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기 멤버들. 좌측 상단부터 마르샤 바렛 (1948~), 리즈 미첼 (1952~), 마지 윌리엄스 (1951~), 바비 패럴 (1949~2010). |
2012년 한국 내한공연 홍보 및 KBS의 콘서트 7080 출연 당시 진행자 배철수와 찍은 사진. 좌측 남성 멤버는 1994년에 영입한 토니 애쉬크로프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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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70~1980년대 아바와 함께 유럽 이지리스닝 팝 씬을 양분한 전설적인 디스코 그룹.2. 특징
2018년 1월 14일자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아래 내용을 잘 소개해 주었다.
1974년, 독일의 대중음악 프로듀서 프랑크 파리안(Frank Farian)[1]은 카리브 출신의 흑인 그룹 Boney M.[2]의 'Baby Do You Wanna Bump'를 발표한다. 그러나 흑인 음악 같은 노래 분위기일 뿐 실제로는 멤버가 존재하지 않고 당시 무명 작곡가이던 프랑크 파리안이 직접 부르고 무명 가수들의 코러스를 넣어 음반을 녹음 후 대중 반응을 볼 겸 발표를 한 것이였다.
그런데, 이 곡이 의외로 인기를 얻으면서 예상과는 달리 이 곡으로 공연을 다녀도 될 정도로 인기가 생겼다. 이 때문에 프랑크 파리안은 이참에 Boney M.을 실제로 만들면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이 곡을 부를 멤버들을 탐색했다.[3] 이 결과, 자메이카에서 태어나 영국 국적인 리드 보컬이자 막내인 리즈 미첼(Liz Mitchelle), 역시 자메이카에서 태어나 이주해온 독일 흑인인 마르샤 바렛(Marcia Barrett)[4], 서인도 제도 몬트세랫 출신 마지 윌리엄스(Maizie Williams) 등 3명의 흑인 여성 보컬과, 네덜란드령 아루바 출신 바비 패럴(Bobby Farrell)이라는 1명의 흑인 남성 댄서라는 조합으로 Boney M.이라는 그룹이 결성되었다. 바비 패럴은 1982년에 레지 치보(Reggie Tsiboe)[5]로 대체되었는데, 1984년에 바비 패럴이 재영입되면서 보니엠은 잠시 5인조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미 Baby Do You Wanna Bump로 인지도를 쌓았던 그들이 정식 데뷔 후 내놓은 싱글 'Daddy Cool'은 유럽 차트에서 초 대박을 치면서 단번에 유럽 팝시장을 지배했다. 정규앨범을 마지막까지 냈던 1985년까지 누적 판매량이 6천만 장을 넘어가는 그야말로 유럽 팝 차트를 지배한 그룹. 서구권 가수 최초로 공산국가인 소련에서 공연을 열 만큼 유럽에서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6][7]
1980년대 이후 점차 하락세를 겪던 보니엠은 데뷔 10주년인 1986년, 싱글 'Young, Free And Single' 발매를 끝으로 해체되었다. 하지만 보니엠이 쌓아둔 인지도는 만만치 않아 이전 멤버들이 각자 새로운 멤버와 함께 보니엠의 이름을 걸고 활동하거나 원 멤버들이 재결합하는 등 라이브 활동은 자주 이뤄졌다. 리드 보컬이었던 리즈 미첼은 탈퇴 이후 가스펠 앨범을 내는 등 주로 종교적 활동을 해왔으며 마르샤 바렛은 난소암 투병으로 활동을 하지 못했고 마지 윌리엄스는 솔로 활동, 남성 멤버 바비 패럴은 모국 네덜란드에서 활동하다가, 2010년 12월 30일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한 호텔에서 심장병으로 61세의 나이에 사망했다.[8] 아이러니하게도 정확히 94년 전에 같은 도시에서 그룹 최대 히트곡 중 하나인 Rasputin의 주인공인 그리고리 라스푸틴이 사망했다. 현재의 남자멤버는 1994년에 영입한 토니 애쉬크로프트가 있다. 2011년부터는 그가 바비 패럴의 빈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2012년 리드보컬 리즈 미첼을 중심으로 재결성되어 내한 공연을 하기도 했다. 그룹 자체의 인지도는 거의 없지만 히트곡들의 인지도는 매우 높았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콘서트를 할 수 있었을 정도다.
원년 멤버인 바비 패럴은 노래[9]나 코러스도 하지만 포지션이 댄서인 만큼 춤이 주가 되었는데 다른 멤버들이 제자리에서 가볍게 리듬만 타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혼자서 상대적으로 엄청나게 끈적하고 격렬하게 보이는 몸동작을 하는 것과 유일한 남성 멤버라는 점이 맞물려 굉장한 존재감을 갖는다.[10] 구글에 Bobby Farrell을 검색하면 함께 나오는 연관 검색어로 Bobby Farrell dance가 있을 정도. 바비 페럴의 얼굴, 헤어스타일, 표정을 보면 마치 드래곤볼의 미스터 사탄처럼 생겼다. 그러나 현재는 그가 사망하여, 또다른 남자 멤버인 토니 애쉬크로프트가 1994년부터 이 팀에서 활동하면서 2011년부터는 패럴의 빈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이 그룹을 벤치마킹해서 만든 그룹이 그 유명한 징기스칸이다. 하지만 인종과 성비는 역전되었다. 보니 M.은 바비 패럴 빼고는 모두 여자인데 비해 징기스칸은 에디나 팝과 헨리에테 스트로벨을 제외하고는 모두 남자다. 또한 보니 M.은 멤버 전원이 흑인이지만 징기스칸은 멤버 전원이 백인이다.
보니 M.의 몸통이었던 프랭크 파리안은 이후 1980년대 후반에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다른 립싱크 그룹을 기획하기도 했는데 그게 바로...
당시 제1세계와 제2세계가 대립하던 냉전 시기에 소련이나 폴란드 인민 공화국 등의 2세계 국가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다.
2010년대 이후에는 북한 인권 문제에 관심을 적극 피력 중이다. 주한중국대사관 앞 탈북자 북송 반대 집회에서 깜짝 출연을 하기도 하였다.
3. 음반 목록
자세한 내용은 Boney M./디스코그래피 문서 참고하십시오.4. 매체
[1] 본명은 프란츠 로이터(Franz Reuter).[2] 그룹명은 당시 독일에서 방영중이던 호주에서 제작된 수사물 드라마 'Boney'와 해당 드라마 주인공 'Mitchell'에서 철자를 따와 Boney M.이라는 가수명으로 공개했다.[3] 그리고 또 그때 유명하던 그룹들은 다 TV에 출연하는데 이 시기에 보니엠은 멤버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TV에 출연할 수 없었고 파리안은 멤버가 없다는 사실을 숨기고 그 신청을 오만가지 핑계를 대가면서(멤버들이 해외에 나가 있다느니, 가정 문제가 생겼다느니 등등) 거절할 수 밖에 없었다. 그게 1년 가까이 지속되자 대중들의 의심은 커져갔고 그 소식이 파리안에게도 전해지며 그 의심을 깨기 위해 보니엠의 멤버를 구하게 된 것이기도 하다.[4] 'Silent Lover'와 'Belfast', 'Never Change Lovers in the Middle of the Night'와 'We Kill the World (Don't Kill the World)' 등 일부 곡에선 메인 보컬을 맡았다.[5] 댄서지만 후기 보니엠 곡들에서 만만찮은 보컬 비중을 자랑한다. 다른 멤버들과 달리, 유일하게 아프리카 출신 멤버로, 가나에서 태어나 영국으로 이주했다.[6] Rasputin 뮤직 비디오 중 초반부에 나오는 사진들이 바로 모스크바 성 바실리 성당에서 찍은 기념 사진들.[7] 반면, 보니 엠은 철저히 영국+유럽+아시아 인기로만 성공한 케이스로, 미국에는 아예 진출을 안 했다. 앨범과 싱글은 내놓긴 했으나 전부 중하위권에 머물면서 실패. ABBA가 언어문제 때문에 저평가 되긴 했지만 결국 댄싱퀸으로 빌보드 핫 100 1위를 차지한 것에 대비되는 케이스. (물론 그 ABBA도 세계적인 성공에 비한다면 빌보드 1위가 딱 저거 하나일 정도로 미국 시장에서 저평가 되긴 했다.)[8] 즉, 그 당시 2011년 새해 이틀을 앞두고 사망[9] 라이브 한정. 스튜디오 음반에 담긴 남성 보컬은 대부분 본인이 아닌 프로듀서인 프랑크 파리안이 담당했다.[10] 게다가 가슴 털과 겨드랑이 털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북실북실한데 늘 공연 때마다 상체를 까거나 반쯤 드러나는 옷을 입기 때문에 존재감이 두 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