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세계의 유목민족들을 정리한 문서.2. 상세
말 등의 가축을 타고 이동하면서 목축업을 주로 하는 유랑민만 언급하도록 한다. 가축이 끄는 마차를 타고 이동하는 경우와 이목(pastoralism) 생활을 하는 이들도 포함한다. 농사도 간혹 짓기도 하는 반유목민의 경우 ※로 표기.3. 주요 유목민족
3.1. 아프로-유라시아 대륙
3.1.1. 아시아
3.1.1.1. 중앙아시아
- 킴메르족(기원전 12세기, 코카소이드 유목민): 후에 스키타이에게 쫒겨나면서 유럽으로 쫒겨간 일부가 켈트족과 라틴족이 되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참고로 기록에 남은 인류 역사상 최초의 유목민이다.[1]
- 스키타이/사카족(기원전 8세기 ~ 기원전 2세기): 중앙아시아와 동유럽, 더 나아가 북아시아의 알타이 및 투바 지역에 거주하던 이란계 유목민.
- 튀르크(8세기 이후): 중앙아시아, 동아시아, 서북아시아, 동유럽, 남유럽. 현존하는 유목민 중 몽골인 다음으로 유명한 유목 민족이다.
- 카자흐족, 우즈베크족※, 키르기스족: 중앙아시아. 모두 튀르크계 민족들이며, 몽골족이 확장하면서 같이 발전한 이들이다.
- 타타르인: 동유럽, 중앙아시아, 동북아시아. 사는 곳에 따라서 크림 타타르, 립카 타타르[2], 볼가 타타르[3], 시베리아 타타르[4]로 나뉜다.
- 토하라인(기원전 21세기 ~ 서기 9세기): 오늘날의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위치한 타림 분지 일대에 거주했던 코카소이드계 민족으로, 러시아인 이전에 인도유럽어족 계열 민족들 중에서는 가장 동쪽에 살았던 민족이었다. 놀라운 점은, 아시아 방면으로 진출한 인도유럽어족 계통의 민족들은 산스크리트어나 페르시아어 등이 속해있는 인도이란어파 계열의 언어를 쓰던 이들이었는 데 반해, 토하리족은 그들과는 계보상 거리가 멀고 오히려 스코틀랜드인, 아일랜드인과 같은 켈트계 민족이나, 이탈리아인, 스페인인 같은 라틴계 민족과 계보상 깊은 연관을 지니는 이들이라는 점이다. 아직 켈트-이탈리아-토하라어파 설은 가설에 불과하지만, 이 가설을 포함한 아르메니아 가설이 주류 학계에서 유력한 가설로 떠오르면서 대대적인 주목을 받게 되었다.[5] 고대 흉노 연맹과 전쟁을 벌였던 월지는 고대 중국어로 “토콰르”를 음차한 것이라 한다. 9세기 이후에는 위구르족에 동화되어 소멸했다.
3.1.1.2. 동아시아
- 선진 시기
- 갈족(4세기 ~ 6세기): 오호십육국시대에 나타나 활약한 유목민으로, 튀르크계 혹은 인도유럽어족계 혹은 예니세이어족계 중 하나로 추정된다.
- 저족(3세기 ~ 6세기)※: 사실상 반농반목에 더 가깝다.
- 거란(4세기 ~ 12세기)※: 동아시아의 옛 유목민. 다만 일부는 지역에 따라 농업을 하는 부족들도 있었다. 이들이 바로 10세기 경에 요나라를 세운 이들이다.
- 다우르족※: 만주 북부에서 동튀르키스탄과 러시아의 극동 연방관구, 몽골 등지에 거주하는 반농반목의 몽골계 유목민이다. 본래는 순수한 유목민이었으나, 15세기 이후로 명나라 조정의 권유로 농경 생활을 시작한 후에, 현대까지 극소수가 농경민으로서 살아가고 있다. 한때 중국과 일본의 인류학자들에 의해 다우르족이 거란의 후예라는 설이 제기된 바 있는데, 2001년에 중국사회과학원에서 요나라 시기의 거란인 유골의 DNA를 분석한 결과로 이 가설이 사실임이 증명되었다[7].
- 강족※: 고대 토하라인 유목민으로부터 청동기 문화와 밀(식물), 말, 양을 전수받아 한족에게 전파한 것으로 추정된다. 강연 관계에 해당하는 저족과는 달리 현재도 중국공산당이 공인하는 56개 민족들 중의 하나로 존속하고 있다.
- 몽골인: 동아시아, 중앙아시아, 서아시아, 동유럽. 역사상 가장 유명한 유목 민족으로, 지금의 만주 서부 지역에서 발원하여 몽골 고원으로 진출했다가 몽골 제국 시기에 유라시아 각지로 퍼져나갔다.[8]
- 부랴트인: 동아시아, 중앙아시아. 몽골인들 중에서 러시아령 아시아 지역에 거주하는 이들을 가리킨다. 북원의 멸망 후에 발흥한 몽골계 유목민인 오이라트인의 직계 후손들 중 하나다.
- 오이라트인: 동아시아. 몽골의 허브드 지방과 오브스 지방에 주로 거주하며, 중국에도 간쑤성 및 칭하이성에 일부가 거주한다. 위의 부랴트인과 아래의 준가르인 및 칼미크인들이 이들과 갈라져 나온 자매 민족이다. 참고로, 영가의 난 및 정강의 변과 함께 중국 최악의 굴욕 사건인 토목의 변[9]을 일으켰으며, 냉전 기간에 몽골의 지도자가 된 욤자깅 체뎅발이 오이라트 출신인 등, 중국과 몽골 양국의 역사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민족이다.
- 준가르※: 동아시아. 오늘날의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거주했던 오이라트계 유목민이다. 한때는 준가리아 칸국[10]을 건설하여 동아시아의 패자로 군림하기도 했으나, 강희제 시기부터 건륭제 시기까지 진행된 준가르 원정으로 인해 패망하고 준가르 인구의 대부분이 학살당하면서, 오늘날에는 위구르 지역의 튀르크계 토착민인 위구르족이나 같은 몽골인 계통인 오이라트인에 동화되어 사라졌다. 여담으로 몽골계 민족들 중에선 최초로 자발적으로 농경 생활을 시도한 이들이다.[11][12]
- 칼미크인: 동유럽. 몽골인 중에서 러시아령 유럽 지역에 거주하는 민족이다. 위의 준가르족과 마찬가지로 오이라트인의 직계 후손격 민족인데, 특이사항으로 유럽의 민족들 중에서 유일하게 티베트 불교를 주로 믿는 민족이다. 이들이 주축이 된 나라인 칼미키야 공화국[13]도 유럽에서 유일하게 불교를 국교로 공인한 나라다.
- 차하르족: 동아시아. 몽골인 중에서 중국령인 내몽골에 거주하는 이들로[14], 전통적인 유목 생활을 하는 이들과 도시에서 정주 생활을 하는 이들로 나뉜다.[15]
- 할하 몽골인: 동아시아. 일반적으로 몽골인이라고 하면 대표격으로 언급되는 독립국 몽골의 주민들이다[16]. 공산주의 시절에 정부 차원에서 정주민화가 강제되었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인구가 유목 생활에 종사한다. 몽골령 지역들 주에서 그나마 기후가 온화한 볼강 지방 및 셀렝게 지방에서 극소수 농경 생활을 하는 이들이 있으나, 전통적인 농경민이 아니라 21세기에 몽골 정부와 대한민국의 개신교 선교사들의 지원을 받아서 농업을 시도하는 것에 불과하다.
- 선비족(기원전 2세기 ~ 서기 7세기)※: 고대 만주에 살았던 민족인 동호의 후신인 두 민족들 중 하나로[17][18], 기록 상으로는 기원전 2세기 경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보이지만, 이들이 본격적으로 유목 생활을 시작한 서기 2세기 경부터 본격적으로 역사의 전면에 나오게 되었다. 오호십육국시대의 주역이었던 민족들 중의 하나로, 이때 중국 대륙에 유입된 선비족 귀족들이 한족에 동화되면서, 당나라 초기에 상류층으로서 영향을 행사한 관롱집단이 되었다. 초기에는 유목과 수렵채집 중심 사회였다가 후기에 한족 등 농업을 하는 민족들로부터 서서히 농업 기술을 받아들였으며, 이들은 모용부의 삼연, 탁발부의 북위, 우문부의 북주, 선비족에 동화된 한족과 선비족 중심의 북제가 세워졌다.
- 오환족(기원전 2세기 ~ 서기 4세기)※: 위의 선비족의 자매 민족이며, 서기 2세기 경에 본격적으로 역사서에 등장하여 중국의 북부 지역을 위협했으나, 이 시기에 있었던 조조[19]의 토벌 작전으로 인해 세가 크게 위축되었다.[20]
- 주족(기원전 11세기): 주나라의 기원이 된 민족이자, 상나라를 세운 이들과 함께 한족의 조상이 되는 민족이다. 정주 농경민이었던 상나라 사람들과는 달리, 주나라는 유목민으로서 역사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는데, 고공단보의 치세 때 적인(狄人)[21]에게 쫓겨나서 상나라의 영향력 밑에 들어가게 되면서, 그 영향으로 정주 농경민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역사상 등장한 유일한 한족계 유목민이다.
- 티베트인※: 야크를 유목하고 보리 농사를 짓는 반농반목이었으나, 오늘날에는 농업 기술의 개선으로 벼농사도 짓는다 한다. 하지만, 티베트 동부의 캄 지방에서는 여전히 순수 유목생활이 이루어지고 있다.
- 탕구트: 훗날 서하 왕조를 세운다.
3.1.1.3. 북아시아
- 흉노(기원전 4세기 ~ 서기 4세기): 단일부족으로 이루어졌다기보다는 인도유럽어족에 속한 샤카족 기마 유목민 문화에 영향을 받은 여러 북방계 민족들의 연맹체로 생각되고 있다. 흉노라는 이름은 지배민족의 명칭에서 따온 것으로 추측되고 있으며, 그 주축은 튀르크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래의 훈족과 동계라는 설이 오랫동안 제기되었는데, 형질인류학적 연구를 통해 실제로 훈족은 흉노족이 유럽 방면으로 서진하면서 자신들 부족연맹에 합류하게 된 인도이란어파 계열 및 게르만계 민족들과 혼혈을 이루면서 형성된 민족이었음이 밝혀졌다.
- 투바인: 몽골 북부에 거주하던 몽골인과 사모예드족들이 튀르크계 민족들에게 동화되어 형성된 민족으로 추정되는데, 오늘날에는 주로 몽골과 러시아의 투바 공화국에서 거주한다[22].
- 축치인: 러시아 추코트카 지역의 원주민들로, 주로 순록이나 개가 끄는 썰매를 이용해서 유목 생활을 하나, 오호츠크 해 해안가에 정착한 이들은 인근의 유픽족이나 아이누족과 혼혈을 이루면서, 정주 생활을 하는 수렵채집민으로 전환했다. 축치인들은 러시아 침략자들을 대상으로 처절한 투쟁을 거친 끝에 러시아 혁명이 일어난 1917년까지 독립을 유지했으며, 소련 시절에 정식으로 러시아에 합병된 뒤에도 당국으로부터 아무런 탄압도 받지않았기 때문에, 소련 해체 후 현대의 러시아 연방 체제 하에서도 고유의 유목 생활과 문화적 정체성을 잘 유지하면서 살고있다.
- 유카기르: 러시아의 사하 공화국과 마가단 주에 걸쳐서 거주하는 민족으로, 순록을 이용해서 유목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아래의 우랄계 민족들과 동계라는 설이 있다.
3.1.1.4. 서아시아
- 구티족: 자그로스 산맥에서 기원한 민족으로 기원전 22세기경에 인류 최초의 제국 아카드 제국을 무너뜨리고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정복하여 구티 왕조를 형성했다. 이들은 명확한 기원과 계통, 문화, 언어 등에 대해 거의 알려져 있지 않으며 구티족들의 언어에 말뭉치가 없어서 인근 지역의 다른 언어들과의 유사성도 확인되지 않는다[23]. 후에 이들은 수메르가 부흥하면서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쫒겨나게 된다.
- 아리아인(기원전 3000년경 ~ 기원전 1500년경)※: 서아시아, 중앙아시아, 남아시아, 동유럽, 중부유럽. 아래의 원시 인도유럽인에서 직접 분리되어 나온 이들로, 인도이란어파 계열 민족들의 직계 조상이자, 그리스인, 아르메니아인의 자매 민족이다.[24] 기원전 3000년경부터 출몰하기 시작하여 일부는 서쪽으로 이주하거나 발원지인 캅카스 지역에 남으면서 훗날의 스키타이인이나 사르마티아인이 되었고, 나머지가 동쪽으로 이주하여 아래의 이란계 민족의 기원이 되었다. 그리고 이들 중에서 가장 남쪽으로 이주한 부류는 오늘날의 인도 아대륙 북부에 정착하여 정주 농경민이 된 후에, 현지의 드라비다계 민족들과 융화하여 갠지스 문명을 세웠고, 그 후로 현대까지 살아남아서 드라비다계와 함께 인도를 건설하고 그 주역이 되었다.
- 이란계 민족(기원전 2000년경 ~)※: 서아시아, 중앙아시아, 동유럽. 정확히 말하면 투란 지방에서 유목생활을 하면서 살던 아리아인이 이란 고원에 정착하면서 생겨난 이들로, 현대 이란인과 타지크족, 파미르족 및 인도 북부의 아리아계 민족들로 분화되어 현존하고 있다. 현대에는 중앙아시아로 간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정주민족화 되었다. 아케메네스 제국의 유물과 유적에 유목 문화의 흔적이 남아있는 등, 이란계 민족이 본래 유목민이었음을 보여준다. 한편 이들 중 일부는 쿠르드족, 발루치족과 같이 유목생활을 이어가기도 했다.
- 셈 계열 민족: 서아시아
- 유대인: 서아시아. 현재의 팔레스타인에 정착했다. 그리고 성경을 보면 유목 문화의 흔적이 남아있다.
- 산악 유대인※: 동유럽. 오늘날의 아제르바이잔을 포함한 캅카스 지역의 동부 일대에 드넓게 분포한 유대인의 일파로, 비록 순수한 유목민이 아니라 반농반목 생활을 하긴 해도 현대까지 유목 생활을 하는 유일한 유대계 민족이다.[27] 그래서 예로부터 이들은 강인한 기마 민족으로 명성이 높아서 자주 용병으로 고용되기도 했다.
- 베두인※: 서아시아, 북아프리카. 이쪽은 독자적인 민족이라기보다는 정착민들인 아랍인들 중에서 유목생활을 하는 부류를 가리키는 표현에 가깝다. 정확히는 아라비아 반도 내륙 지방에 거주하던 고대 아랍인 농경민들이, 중동 지역의 사막화로 인해 농경 생활이 불가능해짐에 따라[28] 오늘날의 베두인이 된 것이다.
3.1.1.5. 남아시아
- 에프탈: 위의 토하라인[29]들이 소수의 튀르크계와 혼혈한 뒤에 오늘날의 중앙아시아와 인도 아대륙 일대로 흘러들아가서 형성된 민족이다. 근대 이전 파슈툰족들은 주변 민족들에게 압달(Abdal)이라 불린 것을 보면, 파슈툰족의 직계 조상 중 하나로 추정할 수도 있다.
- 자트족※: 남아시아. 인도와 파키스탄의 국경 지대에 거주하는 반농반목의 반유목민으로[30], 펀자브인의 분파 내지는 사촌뻘되는 민족이다. 우수한 기마 전술로 유명했기 때문에 영국령 인도 제국 시절에는 영국군 내에 자트족 출신자로 구성된 자트 연대(Jat Regiment)라는 창기병 부대가 창설되기도 했다.
- 브라후이족※: 남아시아, 서아시아, 중앙아시아. 이란과 파키스탄 및 아프가니스탄의 국경 지대에 거주하는 유목민으로, 현존하는 유일한 드라비다계 유목민이다.[31] 주로 이슬람을 믿으며, 낙타와 말을 이용한 유목 생활을 한다.
3.1.2. 유럽
3.1.2.1. 중부유럽ㆍ서유럽
- 켈트(코카소이드 유목민, 기원전 1200년 ~ 기원전 700년)※: 할슈타트 문화를 기원으로 갖고[32] 이후 전 유럽으로 퍼지나, 모두 로마 제국에게 복속되고 문화가 융합되거나 남하하는 게르만족들에게 정복당했다. 이 중에서 서유럽으로 이주한 켈트족은 유목생활을 중단하고 농경민이 되었다.[33]
- 마자르족
3.1.2.2. 동유럽
- 원시 인도유럽인(기원전 6500년경): 동유럽, 중부유럽, 서아시아. 위의 킴메르인이 기록상 최초로 언급되는 유목민이라면, 이쪽은 고고학자들의 연구로 밝혀낸 인류 역사상 최초의 유목민이다.[34] 주로 양이나 말 등의 가축을 키워서 목축을 하였으며, 마차를 이용하여[35] 유목 생활을 이어나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인류 역사상 최초로 말을 가축화한 민족인 보타이 문화의 주민들과 접촉하여, 인류 최초의 기마 유목 문화를 만들어내었다. 이 목록에서 언급되는 스키타이, 토하라인, 사르마티아인 등의 인도유럽어족계 유목민들의 공통 조상이다.
- 훈족(370 ~ 469년, 흉노 + 스키타이의 후손으로 추정): 동유럽~중부유럽
- 슬라브족(~ 6세기)※: 동유럽, 중부유럽, 남유럽. 헤로도토스의 기록에 따른다면 초창기에는 반농반목 생활을 한 것으로 보이나, 중세 초 유럽 각지에 정착하면서 농경으로 전환하였다.
- 사르마티아(기원전 3세기 ~ 기원전 1세기): 동유럽.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마존 전설의 기원이 된 민족으로, 이란계 유목민이었다. 남녀가 서로 동등한 사회적 지위를 가진 탓에, 사르마티아인 기마병 중에는 여군이 많았고 여성이 군주나 추장으로 옹립되는 일도 꽤 있어서[36], 이런 특징이 그리스에 알려지면서 여인국 아마존 전설이 만들어지기도 했다.[37]
- 알란(기원전 1세기 ~ 서기 5세기): 동유럽 및 서유럽. 위의 사르마티아인의 후손격 민족으로, 로마 제국 시기에 로마군의 포로가 되거나 자발적으로 로마 영내로 이주한 이들이 대거 용병으로 고용되었다. 이후에는 훈족의 침공으로 촉발된 게르만족의 대이동 때 대거 유입된 서고트족과 함께 서유럽 지역에 정착하였으나[38], 곧바로 이들을 추격해온 훈족에게 궤멸적인 타격을 입은 바람에 인근의 서고트족들에게 동화되어 멸망했다. 이들 중 로마 제국의 영토로 이주하지 않고 발원지인 캅카스 지역에 남은 이들이 오늘날의 오세트인의 기원이 되었다.[39]
- 아바르(6세기 ~ 9세기): 동남유럽. 슬라브족의 이동을 촉발시킨 민족으로 유연족의 후예로 추정된다.
- 불가르(7세기): 동유럽. 현대 불가리아의 기원이 된 민족. 정확하게는 불가르족이 발칸 반도 현지의 슬라브족을 정복한 뒤에 이들에게 동화되어 이루어진 민족이 현대 불가리아인이다.[40]
- 쿠만(11세기 ~ 13세기)※: 동유럽. 오늘날에 우크라이나 일대에 정착하여 유목 생활을 영유했던 튀르크계 민족이며, 전성기 때는 그들의 숙적인 루스계 공국들을 침략하여 막심한 피해를 입히거나, 동로마 제국에 의해 자주 용병으로 고용될 정도였다. 하지만, 몽골 제국이 발흥하면서 쿠만인들을 정복해버리자, 유럽의 기록에 따르면 이를 견디지 못한 대다수의 쿠만인들이 헝가리로 망명했고, 거기서 현지인인 마자르족에게 동화되어 민족 정체성이 사라졌다.[41] 쿠만인들은 오늘날 카자흐스탄의 카자흐인들의 기원 중 하나이기도 하다.
- 하자르(7세기 ~ 10세기): 동유럽. 서기 7세기 경부터 10세기 경까지 오늘날의 우크라이나 등지에서 번영했던 튀르크계 유목제국으로, 특이하게도 유대교를 국교로 했다. 하자르 칸국의 멸망 이후에 쿠미크인, 카라임, 크림차크 유대인 등이 자신들이야말로 말로 하자르 칸국의 직계 후예라고 주장하고 있다.[42]
- 코사크(15세기, 슬라브족 유목민)※: 동유럽. 카자크라고도 하는데, 위의 카자흐족과는 전혀 다른 이들이다.[43] 특이하게도 중세 블라흐인과 마찬가지로 농경민족이 다른 유목민들의 공격에 대처하기 의해 유목민으로 돌변한 경우에 속한다. 현재의 우크라이나인 및 러시아인에 속한다.
- 페체네그(10세기 ~ 11세기, 튀르크화한 스키타이계 유목민으로 추정)
3.1.2.3. 남유럽
- 요뤽: 튀르키예의 아나톨리아 반도에 거주하는 유목민이며, 정확히는 유목 생활을 하는 튀르키예인을 요뤽이라고 한다. 요뤽과 아래의 사라카차니같은 남유럽계 유목민들은 위에서 말한 이목(Pastoralism)[44]을 주로 하는 이들이다.
- 사라카차니: 그리스 북부의 산악지대에 거주하는 유목민이며, 오스만 제국의 지배 기간에 유입된 튀르키예계 유목민들이 그리스인에 동화되어 형성된 민족이다.
- 아로마니아인: 그리스에 사는 루마니아계 유목민으로 현대 루마니아인과는 8, 9세기 경에 갈라져나왔다. 아프로유라시아에서 유일한 로망스어군계 유목민이다[45].
3.1.2.4. 북유럽
- 사미족(북유럽), 네네츠(동유럽~북아시아) 등의 우랄어족 계열 유목민: 이들은 주로 순록을 키워서 먹고 순록이 끄는 썰매를 타고 다니는 것으로 유명하지만[46], 마자르족같이 좀더 남쪽에서 사는 이들은 알란족, 오노구르족과의 혼혈 이후 순록 대신 말을 이용한 기마 유목민이 되었으며, 이들은 뒷날 헝가리를 건설하게 된다.[47]
3.1.3. 아프리카 대륙
3.1.3.1. 북아프리카
- 베르베르인※: 북아프리카. 아프리카에서 가장 오래된 유목민이다. 서아시아의 유목민인 베두인처럼 낙타를 이용한 유목 생활을 주로 했다.
- 사흐라위인
- 바까라족※: 북아프리카, 중앙아프리카 및 동아프리카. 대부분의 아프리카 유목민들이 낙타를 이용해서 유목 생활을 하는 것과는 달리, 이들은 말을 이용한 유목 생활을 한다. 주로 말과 양을 길러서 먹고 살며, 과거에는 코끼리나 기린 사냥을 하기도 했다.[48] 보통의 경우는 유목 생활을 하다가, 비교적 비옥한 곳에 기장이나 수수의 씨앗을 뿌려놓았다가 이곳을 다시 지나갈 때 수확해서, 유목 생활로 얻은 가축의 고기나 젖과 함께 먹는 방식을 택했다.
3.1.3.2. 서아프리카ㆍ중앙아프리카
- 투아레그족※: 서아프리카. 베르베르족의 분파로 보기도 하고, 별도의 민족으로 보기도 한다. 베르베르족과는 대동소이한 편이지만, 특이사항으로 모계 사회라는 점과 종교에 관계없이 일부일처제를 엄격하게 고수한다는 특징이 있다.
- 하우사족※: 서아프리카 및 중앙아프리카. 아프리카아시아어족에 속하는 하우사어를 사용하며[49], 반농반목의 생활을 주로 한다. 반농반목의 생활을 하는 다른 아프리카 민족들에 비해 유목 생활의 비중이 좀더 큰 편이다.
- 풀라족※: 서아프리카. 반농반목의 생활을 하는 민족으로, 대부분의 인구가 정주 농경민이 되었으나 아직도 상당수가 유목생활을 유지하고 있어서, 현재까지 유목 생활을 하는 민족들 중에선 가장 인구 규모가 큰 민족이다.[50] 19세기에 오늘날의 나이지리아와 기니 등지에 있던 졸로프 왕국과 바마나 제국을 정복하여 소코토 칼리프국을 건설하기도 했고, 현대에도 이때 서아프리카의 해안 지대로 이주한 풀라족들이 이 지역에 정착하면서 기니 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 투부족: 중앙아프리카와 북아프리카 일부에 거주하는 유목민족.
- 송가이족※: 서아프리카.
- 바야카족※ :중앙아프리카의 수렵민족이자 반유목도 겸하는 민족.
3.1.3.3. 동아프리카
- 베쟈족※: 동아프리카. 위의 베르베르족과 함께 아프리카에서 가장 오래된 유목민으로, 기원전 2천 년경부터 관련 기록이 등장했다. 계절에 따라 일정 지역 내에서만 유목 생활을 하는 이목을 주로 했으며, 이 때, 겨울[51] 거주지인 지역에 수수를 뿌려놓았다가 겨울이 오면 이를 수확해서 먹는 식으로 반농반목 생활을 했다.
- 오로모족※: 동아프리카. 에티오피아에 거주하는 반농반목의 민족으로, 주로 말과 낙타를 이용해서 유목 생활을 하거나, 천연 소금을 채굴하여 판매하는 것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마사이족: 동아프리카. 말 등의 짐승을 타고다니는 기마 유목민 생활을 하지않고, 도보로 이동하면서 유목 생활을 한다. 그래서 관점에 따라선 유목민이 아니라, 단순한 목축민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남수단의 누에르족, 딩카족과 생활 양식이 흡사하다.- 소말리인※
3.1.3.4. 남아프리카
- 보어인※: 남아프리카 유일의 기마 유목민이자, 인류 역사에 등장한 몇 안 되는 게르만계 유목민으로[52], 정확히는 반농반목 생활을 주로 했다. 17세기에 오늘날의 남아프리카공화국 및 짐바브웨 등지로 이주하여 정착한 네덜란드계 개신교인 이주민들의 후손이며, 영국과 보어인 간의 무력 분쟁인 보어 전쟁을 전후하여 스칸디나비아계나 영국계 이주민 및 케이프타운을 포함한 희망봉 주변 지역으로 이주한 인도인이나 말레이인의 피도 일부 섞였다.[53] 나미비아의 보어인들은 나미비아가 독일 제국의 지배를 받은 영향으로 독일계와 혼혈되기도 했다. 주로 소가 끄는 마차를 이용해서 유목 생활을 했으며, 일부는 농업에 유리한 지역을 발견하면 정착하여 도시나 마을을 이루며 살기도 했고[54], 19세기 경부터는 다이아몬드나 금을 채굴하여 유럽이나 중동에 수출하는 것으로 부를 쌓기도 했다. 20세기 이후로는 영국의 남아공 지배와 보어 전쟁 이후 대부분이 유목 생활을 중단하고 정주 생활을 하였으며, 이 와중에 남아공 사회의 상류층이 되어 아파르트헤이트라는 희대의 백인 우월주의 정책을 펼쳤으나, 1994년에 넬슨 만델라가 집권한 이후로는 상당수가 기득권을 상실하고 하층민으로 전락했다.[55][56]
3.2. 아메리카 대륙
3.2.1. 북아메리카
- 수우족※: 북아메리카. 수우족이나 코만치족 같은 북아메리카 유목민들은 16세기 이후에나 유목 생활을 시작했고, 그 이전에는 농경 생활을 주로 했었다.
- 쇼쇼니: 북아메리카. 오늘날의 미국 아이다호 주 일대에 거주하는 아메리카 원주민계 유목민이다. 흔히 서부극에서 등장하는 원주민들의 원추형의 가죽 텐트인 티피가 바로 쇼쇼니족의 전통 가옥이다.[57]
- 카우보이(19세기)※: 북아메리카. 20세기 이후로는 소나 말을 사육하는 것을 생업으로 하는 목축업자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지만, 역사상의 카우보이는 서부개척시대 당시에 오늘날의 미국 중서부 지역에 유입된 앵글로색슨계 미국인 목축업자들을 주축으로 한 유목민 집단을 가리킨다. 일반적으로는 멕시코와의 국경지대 및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영토와의 접경지에서 주로 살았던지라, 혈통 상으로는 히스패닉과 원주민과의 혼혈이 잦았고, 그 이외에도 유럽에서 유입된 아일랜드계나 루이지애나 매입으로 미국 사회에 편입된 프랑스계 주민들과의 혼혈도 있었으며, 심지어는 주인에게서 탈주하거나 자유를 얻은 해방노예 출신의 흑인들도 유입이 된 바 있다[58]. 대체로 야생화된 마소를 다시 길들여서 그 고기를 미국인 정착촌이나 대도시로 수출하는 것으로 생계를 유지했으며, 일부는 광산 개발을 목적으로 캘리포니아 등지에 정착하기도 했다[59]. 개척 시대가 끝난 후로는 상술한 것처럼 단순한 직업으로서의 의미만 남았다.
- 코만치족: 북아메리카. 인디언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깃털 장식을 하고 활을 쏘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이미지가 이들에게서 나온 것이다. 유목 생활을 하기 이전의 수렵채집민 시절부터 수시로 약탈을 자행하는 호전적인 민족으로 유명했는데, 16세기 이후로 유럽인들로부터 말 사육기술을 들여와서 기마 유목민으로 전환한 뒤로는 대놓고 주변 민족들을 약탈하고 정복하면서 중서부 미국의 패자로 군림했다[60]. 때문에 19세기 중에 미국 정부 및 멕시코 정부를 상대로 전쟁까지 벌일 정도였다[61]. 19세기까지는 멕시코 북부에서 미국 중서부에 이르는 거대한 영역을 차지하여, 미국 측에서 코만치족의 영역을 '코만체리아'(Comancheria)라고 칭하기도 했는데, 이는 아메리카 역사상 유일한 유목 제국이었다.
3.2.2. 남아메리카
- 가우초※: 남아메리카의 팜파스 대초원지대. 원래 이들은 메스티소거나 물라토였지만, 순수 원주민도 있었고 때로는 아일랜드, 영국, 프랑스 출신들도 있었다. 독특한 판초 의상과 모자, 그리고 남미풍 기타 음악 등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 무기는 벨트 뒤에 감추면서 휴대하는 긴 칼, 볼레아도라스 혹은 볼라스라고 하는 던지는 사냥돌을 사용하였다. 현재는 가우초라는 말은 미국의 카우보이에 대응하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62]
- 야네로(17세기 ~ 20세기): 남아메리카. 베네수엘라 서부에서 콜롬비아 동부에 걸쳐있는 초원 지대인 야노스 평원에서 살았던 유목민 집단으로, 아메리카의 다른 이민자계 유목민들이 메스티소계가 대다수를 이룬 것과는 달리, 이들은 스페인인과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흑인 노예 사이의 혼혈인들인 물라토가 주축이 되었다. 주로 말을 타고다니면서 소를 방목하여 생활했고, 재규어 등의 맹수들이 들끓는 자연환경때문에 전투력 또한 높아서 우수한 기병 전력으로서 명성이 드높았다. 그래서 19세기 초반에 남아메리카의 여러 지역이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자, 많은 수의 야네로 출신 군벌들이 그란 콜롬비아의 건국에 참여하여 개국공신으로 대접받기도 했으나[63], 시몬 볼리바르 사후에 그란 콜롬비아가 해체되면서 수많은 야네로들이 극심한 인종차별에 시달린 탓에, 결국 독자적인 정체성이 소멸되고 19세기 중엽에 콜롬비아인에 완전히 동화되었다. 베네수엘라에서는 그 이후에도 야네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한 이들이 꽤 있었으나, 이들도 자신들의 거주지에서 석유가 발견된 탓에 유목 생활에 필요한 목초지들을 대거 상실하고, 결국 20세기 초에 베네수엘라인에 동화되어 사라졌다.
[1] 아래에서 언급되는 베쟈족이나, 베두인, 베르베르, 투아레그족이 킴메르인들보다도 역사는 더 오래되었지만, 킴메르인이 등장했을 시기에 이들이 유목민이었는지는 불확실하다. 그래서 유목민임이 분명하다고 밝혀진 민족들 중에서, 역사 기록에 등장하는 최초의 유목민은 이들이다. 사족으로, 역사 기록 이전에 등장한 최초의 유목민은 킴메르의 조상민족인 원시 인도유럽인이다.[2] 벨라루스와 리투아니아, 폴란드에 거주하는 타타르인이다.[3] 러시아 연방의 구성국들 중 하나인 타타르스탄 공화국의 주류 민족이며, 일부가 동투르키스탄 및 중국에도 거주한다.[4] 러시아의 튜멘 일대에 사는 타타르인이다.[5] 토하리족은 상나라 시대의 한족과 접촉한 적도 있었는데, 그 흔적이 바로 한자 蜜이다. 한자 '꿀 밀' 자는 고대 토하리어인 ḿətə에서 왔는데, 이게 벌꿀술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 mead와 어원이 같다.[6] 인도 아대륙의 북서부 지역을 가리키는 역사적 지명[7] 참고로, 청나라 최후의 황후인 고불로 완룽이 다우르족 출신이다.[8] 다만, 대부분의 몽골인은 유목민이지만, 몇몇 몽골계 민족들은 유목민이 아니다. 중국에 거주하는 몽골계 무슬림 종족인 둥샹족과 보안족, 그리고 티베트 동부의 토족과 내몽골, 만주 북부 다우르족은 몽골계 민족들 중 단 넷 뿐인 농경민이며, 사준사구의 일원인 제베와 수부타이의 출신 민족인 우량카이족은 수렵채집민이다.[9] 명나라 황제인 정통제가 오이라트 원정 중에 오이라트군에 체포된 사건으로, 중국의 황제가 외국 군대의 포로가 사례 중의 하나다.[10] 참고로 인류 역사상 최후의 유목제국이다.[11] 물론 인구의 대부분은 유목 생활을 했지만, 신장 위구르 자치구가 더운 사막 지대고 오아시스 주변에서 농사를 지을 수 있으므로, 준가르인의 일부가 농경 생활을 시도했다.[12] 타의에 의해서 농경 생활을 하게된 몽골계 민족은 준가르인보다 더 먼저 농업을 했다. 가령 둥샹족은 원나라 시대에 이슬람으로 개종한 일부 몽골인 병사들이 둔전병으로 중국 내 오지로 파견되어 형성된 민족이고, 다우르족은 본디 유목민이었으나 명나라 조정의 권유로 만주 일대에서 농경을 시도하면서 농경민이 되었다.[13] 러시아 연방을 구성하는 자치 공화국 중의 하나다.[14] 참고로 독립국인 외몽골에 거주하는 몽골인은 할하족이라고 한다.[15] 유명한 격투기 선수인 아오르꺼러가 바로 차하르족 출신이다.[16] 다만, 몽골 내 거주민들 중에는 할하 몽골인만 있는게 아니라, 이들의 사촌뻘인 오이라트인을 포함해서 튀르크계인 카자흐족이나 투바인도 일부 있다.[17] 나머지 하나는 오환족이다. 참고로 동호는 유목민이 아니라 수렵채집민이었다. 이들의 후신인 오환족과 선비족은 동호를 정복했던 흉노의 영향으로 유목민이 되었다.[18] 참고로 선비족은 몽골계로 추정되는데, 몽골어족에게 자매 언어군이 존재한다고 추정하는 언어학자들은 선비족이 쓰던 언어인 선비어를 몽골어족의 자매 언어군으로 추정되는 가설 상의 어족인 준몽골어족(Para-Mongolic languages)의 일원으로 본다. 이와 관련하여 미국의 언어학자인 알렉산더 보빈은 전한의 언어학자인 양웅의 저서인 방언의 기록을 토대로, 선비어가 한국어와 많은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언어동조대를 이루었다고 추정했다. 그리고, 주류 역사학계는 선비족의 지배계층과 그 산하의 부족들인 모용부가 몽골계로, 또다른 산하 부족인 탁발부가 튀르크계로 추정된다는 점에서, 지배층이 누구이냐와는 별개로 그 산하에 이질적인 집단들이 마구 뒤섞인 잡탕이라는 사실에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19] 삼국지의 주역인 그 조조다.[20] 삼국지연의에서는 이 사건을 별거 아닌 것처럼 간략하게만 다루는데, 실제로는 오호십육국시대의 도래를 1세기 뒤로 미뤘다고 할 만큼, 중국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순간이었다.[21] 주나라가 중국을 차지한 뒤로는 단순히 중국 북부에서 몽골 초원에 거주하는 비(非) 한족계 민족들을 싸잡아서 일컫는 말이 됐지만, 본래는 튀르크계나 몽골계, 인도아리안계로 추정되는 특정 민족을 가리키는 명칭이었다고 추정된다.[22] 여담으로, 현재 러시아 연방의 현 국방부 장관인 세르게이 쇼이구가 투바인이다.[23] 위의 토하라인과 동계라는 설은 있다.[24] 다만, 그리스인이나 아르메니아인은 사라카차니와 같은 극소수 사례를 제외하면, 유목민이었던 적이 없는 순수한 정주 농경민이다.[25] 캅카스 지방의 인도이란어파 계열 민족인 오세트인의 직계 조상이 된 민족이다.[26] 파르티아어와 페르시아어는 모두 인도유럽어족의 인도이란어파의 이란어군에 속한다.[27] 정확히는 이미 농경민화한 유대인들이 캅카스 지방으로 이주하는 과정에서, 여러 유목민들의 침략에 시달리던 이 지역의 지정학적 특징때문에 유목 생활로 되돌아간 경우다. 산악 유대인을 제외한 현대의 유대인의 분파들은 이미 오래 전에 유목 생활을 포기하고, 순수한 정주 농경민이 되었다.[28] 아라비아 반도의 사막화의 원인은 현재까지도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유력시되는 원인으로 과도한 목축과 더불어, 오랜 기간에 행해진 농업때문에 지력이 크게 감소한 것이 거론된다. 하지만, 베두인의 친척 뻘되는 유대인이나 페니키아인은 상대적으로 물을 구하기가 쉬운 레반트 지역에 거주한 덕택에 20세기까지도 농경 생활을 얼추 유지할 수 있었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민족들도 같은 이유로, 몽골군의 침략으로 인해 농경지가 황폐해진 13세기 이전까지는 멀쩡하게 농경 생활을 지속할 수 있었다.[29] 에프탈인들이 이란계 민족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들은 이란인같은 인도이란어파 계통 민족들과는 엄청나게 촌수가 멀고, 오히려 현대 이탈리아인, 스페인인, 아일랜드인과 더 가까운 민족이다. 다만, 에프탈인이 순수한 토하라인인 것은 아니고, 절대다수의 토하라계 주민들이 이란계 및 튀르크계 민족들과 혼혈하여 형성된 민족이다.[30] 2020년 현재 인도에 거주하는 자트족은 대부분 시크교를 믿으며, 파키스탄에 거주하는 자트족은 대부분 이슬람을 믿는다.[31] 동시에, 외국으로 이주한 이들을 제외하면, 가장 북쪽에 거주하는 드라비다계 민족이며, 유일하게 이슬람을 주로 믿는 드라비다계 민족이다.[32] 위의 키메르인들이 중부유럽 및 서유럽 일대로 쫓겨가서 형성된 문화다.[33] 유목민에서 농경민이 된 이들로선 가장 농경 생활에 적응한 이들이 오늘날의 프랑스 지역에 거주했던 갈리아인이었다. 이들을 정복한 로마 제국이 거꾸로 농사를 배워갈 수준이라서, 라틴어의 채소 관련 어휘의 60%가 갈리아어에서 차용된 것이다.[34] 한때 원시 인도유럽인의 일파로 간주되었던 아나톨리아어파 계열 민족들은 농경민이고, 이들이 살던 지역인 아나톨리아 반도가 인도유럽어족의 발상지라는 학설인 아나톨리아 가설의 대두로 인해, 한때 원시 인도유럽인들이 모종의 이유로 농경 생활을 중단하고 유목민이 되면서 유라시아 각지로 퍼져나갔다는 가설이 나온 바 있었다. 그러나, 2018년에 아나톨리아 농경민들의 유골을 발굴하여 조사한 바에 의하면, 이들의 DNA에서 우크라이나 등지에서 발원한 인도유럽어족계 유목민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아서, 아나톨리아 농경민은 인도유럽어족계 민족의 일파가 아니라, 이들의 분파에게 동화되어 형성된 자매 민족일 가능성이 커졌다. 이 연구 결과가 맞다면, 원시 인도유럽인은 순수한 유목민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35] 정확히는 이들이 처음 마차를 만든 이들이다. 이들이 등장했을 때는 아직 말을 가축화한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였다. 그래서 말이 인간의 무게를 직접 지탱하기가 어려워서, 주로 수레를 끄는 데에 말을 이용한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을 사람이 타기 좋게 개량한 이들이 이들 원시 인도유럽인의 직계 후예들 중 하나인 아리아인인데, 이들이 마차를 이용하는 대신, 말 위에 직접 올라타서 이동하던 모습을 고대 그리스인들이 목격한데서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켄타우로스 전설이 만들어지기도 했다.[36] 이는 고대 시대의 인도유럽어족 계열 유목민들의 특징이기도 했다.[37] 역시 그리스 신화에서 등장하는 반인반마의 괴물들인 켄타우로스는 사르마티아나 스키타이 출신의 남자 기마병들에 대한 목격담이 와전돼서 생겨난 것이다. 남유럽의 농경민인 그리스인들의 입장에서는 그리스의 지리적인 특성 상, 유목민과 조우할 일이 잘 없었으므로, 그들의 존재만 알고 있던 이들에 의해 이런 전설이 생겨난 것이다.[38] 일부는 오늘날의 영국의 잉글랜드 지역인 로마령 브리타니아에 정착하기도 했는데, 그래서 아서 왕 전설의 주인공인 아서왕이 잉글랜드에 정착한 알란계 로마인이라는 설정으로, 2004년에 미국의 영화 감독인 앤트완 퓨콰가 킹 아더라는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39] 남오세티야와 러시아령인 북오세티야에 주로 거주하는 민족인데, 조상인 알란인들과는 달리 유목민이 아닌 정주민이다.[40] 불가르족들 중에서 원 거주지이던 볼가 강 인근에 잔류한 이들은 뒷날 볼가 불가르로 불리게 되었고, 이들은 러시아의 볼가 타타르, 바시키르인, 추바시인의 기원이 되었다.[41] 일단 헝가리의 쿠만인들은 망명지에서 농경민으로 전환하여 17세기 경까지 정체성을 유지하긴 했다. 하지만 이후에 헝가리 영토의 대부분이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면서 그나마 남아있던 민족 정체성에 직격탄을 맞은 바람에, 헝가리인에 완전히 동화되었다.[42] 이들 중에서 실제 하자르인들의 후예로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이들은 카라임들이다.[43] 카자흐족은 튀르크계이고, 코사크족은 슬라브계 유목민이다. 그러나 둘 다 어원이 튀르크계 제어의 어휘인 kazak로 같다.[44] 일정 영역 내에서만 계절에 따라 이동하는 방식의 유목 생활을 말한다.[45] 인류 전체로 보면 로망스어군계 유목민이 더 있긴 했는데, 남아메리카의 가우초와 야네로가 이런 경우에 속한다.[46] 루돌프 사슴코에서도 나오는 산타클로스의 썰매가 이들의 순록 썰매를 모티브로 한 것이다.[47] 다만 마자르족은 헝가리 건국 후에 유목생활을 중단하고 농경민이 되었다.[48] 현대에는 코끼리와 기린이 멸종위기에 몰린 탓에 더이상 사냥하지 않는다.[49] 다만, 형질인류학적으로는 흑인(니그로이드)에 더 가까운 민족이다. 정확히는 아프리카아시아어족 계통의 민족들이 북아프리카에 확산되면서, 현지의 반투계 주민들이 이들에게 동화되어 형성된 경우다.[50] 풀라족 인구의 3분의 1에 달하는 1300만 명에 달하는 수가 유목 생활을 영유하고 있다.[51] 겨울이라고는 하는데, 엄청나게 무더운 사막 지대인 북아프리카와 동아프리카 지역의 특성 상 여름에 비해 상대적으로 서늘해지고 추워지는 기간이지, 한국이나 러시아의 겨울에 비하면 엄청나게 뜨거운 날씨다. 단지 밤이나 한파가 닥치는 날에만 서리가 내리는 수준이다.[52] 고대 게르만족도 양이나 염소 같이 전형적인 유목민의 가축을 키우긴 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유목민이 되지는 않고, 그대로 정주민이 되어 농경민이 되었다. 스위스 등 알프스산맥이 있는 곳의 게르만계(독일계) 목동들도 유목민과는 거리가 멀다. 고대 로마 시기의 기록에는 게르만계 유목민에 대한 기록이 일부 존재하며, 미국의 WASP계 유목민인 카우보이도 19세기에 맹활약을 하긴 했으나, 오래가지못하고 정주민화되었다. 2세기 이상 유목 생활을 유지한 게르만계 유목민은 보어인이 최초였다.[53] 이 외에도 남아프리카공화국 사회에서 케이프 컬러드라고 불리는 혼혈인들은 17세기에 남아프리카로 이주한 보어인 남성과 코이산족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의 후손들이다.[54] 소대신 말이 끄는 마차를 이용했다는 점만 빼면, 미국의 카우보이도 이런 식으로 유목 생활을 했다. 다만, 둘은 결정적인 차이가 있는데, 보어인은 반투계 및 코이산계 흑인이 절대다수를 이루는 곳에서 소수민족으로 있던 만큼 엄연히 독자적인 민족 집단으로 분류되는 데 반해, 카우보이는 자기들이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했으므로 독자 민족으로는 간주되지 않는다는 점이다.[55] 물론 대다수의 보어인들은 남아공을 떠나거나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적이 없음이 정상참작되어, 재산을 지키고 부유층으로 남긴 했다. 하지만 넬슨 만델라의 퇴임 후에 들어선 역대 정권들이, 흑인들을 우대하는 정책의 일환으로 보어인들이 겪는 경제적 위기를 방치하다시피하면서, 보어인 중산층들이 대거 몰락하고 이른바 '화이트 스콰터(white squatter)로 불리는 극빈층으로 전락했다.[56] 짐바브웨의 보어인들은 짐바브웨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로버트 무가베의 집권 이후로 전재산을 몰수당하면서, 살 길을 찾아 남아프리카 공화국이나 나미비아 등으로 대거 이주했다.[57]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유목민들은 빠른 이동을 위해 텐트 형식의 가옥을 선호했다. 쇼쇼니족의 티피 이외에는 몽골이나 튀르크계 유목민들의 게르가 대표적이다.[58] 미국의 영화감독인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 장고: 분노의 추적자가 흑인 출신 카우보이를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이다.[59] 탐광을 목적으로 정착민으로 전환한 카우보이들을 포티나이너나 프로스펙터라고 한다.[60] 미국이나 멕시코의 백인 마을을 약탈한 사례도 있다.[61] 오죽하면 코만치족이라는 이름부터가 먼 친척뻘되는 민족인 우트족이 이들에게 당한 울분에 "저들은 적이다!"라고 외친 데서 유래했을 정도다. 서부극에서 원주민들이 악랄한 약탈자로 묘사되는 게 마냥 백인 우월주의적인 편견이라고 볼 수도 없는 것이, 실제로도 호전적이었던 코만치족의 이미지가 어느 정도 반영됐기 때문이다. 당장 우리가 '인디언'이라고 하면 깃털 장식을 한 존재로 묘사되는데, 그게 이들에게서 유래한 이미지다.[62] 미국의 카우보이도 가우초와 같은 독자적인 인족 집단으로 간주되지만 않았을 뿐, 주로 소와 말을 이용한 유목 생활을 했다. 이들도 혈통 상으로는 잡탕 수준으로 마구 뒤섞여있어서, 대부분은 백인 이주민이나, 멕시코 출신의 히스패닉 부랑자들로 구성되어있었지만, 극소수 아메리카 원주민들도 끼어있던 데다, 심지어는 흑인 카우보이도 있었다.[63] 이 중에서 가장 세력이 컸던 사람이 호세 안토니오 파에스인데, 그란 콜롬비아 건국에 크나큰 공을 세워서 베네수엘라의 부통령이 되었다가, 그란 콜롬비아 해체 후에 그대로 초대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