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세 나라를 하나로 통일하는 것
삼국통일(三國統一)은 문자 그대로 3개의 서로 다른 국가가 하나로 통일되는 것을 뜻한다.구체적인 사례는 다음과 같다.
-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사례는 단연 고구려, 백제, 신라가 신라 주도로 통일되었던 통일신라이다.[1] 한국에서 삼국통일이라 하면 보통 이것을 뜻하며, 다르게 삼한일통, 삼한통일이라고도 부른다. 자세한 것은 삼국시대, 삼국통일전쟁, 통일신라, 신라/평가 문서 참고.[2]
- 중국에서는 위, 촉한, 오가 서진에 의해 통일된 사례가 유명하다. 물론 장구한 중국의 역사를 보면 몽골이 금나라와 남송을 합병한 것, 남북조시대 말기 최후의 세 생존왕조인 북제, 북주, 진(육조)이 수나라로 통일된 것과 같이 세 나라 이상의 정치체가 하나로 뭉친 케이스는 생각보다 많다.
- 서양에서는 이베리아 반도의 3국이었던 카스티야, 아라곤, 포르투갈의 통합에 따른 이베리아 연합, 카를 5세 시절 처음엔 서로 다른 군주를 섬겼던 부르고뉴, 에스파냐, 신성 로마 제국이 모두 같은 합스부르크 제국을 형성한 것, 잉글랜드가 웨일스, 스코틀랜드를 통합한 그레이트브리튼 왕국, 덴마크-스웨덴-노르웨이의 동군연합인 칼마르 연합 등의 사례가 있다.
- 루도비쿠스 1세 사후 서프랑크, 중프랑크, 동프랑크로 분단되었던 프랑크 왕국이 차츰 재통합을 거치며 카를 3세 치세에 일시적으로나마 하나로 통일된 것 역시 삼국통일로 볼 여지가 있다.
2. 게임
한국사의 삼국시대를 다룬 국산 RTS 게임인 삼국통일 대륙을 꿈꾸며의 표제이자 약칭이다. 해당 문서 참고.3. 같이보기
[1] 하지만 이것이 통일이 맞는가에 대한 논란이 매우 크다. 옛부터 논쟁되던 아주 유명한 역사계의 떡밥. 남북분단의 현재 정치적 상황에서 의도적으로 통일이라는 것에 힘을 실어주는 경향도 있다지만 사실 고려, 조선시대에도 신라의 삼국통일을 긍정하는 인식은 있었다. 물론 고려와 조선 모두 신라의 한계 또한 알고 있었다. 다만 평양 이북의 고구려령을 병합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는 현대인들과 달리 고려, 조선인들은 삼한일통 의식 관철에 결국 실패하고 후삼국으로 다시 갈라졌다는 데에 초점을 맞추었다.[2] 실제로 이 문서로 들어가보면 통일론/반대론 모두 서술되어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양측 모두 논리가 팽팽히 대립하고 있다.[3] 신라통일부정론과 연계해서, 신라가 고구려의 영토 대부분을 통합하지 못했으므로 통일이 아니라고 한다면 고려 역시 발해의 영토를 거의 통합하지 못했으므로 통일이 아니라고 볼 수도 있다. 신라통일론을 부정한 것으로 유명한 신채호의 입장도 사실 단군 이래 현대까지 한 번도(즉 신라든 고려든 조선이든) 통일이 실현된 바가 없다는 주장이었다. 여기에 고려가 발해 왕자와 유민을 받아들인 점을 강조하기도 하지만 이것만으로 발해의 영토를 통합하지 못한 문제가 완전히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고려왕조의 후삼국통일은 결국 '신라가 소위 통일한 영역' 안에서 나뉘었다가 재통일한 것이며 신라의 삼한일통 논리와 분리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어받아서 계속한 것이므로 신라 통일의 전제 하에 성립하며, 둘 다 부정한다면 모를까 구조적으로 어느 하나만 진짜 통일이라고 취할 수가 없다. 그러나 이 부분으로의 비판은 후삼국시대가 그리 메이저한 떡밥이 아니고, 발해는 이 후삼국시대 군웅할거 구도의 외부자였으므로 신라 때와 비교해서도 잘 거론되지 않는다. 사실 두 '삼국통일'은 영토적인 부분보다는 훗날 한민족 의식으로 이어지는 동족의식의 시작과 완성이란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인정받는 사건이다. 다만 이러한 평가 역시 한계가 있는데 고려의 후삼국 통일과 포용정책이 민족 공동체 의식에 큰 영향을 끼친 건 사실이지만, 사학계에서 고려시대에 민족 공동체 의식이 완전히 완성되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13세기 몽골의 침입 시기이다. 따라서 신라는 통일이 아니고 고려는 통일이라고 주장하는 것 역시 한계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