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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르 제3왕조의 강역과 영향권 | |||||
기원전 2112년 ~ 기원전 2004년 | |||||
위치 | 서아시아 | ||||
수도 | 우르 | ||||
정치 체제 | 전제군주제 | ||||
국가원수 | 왕 | ||||
주요 왕 | 우르남무 슐기 | ||||
민족 | 수메르인 | ||||
언어 | 수메르어 아카드어 | ||||
종교 | 메소포타미아 종교 | ||||
주요 사건 | 기원전 2112년 건국 기원전 2004년 멸망 | ||||
성립 이전 | 구티 왕조 | ||||
멸망 이후 | 이신-라르사 시대 | ||||
현재 국가 | [[이라크| ]][[틀:국기| ]][[틀:국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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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수메르의 대표적인 도시였던 우르를 중심으로 존재한 수메르 왕조이며, 비교적 짧은 기간이지만 지역 기반의 패권을 유지한 왕조이다. 수메르인들이 세운 최후의 패권국으로, 우르 제3왕조 이후 수메르인들은 단 한 번도 메소포타미아 일대의 패권을 잡지 못했다. 이때문에 신 수메르 제국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수메르 문화의 부흥이 일어났다하여 수메르 르네상스로 불리기도 한다.굳이 우르 '제3왕조'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 이전에 우르를 기반으로 한 여러 왕조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르 제1왕조는 난립기였던 초기 왕조 시대인 기원전 26세기부터 25세기까지 존속했고, 우루크를 공격하는 등 나름 강력한 왕조였지만 동쪽의 엘람에게 멸망했다. 우르 제2왕조의 경우, 기원전 25세기 중반 어느 시점에 우르를 다스린 왕조로 여겨지지만 거의 반쯤 허구의 왕조로 취급될 정도로 알려진 것이 없다. 《수메르 왕명표》에 새겨진 이름들을 보고 우르를 지배했을 지도자들을 뭉뚱그려놓은 왕조에 불과하다.
2. 역사
우르 제3왕조의 성립을 이해하려면 먼저 당시 메소포타미아의 상황을 알아야만 한다. 메소포타미아 일대에 여러 도시국가들이 출현해 난립하던 것을 최초의 제국이었던 셈계 아카드 제국이 통일했다. 아카드는 사르곤 대왕과 나람신 대왕 시절 전성기를 누리며 승승장구했으나 나람신 왕이 승하한 후 무너지기 시작하더니 자그로스 산맥에서 내려온 유목민인 구티족에게 치명타를 입고 멸망했다. 구티족은 새로 구티 왕조를 개창한 후 메소포타미아 일대를 지배하려고 시도했지만, 유목민족이라는 태생적인 한계 때문에 패권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구티족의 왕조차 문맹인데다가 농업과 무역에도 통 관심이 없었으니 사회가 파탄나버린 것이다. 수메르인들의 불만은 급격히 치솟았고,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반구티 반란이 곳곳에서 터져나오기 시작했다.결국 구티 왕조의 마지막 왕이었던 티리간은 우루크의 우투헨갈에게 쫒겨났다. 이로써 구티족이 메소포타미아에서 쫒겨나고 수메르인들이 다시 메소포타미아 일대를 평정했다. 하지만 얼마 후 우르 출신의 우르남무가 우투헨갈의 뒤를 이어 메소포타미아를 장악했다. 우투헨갈과 우르남무 사이의 연관성은 딱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마 우르남무가 우투헨갈 휘하의 장군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어쨌든 우르남무는 전투 도중 라가시의 왕을 직접 잡아죽일 정도로 군재가 뛰어난 것으로 명성이 높았고, 이때 이후로 '수메르와 아카드의 왕'이라고 불렸다. 막강한 세력 덕분에 우투헨갈이 승하한 후 그 자리를 꿰어찰 수 있었던 것이다.
전성기 시절 우르의 전경.
우르남무는 메소포타미아 일대를 통일한 뒤 우르를 수도로 하는 제국을 세웠으니 곧 우르 제3왕조이다. 우르남무는 세계 최초의 성문법인 《우르남무 법전》을 제정하고[1] 달의 신 난나를 기리기 위해 우르의 지구라트 건설을 시작하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우르남무의 뒤를 이어 슐기 왕이 즉위하면서 우르 제3왕조는 완전한 전성기를 맞았다. 슐기 왕은 우르 제3왕조의 관료체제를 수도인 우르에 집중시켜 중앙집권화를 꾀하는 한편, 동쪽의 엘람을 공격해 수도 수사까지도 함락했다.[2] 뿐만 아니라 행정 절차, 기록 절차, 세율 시스템 및 국가 달력까지 표준을 정했으며, 부왕 우르남무의 치세때 시작한 지구라트 건설을 완공시키는 등 여러모로 우르 제3왕조의 최고 전성기를 이끌었던 명군이었다.
우르 제3왕조도 슐기 왕 사후 천천히 쇠퇴했다. 슐기 왕의 후계는 그의 아들 아마르신 왕이었다. 대략 9년 정도 나라를 다스렸는데, 엘람 지방에 새로 들어선 시마슈키 왕조를 격퇴했으며 저 멀리 아슈르까지 장악했다. 또한 성스러운 도시 에리두를 재건하려고 시도하는 등 나름 업적도 남기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재위 말년에 그의 형제였던 슈신이 쿠데타를 일으켜 아마르신을 몰아내고 왕위를 찬탈하면서 아마르신 왕은 허무하게 몰락했다.
아마르신을 쫒아내고 우르 제3왕조의 제4대 왕으로 즉위한 슈신은 즉위하자마자 바로 반란에 직면해야만 했다. 셈계 아모리인들이 대규모로 반란을 일으켰고, 슈신은 10년도 안되는 재위 기간 내내 반란에 시달렸다. 슈신이 세상을 떠나자 그의 아들이었던 이비신이 왕위를 물려받았다.
이비신은 우르 제3왕조의 마지막 왕이었다. 당시 우르 제3왕조는 영 상황이 좋지 않았는데, 수메르 남부 지방에 막심한 가뭄이 들면서 기근이 드는가 하면 아모리인들의 반란은 도통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전임 국왕 슈신이 아모리인들을 막기 위해 메소포타미아 일대의 도시들에 성벽을 높게 쌓았지만 그마저도 별 도움은 되지 못했다. 상황은 총체적 난국이었지만 이비신은 이걸 막을만한 능력이 없었다. 결국 저 멀리 엘람의 시마슈키 왕조가 쳐들어와 우르를 약탈하고 이비신을 잡아가면서 우르 제3왕조는 완벽하게 멸망했다. 이비신은 엘람의 도시로 끌려갔는데 이후 그에 대한 기록은 없다. 우르 제3왕조가 멸망하고 난 이후에는 두 대도시인 이신과 라르사가 서로 패권을 겨루는 이신-라르사 시대가 시작되었다. 이신-라르사 시대를 종결한 고바빌로니아, 즉 바빌론 제1왕조는 셈계 아모리인 계통의 나라였고, 이후로 수메르인들은 영원히 메소포타미아 일대의 패권을 잡지 못했다.
3. 문화
우르 제3왕조는 수도 우르를 중심으로 상당히 광대한 영토를 지배했다. 하지만 왕은 우르를 포함한 주변 영역만을 직접 다스렸고, 나머지 일대는 엔시라고 불리는 총독들이 각각 나누어 관할했다. 적들이 자주 쳐들어오는 변경지대나 반란지대는 총독이 아니라 군사령관들이 직접 갔다. 총독들의 관할구에는 발라라는 이름의 조세기관이 하나씩 있었다. 주요 역할은 지방에서 거두어들인 세금을 우르의 중앙정부로 올려보내는 것이었다. 세금은 곡물과 맥주같은 식품부터 노동력까지 다양했다. '발라'는 단순히 조세기관이었을 뿐만 아니라 총독들이 다른 마음을 먹지 않는지 감시하는 감사기관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의외로 우르 제3왕조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는 니푸르였다. 수메르의 최고 신 엔릴의 대신전이 위치한 성스러운 도시로, 심지어 수도인 우르보다도 귀하게 취급받는 경우도 많았다. 정치적인 면에서만 보면 독립적인 왕조를 세우지도 못했고 군사력도 거의 없는 수준이었지만, 이 곳에서 신과 인간이 직접 대화할 수 있다고 여겼던 덕에 귀한 대접을 받았다.
'구데아의 조각상'. 우르 제3왕조 시대의 대표적인 유물이다.
우르 제3왕조 시대에는 전 시대인 아카드 시대 동안 단절되어 있었던 수메르식 전통이 부활했다. 괜히 이 시대를 '수메르 르네상스'라고 부르는 것이 아닐 정도이다. 이 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문화재는 도시 라가시의 왕이었던 '구데아'를 묘사한 조각상들이다. 구데아가 자신의 모습을 한 조각상들을 만들어 신들에게 봉헌한 것들인데 섬세한 세공으로 이름이 높다. 또한 구데아의 아들이자 역시 라가시의 왕이었던 닌기르수의 조각상도 있는데 이 역시 매우 정교한 편이다. 대략 27개의 조각상들이 보존되어 있는데 대부분 앉아있는 자세로 두 손을 가지런히 가슴으로 모으고 머리카락을 민 채 양모로 만든 독특한 모자를 쓴 모습이다. 특히 이 조각상들은 섬록암으로 깎았는데, 섬록암이 상당히 단단한 암석인 걸 생각해보면 당대 메소포타미아의 석공 기술이 매우 발전했음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이 일상에 쓰는 공용어는 아카드어였으나 문학이나 제사에 쓰는 문어(文語)는 수메르어였다. 정부 관료와 서기들은 수메르어를 완벽히 구사할 줄 알아야했고 수메르어를 아는 자는 곧 고급 인력이자 엘리트층이었다. 특히 이 시대에 《길가메시 서사시》의 기본적인 내용이 정립되었다. 우르 제3왕조의 왕들이 일부러 길가메시같은 우루크의 전설적인 왕들과 친척 관계임을 강조하기 위해 길가메시 신화를 재창조한 것이었다. 예를 들어 우르 제3왕조의 왕족들은 스스로를 길가메시의 부모신인 닌순과 루갈반다의 자손이라고 주장했다. 즉 자신들을 길가메시의 이복동생이나 다름없는 존재라고 포장해 신성성을 부여하고자 시도했던 것이다.
4. 역대 국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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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르남무 | 슐기 | 아마르신 | 슈신 | 이비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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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 이름 | 재위 시기 |
초대 | 우르남무 (Ur-Nammu) | 기원전 2112년~기원전 2095년 |
제2대 | 슐기 (Shulgi) | 기원전 2094년~기원전 2047년 |
제3대 | 아마르 신 (Amar-Sin) | 기원전 2046년~기원전 2038년 |
제4대 | 슈 신 (Shu-sin) | 기원전 2037년~기원전 2029년 |
제5대 | 이비 신 (Ibbi-sin) | 기원전 2028년~기원전 2004년 |
5. 여담
- 수메르 문명에서 보면 후대의 국가이지만 수메르 국가들 중 유적과 유물, 기록들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편이라 수메르어와 수메르 역사 연구에서 중요한 위치를 가진다. '수메르 르네상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많은 문화재들이 만들어졌을 뿐더러, 메소포타미아를 장악한 최후의 수메르 계통 제국이었기에 그 중요성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 우르남무가 친척 형 혹은 상관 관계였던 우투헤갈을 배신하여 권력을 잡았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후에도 우투헤갈이 다스렸던 우루크와 우르남무의 본거지인 우르의 관계가 안 좋았다거나 했다는 기록이 없고, 오히려 두 도시 간의 관계는 좋았던 것으로 보여 우르남무가 배신으로 권력을 잡지는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