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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중/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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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중국 원형 국기.svg 중국에 대한 감정
혐중 반중 친중* 중뽕
국가별 친중
한국 대만** 홍콩***
국가별 반중
한국 일본
국가별 혐중
한국
* 대륙을 지배하는 중국(중공)이 아닌 중화민국(일명 자유중국)을 정통이라 보고 지지하는 견해는 친중화민국 문서 참조.

1. 개요2. 시간대별 변화3. 상세
3.1. 사상3.2. 외교3.3. 역사
4. 친 중화인민공화국이 아닌 친 중화권인 경우
4.1. 문화4.2. 국제결혼
5. 친·친만주족
5.1. 비판
6. 관련 문서

1. 개요

파일:/image/023/2014/07/03/2014070300697_2_99_20140703084403.jpg
대한민국 내의 중국과 문화에 우호적인 정치적/민간 집단의 가치관을 다루는 문서이다.

2. 시간대별 변화

2002년 퓨 리서치 센터 조사에서는 중국에 대한 호감도가 66%로 중국에 대한 부정 평가(31%)를 두배 이상 앞지를 정도로 지금과 양상이 달랐다. # 이와 별개로, 2002 한일월드컵한국인들은 한국 경기를 제외하고 다른 나라들 경기를 절반 가량 나눠서 공평하게 응원을 하는데 딱 두 국가만 응원목록에서 제외하게 된다. 바로 미국하고 중국인데 미국은 안톤 오노 사건 때문인 것이고 중국도 리자쥔이 한국 선수들에게 오노와 비교도 안되는 위험한 반칙을 해서 악명이 높았다. 이는 한국인들에게 반중감정을 심어놓았다.

거기다 중국은 축구 한정으로 봐도 엄청난 민폐를 끼쳤는데 1998 프랑스 월드컵 출정하기 하루 전날 경기에서 황선홍 선수를 부상당하게 만들어서 월드컵에 나오지 못하게 만들었다.[1][2] 이로인해 한국축구는 마르세유 참사를 겪었다. 이런 사건들을 경험하면서 이때도 이미 반중감정은 강했다. 또한 응원을 전혀 안한다는 것은 이미 그 자체로 반중감정을 드러낸 것이다.

2010년에는 절반이 넘는 56%로 늘어났다. 2016년 이전까지만 해도 친중 여론과 반중 여론이 공존했지만, 주한미군 THAAD 배치 논란으로 인해 2017년에는 61%로 늘어났고, 중국에 적대적인 국민들의 비율은 2020년에는 75%, 2022년에는 81%로 56개국 중 1위를 기록했다.

국민 감정과는 별개로 대한민국 정부는 수교 이래로 지금까지 계속 북한 문제와 경제 교류 등의 이유로 중국과 나름 잘 지내려고 노력하고 있긴 하지만 국제사회에서 북한이나 베트남[3], 러시아, 벨라루스, 파키스탄, 라오스 등 이름난 친중 국가들처럼 중국 정부를 대놓고 지지하지는 않기 때문에 친중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게다가 신냉전 이후 한국 정부와 기업들은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3. 상세

3.1. 사상

이들 가운데는 중국공산당 정치 체제가 서구 국가들의 민주주의보다 우월하다고 강변하면서 서구권 국가들의 반정부 시위로 인한 혼란 등을 과대 조명하는 사람들도 있지만,[4] 문화적 상대론에 입각하여 서구 민주주의의 성공을 인정하되 중국에는 중국만의 길이 있다고 변호하는 경우도 있다.[5] 혹은 궁극적으로 서구식 민주주의[6]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까지도 인정하지만, 중국은 아직 발전 단계에 있기 때문에 선진화된 시스템이 작동할 만큼의 경제적 번영을 이루어내기 전까지는 강력한 권력이 필요하다고 역설 혹은 변명하는 온건파도 존재한다. 이는 비단 국내 친중파뿐 아니라 중국 내에서도 치열한 논쟁거리이다.

위 문단에서 의미하는, 소위 '우리식 민주주의'라고 부르는 이론은 점차 기각되어가는 추세이다. 대표적인 예로 독일의 경우 전후 반성을 통해 '존더베크(Sonderweg)'[7] 담론을 강력히 비판하였으며, 광복 이후 군부독재로 비슷한 일을 겪은 한국에서도 오늘날에는 '한국식 민주주의' 담론이 거의 부정되고 있다. 당장 서독·일본에서 홍콩에 이르기까지 권위주의 독재를 선택하지 않고도 폐허에서 급성장을 이룬 나라들이 적잖게 존재하며,[8] 독재를 통해 경제 성장을 이루었던 국가들 대다수가 이후 민주화를 택하였고, 체제 변화를 제때 이루지 못한 국가들은 극소수의 예외[9]를 제외하면 결국 번영을 유지하지 못한 채 몰락했다. 이를 감안하면 '우리식 민주주의'에 대한 서구식 민주주의의 우월성은 오히려 문화적 절대성 내지는 범인류적 진보의 흐름으로 판단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여담으로, 경제성장을 위한 과도기에 중앙집권적 권력이 정말 효율적인가 아닌가는 여전히 쉽게 답을 내리긴 어려운 주제긴 하다. 민주적인 체제에서 경제 성장을 한 경우도 많고, 반대로 권위주의 체제에서 도리어 경제가 폭망한 사례도 많지만, 선진국 원조 등 여러 인과관계를 배제하고 단순히 결과만 볼 때 이오시프 스탈린 치하의 소비에트 연방[10], 박정희 정부를 거친 한국이나 장제스를 거친 대만, 수하르토 시절 인도네시아후안 페론 아르헨티나 등의 사례들도 찾아볼 수는 있다. 허나 이것은 그 '과도기'라는 지표를 누가 설정하냐는 문제가 있다. 이런 식의 논리면 훗날에도 누구든 지금 사회가 불안하고 경제가 어려우니 과도기적 형태로 내가 독재를 하겠다고 나설 수 있기 때문. 애초에 민주화된 이후 한국 정권들만 봐도 IMF, 세계금융위기를 극복하고 IT, BT, 한류, 에너지 사업 같은 신산업을 육성하는 등 경제성장에 충분히 기여한 공이 있고, 오히려 절대치로만 보면 이 시절에 훨씬 성장은 많이 했다. 그리고 반도체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듯 정부는 간접적으로 도와주는 것이지 결국 핵심은 기업가와 노동자, 장인이 일궈내는 것이다. 이걸 간과하고 자꾸 왕조시대처럼 정치 지도자의 몫으로만 돌리는 것은 애초에 부적절한 평일 수 있다.

중국 공산당은 트로츠키를 이단으로 간주하지만, '정통' 트로츠키주의 계열에서는 제국주의론을 근거로 부분적으론 친중 성향을 강하게 띄는 경우가 있다. 이유는 주로 중국이 1949년 사회혁명을 통해 사적 소유가 철폐되었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국유화된 경제체체를 보존하고 있는 '기형적 노동자 국가'라 여기기 때문이다. 1978년 이후 개혁개방을 통해 외국 자본을 유치하고 국영기업의 운영에 자본주의적 경영방식을 도입했어도 사회의 근간은 어찌되었든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국유경제 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므로, 사적 소유를 철폐한 1949년의 사회혁명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입장인 것이다.[11] 이러한 이유로 운동권에서 사상적으론 가장 강한(?) 친중 성향을 띈다고 보는 사람도 있는데, '스타'[12]계 PD나 NL의 경우 중국이 '비록 자본주의로 되돌아가긴 했지만[13] 북조선의 서포터 역할을 해주면서 미국 제국주의를 견제하고 있기 때문'에 친중 성향을 띄기도 하는 반면, 이쪽 계열 PD의 친중 성향은 중국이 '사회혁명을 통해 사적 소유를 철폐하고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중간 단계에 있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사회주의로의 완전한 이행에 도움이 되는 중국 공산당 관료집단의 경제개발 정책[14]이나 국방력 강화 정책[15]을 부분적으로 지지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류샤오보 같은 친서방 자유주의 세력은 '기형적 노동자 국가 중국의 존립을 위협하는 반동주의, 반혁명 세력'으로 여길 수도 있는데, 사실 이건 좀 논쟁의 여지가 있는 부분으로 정통 트로츠키주의 계열 PD 구성원들도 2010년대 기준으로 중화인민공화국의 모든 것을 긍정한다는 것은 아니어서, 중국 공산당 관료집단의 소수민족 억압 정책이나 제국주의와의 평화공존 추구 정책을 비롯하여 트로츠키주의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강하게 비판하는 입장이다. 무엇보다도 궁극적으로는 중국에서도 정치혁명을 통해 중국 공산당 관료집단을 퇴진시키고, 민주적인 혁명 지도부가 중국 공산당을 장악하여 노동자 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한다는 것이 중국 공산당에 대한 트로츠키주의 계열 PD의 입장이다. 이쪽도 민주집중제를 지지하기는 하지만, 지금 중국 공산당은 레닌이 주장한 진정한 민주집중제가 아니라 스탈린에 의해 1차 왜곡, 마오쩌둥에 의해 2차 왜곡을 거친 마개조판이기 때문에 진정한 민주집중제라 할 수 없다고 여긴다. 진정한 민주집중제를 실현하려면 정치혁명으로 관료집단을 퇴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상의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정통' 트로츠키주의 노선을 따르는 계열의 이야기이고 신트로츠키주의계열의 경우는 강성 반중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들의 입장은 중국이 처음부터 국가자본주의였다가 시장자본주의가 된 것이고, 약소민족을 억압하고 인권을 탄압하는 제국주의 독재국가라 여기기 때문에 미국 제국주의와 별반 다를 것 없는 세력으로 여기는 것이다. 이쪽은 거꾸로 운동권에서 가장 반중 성향이 강하다고 봐도 딱히 틀린 말은 아니다. 당연하게도 류샤오보 같은 친서방 자유주의 세력을 민주화 투사로 여겨 적극 지지한다.

3.2. 외교

중화인민공화국과 정식 수교를 한 정부는 당시 북방 외교를 표방한 노태우 정부였다. 이후에도 여러 정권들이 들어서는 동안, 경제적인 이해관계도 있고 일본과의 과거사 분쟁에서는 입장이 비슷한 중국이 도와주는 측면도 있었기에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양국 관계를 격상시키는 등 적대하지 않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그러나 한중관계의 급격한 진전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북한을 대미 라인의 완충선, 즉 순망치한 관계로 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북한의 붕괴를 바라지 않는다. 물론 한국 입장에서는 경제문화적 교류와 개선된 한중관계를 바탕으로 중국이 대북정책에서 선회해 주기를 기대했겠지만, 중국은 독재 국가의 특성상 지극히 현실주의적인 외교를 추구하는데다 한중관계의 신뢰가 중국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낼 정도로 깊지는 못했다는 것이 문제이다.

민간에서도 경제 수출, 수입 의존도 등을 들며 경제를 위해서 중국과 친하게 지내야 한다는 사람들이 있지만, 객관적인 기준으로 봐도 중국이 경제적으로 선진국이 아닌 개발도상국 수준에 머물러 있고 아직 시민의식이나 사회, 정치 체제의 선진성 등에서 선진국에 비해 부족한 부분이 많으므로 지지받지 못한다. 극단적 친중주의자들 중에는 중남미 국가들의 사례를 들면서 왜 그들 중 다수가 반미가 되었겠냐며 미국의 제국주의적 행보를 비판하는 경우도 있다. 이에 대해서 미국 제국주의 행보에서 피해를 크게 입은 국가가 중남미라는 미국 주변 국가이듯이 중국의 제국주의적 행보에 피해를 크게 입은 국가가 한국이라는 비판이 있다. 즉 이들의 주장대로라면 한국은 멕시코가 친중을 해야 하듯이 친미를 해야 한다. 물론 이 친미란 게 마냥 굴종적인 외교를 말하는 건 아니고 부당한 일엔 할 말 해야겠지만, 주변 강대국 중 역사적으로 가장 분쟁 요소가 적고 어찌됐건 피를 흘린 혈맹국이란 점은 변하지 않는다.

일부는 타클라마칸 사막이나 타림 분지 일대에서 출토되었다가, 한국의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 중인 위구르의 유물들을 중국에 반환 내지는 판매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3.3. 역사

중국은 한국 못지않게 반일 성향이 강한 나라로서, 반일 성향의 한국인 중에는 중국의 반일성향을 보고 중국을 우호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또한 한국일본일제강점기 관련된 외교갈등에서는 중국은 한국편을 들어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중국과 힘을 합쳐서 일본을 견제하고 일본에 대항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친중파들도 많다. 그래서인지 인터넷에서도 중국이 일본을 조롱하거나 욕하는 식의 글, 영상, 뉴스가 올라오면 한국 인터넷의 사용자들이 거기에 공감을 많이 해주는 편이다. 하지만 증가한 반일 여론과 맞물려 반중감정이 매우 거세지면서 일본과 중국 둘 다 까는 여론이 급증해 현재는 중국이 일본 욕을 하면 같이 사라져라든지, 중국도 일본 못지않게 쓰레기라든지, 한국 위치가 쓰레기라든지 같은 반응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여담으로 일제강점기 시절 중화민국이 임시정부를 도와줬기 때문에 좋아하는 경우도 있으나, 주의할 건 중화민국중화인민공화국다른 나라다. 임시정부를 도운 건 중화민국의 장제스였고[16] 이들은 현재 국부천대를 통해 타이완 섬으로 이주한, 통칭 대만이라고 불리는 나라이다. 그리고 대륙의 중화인민공화국은 마오쩌둥중국공산당이 세운 다른 나라로, 이들은 자신들을 신중국이라고 부름과 동시에 현재 대만으로 밀려난 중화민국을 구중국이라고 부르며 자신과 다른 존재로 본다. 오히려 마오쩌둥은 아이러니하지만 일본 제국이 장제스를 공격해 공산당이 살 수 있었다고 감사를 표했다는 말도 있다.# 즉 일제강점기 관련해 중공과 한국을 연관짓는 것은 역사적 무지라 볼 수 있다. 요즘에는 이러한 역사적 관계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진 덕에 임정시기 장제스의 지원에 고마움을 품고있는 친중의 경우 상당수 친중화민국 성향을 가지며 대륙중국을 상대로는 되려 반중성향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4.중화인민공화국이 아닌 친 중화권인 경우

4.1. 문화

정치적인 친중이 아닌 단순 문화적으로 친중인 경우가 있는데, 이들 중에서는 정치적으로 반중공인 사람들이 많다. 이러한 경우, 대다수는 친중화인민공화국보다는 친중화민국 내지 친대만[17]이거나 중국 민주화 지지자일 가능성이 높다.

한국이나 일본의 경우에는 외형적인 모습이나 한자 같은 중국 문화와 호환되는 요소도 몇 있고, 중국어의 반강제적인 직역 문화라던가, 요리가 맛있다든가, 특유의 성조 등에 반해서 친중이 되는 경우도 있다. 삼국지빠가 친중이 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이 경우에는 문화를 검열하는 중국공산당을 싫어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이유로 중화권이지만 중공의 통제영역이 아닌 대만이나 싱가포르를 좋아하거나 여행가는 한국인들이 많이 늘었다.

또한 최근에 한국으로 진출하는 중국 게임 등의 서브컬처로 인한 영향으로 젊은 층에서도 이러한 문화적 친중이 세를 넓혀가고 있다. 물론, 서브컬처를 즐기는 세대는 주로 젊은층이고 이들은 중국 공산당의 만행을 잘 알고 있기에 문화적으로만 우호적으로 대할 뿐, 정치적 친중의 숫자는 극히 적다. 오히려 이들은 자기들이 즐기는 문화를 탄압하는 중국공산당을 혐오하는 세력이 훨씬 압도적이다.

한국 기성세대의 경우 문화적으로 친홍콩 성향이 강했다.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지금은 이것도 친중의 한 하위 분파로 볼 수 있겠지만. 이들은 8~90년대에 주로 홍콩 영화와 가요를 자주 접했다. 이 과정에서 간접적으로 본토 출신 배우(공리, 이연걸, 장쯔이 등)나 대만 출신(임청하, 왕조현 등)에도 노출되었다. 그러다 홍콩 반환 이후 홍콩 영화가 몰락하고 본토 영화의 양이 많아지면서 젊은 시절 홍콩 영화를 향유하던 계층의 일부가 중국 영화/드라마의 팬으로 흡수되었다. 한국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볼 수 없는 큰 스케일이나, 아직 정통파 사극을 많이 유지하고 있는 중국 사극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다.

4.2. 국제결혼

국제결혼#을 통해 친중에 가까워지거나 친중이 된 사람들도 꽤 있을 것이다. 세계화로 인해 국제결혼이 점점 증가하는 추세인데 한국인과 가장 많이 결혼하는 외국인이 바로 중국인이다. 인종/문화적으로 유사성이 높아서 거부감이 덜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국 남성과 현재 가장 많이 결혼하는 상대는 베트남 여성이지만 이는 최근 1~2년 사이의 이야기고 아주 오랜 기간 동안 한국 남성과 가장 많이 결혼한 여성은 조선족을 포함한, 중국 여성이었다. 2021년 국제결혼 통계에서는 중국인 여성이 베트남인 여성을 재역전했다.

또한 일부 중국에서 활약하는 한류 연예인들이 중국인과 연애하거나 결혼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한국인들이 결혼 대상으로서의 중국인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뀐 측면도 있다.[18] 즉 현실적으로 '다문화'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는 달리 한국 다문화가정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한-중 다문화 가정이고 이들 부모 밑에서 성장한 자녀들은 당연히 한국 못지않게 중국에도 문화적 친근감을 느끼며 성장하게 될 확률이 높다.

그러나 매스컴에 나오는 한-중 커플 등 국제연애나 국제결혼의 성공사례들은 한류 연예인 등처럼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돈도 많이 번 글로벌능력자들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고, 일반인의 경우는 기본적으로 문화차이의 극복도 과제이고 결혼사기의 위험도 있는 등 실패의 위험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중을 포함한 국제연애/결혼을 일반인은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은 지나친 비약에 지나지 않으며 한국인의 인구 감소와 꾸준한 외국인 유입에 따라 오히려 점차적으로 많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5.·친만주족

청나라 및 청나라의 지배민족이었던 만주족에 대해 호감이 있는 경우다. 조선 후기에는 진지한 의미에서의 친청·친만주족 성향인 사람들은 효종의 친청파 숙청을 기점으로 완전히 몰락했으며, 그나마 청나라에 대한 반감이 덜했던 중상학파조차 청나라의 선진성을 본받자고 했지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 숭덕제 정권의 조선에 대한 만행을 정당화하지는 않았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군대를 파견한 만력제가 조선과 관련해서 긍정적인 야사가 많이 남아있는 반면 숭덕제는 조선과 관련해서 긍정적인 야사가 사실상 없다시피 하고[19], 숭덕제의 손자인 강희제가 조선 후기 실학자 홍대용에게 실로 영걸한 황제였다며 극찬을 받은 반면 숭덕제 본인은 조선 후기 실학자들 중 그 누구에게도 그런 식의 극찬을 받은 적이 없는 점을 봐도 조선 후기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숭덕제에 대한 인식이 좋았다고 보기 힘들다. 훗날 청일전쟁 당시 청나라가 조선을 일본 제국의 침략으로부터 지켜주기는커녕 오히려 조선 백성들에게 민폐를 끼치기만 하고 졸전을 거듭한 끝에 결국 일본 제국에 패배한 점 또한 조선인들의 청나라에 대한 반감을 더더욱 키운 셈이 되었다.

그러던 것이 일제강점기, 그것도 일제강점기 말을 기점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일제강점기 말에 일본 제국은 한창 팽창주의를 추구했으며, 그에 따라 조선 지배로 만족하지 못하고 만주까지 침공하여 만주국을 세우기까지 했다. 이후 중일전쟁을 일으키기까지 한 일본 제국은 자신들의 중국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라도 자신들과 비슷한 만행을 저지른 다른 외세를 좋게 평가할 필요가 있었는데, 그 다른 외세가 바로 병자호란 당시의 청나라였다. 그에 따라 일본 제국은 병자호란 당시의 청나라를 매우 높이 평가했으며, 조선인들에게는 임진왜란 당시의 명나라 만력제 정권을 조선에 어떤 도움도 되지 않은 무능한 정권으로 비하하고 병자호란 당시의 청나라 숭덕제 정권을 조선에 자비를 베푼 정권으로 미화하는 역사관을 주입했다. 이러한 식민사관의 영향은 21세기 초까지 계속 이어져서 한국에서 병자호란과 관련해서 조선을 일방적 가해자로 묘사하고 청나라를 조선에 자비를 베푼 대인배 침략자로 묘사하는 역사왜곡이 일어나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만주족이 자신들만의 나라를 세우지 못한 채 중국 문화에 거의 동화되어 존재감마저 희미해졌기 때문에, 만주족에 대한 한국인들의 반감 또한 희석되어 병자호란과 관련해서 숭덕제를 마음껏 미화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셈이 되었다.[20] 여기에 동북공정으로 인한 한국인들의 반중감정까지 더해져서 만주족이나 몽골족 같이 중국을 정복하여 지배한 적이 있는 북방 유목민족들이 한국인들에게 엄청난 찬양의 대상이 되는 경우도 많아졌다. 이러한 일들은 현대에 청나라와 만주족에 대해 호감이 있는 한국인들이 많이 생겨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숭덕제가 주연급 인물로 나오는 중국 사극이 한국에서 아무 문제 없이 방영될 정도였다.

그러나 2010년대 이후로는 한국 역사학계에서 병자호란 당시의 청나라 숭덕제 정권을 부정적으로 재평가하는 의견이 주류가 되었으며, 일반 대중 사이에서도 그런 부정적 재평가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시진핑 정권이 들어서는 것을 기점으로 한국 정부에 여러 부당한 요구를 하기 시작한 중화인민공화국이 립서비스로나마 자신들을 청나라의 후신으로 여기는 것 또한 청나라와 중화인민공화국을 등치시켜 그 두 국가의 한민족에 대한 갑질을 부각시키는 경우가 많아지는 데 한 몫 하고 있다.[21]

5.1. 비판

극도의 친청·친만주족 성향 한국인들은 병자호란은 잘만 정당화하면서 정작 임진왜란일본 제국조선 식민지배는 절대로 정당화하지 않는 이중잣대를 보여주는데, 이는 그들이 자신들의 친청·친만주족 성향을 항일의식과 철저히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들은 환빠와 결합하여 한민족과 만주족을 같은 민족으로 여기는 경향이 강해서, 청일전쟁만주국으로 대표되는 만주족과 일본인의 악연을 한민족과 일본인의 악연과 완전히 동일시하기까지 한다. 그래서 그들은 일본의 조선 침략을 비판하기 위해서는 청나라를 무조건 옹호해야 하고 만약 청나라의 조선에 대한 만행을 적극적으로 비판한다면 그것은 곧 친일반민족행위라는 진영논리에 빠진 셈이다. 그렇다 보니 그들 중에서는 청나라를 통한 서양문물 도입 경로가 없었다면 일본중심적 도입 경로에 절대적으로 의존하여 조선인들의 항일의식이 꽃피우기가 힘들었을 거라는 억지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다.이미지[22] 그들의 그런 성향이 상술한 것처럼 식민사관의 영향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매우 아이러니한 일이다.

또한 21세기의 미국과 중국을 각각 병자호란 당시의 명나라와 청나라에 대입하면서 극도의 친중반미 성향을 보여주기까지 한다. 이들은 조명관계를 극도로 깎아내리고 조청관계(특히 숭덕제 치세)를 극도로 미화하는 경향이 강한데, 21세기 미국을 병자호란 당시의 명나라와 같은 망해가는 나라로 여기고 21세기 중국을 병자호란 당시의 청나라과 같은 떠오르는 나라로 여기면서 청나라 숭덕제 정권과 21세기 중화인민공화국에 대한 정당한 비판마저 어떻게든 틀어막으려고 하며 극단적인 친청·친만주족 성향과 친중공 성향을 보여주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친청·친만주족 성향 남한인들의 최대 전성기가 동북공정으로 인해 한국인들의 반중공 성향이 극에 달했던 2000년대임을 감안하면, 반중공(+친청·친만주족) 성향 남한인들 중 일부가 친중공 성향으로 변절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중공이 립서비스로나마 자신들이 청나라를 계승했다고 주장하고 더 나아가 적극적인 팽창주의를 추구하는 현 시점에서 친청·친만주족 성향 남한인들의 친중공화는 안보적으로 위험하다고 볼 수 있다. 친중공화된 친청·친만주족 성향 남한인들이 유사시에 중공의 남한 재침공 시도를 위해 이용될[23]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친청·친만주족 성향 한국인들은 병자호란을 조선 인조 정권의 지나친 친명 정책 때문에 일어난 전쟁으로 여기는데, 정작 구한말에 있었던 일본 제국의 조선 침략은 조선 고종 정권의 지나친 친청 정책 때문에 일어난 일로 여기지 않고 철저히 일본 제국의 잘못으로 여기는 이중잣대를 보여준다. 구한말 당시의 청나라가 병자호란 당시의 명나라와 비슷한 포지션이었는데도 말이다. 사실 이는 친청·친만주족 성향 한국인들이 청나라의 쇠퇴기에 관심이 없거나 관심이 있더라도 청나라의 쇠퇴를 청나라 수뇌부의 책임으로 여기지는 않는다는 걸[24] 감안해야 하는 측면이 크다.

친청·친만주족 성향 한국인들이 가진 또 다른 문제점으로는 자신들의 친청·친만주족 성향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명나라에 대한 사대주의에 빠진 족속들로 몰아가면서 정작 자신들이 만주족에 대한 사대주의에 빠진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자각하지는 못한다는 것이 있다. 이는 일본 제국을 찬양하는 일뽕 성향 한국인들이 자신들의 일뽕 성향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빨갱이로 몰아가면서 정작 자신들이 좋아하는 일본 제국이 지금의 북한 김씨 정권·중국 시진핑 정권·러시아 푸틴 정권과 다를 바 없는 잔혹한 독재국가였다는 사실은 애써 외면하는 것과도 같다. 사실 친청·친만주족 성향 한국인들은 한민족과 만주족이 같은 민족이라는 생각에 빠져 있다 보니 자신들의 친청·친만주족 성향이 사대주의가 아니라 애국심이라고 굳게 믿는 것에 가깝다.

한편 친청·친만주족 성향 한국인들은 숭덕제를 조선에 자비를 베풀어 조선의 주권을 보존해준 고마운 인물로 미화하면서[25] 정작 진짜로 조선에 관대한 성향이었던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또 다른 모순점을 보이기도 한다. 실질적인 조청관계 개선이 강희제 치세부터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숭덕제가 조선에 자비를 베풀어 조청관계 개선에 기여했다고 굳게 믿는다. 어떻게 보면 일본 제국을 너무나도 좋아하는 일뽕 성향 한국인들이 일본 제국 수뇌부를 조선을 근대화시켜준 고마운 사람들로 미화하면서 정작 이방자, 가네코 후미코, 후세 다쓰지 같이 진짜로 조선에 우호적이고 조선인들을 위한 일을 했던 일부 일본 제국 인물들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것과도 비슷하다.

아이러니한 점은 친청·친만주족 성향 한국인들이 조선 인조 정권의 친명 외교를 비판하는 논리가 자주적인 외교의 중요성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상술한 내용을 감안하면 그들은 진지하게 자주적인 외교를 좋아한다고 보기 힘들며, 오히려 전성기의 청나라만 생각하고 쇠퇴기의 청나라는 생각하지 않으면서 조선과 명나라를 무조건 청나라보다 열등했던 나라로만 보며 청나라 중심의 선악이분법[26]과 청나라에 대한 문화 사대주의에 빠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들은 고종의 친청 외교에 대해서는 청나라에 대한 사대주의라는 식의 비판을 절대 하지 않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결국 친청·친만주족 성향 한국인들은 자신들이 그토록 증오하던 극단적 친명 성향 조선인들과 다를 바 없는 (사대의 대상만 명나라에서 청나라로 바뀐) 사대주의에 빠져 있으면서 자신들의 그러한 사대주의를 자주적인 사고방식으로 착각하는 모순적인 집단이며, 더 나아가 친청·친만주족판 뉴라이트인 셈이다. 일본의 침략으로부터 조선을 구해준 명나라의 은혜에 대한 조선 중후기 사람들의 집착을 비판하면서 명분보다 실리를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친청·친만주족 성향 한국인들이 정작 자신들 또한 '조선의 주권을 보존해준 숭덕제의 은혜'라는 진영만 바뀐 또 다른 (그리고 매우 어이없는)[27] 명분에 집착하는 모순에 빠진 셈이며, 이러한 모습은 일뽕 성향 한국인들이 '조선을 근대화시켜준 일본 제국의 은혜'에 집착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6. 관련 문서


[1] 이는 대한축구협회의 뻘짓도 한몫했다. 심지어 중국과의 경기는 차범근 감독도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대한축구협회의 강압으로 이루어진 것이다.[2] 웃긴 건 그 황선홍이 25년 후 U-23 대표팀을 이끌고 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을 대비한다는 구실로 중국 땅에서 중국과의 평가전을 2연전으로 잡았다는 것이고, 우려했던 대로 이 2연전에서 주축 선수 3명이 부상당했다. 한마디로 내가 당한 만큼 너희들도 당해야 한다꼰대 마인드. 거기다가 경기 후 해명도 가관이었는데, "중국이 그렇게 거칠게 나올 줄 몰랐다."(...) 본인이 그렇게 다쳐놓고 아직도 몰라요? 치매?[3] 사실 베트남은 홍콩 국가보안법 통과 당시 '홍콩은 중국의 내정이다'라는 입장을 밝히면서 중국 정부를 지지하는 등# 중국 내의 문제에 대해 중국 정부의 편을 드는 경우가 많으며, 최근 친중파가 정부 주요 요직들을 차지하면서 앞으로도 친중 색채가 더욱 짙어질 전망이었다. 다만 남중국해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베트남 수뇌부조차 중국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으며, 정부가 친중인 것과는 별개로 베트남 국민들의 중국에 대한 감정은 한국인의 대일 감정 수준으로 좋지 않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남중국해 문제에 있어 중월 양국 모두 더더욱 예민해지고 있기 때문에, 베트남의 친중 색채가 짙어지는 데도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마치 한일관계 문서에 나온 이유 때문에 대한민국의 친일 색채가 짙어지는 데 한계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4] 대표적으로 김용옥은 중국에 대한 TV 프로그램인 《차이나는 클라스》에서 "다당제보다 일당제가 오히려 민주적일 수 있다" 라고 주장하였다.[5] 원자바오 전 총리의 경우 좀 더 서구식 민주주의에 가까운 중국식 민주주의를 주창하기도 했다. 물론 퇴임 이후엔 사그라든 모양새지만.[6] 자유민주주의 뿐 아니라 북유럽사회민주주의도 포함된다. 일단은 사회주의라는 같은 뿌리에서 출발했으나, 북유럽은 언론자유지수나 민주주의지수 면에서 톱을 달리는 선진국인 반면 중국 공산당은 언론 탄압이나 부패, 인권 등의 지표에서는 경제력을 감안하더라도 최하위권에 머무르고 있다.[7] 영국, 프랑스자유민주주의에 맞서, 독일에는 국가에 대한 충성과 복종, 성실을 미덕으로 삼는 독일만의 '특수한 길'이 있다는 주장.[8] 다만 서독과 일본은 전쟁 전에도 잘 나가는 국가였으며, 홍콩은 도시국가에 준하는 수준의 자치령이기에 완전하 후진국에서 급성장을 이뤘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9] 싱가포르. 사실 여기도 투표는 한다.[10] 애초에 20세기 들어 낙농국가에서 중화학 육성 공업 정책을 추진해 성공한 거의 최초의 케이스다. 덕분에 대공황으로 휘청거리던 당시 서유럽을 제치고 미국 다음가는 G2로 단숨에 치고 올라간 것. 그리고 이런 소련을 보며 당시 사회주의 운동이 더 기승을 부린 것도 있으니 지금 와서 보면 참 아이러니.[11] 실제로, 중국 기업의 80% 이상은 국영기업이며, 이 국영기업의 사장들은 대부분 공산당 당원이고, 기업의 운영권만 갖고 있을 뿐 기업을 물려주거나, 팔아치우거나, 아니면 임의로 폐쇄하거나 할 권한은 없다. 큰 사고를 치면 당연히 파면된다.[12] 스탈린을 가리키는 80년대 운동권 은어. 마르크스는 M선생, 레닌은 L선생이라 했고, 90년대 이후에 들어온 트로츠키는 '트로'가 되었다.[13] 스탈린주의 계열은 친중 성향이어도 빠르게는 1978년 개혁개방, 늦어도 2007년 전인대에서의 물권법 통과를 계기로 중국이 자본주의로 되돌아갔다고 여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미국-중국 패권 경쟁이 격화되고 있는 2010년대 말 이후부터는 미국과는 또 다른 제국주의로 성장하고 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14] 이쪽의 경우에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같은 경제개발 정책이라도 사회주의적 요소를 띠는 정책은 지지하고, 자본주의적 요소를 띠는 정책은 반대한다.[15] 이쪽의 경우에는 지지하는 경우가 많다.[16] 물론 이것도 순수하게 도와줬다기보단 전쟁 이후 한반도에 친중 정권을 세워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음모론적으로 나가면 몽골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한 것처럼 아예 한반도를 꿀꺽하려 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믿거나 말거나. 하여튼 결과는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바로 공산당에 밀려나면서 흐지부지되었다.[17] 대만은 헌법 상 자신들이 진짜 중국이라고 주장하므로 친중화민국 역시 친중의 범위에 속한다. 그러나 친대만의 경우는 친중화권은 맞으나 친중은 아니다.[18] 채림, 송승헌, 주진모, 함소원, 추자현, 김태용 감독 등이 중국인과 연애하거나 결혼했다. 연예계의 한-중 커플이 남녀를 가리지 않고 2010년대 들어 많이 보이는 조합이다.[19] 병자호란이 일어난 게 숭덕제 본인보다 용골대 등 그 신하들 탓이라는 식의 내용인 야사들조차 숭덕제를 직접적으로 비판했다가 청나라에 꼬투리 잡힐까봐 어쩔 수 없이 그런 내용으로 한 것에 가까우며, 최소한 삼전도비와 같은 수준의 엄청난 숭덕제 미화는 없다.[20] 마치 아즈텍 제국준가르가 주변국의 입장에서 극악무도한 침략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비참하게 멸망한 것 때문에 현대인들에게 동정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것과 같다. 사실 일본 제국도 한국인들의 반일감정 때문에 한국 내에서는 크게 부각되지 않을 뿐, 반일감정이 없거나 적은 다른 나라들(특히 일본의 전쟁범죄를 잘 모르는 서양권)에서는 멸망 과정에서 도쿄 대공습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라는 비극이 일어난 것 때문에 동정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21] 헌데 청나라도 조선에 갑질을 안 한 건 아니나 그 갑질 수준이 심했던 것도 중원을 손에 넣기 전의 이야기다. 조청관계는 조명관계보다 좋진 않았지만 청나라도 중원을 손에 넣고부터는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고 최후의 저항세력인 동녕 왕국남명까지 격파하고 나서는 (겉으로나마) 가만히 있는 조선을 계속 갈굴 까닭도 없었기에 이후로는 관계가 어느 정도 개선되었다. 적어도 청나라는 여유로운 상황에서는 기본 예의는 지키며 조선을 대했으니 현대 중국이 청나라보다 더하다. 물론 후술할 내용처럼 진짜로 조청관계 개선에 기여한 청나라 황제인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를 놔두고 굳이 숭덕제를 조선에 자비를 베푼 인물로 미화하는 한국인들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건 심각한 문제이긴 하다. 극단적인 친중공 성향의 한국인들로 치면 그들이 (문제점이 없지는 않아도 최소한 시진핑에 비하면) 진짜로 한국에 관대한 성향이었던 장쩌민후진타오를 놔두고 굳이 시진핑을 옹호하는 것과도 같으며, 한국의 친일세력으로 치면 그들이 진짜로 한일관계가 우호적이었던 백제-아스카 시대(백제-일본 관계 문서 참고)와 조선 전기-무로마치 시대 전성기(무로마치 시대 초기와 무로마치 시대 말기는 왜구의 침입 탓에 한일관계가 악화되었던 시기다.) 그리고 조선 후기-에도 시대 초중기를 놔두고 굳이 일제강점기를 한일관계가 우호적이었던 시기로 미화하는 것과도 같다.[22] 당연하지만 애초에 청나라가 한창 조선에 서양문물을 유입시키던 청나라의 전성기는 조선인들에게 항일의식 자체가 불필요했던 시기다. 당시 일본은 조선과의 관계가 개선되었던 에도 시대였기 때문이다. 조선인들의 항일의식은 어디까지나 임진왜란으로 인한 도요토미 정권과의 악연 및 일본 제국의 조선 침략으로 인한 일본 제국과의 악연 때문에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이지, 청나라의 도움을 받고 나서야 비로소 생겨난 게 아니다.[23] 이 경우 중공 정부는 자신들의 남한 재침공을 정당화하는 차원에서 숭덕제가 일으킨 병자호란을 적극적으로 정당화할 가능성이 크다.[24] 오히려 영국 등 서구 열강의 청나라 침략 때문에 자신들의 친청·친만주족 성향에 입각한 극도의 반서방 성향을 보이는 경우도 많다. 병자호란과 관련해서는 당시 침략자였던 청나라를 사연 있는 침략자로 여기며 두둔하고 당시 침략의 피해자였던 조선을 자업자득으로 침략당한 나라로 비하하면서, 정작 아편전쟁 같이 청나라가 침략당한 사건과 관련해서는 반대로 당시 침략자였던 영국을 극악무도한 침략자라고 욕하고 침략의 피해자였던 청나라를 선량한 피해자로 여기며 동정하는 모순인 셈이다.[25] 애초에 숭덕제의 조선에 대한 '주권 보존' 자체가 알고 보면 거품이 심하게 낀 것이다. 조선을 명나라 침공을 위한 도구로 써먹으면서 조선인들을 강제로 징병하여 명나라와의 전쟁에 강제로 동참시키고 조선의 식량자원을 수탈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런 것이 실질적인 주권 보존으로 바뀐 것은 강희제 치세의 일이다. 만약 강희제 본인 및 옹정제 등의 후임자들조차 전부 조선을 수탈의 대상으로 여겼다면 조선은 아편전쟁 등 청나라가 쇠퇴할 기미가 보이는 사건이 일어났을 때 망설임 없이 청나라와의 조공책봉관계를 끊으려고 했을 가능성도 있다. 조선이 병자호란으로 대표되는 청나라와의 악연 및 아편전쟁으로 대표되는 청나라의 쇠퇴에도 불구하고 청일전쟁 이전까지 청나라와의 조공책봉관계를 쉽게 끊지 않은 것은 강희제 치세부터 시작된 조청관계 개선도 크게 한몫 했다.[26] 아이러니하게도 친청·친만주족 성향 한국인들은 병자호란 당시의 청나라에 대한 정당한 비판을 조선 중심의 선악이분법으로 몰아가고 있다.[27] 조선 중후기 사람들의 친명 성향은 차라리 명나라가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군대를 보내 일본의 침략을 막아준 점에서 타당한 명분이 있기라도 하지, 21세기 대한민국의 친청·친만주족 성향 한국인들이 숭덕제를 존경하는 건 청나라 숭덕제 정권이 다른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조선을 구해준 적이 없고 오히려 그 자신들이 임진왜란 당시의 일본과 비슷하게 조선을 침략한 외세였다는 점에서 명분과 실리를 모두 저버린 잘못된 역사관이다. 애초에 실리를 추구하기 위해 침략자를 옹호한다는 것 자체가 전형적인 식민사관이다. 그리고 병자호란 당시의 숭덕제마냥 침략해놓고 주권을 보존해준다는 건 병 주고 약 주는 격이지 결코 은혜를 베푼 것이라고 볼 수 없다. 사쓰마 번이 명목상 류큐 왕국의 주권을 보존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류큐인들의 사쓰마 번에 대한 인식이 최악인 게 무엇 때문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