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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빌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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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유산
파일:유네스코 세계유산 로고(흰 배경).svg
이름 한국어 바빌론
영어 Babylon
아랍어 بابل
프랑스어 Babylone
국가·위치 이라크 바빌주
등재유형 문화유산
등재연도 2019년
등재기준 (iii)[1], (vi)[2]
지정번호 278
파일:external/kingofwallpapers.com/babylon-008.jpg
3D 복원도. 한가운데에는 푸른 빛의 이슈타르의 문이, 옆에는 바벨탑으로 알려진 마르두크의 대신전이 보인다.
파일:이라크 바빌론.jpg
바빌론 유적의 모습. 이슈타르 문을 지나 이어지는 성벽 거리이다.
파일:이라크 바빌론 3.jpg
유적 주요부인 네부카드네자르 궁전과 왼쪽 상단의 이슈타르 문 일대.
<colbgcolor=#4682B4>아카드어 𒆍𒀭𒊏𒆠(Bābilim, Bābili)
수메르어 𒆍𒀭𒊏𒆠(ká.dig̃ir.raki)
아람어 ܒܒܠ‎‎(Bāḇel)
히브리어 בָּבֶל‎(Bável)
고대 페르시아어 𐎲𐎠𐎲𐎡𐎽𐎢𐏁(Bābiruš)
고전 그리스어 Βαβυλών(Babylṓn)
라틴어 Babylon/Babylonia
아랍어 بَابِلُ‎‎(bābilu)
영어 Babylon
1. 개요2. 역사3. 특징4. 성경의 묘사5. 여담6. 매체에서7. 사진

[clearfix]

1. 개요

티그리스강유프라테스강 사이인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두 강이 가까워지는 곳에 위치한 이라크의 고대 유적. 현대의 지리로는 이라크의 수도바그다드 남쪽의 엘힐라 부근에 자리한다. 고-중-신 바빌로니아의 수도로, 기원전 18세기~기원전 4세기까지 약 1500년간 세계 최대 도시로 번영하였다. 인류 문명 초창기에 관개 농업을 시행한 도시들 중의 하나이고, 현대의 시계에도 사용되는 60분 체계를 확립했으며, 잉여 자원을 통해 교역을 적극적으로 시행하여 인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도시였다. 제국의 수도일 때는 물론, 수도가 아닐 때에도 메소포타미아 최대의 도시였고, 로마에 앞선 최초의 국제 도시였다.

2. 역사

파일:바빌론 이라크 7.jpg
1876년에 발굴된 바빌론의 사자

기원전 2000년대 수메르인과 아카드인의 여러 도시들이 한창 이전투구를 벌이던 시절, 셈족의 일파인 아모리인은 기원전 1894년경 바빌론을 세우고(바빌론 제1왕조) 이윽고 메소포타미아의 정치, 상업의 중심지로 성장시켰다. 이후 도시국가 바빌론이 확장된 영토 국가 바빌로니아 제1제국(고바빌로니아)이 되어 활발한 정복 활동을 하여, 마침내 메소포타미아 전역을 석권하는 대국이 되었다. 이후 함무라비 대왕 등 명군들에 의해 번영이 계속되면서 바빌론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세계의 수도'의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러다 기원전 1595년 히타이트의 침략으로 고바빌로니아, 즉 바빌론 제1왕조가 멸망한 뒤 바빌론은 약탈되었으나, 아시리아 등 여러 제국들의 패권이 이어진 뒤에도 여전히 주요 대도시로서 건재했다. 카시트인, 엘람인 등 여러 민족이 차지를 반복하다가 기원전 8세기에 아시리아에 병합된다. 그 뒤 바빌론에서 지속적으로 반란이 일어나자 센나케립 왕은 바빌론 파괴를 결정하여 도시가 완전히 파괴되었으나 에사르하돈 왕의 치세부터 재건하기 시작했다. 바빌론을 비롯한 인근 국가들의 연합에 의해 신아시리아 제국이 멸망한 후 칼데아인들이 신바빌로니아(바빌론 제10왕조)를 건설하자 바빌론은 다시금 '세계의 수도'로 재등장했다. 그 전성기는 네부카드네자르 2세의 치세로 당시 인구만 약 15만 명으로 추산될 정도였다. 하지만 재건한 지 몇 세기 만에 다시 키루스 2세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에 멸망당했다.

그러나 페르시아에 정복되고 나서도 중요성을 인정받아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 시대에 수사, 페르세폴리스, 엑바타나와 함께 4대 대도시 중 하나로 번영하였다. 아케메네스 왕조를 정복한 아르가이 왕조 마케도니아알렉산드로스 3세는 바빌론을 수도로 삼았고 바빌론에서 죽었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 3세 사후 디아도코이 전쟁의 결과 바빌론을 차지한 셀레우코스 왕조 시리아는 바빌론 옆에 셀레우키아라는 새로운 대도시를 조영하여 바빌론의 영향력은 축소되었다.[3] 또한 전쟁 중 프톨레마이오스 3세가 바빌론까지 밀어붙이는 기염을 토했다. 아르사케스 왕조 파르티아가 메소포타미아를 점령한 후에는 셀레우키아 옆에 새로운 도시 크테시폰을 만들었고, 이 크테시폰이 사산 왕조 페르시아 시대에도 수도가 되면서 바빌론은 완전히 쇠락했으며 바빌로니아인들은 파르티아/페르시아인에게 동화되었다. 이후에는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 로마 제국트라야누스 대제가 파르티아에 대대적인 공세를 취할 때 수도인 크테시폰을 털어버린 후 이곳에 성지순례를 했다고 전해진다.

7세기 바빌론은 아랍인들에게 정복되었고, 사산 왕조 시절 유지되던 바빌로니아 속주가 해체되었다. 이후 10세기의 학자 이븐 하우칼과 13세기의 학자 알 카즈위니는 바빌(Babil)이라는 이름의 작은 시골 마을에 대해 언급하는데, 이를 보아 바빌론은 그 이전에 이미 알프레드 대왕이 재건하기 전의 론디니움(런던)처럼 옛 명성을 잃고 완전히 깡촌으로 전락해버린 듯하다.

또한 중세 시대에 깡촌이 되어버린 바빌론은 바그다드와 같은 신도시 건설에 필요한 석재 조달지(...)로 인기가 많았다. 유럽에서 로마-그리스인들이 세운 유구한 유적들이 게르만족의 석재 셔틀로 쓰인 것과 비슷한 부분.

여하간 시간이 흘러 바빌론이 남긴 깡촌 마을들도 점차 이름이 바뀌고 분열되면서 바빌론이란 이름은 잊혀지고 그 위치마저도 실전되어 전설 속의 존재가 되었다. 심지어는 아랍인이 세운 신도시인 바그다드가 새로운 바빌론 또는 그냥 바빌론 그 자체로 착각되기도 했고, 바그다드의 건축물들이 바벨탑으로 여겨지는 일도 있었다.

그러다가 18세기 말부터 바빌론을 찾아 떠나는 유럽인 여행자들이 늘어났고, 끝내 19세기 초 영국 동인도회사 소속의 고고학자 클라우디우스 제임스 리치(Claudius James Rich)가 바빌론 터를 발굴하는 데 성공해 위치를 추측할 수 있게 되었고, 같은 영국인인 로버트 미그난(Robert Mignan)은 1827년에 일대를 탐험한 뒤 1829년 일대의 시골 마을들이 포함된 바빌론 지도를 완성했다.

그리고 마침내 1899년부터 근 18년에 걸쳐 독일인 고고학자 로베르트 콜데바이(Robert Koldewey)에 의하여 발굴되어, 바빌론의 실존이 확인되었다.

여담으로 바빌론이 있던 땅 자체가 완전히 텅 비어 유적만 있는 허허발판인 건 아니다. 이름이 사라졌을 뿐 바빌론은 여러 작은 마을들로 남아 여전히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1905년 당시 독일 학회의 노동력 수요 덕분에 성장하여 200여 가구가 살던 '콰레시'라는 마을도 있었다.

바빌론은 사라졌어도 풍요로운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계속 오리엔트 세계 중심지의 지위를 누렸다. 바빌론의 위상을 대체한 크테시폰이 이슬람교 발흥 이후 사산 왕조에 쳐들어온 아랍인들에 의해 파괴되었지만 근처에 또다시 아바스 왕조의 새로운 수도 바그다드가 세워져 수백 년 동안 번영하고 현재까지도 이라크의 수도로 기능하고 있다. 즉, 바빌론-셀레우키아-크테시폰-바그다드 순으로 대도시의 위상은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3. 특징

당시 바빌론의 거대함과 아름다움은 여러 문헌에서 많이 거론되며, 특히 가장 거대한 바벨탑의 원형 에테멘앙키고대 세계의 7대 불가사의라고 하는 바빌론의 공중정원이 유명했다. 100년 전까지만 해도 성경 속에서나 나오는 전설 중 하나로 치부되었으나 독일고고학자 로베르트 콜데바이(Robert Koldewey, 1855~1925)[4]가 찾아내면서 실존했던 도시임이 드러났다. 전설적인 고대 이슈타르의 문도 이 도시에서 발굴되었다.[5]

도시의 규모는 당대 최고의 크기였다. 각종 기록에 따르면 도시 건축에 사용된 기술들은 현대에 와서도 놀라움을 감출 수 없을 정도로 발전해 있었다. 기원전의 도시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규모의 대도시이자 당대 최신 기술의 산물인 곳이었다.

4. 성경의 묘사

주로 성경에서 자국을 멸망시키고 자신들을 노예로 끌고 갔던 신바빌로니아를 원수로 여긴 유대인들에 의해 탐욕과 죄악으로 가득찬 악의 도시, 복마전 등과 같은 이미지로 서구 세계에 많이 알려졌다. 성서에서 이 정도로 싫어하는 국가는 마카베오 전쟁으로 원수가 된 셀레우코스 왕조뿐이다.

대표적으로 시편 137편에 따르면 화자가 바빌론에 노예로 끌려가서 예루살렘시온을 그리며 한탄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이 중 8절과 9절은 바빌론이 멸망하기를 바라는 노골적인 저주로 구성되었다.[6]
힘찬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요한계시록 18장 2절. 개역개정판
요한 묵시록 17장과 18장에서도 바빌론을 '큰 음녀',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고 칭하며 바빌론의 온갖 영화와 권세와 악행을 나열하고 심판의 날에 죄 많은 바빌론이 신의 진노를 받아 비참하고 철저하게 멸망당할 것이라는 온갖 끔찍한 저주를 퍼붓고 있다.

기독교외경 제2경전에녹서(에녹 1서)도 심판의 날의 정경을 적고 있는데 '탕녀' 바빌론의 심판을 다루고 있다.

한국에는 기독교의 영향으로 오만한 인간들이 하늘에 닿기 위해서 높은 탑인 바벨탑을 쌓다가 천벌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알려져 있는데, 바벨탑의 실제 모델이 신바빌로니아 시기 세워진 바빌론의 '에테멘앙키 신전'이라는 설이 있다.

현대에 이르러 세속적이고 탈기독교적 분위기가 형성된 뒤에는 재평가되어, 초창기 인류 문명의 요람과도 같은 도시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서아시아 문명의 중심지로서 장기간 큰 영화를 누린 덕에, 화려한 대도시와 위대한 제국의 수도 같은 이미지로 많이 등장한다.

5. 여담

6. 매체에서

6.1. 게임

6.1.1. 도미네이션즈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바빌론(도미네이션즈)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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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두 원정 목적지 중 하나로 등장한다.

6.1.2. 문명 시리즈

문명 1부터 문명 6에 이르기까지 개근한 문명 가운데 하나다.

6.2. 기타

}}} ||
독일디스코 그룹 Boney M.의 히트곡 중 Rivers of Babylon이라는 노래가 있다. 바빌론 유수를 주제로 한 노래.
}}} ||
일본의 여가수인 나카모리 아키나의 바빌론이라는 노래가 있다. 허나 여기서 바빌론은 도쿄를 바빌론에 비유한 것이다.
}}} ||
대한민국프로그레시브 메탈/멜로딕 스피드 메탈/가스펠 메탈 밴드 예레미의 노래다. 러닝 타임이 8분을 넘어가는, 대한민국에서는 매우 보기 드문 대곡으로, 바벨탑이 무너지고 신바빌로니아 왕국이 멸망한 허무함을 묘사한 노래다.

7. 사진

파일:바빌론 이라크 2.jpg
파일:이라크 바빌론 21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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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바빌론 이라크 5.jpg
이슈타르의 문 유적
파일:이라크 바빌론 1.jpg
사담 후세인의 여름 별궁


[1]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2] 사건이나 실존하는 전통, 사상이나 신조, 보편적 중요성이 탁월한 예술 및 문학작품과 직접 또는 가시적으로 연관될 것[3] 그러나 바빌론인들의 영향력은 커졌다. 헬레니즘 건축 양식에는 바빌론 건축 양식이 도입되고 소수의 그리스인, 마케도니아인들은 바빌론의 신을 믿기 시작했다.[4] 1899년부터 1917년까지 18년간 바빌론 유적을 발굴, 바빌론이 실존한다는 사실을 밝힌 인물이다. 제1차 세계대전 와중에도 발굴을 계속 했지만 결국 마무리짓지 못하고 독일로 떠나야 했다.[5] 이때 바빌론에서 발굴된 이슈타르의 문 파편 유물을 독일로 반출해 가서 모사 복원하여 현재 페르가몬 박물관이 전시하고 있다.[6] 8절 앞부분은 좀 오래된 번역(불가타, 개역개정, KJV, NIV 등)에선 '멸망할 딸 바벨론아', 20세기 후반~21세기 초반에 나온 가톨릭 성경 한국어역과 공동번역 성경은 '파괴자 바빌론'으로 번역했다. 바빌론의 어린 것들을 바위에 메어치는 이에게 복이 있으리라는 9절은 번역본마다 큰 차이가 없다. 출처 1, 출처 2, 출처 3(불가타).[7] 참고로 일부 미군들은 이라크 박물관에 있는 유물들도 약탈했는데 이 역시 국제적으로 큰 비판을 받았다. 그나마 최근에는 미국 정부에서 이라크로 상당수의 약탈된 유물을 반환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