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칼파크인 유목민(1932) |
1. 개요
【언어별 명칭】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cccccc,#1f2023> 카라칼파크어 | Qaraqalpaqlar |
우즈베크어 | Qoraqalpoqlar | |
카자흐어 | Qaraqalpaqtar | |
러시아어 | Каракалпа́ки | |
영어 | Karakalpaks, Qaraqalpaqs | }}}}}}}}} |
2. 역사
카라칼파크인은 고고학적 근거를 통해 15~16세기 후반의 카자흐인 소군단(카자흐어: Жүз / Jüz, 영어: Lesser Horde)과 가까웠던 시르다리야 강의 튀르크 부족 연합체에서 기원한 것으로 추측된다. 이외에도 약 11세기에 존재했던 카라칼파크 또는 초르니예 클로부키(러시아어: Чёрные Клобуки, 영어: Chorni Klobuky)[1]라 불린 튀르크 연맹을 그 기원으로 보고 있으나 이들이 카라칼파크인들과 명칭의 의미가 같다는 것 이외에는 고고학적, 역사적으로 어떠한 관계인지에 대해선 제대로 된 증거가 없는 상태이다.3. 현황
공화국에 거주하는 카라칼파크인의 상황은 영 좋지 않은데 카라칼팍스탄의 환경, 경제 문제로 인해서 국경 넘어 카자흐스탄 등 외국에서 외화벌이를 하는 이주 노동자들이 많다.[2] 이들에 대한 정부의 관리는 방치에 가까울만큼 허술하다. 당국이 공식적으로 추산한 카자흐스탄 거주 카라칼파크인은 2009년 기준으로 2800명 수준이다.[3] 하지만 비공식 자료는 카자흐스탄으로 이주한 카라칼파크인은 최소 2만 또는 50,000명 에서 200,000명으로 추산하기도 한다.[4][5] 사실 이런 이주 노동자들은 영구적인 이주를 목적으로하는 사람들도 있고 한철 장사처럼 따뜻한 계절에 일하러 카자흐스탄에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얼마나 되는 사람이 카라칼팍스탄을 떠났는지 추산하기 어렵다. 여기에 우즈베키스탄 당국이 자국민 이주 노동자 문제에 전혀 무관심한 것도 한 몫을 더하고 있다.카자흐인, 키르기스인과 매우 가까운 관계지만 이들에 비하면 백인 외형이 어느 정도 남아있는 편이다.
[1] 러시아어로 '검은 모자들'이라는 뜻이며, 당시 키예프 루스의 용병에 속해있기도 했다.[2] 이는 카라칼팍 자치공화국 뿐 아니라 우즈베키스탄 전체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우즈베키스탄보다 경제상황이 양호한 러시아나 카자흐스탄으로 따뜻한 계절에 돈벌러 떠나는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이 많다. 상당수는 '비합법적인 경로'로 일하기 때문에 공식 통계에 잘 잡히지 않지만 보통 이주 노동자의 수는 100만에서 300만 또는 200만에서 무려 800만까지 추산하기도 한다.[3] 최성규(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카자흐스탄 카라칼팍 민족 디아스포라의 선교적 의미와 사역 방향(복음과 선교 제46집), 333pp[4] 이채문(경북대학교), 아랄해의 환경문제와 고려인의 이주․정착 및 지역성 변화:우즈베키스탄 카라칼팍스탄 공화국의 사례를 중심으로(한국동북아논총 제70호, 2014년), 209pp[5] Retreating Aral Sea displaces Karakalpa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