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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04 12:53:49

초기 왕조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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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왕조 시대
Early Dynastic Period
파일:Basse_Mesopotamie_DA.png
초기 왕조 시대 메소포타미아의 도시국가
기원전 2900년 ~ 기원전 2350년
위치 메소포타미아
정치 체제 도시국가
언어 수메르어
종교 메소포타미아 종교
성립 이전 젬데트 나스르 시대
멸망 이후 아카드
현재 국가
[[이라크|]][[틀:국기|]][[틀:국기|]]

1. 개요2. 역사3. 문화

[clearfix]
Early Dynastic Period

1. 개요

기원전 2900년부터 기원전 2350년까지 550년 동안 지속된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시대구분으로 약칭으로는 ED(Early Dynastic Period)라고도 한다. 훗날 사르곤 대왕이 메소포타미아를 통일하고, 인류 최초의 제국인 아카드를 세우면서 종결되었다.

우루크 시대젬데트 나스르 시대를 이어 등장한 시대로, 초기적인 형태의 도시국가가 발전했고 글쓰기 시스템이 더욱 정교하게 변모했다. 수많은 도시국가들이 할거해 서로 메소포타미아 일대의 패권을 다투며 대대적인 전쟁을 벌이던 혼란스러웠던 시대로, 아직까지 제대로 된 행정체계와 관료제도가 등장하지는 못했지만 예전에 비하면 훨씬 '국가'의 정의에 맞는 세력들이 떠오르던 시대이기도 했다. 대표적인 세력은 우루크, 우르, 라가시, 움마, 니푸르, 키쉬, 마리, 나가르, 에블라 등이었다. 당시 전 세계의 인구는 약 2,700만 명 정도였는데 개중 80만 명~150만 명 정도가 메소포타미아에 살았다. 수메르 최고의 대도시였던 우루크에는 무려 80,000명에 달하는 인구가 거주하여 당시 최대의 대도시이기도 했다.

2. 역사

초기 왕조 시대는 크게 ED I, ED II, ED IIIa, ED IIIb 이렇게 4개의 시대로 구분된다. 기원전 2800년부터 기원전 2600년까지 지속된 ED I 시대의 경우 알려진 게 별로 없다. 그나마 옛부터 문화의 중심지였던 우루크 일대를 중심으로 발전이 일어났다는 것 정도이다.

ED II 시대는 기원전 2600년부터 기원전 2500년까지였는데, 참고로 이 시대가 전설적인 왕들이 살던 시대였다. 즉 길가메시, 루갈반다, 엔메카르, 아가 등의 왕들이 바로 이 시대에 살았다. 하지만 서사시를 제외하면 이 시대 역시 딱히 알려진 게 없다.

기원전 2500년부터 기원전 2350년까지 지속된 ED III 시대에는 글쓰기의 발전과 사회 불평등이 급속도로 심화되었다. ED III 시대는 또 한번 ED IIIa 시대와 ED IIIb 시대로 나누어서 구분하기도 한다. 이 시점에 들어서는 메소포타미아 상부와 이란 지역에 제대로 된 국가들이 마침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ED III 시대가 끝나는 시점을 사르곤 대왕의 메소포타미아 통일과 아카드 제국의 성립으로 본다. 하지만 ED III 시대의 종결을 단순히 아카드 제국의 성립을 기점으로 삼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일단 아카드 제국의 문화와 확연히 달랐던 지역들이 메소포타미아 전역에 다수 흩어져 있었으며, 아카드 제국이 들어서고 난 이후에도 어느 정도는 잔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메소포타미아 일대는 서로 반독립적으로 발전하는 경우도 많았기에 한 시대의 종결을 그저 정치적으로만 판단하기에는 당대 상황이 지나치게 복잡해서 하나로 딱 집어 말하기는 어렵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초기 왕조 시대의 역사는 거의 복원하기가 불가능한 수준이다. ED I과 ED II 시대에는 전쟁에 대한 기록조차 없고, 그나마 ED III 시대에 만들어진 외교와 전쟁에 관한 토판이 조금씩 남아있는데 이마저도 몇몇 파편에 불과하다. 당시 메소포타미아 일대는 말그대로 수많은 도시국가들이 웅비하고 싸우는 난장판이었는데, 일부 도시들은 동맹을 맺어서 서로를 견제하곤 했다. 이 동맹 체제를 칼람, 혹은 키-엔기르라고 불렀다. ED IIIa 기간에 쓰인 텍스트에는 움마, 라가시, 우루크, 니푸르, 아다브 등의 대도시들이 포함된 동맹이 등장하는데, 이 동맹 국가들은 서로에게 군인들을 파견하거나 경제 협력을 하기도 했으며, 혹은 동맹 내에서 내분이 일어날 경우 중재를 해주는 경우도 있었다.[1]

라가시의 엔테메나 왕과 우루크의 루갈-키니셰-두두 왕 사이에 평화조약을 맺었다는 언급이 있는 걸로 보아 외교와 전쟁도 매우 활발했다. 일이 잘풀리면 앞에서처럼 평화조약을 맺거나 평화롭게 지냈지만 당시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오히려 전쟁을 벌이는 게 더 일반적이었다. 기원전 2700년 경에는 엘람수메르인들 사이의 전쟁이 터졌다. 수메르인들은 키쉬의 왕 엔메바라게시의 지휘하에 엘람인들을 물리쳤고, 그 무기를 전리품으로 챙겼다. 이 사건이 역사상 기록된 세계 최초의 전쟁이었다.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이 전쟁 말고도 전쟁이 수없이 일어났다. 도시들은 서로 죽일듯이 싸워댔고 이 역사를 바탕으로 서사시가 쓰이기도 했다. 대표적인 예가 우루크 제1왕조의 전설적인 왕 루갈반다길가메시, 우루크 제2왕조의 엔샤쿠샨나, 우루크 제3왕조의 루갈자게시 왕 등이다.
여러 남편을 둔 여자를 그녀의 죄목이 쓰인 돌로 던져 죽이는 투석형을 폐지한다.

여자가 남자에게 (...)라고 말하면[2] 그녀의 입을 불타는 벽돌로 내리치도록 한다.

닌기르수부터 바다에 이르는 영역에 살고 있는 자들 중 그 누구도 공직에 봉사할 수 없다.

무덤에 안장할 시체의 경우 맥주 3병, 빵 80덩어리를 함께 묻어야 한다. 침대 1개와 염소 1마리는 장의사가 가져가고 보리 3홉은 사람이 가져간다.

빵 250덩어리와 맥주 한 병은 통곡하는 늙은 여인들을 위한 것이다. 빵 150덩어리와 맥주 한 병은 니긴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빵 60덩어리, 맥주 1병, 보리 3홉은 삭부르 사제를 수행하는 자들을 위한 것이다.


- 《우루카기나 법전》의 인용문
메소포타미아 법전이라고 하면《함무라비 법전》, 아니면 기껏해야《우르남무 법전》정도가 알려져있지만 이 시대에도 법전이 있었다. 라가시의 왕 우루카기나가 만든《우루카기나 법전》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과부와 고아들에게 세금을 면제하고 나라에서 장례비용을 지불하도록 했으며, 부자는 가난한 자들의 재산을 사들일 때 은을 사용해야 했으며 부자에게 팔고 싶어하지 않는다면 강제할 수 없었다. 신전의 대규모 토지 소유, 고리대금, 과도한 통제, 절도, 살인을 엄격히 제한했으며 개인 재산의 압류에 대한 조치까지도 확립했다. 이 정도의 법률이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법전 자체가 현재까지 보존되어 내려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 수 있는 내용은 죄다 법전을 인용한 내용 뿐이고, 법전 자체는 모두 사라졌으며, 유물 역시 발견되지 않았기에 '세계 최초의 법전'이라는 타이틀 획득에 실패했다. 하지만 일부 학계에서는《우루카기나 법전》을 세계 최고(最古)의 법전으로 보기도 한다.

초기 왕조 시대의 도시들은 계속 서로 패권을 다퉈오다가 기원전 2358년에 즉위한 움마의 왕 루갈자게시가 기원전 2350년 무렵, 다른 수메르 도시들을 정복하고 최대 도시인 우루크를 도성으로 삼으면서 우루크 제3왕조를 형성하여 약 15년 동안 통합된 수메르를 다스렸으나 기원전 2334년 키쉬의 왕 우르자바바의 휘하에서 정원사로 일하다가 그를 죽이고 세력을 얻은 사르곤아카드 제국을 세우고 우루크를 함락시켜 수메르 지역까지 정복하면서 루갈자게시의 통일 왕국은 무너지게 되었다. 참고로 이때 전쟁에서 패배한 루갈자게시는 사르곤에 의해 목줄에 묶인 채 니푸르에 있는 엔릴의 문으로 끌려가는 치욕을 당했다.

3. 문화

초기 왕조 시대에 들어 야금술이 급속도로 발전했다. 마땅한 광산이 없어서 외부에서 금속을 수입해와야만 했던 메소포타미아치고는 엄청난 업적이었다. 금, 은 ,구리, 납, 청동, 주석 따위는 이미 당시에 잘 알려진 금속이었고 최대 4개의 금속들을 비율을 적절히 조합해 합금을 만들어 쓰기까지 했다. 주석 청동을 만들 수는 있었지만 주석이 워낙 희귀한터라 비소를 대신 섞었다. 왁스 주조법, 도금, 정교세공 등의 기술들은 당연히 많이 사용했으며 심지어 금속을 미세한 금속 알갱이로 쪼개는 법도 이해한 수준이었다. 이렇게까지 학자들이 자세히 알고 있는 이유는 우르의 왕립묘지에서 대규모로 금속 유물들이 출토되었던 덕분이다. 우르 제1왕조의 푸아비 여왕이 쓰던 왕관과 각종 보석장신구들이 대거 발견되면서 당대 세공기술을 자세히 알 수 있었던 덕이 컸다.

메소포타미아의 독특한 유물들 중 하나가 '원통형 인장'(Cylinder Seal)이다. 아직 젖은 상태의 점토판에 인장을 한바퀴 굴려 인장에 양각된 모습을 그대로 찍어내서 사용했다. 주로 창고의 문에 굴려서 봉인하거나 점토판에 찍어서 확인용으로 쓰곤 했다. 이게 중요한 이유는 인장에 단순한 문양 따위가 아니라 신화적인 장면이나 역사를 새겼기 때문이다. 우루크 시대까지만 해도 다양한 장면들을 새겼지만 ED I 시대부터 신화적인 장면만을 쓰는 걸로 바뀌었다. 가끔씩 기하학적인 문양을 넣는 경우도 있었으나 압도적 다수는 신화적인 영웅들을 새겼다. ED II 시대부터는 싸우는 장면 뿐만 아니라 연회 장면도 등장하고 ED III 시대에는 누구의 소유인지 명확히 표시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1] 대표적인 예시가 라가시와 움마 사이의 분쟁을 키쉬에서 중재한 사건이다. 당시 키쉬의 영향력과 종교적 상징성이 꽤나 컸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중에 다른 도시의 왕들이 '키쉬의 왕'을 자처하며 키쉬를 놓고 싸우기도 했다.[2] 이 부분이 소실되어서 읽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