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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1-28 16:11:24

울루그 베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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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무르는 1370년부터 1402년까지 수르가트미시 칸과 술탄 마흐무드 칸을 허수아비로 세우고 차가타이 칸국의 실질적인 통치자로 군림했지만, 혈통 문제로 인해 티무르 본인은 을 칭하지 못하고 이슬람식 칭호인 아미르를 자칭했다. 때문에 몇몇 학자들은 엄밀히 말하면 티무르가 권력을 잡은 1370년이 아니라 차가타이 칸국이 멸망한 1402년에 티무르 제국으로 전환되었다고 보아야 한다고도 한다.
작위 치세
아미르 티무르 벡 구르카니
تیمور بیگ گورکانی

절름발이 티무르
تیمور لنگ
1370년 ~ 1405년
아미르 피르 무함마드
پیر محمد بن جہانگیر میرزا
1405년 ~ 1407년
아미르 할릴 술탄 이븐 미란 샤
خلیل سلطان بن میران شاہ
1407년 ~ 1409년
아미르 샤 루흐 미르자
شاھرخ میرزا
1405년 ~ 1447년
아미르 미르자 무함마드 타라가이
شاھرخ میرزا

위대한 베그
الغ بیگ
1447년 ~ 1449년
제국 1차 분열
트란스옥시아나 헤라트 호라산
이라키 아잠
파르스
사마르칸트 부하라 히사르 페르가나 발흐 카불
압둘라티프 미르자
میرزا عبداللطیف
부친살해자
پدر کش

(1449년 ~ 1450년)
알라 웃 다울라 빈 바이순쿠르
علاء الدولہ میرزا بن بایسنقر
(불명)
아불 카심 바부르 미르자
ابوالقاسم بابر میرزا بن بایسنقر بیگ
(1449년 ~ 1457년)
술탄 무함마드
سلطان محمد ابن بایسنقر
(1447년 ~ 1451년)
압달라 미르자
میرزا عبد اللہ
(1450년 ~ 1451년)

아불 카심 바부르 미르자
ابوالقاسم بابر میرزا بن بایسنقر بیگ
(1449년 ~ 1457년)
(공석) 미르자 샤 마흐무드
میرزا شاہ محمود
(1457년)
술탄 이브라힘
ابراھیم میرزا
(1457년 ~ 1459년)
아부 사이드 미르자
ابو سعید میرزا
아부 사이드는 우즈베크족 지도자 아불 하이르 칸의 도움을 받아 분열되어 있던 제국을 재통일했지만, 페르시아 영토 대부분은 흑양 왕조에게 넘겨줘야 했다.
그러나 얼마 뒤 그가 백양 왕조우준 하산과 싸우다가 전사하자 티무르 제국은 다시금 분열되었다.

(1451년 ~ 1469년)
제국 2차 분열
트란스옥시아나 호라산
사마르칸트 부하라 히사르 페르가나 발흐 카불 헤라트
술탄 아흐마드 미르자
سلطان احمد میرزا
(1469년 ~ 1494년)
우마르 셰이크 미르자 2세
عمر شیخ میرزا ثانی
(1469년 ~ 1494년)
술탄 마흐무드 미르자
سلطان محمود میرزا
(1469년 ~ 1495년)
울루그 베그 미르자 2세
میرزا الغ بیگ
(1469년 ~ 1502년)
술탄 후세인 바이카라 미르자
سلطان حسین میرزا بایقرا
(1469년, 1차 재위)
술탄 바이순쿠르 미르자 빈 마흐무드 미르자
بایسنقر میرزا بن محمود میرزا
(1495년 ~ 1497년)
술탄 알리 이븐 마흐무드 미르자
سلطان علی بن محمود میرزا
(1495년 ~ 1500년)
술탄 마수드 미르자 빈 마흐무드 미르자
سلطان مسعود بن محمود میرزا
(1495년 ~ ?)
자히르 웃딘 무함마드 바부르
ظہیر الدین محمد بابر
(1494년 ~ 1497년)
쿠스라우 샤
خسرو شاہ
(찬탈자)
? ~ 1504년
무킴 베그 아르군
مقیم ارغون
(찬탈자)
? ~ 1504년

야드가르 무함마드 미르자
میرزا یادگار محمد
(1470년, 6주 재위)
무함마드 샤이바니 휘하의 우즈베크족에게
함락당함
(1500년 ~ 1501년)
자한기르 미르자 2세
جہانگیر میرزا
(술탄 아흐메드 탐볼의 꼭두각시)
(1497년 ~ 1503년)

자히르 웃딘 무함마드 바부르
ظہیر الدین محمد بابر
(1504년)

술탄 후세인 바이카라 미르자
سلطان حسین میرزا بایقرا
(1470년 ~ 1506년, 2차 재위)
무함마드 샤이바니 휘하의 우즈베크족에게
함락당함
(1503년 ~ 1504년)
자히르 웃딘 무함마드 바부르
ظہیر الدین محمد بابر
(1504년 ~ 1511년)
바디 알자만 미르자
بدیع الزمان میرزا
(1506년 ~ 1507년)
무자파르 후세인 미르자
مظفر حسین میرزا
(1506년 ~ 1507년)
자히르 웃딘 무함마드 바부르
ظہیر الدین محمد بابر
바부르는 그의 조부였던 아부 사이드 미르자가 그랬듯 페르시아 샤 이스마일 1세의 도움을 받아 티무르조의 중심지인 중앙아시아를 일시적으로 재통일했다. 이때 바부르의 통치 지역은 카스피해에서 우랄산맥 남안에 다다랐으며, 산하 도시로 카불, 가즈니, 쿤두즈, 히사르, 사마르칸트, 부하라, 페르가나, 타슈켄트, 사이람이 있었다. (그가 인도를 정복하기 전까지는, 이 시기가 바부르 생애에서 가장 영토가 넓었다)
(1511년 ~ 1512년)
무함마드 샤이바니헤라트를 정복하면서
헤라트 티무르조 멸망
(1507년)
우바이둘라 칸 휘하의 우즈베크족이 사마르칸트를 정복하면서
트란스옥시아나 티무르조 멸망
(1512년)
자히르 웃딘 무함마드 바부르
<ہیر الدین محمد بابر

이스마일 1세
شاه اسماعیل یکم
(1510년 ~ 1524년, 사파비 제국의 초대 샤한샤)
우즈베크인들이 부하라 칸국히바 칸국을 세우면서 중앙아시아의 티무르 제국은 완전히 멸망했다. 그 이후인 1526년, 왕조의 마지막 생존자였던 바부르
인도를 정복하면서 티무르조 인도 제국인 무굴 제국을 건국하여 그곳에서 명맥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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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Portrait_of_Ulugh_Beg_revised.jpg
이름 Mirzo Ulugʻbek
الغ‌بیگ میرزا محمد طارق بن شاہرخ
생몰 기간 1392년 ~ 1449년

1. 개요2. 생애3. 업적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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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티무르 제국의 4대 군주.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보다 더 정확하게 항성 거리를 측정하였을 정도로 천문, 수학에 엄청난 재능을 가졌지만 아들의 반란으로 허무하게 끔살당했다. 역사적으로도 오랫동안 묻혀졌다가 19세기 와서야 서구 천문학자들이 뒤늦게 재평가하여 찬양하던 비운의 천문학자이자 군주.

참고로 오늘날 우즈베키스탄에는 울루그 베그를 자국의 위인으로 기념하고 있기 때문인지 우즈베키스탄 남자들은 울루그 베그를 이름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

2. 생애

샤 루흐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울루그 베그'라는 명칭은 별명으로, 대략 '위대한 통치자'를 뜻하는데 이 칭호는 그의 할아버지 티무르가 가졌던 칭호들 중 하나였던 '아미리 카비르'(Amīr-e Kabīr)를 튀르크어로 옮긴 것이다.

그는 티무르 제국의 문화계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사실, 통치 수완도 꽤 유능했다. 아버지 샤 루흐의 치세 때 사마르칸트를 분봉받아 40년간 트란스옥시아나 지역을 다스렸으며, 동쪽의 모굴리스탄 칸국을 일시 점령하고 꼭두각시 칸을 세우기도 하였다. 통치자로서의 재능도 뛰어난 편. 하지만, 군사적 재능은 별로 없었고, 아들인 압딜 라티프가 군권을 휘어잡아 내전을 벌여 1448년 헤라트를 점령하는 등 제국 주요부인 호라산을 차지하였다. 이로써 위세가 높아진 압딜 라티프는 부왕의 정치가 이슬람교를 따르지 않고 지나치게 세속적이라는 것을 명분으로 1449년에 반란을 일으켜 아버지를 처형하였다.

하지만 아버지를 죽인 아들 압딜 라티프는 제위한지 고작 6달 만에 아버지를 죽인 패륜아라는 명분으로 사촌들이 일으킨 반란으로 인해 겨우 나이 서른에 아버지처럼 처형되고 만다. 이후 2년동안 여러 내전이 터지며 티무르 제국 서부는 이 혼란기를 틈탄 흑양 왕조와 흑양 왕조를 멸망시킨 백양 왕조에게 차례차례 뜯겨나갔다. 그나마 1451년에 즉위한 아부 사이드 미르자가 혼란을 제압하고 겨우 평온을 찾았으며 백양 왕조에 대한 보복 전쟁을 벌여 백양 왕조를 크게 물리쳤다.

3. 업적

문화인이며 동시에 수학, 천문학, 역사학에 능통했고 학자·예술가들을 우대하고 학문·예술을 보호 장려했기 때문에 당시 사마르칸트는 이슬람 학예의 중심지로서 번영했다.

울루그 베그 본인도 구면기하이나 삼각법을 비롯한 천문학에 대한 저술을 남겼다. 1424년부터 1429년까지 그는 사마르칸트에 거대한 천문대를 만들었다. 울루그 베그의 재능은 세계적이었는데 어느 정도냐면 세월이 흘러 그에 대하여 알게 된 근대 시기 서구권 천문학자들이 경악할 정도였다. 지동설로 유명한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보다 더 정확하게 항성 거리를 측정하였다! 코페르니쿠스는 1526년 계산으로 365.2570370... 으로 D = 365 D 6 H 10 m 8 으로 30초 오차를 내고 계산했다. 기계나 컴퓨터도 없던 그 시대에 이 30초 오차는 대단한 것이다. 훗날 그의 계산보다 더 오차를 줄여 계산한 사람이 코페르니쿠스보다 90년전에 나왔다는 게 밝혀졌는데, 1437년에 울루그 베그가 오차를 25초로 줄인 계산으로 거리를 측정했다는 게 드러났다.

이렇게 온갖 천문학 및 수학 연구에 대해서도 엄청난 재능을 보였는데, 정치적으로 가려져 오랫동안 묻혀졌었다. 다행히 19세기에 그가 서구에도 알려져서 독일 천문학자 폰 마들러는 달에 난 화산 분출구를 발견하자 울루그 베그라고 이름을 지어 그를 기렸을 정도다.천재인데다 군주로서 재능도 있었지만 아들의 반란으로 허무하게 죽은 비운의 군주로 남게 되었다.

파일:울루그 베그 천문대.jpg

울루그 베그 천문대의 터.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 의해 파괴되고 터만 남았다.
파일:울루그베그박물관.jpg파일:울루그베그천문대모형.jpg

울루그 베그 천문대 옆 박물관. 파괴되기 전 천문대 모형을 볼 수 있다

4. 기타

학자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며 자신도 천문학자였던 사마르칸드의 영주 울루그 베그에 의해 세워진 천문대. 당시 이슬람 세계에서 선진적인 연구 시설이었다.
발견물 '울루그 베그 천문대 터' 설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