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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남독군 교체 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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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배경3. 전개
3.1. 우광신의 하남독군 임명3.2. 직예군벌과 하남인들의 반발3.3. 우광신 임명안 부결3.4. 타협안
4. 결과5. 참고문헌6. 관련 문서

1. 개요

1920년 2월 23일, 중화민국 국무총리 돤치루이직예군벌의 3사단장 우페이푸를 저지하기 위해 하남독군 자오티를 해임하고 자신의 처남이며 심복인 우광신을 하남독군에 임명하려다가 발생한 정치적 파동을 말한다.

2. 배경

1914년, 위안스카이의 학정에 반발하는 백랑기의가 일어났다. 위안스카이는 백랑기의 진압을 위해 당시 육군총장이었던 돤치루이에게 하남도독 자리를 주어 백랑기의를 토벌하게 했는데 이때 등장한 인물로 자오티란 사람이 있었다. 자오티는 백랑기의 진압에 참여하여 8월에 기의가 진압된 이후 하남독리로 임명되었고 1916년 7월 이 자리는 하남독군으로 개칭되었다. 이후 자오티는 위안스카이의 홍헌제제를 칭송하며 호국전쟁을 일으킨 탕지야오, 차이어, 량치차오 등을 맹비난하다가 위안스카이 사후 공화국이 부활하자 부원지쟁에서 돤치루이를 지지하고 1917년 돤치루이의 장훈복벽 진압에 앞장서는 등 북양군벌의 대세에 충실하게 살아온 사람이었다.

하지만 돤치루이의 안휘군벌에 대항하는 직예군벌이 형성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쉬수정호법전쟁외몽골 출병 등을 통해 무력통일을 주장했고 펑궈장, 차오쿤, 우페이푸 등 직예군벌은 이에 반대한 것이었다. 직예군벌의 3사단장으로 호법전쟁에 참전했던 우페이푸는 1918년 3월 26일 호남성 장사를 점령하였으나 직계와 환계의 대립이 심해지면서 진군을 중단했고 호법전쟁 종결 이후 환계가 변방군을 조직하여 무리하게 정치적 기반을 강화하려 하자 이를 견제하기 위해 병사들이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고 군량미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북상을 선언하여 병력을 북쪽으로 이동시켰고 돤치루이는 이것이 자신에 대한 큰 위협이 될 것이라 여겨 우페이푸의 북상을 저지하려 했다. 그 방법 중 하나가 하남독군을 교체하는 것이었다.

3. 전개

3.1. 우광신의 하남독군 임명

1920년 2월 23일, 돤치루이는 안휘파의 4대금강 중 한 사람이자 자신의 처남인 장강상류총사령(長江上遊總司令) 우광신을 하남독군에 임명하였으며 자오티가 1917년부터 겸임해오던 하남성장 자리에도 안복계 정객 왕인천을 임명하였다. 이는 비록 자오티가 그간 자신에게 동조했지만 어쨌거나 그 근원이 안휘파라고 볼 수는 없기 때문에 자신의 명령에 충실할지를 의심했다. 또한 자오티의 군사력이 빈약하여 우페이푸의 북상을 무력으로 저지할 수 없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우광신을 하남독군에 임명하여 하남을 확실히 장악, 안휘파의 병력으로 우페이푸의 북상을 저지하려 하였다. 하지만 7년이나 하남을 안정적으로 통치해왔던 자오티를 다짜고짜 내친 것은 자오티 개인은 물론, 하남성과 중국 전체에 큰 충격을 주었다.

하지만 자오티는 호락호락하게 자신의 기반을 내어줄 생각이 없었다. 이미 7년이나 하남을 지배했던 자오티는 하남에서 축출당할 것을 대비하여 1919년 여러 간부들과 함께 공동으로 항거하겠다는 정하고 중앙정부에 뇌물을 상납하고 있었다. 독군 교체 소식이 들려오자 자오티는 격렬히 반발하며 경한철로 남단에 병력을 배치하여 우광신의 취임을 무력으로 저지하려 했다. 자오티는 하남성 전군을 동원하여 1,2,3로군으로 나누었고 각 사령관에 친지와 심복들을 임명하여 결사항전의 태세를 갖추는 한편, 환계를 타도하기 위해 조성된 7성동맹에 접촉하여 환계의 정적인 직예군벌들과 봉천군벌의 도움을 얻고자 하였다.

3.2. 직예군벌과 하남인들의 반발

우광신의 하남독군 임명이 직계에 대한 견제라는 것은 너무도 명백했기 때문에 직예독군 차오쿤이 대총통 쉬스창에게 우광신 임명에 대해 반대를 표명했다.
"종전 호남전 이후 돤치루이는 호남 독군의 지위를 장징야오에게 맡김으로써 호남 독군 교체파동을 일으켜 아직 그 충격이 가시지 않았는데, 최근 다시 자신의 친척을 위해 질서가 잘 유지되어 온 하남을 전장으로 내몰려 하니 어찌 천하의 인심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또한 우페이푸 역시 자오티 해임에 대해 강한 반대를 표명하였다.
"지방관리는 일가의 개인 재산이 아니고, 정권은 일계의 영업이 아닙니다. (...) 전국이 넓기 때문에 일계가 모두 장악할 수 없고, 지방관리가 다수이어서 일당이 모두 장악할 수 없으며, 대중의 수가 너무 많아 일인이 모두 강제로 부릴 수는 없습니다."

일계는 안휘군벌, 일당은 안복구락부, 일인은 돤치루이를 겨냥한 말임이 명백했다. 직계는 돤치루이 내각이 자신에게 복종하면 존속시키고 거역하면 제거하는 짓을 서슴지 않는데 이는 청나라나 위안스카이도 하지 않던 짓이라고 맹비난하며 한 세력이 맹목적으로 독점을 시도하는 행위는 전쟁을 불러일으킬 것이라 경고했다.

또한 자오티가 하남을 안정적으로 통치해왔기 때문에 하남의 24개 단체가 자오티의 업적을 높이 평가하며 자오티의 교체를 반대했고 하남국민대회의원회는 전단지를 살포하며 우광신, 왕인천 반대 운동을 벌였다. 이는 안휘계가 하남을 장악하면 기존의 질서가 무너져 토비가 창궐할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었고 하남인으로써 하남의 발전에 힘쓰던 자오티가 사라지면 안휘계가 자신들의 파벌의 이익을 위해 하남을 지배할 것이므로 이전과 같은 통치를 기대할 수 없을 것으로 보아서였다.

3.3. 우광신 임명안 부결

이러한 강력한 반대 운동이 벌어지는 가운데 1920년 2월 26일, 국무회의는 하남독군에 우광신을, 성장에 왕인천을 임명하는 것을 의결하고 대총통 쉬스창에게 승인을 요청했다. 하지만 쉬스창은 왕인천의 성장 임명만을 승인하고 우광신의 임명안은 재가하지 않았다. 이는 쉬스창 자신이 하남 출신이며 직예군벌이 자오티를 지원하며 전쟁까지 불사할 수 있다고 강경하게 반발하는 상황에서 환계의 주장만 받아들여 내전을 야기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쉬스창은 다음과 같은 의사를 표명했다.
"내가 총통으로서가 아니라 하남인의 자격으로서 결코 하남 지방에 전쟁이 발생하지 않도록 할 텐데, 이번 독군교체는 반동을 촉발시키므로 나는 절대 이해하지 않을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돤치루이는 화가 나 국무총리 진윈펑에게 "당신이 이렇게 쓸모가 없는데 어떻게 총리 노릇을 할수 있겠는가?"라고 마구 면박을 주었다. 차오쿤도 진위펑을 찾아가 경고했다.
"자오티를 제거하고 우광신을 등용하는 것은 북양군벌의 해체를 의미하므로 절대 실행할 수 없소."

돤치루이와 쉬스창, 차오쿤 사이에서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된 진위펑은 2월 27일 국무총리에서 사직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지만 쉬스창의 만류로 2월 29일 사직이 철회되었다. 하지만 우광신 임명안을 가결시키지 못한 우광신에 대한 안복구락부의 불만이 거세지면서 이후 안휘군벌과 안복계는 남방정부와 화의를 주도하던 왕이탕(王揖唐)을 귀환시키고 주수모를 새로운 국무총리로 추천하며 진위펑 내각을 흔들게 되었다. 3월 3일에는 안복계 삼총장인 재정총장, 교통총장, 사법총장이 국무회의 출석을 거부하고 3월 4일 사표를 제출하여 진위펑 내각 붕괴를 유도했다. 차오쿤, 장쭤린 등이 내각 유지를 위해 뛰어다니고 쉬스창이 내각 유지를 주장하면서 3월 16일 돤치루이가 안복계 3총장의 사직을 취소하게 하고 3총장은 다시 국무회의에 출석하게 되었다.

3.4. 타협안

자오티는 차오쿤을 통해 베이징에 4가지 조건을 제출했다.

하지만 정부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이에 자오티는 하남성의 병력 축소 문제를 논의를 미루며 객군은 철수할 것 등을 요구했다. 이에 돤치루이도 타협안을 제출했다. 우선 자오티를 하남독군으로 유지하는 대신, 자오티의 동생을 처벌하며 왕인천을 성장으로 맞이하고 우광신의 부대 중 2개 여단을 하남성에 주둔시킨다는 것이었다. 자오티도 상황이 좋지 않았는데 하남성 부대들이 우광신 견제를 위해 출동하면서 산동-하남 성경에서 토비들이 다시 준동하였고 이 때문에 산동독군 톈중위가 자오티에게 다시 병력을 회군시킬 것을 요청했다. 더 이상 버티기 어려워진 자오티는 우페이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에 우페이푸는 호남 남부에 주둔시킨 3사단을 북상시켰고 차오쿤이 이를 지지하였다. 직예파와 자오티의 단결에 결국 돤치루이도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4. 결과

3월 8일 왕인천이 하남성장에 취임했지만 하남국민대회와 하남성의회는 왕인천을 거부했다. 특히 하남국민대회는 3월 7일 전보를 보내 "왕인천이 도착하는 날이 바로 하남 인민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날이 될 것이다."라고 위협했으며 3월 7일 제5차 하남국민대회가 개최되어 왕인천의 성장 임명을 반대하고 하남성장을 하남 인민이 선거하겠다고 결의했다. 하지만 자오티는 안휘파를 너무 자극하지 않기 위해 왕인천 취임을 환영했다. 자오티의 왕인천 환영 논리는 다음과 같았다.
"군민분치는 인민이 가장 바라는 바로서, 만약 실행하지 않으면 장차 다른 사람에게 구실을 주게 되니 차라리 이번을 계기로 실시하여 혼란을 미연에 방지하는 편이 낫다. (...) 왕인천은 본래 서생으로 경력이 보잘 것 없어 이용할만하며, 하남인이기 때문에 외성인보다는 나을 것이다."

이에 왕인천은 하남성장에 취임할 수 있었다. 이후 자오티는 우페이푸가 정저우를 통과하며 70만원의 위로비를 요구하자 그 중 20만원만 제공하며 빨리 떠날 것을 요구했다. 우페이푸는 자오티가 왕인천의 성장 취임을 용인하고 자신을 빨리 하남에서 몰아내려는 것에 불만을 품었지만 환계 타도를 위해 일단은 그 불만을 접어두었다. 이후 자오티는 환계 타도를 위한 7성 동맹에 가입하여 안직전쟁에 참가하여 승리하였지만 이후 1차 직봉전쟁에서 환계와 접촉하여 우페이푸에게 대항하였다가 펑위샹의 공격으로 하남에서 쫓겨나게 된다.

5. 참고문헌

6. 관련 문서