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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04 21:59:01

부와이 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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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와이 왕조
آل بویه
Buyid Dynasty
파일:Buyid_Dynasty_934_1055_(AD).png
934 ~ 1062
<rowcolor=#ffffff> 성립 이전 멸망 이후
아바스 왕조
셀주크 제국
<colbgcolor=#2F4F4F><colcolor=#ffffff> 위치 페르시아
수도 쉬라즈 (934~1062), (파르스 왕조)
라이 (943~1029), (이란 서부 왕조)
바그다드 (945~1055), (이라크 왕조)
정치 체제 전제군주제
국가원수 샤한샤
주요 국왕 알리 이븐 부야
아두드 알 다울라
아부 만수르 풀라드 수툰
민족 페르시아인
종교 이슬람 시아파 12이맘파
주요 사건 934년 건국
934년 아미르 선포
979년 아두드 알 다울라 즉위
1062년 멸망

1. 개요2. 역사
2.1. 배경 : 이란의 부흥2.2. 건국2.3. 이란을 통일하다2.4. 아바스 칼리파의 섭정2.5. 분열과 재통합2.6. 시아파 전성시대2.7. 재분열과 멸망
3. 과학과 문화의 융성

[clearfix]

1. 개요

페르시아 지역의 패권을 장악한 최초의 시아파 왕조다.

부와이흐 왕조(페르시아어 آل بویِه / 영어 Buwaih Dynasty : 932 ~ 1055년)는 '부이 왕조'라고도 한다. 12이맘파에 속했으며, 아바스 왕조의 쇠퇴와 셀주크 제국의 도래 사이의 기간에 이라크와 이란을 다스렸다.

2. 역사

2.1. 배경 : 이란의 부흥

사산조 페르시아라쉬둔 칼리파조에 멸망당한 이후, 페르시아아랍 제국에 약 200여년 간 편입되었으나 아바스 왕조가 분열하고 150년 동안 이란 동부 지역과 호라산 지역에서 타히르 왕조, 사파르 왕조, 사만 왕조, 지야르 왕조가 흥망하는 등 이란의 세력이 다시 중흥하기 시작했다. 이를 이란인의 막간(Iranian Intermezzo)이라고 한다.

하지만 사파르 조가 사만 조에게 멸망한 이후 사만 조가 중앙아시아의 카라한 칸국과의 전쟁에 몰두하면서 상대적으로 관리가 소홀해진 이란 중부 지역은 10세기 초에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이 시기 페르시아의 시아 계열 12이맘파(자파르파)였던 부와이 가문이 타바리스탄 (카스피해 남안/엘부르즈 산맥 북쪽)에서 흥기했다. 가문의 창시자이자 알리 이븐 부야의 아버지인 부야는 조로아스터교에서 이슬람으로 개종했다.

2.2. 건국

이란 북부의 지여르 왕조(930 ~ 1090년)의 장군이었던 알리 이븐 부야는 932년에 자치권을 받았다. 당시 지여르 왕조는 타바리스탄, 하마단, 이스파한 등을 석권하며 이란의 통일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그리고 알리의 세력이 커지자 지여르 왕조의 창건자이자 당시 통치자였던 마르다비즈는 그를 암살하려고 했다.

이 소식을 들은 알리는 400여 명의 추종자들을 이끌고 지여르 조의 권력이 미치지 않는 남부 이란의 파르스로 피신했고 아바스 왕조의 총독 야쿠트를 패배시키며, 초여름에 쉬라즈에 입성했다.(934) 이에 마르다비즈가 파르스로 진군하여 알리를 복속시키고, 동생 하산이 볼모로 잡혀가는 위기를 겪었으나, 알리에게는 천운으로 마르다비즈가 935년에 암살되어 지여르 조의 세력이 약해졌다.

2.3. 이란을 통일하다

알리는 재빨리 쉬라즈를 회복, 파르스 지방을 통일하고 동생 하산[1]을 파견하여 사만 왕조와 대결하던 지여르 조의 수도, 이스파한을 함락했다. 한편, 지여르 왕조의 제2대 통치자인 부심기르는 사만 왕조의 침공을 격퇴해 낸 후 938년에 이스파한을 회복했다.

그러나 하산은 940년에 이스파한을 재차 점령했고, 943년에는 지여르 왕조사만 왕조 모두를 격파하고 라이를 함락시켰다. 알리의 또다른 동생 아흐마드는 비록 이란 동부의 케르만 정복에는 실패했지만 945년에 후제스탄을 정복하고, 기근으로 혼란에 빠진 아바스 왕조를 공격, 바그다드에 입성하는 쾌거를 올렸다. (945년 12월)

2.4. 아바스 칼리파의 섭정

945년 부와이 왕조는 아바스 왕조의 수도 바그다드를 점령하고 칼리파를 괴뢰화하던 튀르크계 맘루크를 몰아내며 시아파 페르시아계의 통치로 대체시켰다. 칼리파 알 무스타크피는 부와이 왕조의 아흐마드에게 '왕국의 간성' (무이즈 알 다울라)이라는 칭호를 수여함으로써 부와이 왕조의 집권을 공인했다.

이리하여 수니파 아바스 왕조는 시아파 부와이 가문이 장악했다. 부와이 왕조는 '대장군'(아미르 알 우마라)[2]의 직위를 가지고 칼리파를 자의적으로 폐립하면서 아바스 왕조, 정확히는 메소포타미아 및 이란 서부, 중부를 지배했다. 아흐마드는 칼리파 알 무스타크피가 그의 권위를 인정했음에도 그를 폐위한 후, 알 무티(재위 946 ~ 974년)를 옹립하였다.

2.5. 분열과 재통합

알리, 하산, 아흐마드 3형제의 사후, 부와이 조는 그 자녀들에 의해 분열되었으나 하산의 아들인 아두드 알 다울라가 사촌들을 모두 물리치고 949년 나라를 통일하였다. 그는 기존 영토에 오만, 타바리스탄(이란 북부), 고르간을 더하여 대제국을 이룩했고, 사만 왕조를 격파하여 이란의 확실한 맹주가 되었다.

2.6. 시아파 전성시대

10세기 후반에서 11세기 전반 즈음 아바스 왕조가 쇠퇴하면서 아바스 왕조의 서부 지역인 마그레브, 이집트에는 파티마 왕조가 들어서 모로코에서 이란에 이르는 이슬람 세계가 시아파 세력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호라산과 알 안달루스에만 수니파 왕조가 있었다. 다만 부와이 왕조와 서쪽의 시아파 왕조인 파티마 왕조와의 연대는 이루어지지 못했는데, 같은 쉬아파라도 이스마일파와 12이맘파간 종파적 차이가 컸기 때문이다. 둘은 오히려 자지라(알레포 - 모술 일대)의 패권을 놓고, 함단 왕조에 대한 종주권을 다투었다. 게다가 이스마일파는 아예 본인들이 '이맘'이자 '칼리파'라고 주장했던 반면, 부와이 왕조는 다만 아바스조 칼리파의 최고 군사령관에서 만족했기에 지킬 수 있는 선은 나름 지킨 편이었다.

2.7. 재분열과 멸망

하지만 983년에 아두드가 죽자 제국은 다시 동•서 분열되었고 동쪽 이란 부분은 1029년에 가즈니 왕조에게 정복당했다. 11세기 초에 중앙아시아에서 발흥한 튀르크계 셀주크 제국이 1055년에 바그다드에 입성했고 부와이 왕조는 축출당해 멸망했다. 이후 사파비 왕조 시대에 이르러서야 이란에서 12이맘파가 다시 흥성하게 된다.

3. 과학과 문화의 융성

부와이 군주들은 아바스 칼리프처럼 학문을 장려하여, 이슬람 황금기를 이어나갔다. 그러나 이슬람 학자들은 부와이 왕조를 대단히 나쁘게 평가했다. 칼리파를 완전히 허수아비로 만든 최초의 선례였던데다 이들이 시아파였기 때문이다. 이 당시 이슬람 학자들의 정부론은 칼리프들이 이미 세속 권력을 거의 잃었음에도 칼리파의 자질로 군사적, 행정적 자질 또한 여전히 강조했고, 칼리파, 즉 '이맘'은 어디까지나 꾸라이쉬 부족 남성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간접적으로 부와이 왕조를 압박하며 디스했다. 즉 이것은 부와이 왕조가 대정봉환하든지, 그렇지 못하겠다면 칼리파위 찬탈 따위는 꿈도 꾸지 말라는 강력한 의사 표시였다. 다만 정치적 감각이 뛰어났던 부와이 왕조는 이런 학자들을 한번도 탄압하지 않고 학문적 자유를 보장해주었다.[3]


[1] 마르다비즈의 암살 직후 도망쳐서 파르스로 귀환했다.[2] 직역하면 아미르들의 아미르. 부와이 왕조의 근원인 페르시아계의 왕중왕을 연상케 하는 명칭. 부와이 왕조 외엔 이런 칭호를 요구한 선례가 없었다.[3] 꽤 비슷한 상황이었던 에도 막부의 교토 지식인들이 조선통신사들 앞에서나 이 비슷한 주장을 할 수 있었던 반면, 부와이 왕조 치하의 순니파 학자들은 대놓고 이런 주장을 서적 출판이나 서신 교환으로 해도 아무 제제나 불이익을 받지 않았다. 적어도 그때까진 초기 이슬람 특유의 관용 정신이 살아있었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