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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6-02-22 22:52:50

이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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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열
관등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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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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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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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명칭 및 유래3. 역사적 기록4. 관직 진출 및 정원
4.1. 경관직 (중앙)4.2. 외관직 (지방)
5. 주요 인물

1. 개요

이벌찬(伊伐湌)은 신라의 17관등 중 제1등에 해당하는 관등이다. 제2등인 이찬의 위로, 신라 관등 체계상 가장 높은 등급이다. 비상설 명예직인 대각간이나 태대각간을 제외하면 실질적인 신라 최고의 관등이라 할 수 있다.

신라의 공복 색상 중 가장 높은 등급인 자색(紫色, 보라색) 관복을 착용했다.

2. 명칭 및 유래

이벌찬은 문헌마다 다양한 이표기(異表記)가 전해진다.

가장 유력한 고대 한국어 재구음은 *sɛ-pɔr-kan(*세볼간) 혹은 *sɛ-pɔr-han(*세볼한)이다. 이는 현대 한국어의 '새롭다(新)', '설(새해)', '낯설다' 등에 화석처럼 남아있는 어근 '*sɛ-'와 연관되어 첫째가는, 으뜸가는이라는 의미를 지닌 접두어에, '큰 마을'이나 '벌판'을 뜻하는 '*pɔr(벌/불)'가 결합한 구조로 분석된다. 즉, "으뜸가는 큰 지배자"라는 의미를 갖는다.

주요 이표기들에 대한 언어학적 분석은 다음과 같다.

종합하면, 이벌찬은 본래 "으뜸가는(*sɛ) 큰(*pɔr) 지배자(*kan)"라는 뜻의 고유어에서 출발했으며, 이를 표기하는 과정에서 의미를 살린 '이(伊)/일(一)', 소리를 살린 '서(舒)', 유사한 발음의 단어를 차용한 '각(角)' 등 다양한 한자 표기가 파생된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3. 역사적 기록

삼국사기》에는 제3대 유리 이사금 시대에 처음 제정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2~3세기 경에 발생하여 법흥왕 때 17관등 체계로 정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초창기 신라에서 각간(이벌찬)에 오른 인물들이 대부분 군사권을 쥔 병부의 장관(병부령)을 겸했다는 점에서, 본래 병부령과 같은 역할을 수행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신분적으로 이벌찬은 신라 최고의 관등인 만큼 오직 최상위 귀족인 성골진골만이 오를 수 있었다. 6두품 이하는 접근조차 불가능한 등급이었으며, 진골 귀족 중에서도 최고의 권력자만이 도달할 수 있는 위치였다. 화백회의의 수장인 상대등이나 행정 수반인 시중 등 국가 최고위직에 임명되기 위한 필수 자격 요건이었다.

4. 관직 진출 및 정원

이벌찬은 신라 관직의 정점으로, 일반적인 행정 부서의 장관보다는 국가 통치 기구의 수장이나 군권의 최고 책임자 역할을 수행했다.

4.1. 경관직 (중앙)

삼국사기》 〈직관지(職官志)〉에 따르면, 이벌찬은 화백회의, 집사부, 병부 등 국가 핵심 권력의 정점에 섰다. 구체적인 부서별 직책과 정원은 아래와 같다.
||<tablewidth=100%><tablebgcolor=#fff><tablebordercolor=#4a2d5b><rowbgcolor=#4a2d5b> 소속 관청 || 직책 || 관등 || 정원 ||
상대등(上大等) - 이찬 ~ 이벌찬 1명
집사부(執事部) 시중(侍中) 대아찬 ~ 이벌찬 1명
병부(兵部) 령(令) 대아찬 ~ 태대각간 2명 이상
사정부(司正部) 령(令) 대아찬 ~ 태대각간 1명

다른 관등과 달리 이벌찬은 창부나 예부 같은 일반 행정 부서의 장관직에는 잘 임명되지 않았다. 대신 귀족 회의의 의장인 상대등이나 국정 총괄자인 시중을 맡아 국가를 통치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4.2. 외관직 (지방)

규정상 이벌찬이 맡을 수 있는 외관직은 없었다. 《삼국사기》 〈직관지〉에 따르면 지방의 최고 장관인 도독(都督)은 제2관등인 이찬까지만 임명될 수 있었다. 이벌찬은 중앙 집권의 핵심이자 국정 운영의 최고 책임자급이었으므로, 지방으로 파견되는 일 없이 왕경(서라벌)에 상주하며 국가 중대사를 다루었다.

5. 주요 인물

나무위키에 문서가 존재하는 이벌찬 역임자는 다음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