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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10 01:32:30

독일 흑인

1. 개요2. 역사3. 인물4. 가공 인물

1. 개요

독일어: Afrodeutsche
영어: Afro-Germans/Black Germans

국적이 독일흑인을 말한다.

아프리카계 유럽인 가운데 프랑스 흑인, 영국 흑인, 포르투갈 흑인, 이탈리아 흑인 다음으로 규모가 크다. 혼혈 포함 약 100만 명 정도이다.[1] 하지만 전체 인구의 비율상으로 보면 프랑스[2], 영국, 네덜란드, 벨기에, 포르투갈보다는 낮은 편인 1.2% 이다.[3]

2. 역사

처음으로 독일에 흑인이 온 것은 17세기였다. 18세기에는 네덜란드가 세운 동인도회사가 흑인들을 노예로 유럽에 데려왔고 1720년에 안톤 빌헬름 아모(Anton Wilhelm Amo)가 독일에선 흑인 처음으로 대학에 들어갔다.

1884년부터 1918년 사이에 독일 제국이 아프리카에 식민지를 만들면서 식민지 출신 흑인들이 넘어오게 된다. 이들은 나치가 들어서자 여권을 박탈당하는 등 인종차별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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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독일의 외인부대인 자유아랍군단(Freis Arabien Korps) 소속의 흑인.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카리브 출신의 영국 흑인이나 프랑스 흑인, 미국에서 건너온 미국 흑인 등이 독일에서 근무했고 이들은 독일 현지인들과 자녀를 낳기도 했다. 이들은 본국에서 키워지기도 했으나 독일인 어머니 밑에서 미혼모 자녀로 자라기도 했다. 이는 한국, 일본을 비롯한 미군 주둔국에서 똑같이 존재하는 현상.

1981년에 독일이 나이지리아가나 등에서 이민을 받아들이면서 독일 흑인의 숫자는 늘어난다. 주로 운동 선수 등에 많이 포진한다. 이러한 이민자 출신 선수들 중 모국의 국적을 선택하는 경우가 조금씩 늘고 있다. 케빈-프린스 보아텡이나 에릭 막심 추포모팅은 아프리카계라 각각 가나와 카메룬을, 미국계 독일 흑인인 줄리언 그린게디온 젤라램은 미국으로 국적을 전환했다. 아무래도 독일 국대에서 뛰는데 한계가 많다는 생각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르로이 사네나 게랄드 아사모아, 제롬 보아텡 등의 반례도 있다.

1970~80년대를 풍미했던 디스코 그룹인 보니 엠(Boney M.)도 자메이카에서 독일로 건너온 흑인들로 구성된 그룹이다.

프랑스영국에 비해서 흑인의 비중이 그리 많지 않은데 이유는 독일은 전통적으로 대륙국가였기 때문에 일찍이 17세기부터 해상강국이었던 위 두 국가들과 달리 독일은 통일을 하고 식민지 경쟁의 정점이자 마지막이었던 19세기 후반~20세기 초반에서야 뒤늦게 이 경쟁에 참가했다. 그마저도 보유한 아프리카 식민지의 숫자도 위 두 국가들보다 현저히 적었다.[4] 또한 1차대전 이후 모든 식민지을 승전국들에게 빼앗겼으며 피폐해진 독일 경제상황으로 인해 승전국으로 이민을 갔다. 이후 나치당의 집권으로 인종차별적 정책이 시행됐고 때문에 흑인들이 거주할 여건은 더욱 줄어들었다. 두번째 세계대전 이후엔 열악한 경제사정으로 인해 아프리카 국가는 물론 다른 개발도상국에서도 독일로 이민을 오는 빈도가 적었다. 또한 언어적인 요인도 컸는데, 가장 큰 규모로 아프리카 식민지를 보유했던 나라는 영국과 프랑스였고, 때문에 아프리카에서는 불어와 엉어를 하는 사람이 절대적으로 많았다. 언어적, 문화적으로 접근성이 용이한 프랑스와 영국을 두고 굳이 독일로 이민을 오지 않은 것. 실제로 독일인들이 티는 내지 않으려고 노력은 하지만 이웃 네덜란드, 벨기에프랑스, 영국, 포르투갈에 비해서는 독일 국민들의 흑인에 대한 적응감이 좀 약한 편.[5]

하지만 현재 아프리카계 독일인의 인구수는 100만명이 훌쩍 넘었으며 그중 절반은 마그레브국가 출신들이며 절반은 사하라이남 아프리카계 출신들이다.

3. 인물

4. 가공 인물



[1] 단 아프리카계 흑인은 50만 명 수준이다.[2] 현재 유럽 전역에서 인구 수 상으로나 인구 비율 상으로나 가장 흑인이 많이 사는 나라이다.[3] 그마저도 북아프리카 혈통을 제외하면 0.6% 정도로 미약한 편.[4] 그것도 대부분이 프랑스로부터 빼앗은 지역이고 다른 곳에 비해 인구가 적은 극히 일부의 식민지였다.[5] 그래도 같은 독어권인 스위스, 오스트리아나 여러 동유럽국가들 보다는 나은 편이다.[6] 독일-미국 이중국적[7] 립싱크 사기극으로 유명한 듀오 그룹 밀리 바닐리의 맴버중 한명으로 립싱크 들통 이후 같은 맴버였던 팹 모반과 함께 재기를 노려보나 실패하고 이후 1998년 32살의 나이로 약물 중독으로 요절했다.[8] 전직 피겨 스케이팅 선수이며, 아버지가 탄자니아인이다. 2차례 동계올림픽 페어 동메달리스트이다.[9] 독일-미국 이중국적. 전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로 대표팀 선발에 관한 FIFA 규정 변경을 통해 미국 국가대표팀으로 옮겼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때 미국대표로 출전했다.[10] 독일-미국 이중국적. 독일 U20 축구팀 대표로 뛰었으며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는 미국대표로 출전했다.[11] 독일-미국 이중국적.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미국 대표로 뛰었다.[12] 미국 흑인 아버지와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청소년 대표까지는 독일 대표로 뛰었으나 성인 국가대표부터는 미국대표로 출전하고 있다.[13] 독일의 연주가 (1923-2004). 카메룬 주둔 독일군 아버지와 아프리카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14] 인종은 피부색을 봤을 때 흑인으로 유추될 뿐이지만 국적은 독일이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