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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하라 칸국

킵차크 칸국의 계승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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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원수 | 아미르
행정구역 사마르칸트 | 부하라
경제 | 부하라 텡가
민족 우즈베크어
언어 차가타이어 | 우즈베크어 | 타지크어
문화 초르 미노르
인물 무함마드 샤이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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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하라 칸국
خانات بخارا | Khānāt-i Bukhārā[1]
بخارا خانلیگی | Bukhārā Khānligi[2]
부하라 토후국
امارت بخارا
بخارا امیرلیگی
1501년 ~ 1785년 (칸국으로써)
1785년 ~ 1920년 (토후국으로써)
파일:230C115A-7A6D-4E57-9588-937990779D8E.png
1598년의 부하라 칸국.
티무르 제국 두라니 제국
우즈베크 칸국 부하라 인민 소비에트 공화국
수도 사마르칸트
(1501년 ~ 1533년, 1551년 ~ 1556년)
부하라[3]
(1533년 ~ 1551년, 1556년 ~ 1756년, 이후 쭉)
언어 페르시아어 (공용어, 궁정어, 문학어)
차가타이어
종교 이슬람 (수니파, 낙쉬반디 수피즘)
민족 우즈베크인, 튀르크인, 페르시아인
지도자 칭호 아미르
주요 사건 1500년 샤이반 왕조 설립
1505년 사마르칸트 점령
1599년 자니 왕조 설립
1740년 ~ 1745년 아프샤르 왕조의 속국
1747년 아미르 무함마드 라힘의 왕위 찬탈; 망기트 왕조 설립
1785년 칸국 폐지, 아미르국 선포
1868년 러시아 제국에게 패배, 보호국
1918년 공산당으로의 정권 양도를 요구하는 볼셰비키 사절단을 처형
1920년 소비에트 러시아의 침공과 멸망
현재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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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배경
2.1. 16세기 이전의 우즈베크족2.2. 티무르 제국의 쇠퇴2.3. 샤이바니 칸의 정복과 죽음
3. 역사
3.1. 부하라 칸국3.2. 부하라 아미르국
4.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킵차크 칸국 출신 명문가인 샤이반 가문[4]의 무함마드 샤이반이 자신을 따르는 집단[5]을 이끌고 티무르 제국의 영토를 빼앗아 세운 국가.

히바 칸국. 코칸트 칸국과 함께 근세 중앙아시아를 다스린 우즈벡계 3칸국 중 하나이다.

2. 배경

2.1. 16세기 이전의 우즈베크족

본래는 유목하며 살아가던 우즈베크족의 부족명은 바투서방 원정을 통해 건국한 킵차크 칸국[(주치 울루스)의 제9대 칸이었던 우즈베크 칸에게서 따온 이름이다. 이들은 칭기즈 칸의 장남 주치의 5남 샤이반[6]의 후손이었으며, 1282년에 이슬람을 받아들인 이래로 샤이반의 형제였던 바투와 오르다의 혈통, 즉 당대의 킵차크 칸들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들의 가신으로 아랄해와 킵차크 스텝[7][8]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그러나 킵차크 칸국은 14세기 말엽에 중앙아시아의 군벌이었던 티무르의 침공을 받아 대부분의 도시가 황폐화되고 칸의 권위가 밑바닥까지 추락하면서 완전히 쇠락한다. 그 자신도 모계를 통해 몽골 제국의 황통인 보르지긴 가문의 피(황금씨족)를 받은 티무르가 차가타이 칸국의 칸을 티무르 일족이 잇게 하여 사실상 폐지하고, 모굴리스탄 칸국을 박살냈으며 킵차크 칸국도 분열시킨 사실은 보르지긴 혈통이었던 우즈베크족을 충분히 분노케 했다. 게다가 우즈베크족이 더욱 분노했던 사실은, 14세기 중반에 대규모의 내전으로 킵차크 칸국의 황통이 사실상 단절된 이래 오직 자신들만이 유일하게 남은 주치의 혈통이라고 생각하여 러시아에서 카자흐 평원에 걸친 킵차크 칸국 영토의 지배권을 주장하였건만, 주치의 13남의 방계 후손을 내세우며 쳐들어온 티무르에게 좌절당해 세력이 한미한 부족으로 전락하고 만 것이었다.

15세기 초엽, 우즈베크족은 샤이반 울루스의 칸이었던 주마두크 칸이 이끌었다. 1427년에 주마두크 칸이 전투에서 전사하자 아불 하이르 칸이 칸으로 추대되었는데, 그는 1428년부터 튜멘과 투라강 주변 지역에서 곳곳에 흩어져있던 우즈베크족을 재규합하였으며 시비르 칸국을 격파한 후 망기트족[9]의 지원으로 이전의 세력을 회복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1430년~1431년 사이에 우르겐치를 점령한 것으로 시작으로 호라즘 원정에 나선 아불 하이르는, 비록 샤 루흐 치하의 티무르 제국에게 격퇴되었으나 1446년에 기어코 호라즘 북부의 시그나크를 점령하여 수도이자 교두보로 삼는다. 티무르족에 대한 불타는 복수심으로 가득하던 아불 하이르는 이후에도 우즈베크족을 이끌며 트란스옥시아나의 약탈과 습격을 계속하였다.

1451년, 티무르의 차남 미란 샤의 손자였던 아부 사이드가 당시 이름을 떨치던 아불 하이르에게 자신이 샤 루흐의 손자들로부터 사마르칸트를 빼앗는데 도움을 요청했다. 아불 하이르는 이에 동의했고, 양측의 군대는 사마르칸트의 지배자 압둘라를 전사시키고 도시로 진군하였으나 아부 사이드의 군대는 먼저 입성한 후 성문을 닫아 버렸으며, 그리고는 우즈베크족에게 다시는 이 도시에 접근하지 말라고 통보했다. 지친 우즈베크 군대는 원한을 곱씹으며 후퇴할 수 밖에 없었다.[10] 아불 하이르는 1468년에 사망했고, 그의 사후 우즈베크족은 호라즘과 트란스옥시아나의 두 분파로 나뉘어져 다시금 분열되게 된다.

그러나 복수의 시간은 다가오고 있었으니...

2.2. 티무르 제국의 쇠퇴

15세기 중후반에 일시적으로나마 호라산(헤라트)과 트란스옥시아나(사마르칸트)의 재통일을 성공하며 무너져가던 제국을 소생시키려 한 티무르의 증손자 아부 사이드가 1469년 백양 왕조우준 하산에게 잡혀 죽자 티무르 제국은 다시 분열되었고, 그의 후손들은 사마르칸트를 놓고 치열한 경주를 한다. 이들 중에는 훗날 무굴 제국을 세우게 되는 페르가나의 지배자 바부르도 있었다.[11]

(다만 우즈베크족 역시 아불하이르 칸의 죽음으로 이때는 분열되어 있었기에 이러한 호기를 빨리 이용하지는 못했다.)

2.3. 샤이바니 칸의 정복과 죽음

14세기 말~15세기 중반에 걸쳐 서아시아와 중앙아시아에서 세력을 떨치며 이슬람 동방 세계의 패자로 군림하였던 티무르 제국샤 루흐울루그 베그 이후로 쇠퇴하자,[12] 1500년부터 우즈베크족을 이끌고 있던 무함마드 샤이바니 칸은 복수의 시기가 임박했음을 직감했다.

1490년대에 아부 사이드의 자손들끼리 치열한 내전을 벌이자, 기회를 잡은 샤이바니 칸은 1500년에 사마르칸트를 함락시켜 티무르 왕조를 멸한다. 비록 바부르에게 사마르칸트를 일시적으로 빼앗기지만 1505년에 바부르와 모굴리스탄의 두 칸[13]이 이끌던 연합군을 철저하게 짓밟았으며, 1506년에 부하라를 함락시키며 트란스옥시아나의 지배권을 획득했고, 1507년에는 헤라트의 티무르조 잔당마저 일소하여 중앙아시아의 샤이바니 왕조 시대를 연다. 이후 그는 1508년~1509년에 걸쳐 카자흐 칸국을 공격하여 북방을 안정시킨다. 하지만 1510년 초에 카심 칸의 지휘 하에 단결한 카자흐 군대에게 패배하고, 마침 페르시아를 정복해 나가던 사파비 왕조의 창건자 이스마일 1세에게도 대패한 후 1510년 그 자신도 전사한다. 일설에 의하면 그는 군대의 사기진작을 위해 병력이 현저히 열세였는데도 불구하고 지원군을 기다리지 않고 적진에 돌진하다가 전사하였다고 한다.

3. 역사

3.1. 부하라 칸국

16세기 샤이반 가문의 무함마드 샤이반이 자신을 따르는 부족들을 이끌고 몰락해가는 티무르 제국의 수도인 사마르칸트를 빼앗은 후 중앙아시아 서북부를 완전히 장악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렇게 중앙아시아의 맹주로써 군림한 샤이반 가문은 명군을 배출해내며 전성기를 구가했으나, 1599년 마지막 부계 후손이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사망하면서 상당한 혼란기를 맞이한다. 그러나 얼마 안 가서 자니 가문이 그 자리를 꿰찼다.

그로부터 일정 기간 동안 황금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렇지만 18세기 중반 아프샤르 왕조나디르 샤의 대대적인 침공을 받아 국가가 초토화되면서 결국 굴복하였고 그로부터 2년 후인 1785년 망기트 가문의 무함마드 라힘이 봉기를 일으켜 자니 왕조의 칸을 폐위시키고 국가를 부하라 아미르국으로 바꾼다. 아미르국으로 변모한 이유는 망기트 가문[14]은 자니 가문이나 샤이반 가문과는 다르게 보르지긴의 혈통이 섞이지 않아서라고.

3.2. 부하라 아미르국

새로 건국된 부하라 아미르국은 보르지긴의 혈통이 섞이지 않아 그 정통성을 에미르의 직위에서 찾았다. 19세기 중엽까지는 나름대로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가, 중앙아시아가 러시아 제국에게 정복되면서 1868년 러시아 제국에게 패배, 이웃한 히바 칸국과 함께 러시아 제국의 지배를 받는 괴뢰국으로 전락한다. 사마르칸트를 포함한 대부분의 영토가 제정 러시아의 직할령으로 넘어가 대폭 축소되어버린다.

당대 부하라의 컬러사진
최후의 아미르, 알림 칸을 찍은 컬러사진 (1911)

파일:BukharaBeyliks1917.png
1916년의 부하라 칸국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나자 붉은 군대가 침공하여 1920년 10월에 보수적인 에미르를 쫓아내며 소비에트 연방 내의 국가 부하라 인민 소비에트 공화국이 되었고, 과도기를 거쳐 소련 성립 이후 우즈베크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동부 일부는 타지크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편입되며 완전히 멸망한다.

현재 부하라의 이름은 우즈베키스탄부하라 시와 부하라 주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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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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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페르시아어 명칭[2] 차가타이어 명칭[3] 공식적인 수도는 없었다. 우즈벡어 발음은 부호로(Bukhoro).[4] 이 가문의 시조가 바투의 동생.[5] 대다수는 우즈베크인.[6] '시반'이라고도 한다.[7] 카자흐스탄~러시아 남부의 초원지대[8] 이 지역은 킵차크 칸국 내에서도 샤이반의 후손들에게 분봉된 곳으로, 그래서 '샤이반 울루스'라고도 했다.[9] 티무르 사후 킵차크 칸국의 실권자였던 에디구의 부족으로, 이후 킵차크 칸국이 완전히 해체되자 노가이 칸국을 세운다. 일부 분파는 하술하겠지만 부하라 칸국의 왕위를 탈취하여 부하라 토후국을 세우기도 한다.[10] 다만 아부 사이드는 후환이 두려웠는지 이후 우즈베크족에게 많은 재물과 선물을 주었으며, 자신의 대부였던 울루그 베그의 딸을 아불 하이르와 결혼시키며 혼인 동맹을 맺으려 시도하기도 했다.[11] 결국 바부르는 1497 ~ 1498년간 사마르칸트 점유에 성공하나 사촌 술탄 알리에게 빼앗기고 그는 사마르칸트의 마지막 티무르 가문 지배자가 된다. 그 후 카불에 정착하고 세력을 기른 바부르는 부유한 인도로 눈을 돌려 20여년 간의 시도 끝에 1526년, 파니파트 전투에서 로디 왕조의 군대를 대파하고 델리를 점령하며 무굴 제국을 창건한다.[12] 유목 제국의 고질병이었던 왕위 계승 문제가 컸다.[13] 마흐무트 칸, 아흐마드 알라크[14] 몽골부족 중 하나인 망구트부가 기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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