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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owcolor=#fbe673,#fbe673> 서열 | 관등명 | ||||||||
| <rowcolor=#000,#ddd> 장관 | 9주 | 5소경 | 차관 | 군 | 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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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급찬(級飡)은 신라의 17관등 중 제9등에 해당하는 관등이다. 제8등인 사찬의 아래이며, 제10등인 대나마의 바로 위 단계이다.1.1. 명칭 및 유래
급찬의 명칭 유래에 대해서는 다양한 언어학적, 역사적 해석이 존재한다.우선 어원적으로는 '급벌(級伐)' 또는 '거벌(居伐)'로 표기된 앞부분을 '고을'을 뜻하는 고대 한국어 'kɛpɛrɛ(*게베레)'의 음차로 보는 견해가 있다. 이는 중세 한국어 'ᄀᆞᄫᆞᆯ(마을)'의 어원이 되며, 백제의 '기부리(己富里, *kopori)'나 가야의 '기본(己本, *kopor)'과도 대응되는 것으로 보인다. 뒷부분인 '찬'이나 '간'은 지배자를 뜻하는 접미사 *-kar에서 유래하여, 전체적으로는 '*kɛpɛrɛ-kan(*게베레간)', 즉 '고을의 지배자'라는 의미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외에도 '급벌(及伐)'을 'ᄀᆞ벌'로 해독하여 '큰 고을(大邑)'이나 '우두머리 고을(首邑)'로 해석하거나(천소영, 1990), 'kɨpərə'로 해독하여 '높은 봉우리(高峰)'의 뜻으로 보아 '높다(高)' 또는 '우두머리(首)'를 뜻하는 관직명으로 해석하기도 한다(이병선, 1997). 또한 전덕재 교수는 '급(及)'을 '근본(根本)'을 뜻하는 고유어 '밑'의 차자로 보아 신라 6부 중 하나인 급량부(及梁部)와의 연관성을 강조하기도 했는데, 이 경우 사훼부(沙喙部)의 '사'는 새롭다(新)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표기로는 거벌간지(居伐干支), 급벌찬(級伐湌), 급벌간(級伐干), 급간(級干), 급복간(及伏干), 급척간(及尺干) 등이 혼용되어 사용되었다. 여기서 '거벌간지'의 '지(支)'는 존칭 접미사 *ke를, '급척간'의 '척(尺)'은 고유어의 /r/ 음가를 표기한 것으로 보인다.
1.2. 역사적 기록
역사적으로는 제6대 지마 이사금 즉위 직후 최초로 이 관등을 임명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사찬과 더불어 급량부(及梁部)와 음운상 공통점이 발견되기에, 초기 신라의 부 체제와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하대 헌덕왕 때는 급찬 관등을 가진 '숭정'을 발해에 사신으로 파견했다는 기록이 등장하나, 구체적인 회담 내용이나 성과는 전해지지 않는다.
1.3. 신분 제한 및 타국 관등과의 관계
골품제의 신분 구조상 급찬은 6두품과 진골만이 오를 수 있는 관등이었다. 바로 아래 단계인 5두품은 대나마까지만 승진이 가능했으므로, 급찬부터는 사실상 상위 신분층의 전유물이었던 셈이다.또한 삼국통일 이후 고구려의 귀족을 포섭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관등을 신라의 체계에 맞추어 적용했는데, 고구려 후기 기준 제5관등인 위두대형(位頭大兄) 출신을 이 급찬으로 대우하였다.
2. 관직 진출 및 정원
급찬은 중앙 관청의 차관급 이상 고위직과 지방 행정 구역의 장관직에 진출할 수 있는 하한선 역할을 했다.2.1. 경관직 (중앙)
중앙 경관직(京官職)의 경우, 《삼국사기》 〈직관지(職官志)〉에 따르면 급찬은 각 부서의 차관인 대감(大監)이나 실무 책임자인 경(卿) 등을 맡을 수 있었다. 구체적인 부서별 직책과 정원은 아래와 같다.||<tablebgcolor=#fff><tablebordercolor=#ccc><rowbgcolor=#373a3c> 소속 관청 || 직책 || 관등 || 정원 ||
| 병부(兵部) | 대감(大監) | 사찬 ~ 급찬 | 2명 |
| 창부(倉部) | 대감(大監) | 사찬 ~ 나마 | 2명 |
| 위화부(位和部) | 대감(大監) | 아찬 ~ 나마 | 2명 |
| 사정부(司正部) | 좌/우대감(大監) | 중아찬 ~ 급찬 | 각 1명 |
| 예작부(例作部) | 대감(大監) | 사찬 ~ 급찬 | 2명 |
| 선부(船部) | 대감(大監) | 사찬 ~ 나마 | 2명 |
2.2. 외관직 (지방)
지방 행정인 외관직(外官職)에 있어서도 급찬은 지방 행정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도독(9주 장관)이나 사신(5소경 장관)이 될 수 있는 최소한의 자격 요건이었다. 군의 장관인 태수직 또한 수행할 수 있었다.||<tablebgcolor=#fff><tablebordercolor=#ccc><rowbgcolor=#373a3c> 지역 및 기구 || 직책 || 관등 || 비고 ||
| 9주(九州) | 도독(都督) | 이찬 ~ 급찬 | 지방 장관 (군단장 겸직) |
| 국원(國原)·북원(北原) 등 5소경 | 사신(仕臣) | 사찬 ~ 급찬 | 5소경의 장관 |
| 군(郡) | 태수(太守) | 급찬 ~ 나마 | 군의 장관 |
즉, 급찬은 6두품 관료가 중앙 정계에서 고위직으로 도약하거나 지방관으로서 독자적인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되는 위치였다. 5두품 이하의 진출이 원천 봉쇄된 등급인 만큼, 이 관등에 올랐다는 사실 자체가 진골 귀족이거나 6두품 귀족임을 증명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