당시 여정 과정에서 돈이 바닥났던 폴란드 유대인들은 현지 아랍인들에게 돈을 빌려서 시나고그를 지었지만, 결국 돈을 갚지 못하였고 1720년 아랍인 채무자들이 시나고그를 허물고 아슈케나짐 복장을 한 사람들을 골라서 살해하거나 린치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후 다시 빌뉴스의 가온이라는 사람이 일군의 유대인들을 이끌고 예루살렘과 티베리아스, 사페드, 헤브론 등 팔레스타인 각지에 유대인 공동체들을 세웠는데, 이들은 페루심이라고 불리며 오늘날 이스라엘 하레디들의 기원이 되고 있다. 그간 근본주의자들을 중심으로 간헐적으로 진행되던 폴란드 유대인들의 팔레스타인 이민은, 시오니즘 운동을 계기로 불이 붙기 시작하였다. 1919년부터 팔레스타인 경제 위기가 시작된 1923년까지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한 유대인 중 45%는 소련 출신, 31%는 폴란드 출신이었다.

2차대전 직전 폴란드 제2공화국에 거주하는 유대인 인구는 335만 명에 달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벌어진 홀로코스트의 결과 폴란드 유대인은 사실상 전멸당했다. 나치 독일은 1939년 폴란드 침공으로 폴란드 제2공화국의 서부를 석권했고, 1941년 바르바로사 작전으로 동부도 점령했다. 따라서 전쟁 전에 운좋게 외국으로 피신하거나, 이웃의 호의로 숨은 극소수를 제외한 거의 모든 폴란드 유대인들이 홀로코스트로 학살되었다.[6] 홀로코스트로 학살된 폴란드 유대인은 최소 300만으로,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홀로코스트 희생자 600만 명의 50% 이상에 해당한다.

2차대전이 끝날 때까지 생존한 폴란드 유대인은 약 30만으로 대부분은 국외에 도피한 상태였다. 폴란드 국내에 남은 폴란드 유대인들도 폴란드 인민 공화국 내의 반유대주의와 동유럽 혁명 이후 체제 교체에 따른 경제적 혼란 때문에 대부분 해외로 이주했다.

3. 현황

오늘날 폴란드계 유대인들은 거의 대부분 미국이나 캐나다, 이스라엘에 거주한다. 폴란드에 잔류한 유대인은 1~2만 명 수준으로 급감하였으나, 오늘날 폴란드 각지에서 폴란드 유대인 관련 문화 유산들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은 수준이다. 폴란드 인민 공화국 해체 이후 이스라엘 국민들의 폴란드 관광이 늘어나면서 한 때 버려졌던 크라쿠프 등의 유대인 구역들에 다시 유대인들이 정착하면서 복원되는 사례도 있다.

캐나다의 래퍼 Drake의 어머니가 폴란드 유대인계 캐나다인이다.


[1] 슈드리히는 2차 대전 전에 폴란드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유대인의 후손이다. 어찌보면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셈이다.[2] 17세기 폴란드-리투아니아는 오늘날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대부분을 통치했으며, 1차대전 이후 폴란드 제2공화국은 오늘날 서벨라루스와 서우크라이나를 통치했다. 관점에 따라서 이 지역에 거주하는 유대인은 폴란드 유대인으로, 또는 비폴란드 유대인으로 분류될 수도 있다.[3] 아르헨티나 유대인, 폴란드계 아르헨티나인 문서 등등 참조[4] 성향을 보면 바루흐 슈타인베르크(Baruch Steinberg)와 메나헴 베긴처럼 대개 수정시오니즘 성향이었다. 하지만 폴란드 유대인 자체가 워낙 많았으므로 노동시오니즘 추종자도 굉장히 많았다. 바르샤바 게토 봉기를 일으킨 모르데하이 아니엘레비츠(Mordechaj Anielewicz)가 바로 노동시오니스트였다.[5] 러시아 출신의 수정시오니스트 제프 자보틴스키는 10년 내로 팔레스타인에 폴란드 유대인 75만 명을 포함해 총 150만의 유럽 유대인을 이주시킨다는 계획을 세웠다.[6] 일부 유대인은 빨치산 부대를 결성하여 유대인을 보호하였다. 특히 비엘스키 형제가 결성한 이른바 비엘스키 빨치산(Bielski partisans)은 1천명이 넘는 비무장 유대인을 보호하는데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